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9화(19/589)
< 019 : 선점이 곧 독점이다 >
“정지!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세 실업 우찬수라고 합니다. 지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데이비드가 이미 내 이름 석 자는 알려뒀을 테니, 만나주긴 할 거다.
“약속은 하셨습니까?”
“오늘 울산 시청 환영회에서 뵙기로 했는데, 미리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이대로 전해주십시오.”
“미리 말씀드릴 거라면…”
“이 양반이… 그대로 전하면 된다니까.”
“아, 옙! 알겠습니다.”
60년대는 신사답게 요청하는 것보다 이렇게 거들먹거리는 게 잘 먹히는 건가?
차창 밖으로 인상을 와락 구기니 단박에 게이트가 열렸다.
정문 근처에 차를 대니, 인터폰으로 연락하더니 사장실 앞까지 안내해줬다.
**
“으흠, 미스터 우라고 하셨나요.”
“예, 데이비드의 소개로 왔습니다.”
사장실로 들어서니 덩치 큰 양반이 날 맞이했다.
데이비드의 소개를 받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찾아올지는 몰랐겠지.
“에릭 말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찬수 우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박사가 한국의 숨은 브레인이라고 하더군요.”
“브레인이라니, 과찬이십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말톤은 나를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인터폰으로 미리 연락해서 그랬던지 탁자에 초콜릿과 진한 커피가 세팅되어 있었다.
데이비드가 날 소개할 때 꽤 호의를 담았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아직 환영회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어쩐 일로 이리로 오셨는지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반가운 기색은 아니었다.
하긴 유일한 특혜였던 초기 공장도 말아먹고, 그렇다고 한국에서 매출이 큰 것도 아니고, 지사장 입장에선 한국에 왜 왔을까? 하는 생각뿐일 거다.
이봐, 당신은 땡잡은 거야.
날 만나서 재수 좋은 줄 알아.
“사장님이 얼마나 어려우실까? 걱정되는 마음에 미리 찾아뵀습니다.”
“제 걱정을 하셨다고요?”
“그럼요. 미국 본사는 한국에 쏟은 투자 대비 수익이 형편없다고 연일 질책하고, 미 정부는 차관 대여에 참여하라고 하고, 한국 정부는 투자를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 않습니까.”
“… 하아… 그걸 어떻게…”
말톤 