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85화(185/589)
< 185 : 새로운 길 >
“사장님, 우리 투자는 대부분 시설재이니 중고와 신품이 그다지 성능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검토해보죠. 가서 일 보십시오, 스코우 부사장.”
“예, 사장님.”
투자 보고서를 두 번이나 반려했는데 투자비가 6000만불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기름기를 쫙 뺐다는 의미였다.
이 보고서에 기재된 것은 필수 시설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코우 부사장의 말처럼 매물로 나온 시설재가 있다면 지금이 기회이긴 했다.
따르릉.
나는 빌 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세그룹 비서실입니다.>
“베인 실장.”
<예, 회장님.>
“일전에 자산 정리 부탁했던 것 준비되었나요?”
<예, 취합 및 분석이 끝났습니다. 언제 상세 보고를 드릴까요?>
“경부고속도로 완공 후에 자세히 듣도록 하죠. 그룹 전체 비즈니스를 유지하면서도 추가로 600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 최대한 작전을 짜보겠습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데는 빌 베인만한 전문가가 없으니, 방법을 찾아줄 것이다.
21세기라면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 시장에서 자본을 마련하겠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이 시대에 자칫하면 내가 나서서 대세를 적대적 M&A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내 사업체가 대한민국에서는 드물게 정말 양질의 회사라는 걸 바로 알아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신진과 수성의 경영 상황도 최대한 알아봐 주십시오.”
<예, 회장님.>
저우언라이 4원칙으로 둘 다 사업이 쪼그라들 테니, 이 기회를 적극 이용해야 할 것이다.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든, 시설재만 인수하든, 상황에 맞게 행동하면 될 것이다.
**
7월 1일, 당재 터널 현장.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두 달 남짓 1분 1초를 아껴가며 돌관공사를 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발파였다.
이 발파로 산이 관통되면 방수 처리와 조명과 환풍기 같은 자잘한 마무리 공사만 하면 된다.
말 그대로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것이다.
“사장님, 발파 준비되었습니다.”
“사이렌 울리세요.”
“사이렌 울려!”
위잉! 위이이잉~~
<잠시 후 발파 작업이 있습니다. 터널 주변의 작업자는 전원 안전 위치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잠시 후…>
이미 작업자 전원이 대피해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최종 확인합니다. 천공수는?”
“총 100공입니다. 확인 완료입니다.”
“공당 장약량은요?”
“공당 2.8kg입니다. 시방서의 비장약량 계산법에 따라 루베(㎥)당 1.2kg 배정했습니다.”
역시 배운 대로 잘도 한다.
이 시대에 경부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한 이들은 죄다 한 끗발하는 이들이 분명했다.
“왕 사장님. 발파하시죠.”
내가 최종 확인을 마치자 왕 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발파 레버를 꽉 쥐었다.
“신호 주십시오.”
“카운트다운. 셋, 둘, 하나, 발파!!”
“발파!”
꾹. 콰콰쾅! 쿵! 쏴아아아아~
터널 깊은 곳의 마지막 발파라 묵직한 소리와 함께 터널 입구로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21세기라면 전기 제어로 폭파 시간을 조절해 훨씬 관통 확률을 높였겠지만, 지금으로선 장약의 밀집도를 조절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뚜… 뚫린건가?”
‘와아아아아… 뚫…’
“어? 소리가… 소리가 들린다!”
터널 반대편에서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흙먼지 너머로 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와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 성공이다. 뚫었어!!!!!”
“시발, 뚫었다! 드디어 뚫었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터널 안으로 달려갔고, 반대편에서 달려온 동료들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어째 이 시대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만세 부를 일이 이렇게나 많이 생기나.
그래도 좋았다. 드디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3교대 돌관공사가 끝난 거다.
“끝났어! 공사 끝났다고!”
다 큰 어른들이 서로 얼싸안고 이제 개고생 끝이라며 눈물까지 펑펑 쏟아가며 환호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같이 한 일인데요. 이제 집사람 편히 보겠네요.”
몇몇 직원들은 내게 큰 절을 하며 고맙다고 할 정도였다.
직원 중에는 신혼부부도 꽤 있었다.
신혼살림을 옥천에서 차리고 매번 교대 시간마다 새댁이 마중을 나왔는데, 이제 몸 고생은 물론 가족들의 마음고생도 끝이다.
“오늘은 잔치해야죠. 그렇지요, 우 사장님?”
“물론이죠. 마무리 공사야 현산이 다할 텐데, 우리 대세는 이제 먹고 마시고 놀아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에에에에! 으하하하!”
대세 건설 직원들은 이미 천막을 펴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다들 이리 오세요. 한 접시씩 들고 가세요.”
“이야, 돼지를 몇 마리나 잡은 겁니까?”
“옥천에 있는 돼지는 다 잡았죠. 많이 드세요.”
천막을 펴자마자 트럭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찜통을 몇 개나 옮겨왔고, 직원들 아내들이 나서서 돼지고기를 썰어댔다.
눌린 머리부터 보쌈에다 족발에다 순대까지, 돼지로 만들 수 있는 건 죄다 만들어서 가져왔다.
소주 박스와 막걸리를 담은 말통도 트럭에 한가득 싣고 왔다.
“오늘 하루는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십시다. 까짓거 마무리 공사야 며칠 밤새면 되는 거 아닙니까!”
“건배!”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대세 건설과 현산 건설 직원들이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건배했다.
해외 공사 1위, 국내 공사 1위의 자부심을 가진 회사라 직원들도 잘 어울렸다.
“이거, 국내 공사도 만만찮네. 내가 월남에서 비행장 닦을 때보다 더 힘들었어.”
“말도 마쇼. 나도 태국에서 고속도로 좀 닦아봤는데 이것보단 쉬웠소이다.”
막걸리를 대접에 부어 콸콸 들이부었다. 김치로 보쌈을 싸서 같이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크하하, 내가 이 맛에 공사한다니까.”
“하하, 왕 사장님. 대형 적자를 보시고 그리 웃음이 나오십니까?”
“뭐 어떻습니까. 땅 파먹고 사는 인간이 간혹 수업료도 내고 해야죠. 땅 팔 때마다 돈을 벌면 누가 성공 못하겠습니까?”
왕 사장다운 말이었다.
‘중동 갈 때까지만 견디십시오. 금방입니다.’
나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삼키고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막걸리와 돼지고기만큼은 70년대가 훨씬 맛난 것 같았다.
**
1970년 7월 7일.
청와대에서 길일이라고 잡은 날짜에 대국민 약속대로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자 나라 전체는 축제 분위기였다.
대통령은 직접 샴페인을 따서 나들목에 뿌리며 기념 촬영을 했고, 위령탑에 나아가 헌화하면서 대한 늬우스를 찍었다.
나 또한 진심을 담아 위령탑에 꽃 한 송이를 바쳤다. 당재터널에서야 다행히 인명사고를 막았지만, 다른 곳에서 이따금 발생했던 인명사고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뒤로 시주식(試走式)이라고 해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요인과 우리 시공사 대표들이 합세해서 대구까지 내달렸다.
“와아아아아!”
기념행사장에 도착하니 중고생 2천여명이 카드섹션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건설 유공자 190여명에 대한 표창이 이어졌고, 저녁에는 불꽃놀이도 계획되어 있다고 했다.
대통령 축사 전에 여고생들이 대통령 찬가를 합창할 때는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축하하는 마음은 다른 이들과 같았다.
어찌나 많은 구경꾼들이 몰렸던지 공무원들이 인파를 향해 모래를 뿌리며 질서 유지를 했을 정도였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체이며, 국가 발전에 큰 공헌을 하리라 믿습니다. 그에 더하여 우리 민족의 저력과 능력을 세계만방에 또 한번 증명했다고 하겠습니다… (중략)… 누군가는 무모하다, 불가능하다 했지만 저는 국민들과의 약속이라면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킨다는 걸 명심하여 주십시오.>
대통령은 대국민 축사를 통해 대선 공약을 지켰다며 정치적 이득을 단단히 챙겼다.
경제발전과 민족주의를 엮어 권력을 다지는 대통령의 축사는 21세기 사람인 내가 듣기에도 꽤 솔깃했다.
직접 행사장에서 웅변에 가까운 축사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선진국도 함부로 투자하지 못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다니, 도박치곤 꽤 근사한 도박이었다.
“임자들, 수고 많았어. 현산은 언제나 뚝심 있고, 대세는 기술로 승부를 보는군. 서로 합이 좋아. 아주 좋아.”
축사를 마치고 나온 대통령은 양쪽에 우리를 끼고 고속도로로 데려갔다.
서울로 올라가서 정부 요인들끼리 한잔할 생각인 모양이다.
“대세가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공기 내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대세야 막판에 숟가락을 좀 얹었을 뿐입니다. 현산이 다리도 놓고 터널도 다 뚫었습니다.(그러니, 국내 건설은 계속 현산에 맡기십시오.)”
나는 하고픈 말의 절반은 삼키고 말을 보탰다.
“보기 좋구만. 그래 국내 기업들이 이렇게 으쌰으쌰 합심하면서 국내 건설은 싸게 짓고, 돈은 해외 나가서 벌어와야 하는 거야.”
“예, 대통령님.”
“현산도 해외 건설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맞는 말을 하는데 어째 살짝 얄밉냐.
“어쨌든 이번에 어려운 일을 했으니 내가 좀 챙겨줄 것도 있지 않겠어? 뭐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비서실로 올리도록 해. 최대한 들어주지.”
“예,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각하.”
대통령은 대가를 주겠다는 언질만 주고는 금세 자리를 떴다.
당장 여기서 뭔가 해달라면 못 들어주겠다고 할 수는 없으니, 비서실을 통해 한번 걸러서 승낙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름, 경부고속도로의 대가로 큼지막한 걸 요구해도 들어주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우 사장님은 뭘 요청하실 겁니까?”
“저야, 딱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왕 사장님은 당장 요청하실 거라도 있습니까?”
웬만하면 청와대엔 빚을 지지 말아야지.
눈밖에 안 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저야 이번에 적자를 좀 세게 맞았으니, 경부고속도로 보수공사를 맡겨달라고 해야지요. 원래 ‘선 공사 후보완’이라는 방침으로 계획된 고속도로 아닙니까.”
“보수 공사비는 꼭 제대로 계산해서 받아내십시오. 연속 적자는 아주 위험합니다.”
정부도 제대로 공사비를 쳐줄 수 있을 거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걷히거든. 물동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도로도 그만큼 빠르게 망가진다.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보다 대세에서 해외 공사 따시면 현산도 좀 끼워주십시오. 저도 주머니에 달러 좀 두둑하게 넣어보고 싶습니다.”
“예, 적당한 정보가 있으면 꼭 알려드리죠.”
해외 건설이야 어차피 나 혼자 먹지 못할 정도로 많다.
이왕 나눌 거, 현산에 연결해주는 것이 낫겠지.
이제 빚은 홀가분하게 갚았으니 내 자리로 돌아가자. 빌 베인이 정보를 제대로 정리해 뒀으리라.
***
일본 도쿄, 게이단렌 회관.
미쓰비시, 도요타, 이토추, 가보네, 미쓰이, 이시카와 회장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대부분 종합상사를 보유한 재벌들이었는데, 이시카와 중공업 회장이 특별히 참석한 모양새였다.
“이 조항이 주4원칙(周4原則)입니까?”
회장들은 큰 글씨로 인쇄된 보고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보고서엔 중공은 한국, 대만에 투자하는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적혀 있었다.
“중공이 확실하게 칼을 뽑았군요. 한국과 대만을 직접 겨냥하다니 말이죠.”
“겉으론 한국과 대만을 압박하는 모양새지만, 실상 미국에 러브콜을 한 것이죠. 한국과 대만대신 중공에 투자하면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말입니다.”
“아쉽군요. 한국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건 곤란한데 말입니다. 제대로 빨아먹지도 못했는데…”
다들 능구렁이들이라 외교 문서를 나름대로 분석해댔다.
“허허,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습니까. 중공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수십 배는 크니 이참에 정리합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총대 메고 한국에 끈은 둬야지요. 그 때문에 우리가 모인 거 아닙니까?”
연배가 높은 미쓰이 회장은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누가 총대를 메겠냐는 말이었다.
“도요타는 곤란합니다. 중공은 장차 미국 못지않게 큰 시장이 될 겁니다. 여타 다른 기계 부품 수출도 걸려있고…”
“저희 이시카와 중공업도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발을 빼고자 합니다. 나이지리아 수주를 뺏긴 주제에 한국에 기술 이전이나 해주고 있다고 사방에서 질책이 대단해서 말입니다.”
여론 때문이 아니라 한국 조선사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걸 어쩐다? 다들 빠지겠다고만 하시니.”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저희 미쓰비시가 한국에 남겠습니다. 포항제철 건은 아직 먹을 게 좀 있고, 중공도 어쨌든 제철소가 필요한지라 우리 미쓰비시를 배제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하하! 좋군요. 그리 합시다. 그럼, 나머지는 직접 투자는 쫙 빼고, 한국에는 부품 수출만 유지하는 걸로 해서 정부에 회신하겠습니다.”
미쓰이 회장은 반색하며 게이단렌 간사에게 어서 의견서를 만들라고 눈짓을 했다.
“잠시만요. 미쓰이 회장님. 이리 성급하게 입장을 밝혔다가 미국의 눈 밖에 나면 어쩝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국과 중공은 시장 개방과 소련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짜고 치고 있는 겁니다.”
“…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요. 조만간 우리 일본이 미국의 외교 작전을 돕기로 했답니다.”
도요타 회장의 질문에 국제 정치에 밝은 미쓰이 회장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외교 작전이라고요?”
“자세히는 몰라도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뭔가 작전을 펼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걸 확인한 뒤에 발을 빼면 되는 겁니다.”
확인 절차도 있고 아주 좋았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군요. 아, 일본이 양쪽을 다리 놓는 셈이군요.”
“그게 다 기술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을 제 편으로 만들고 싶은 거지요.”
“하하하, 이거 손뼉이 착착 맞는군요.”
일본 재벌 회장들의 표정이 달아 올랐다.
벌써 거대한 중공 시장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중공에 물건을 팔아치울 욕심이 눈을 가려 미국이 이리 나서는 이유에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정책 변화는 중공의 시장이 필요할 정도로 미국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의미였고, 그 파생효과는 전 세계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말이다.
< 185 : 새로운 길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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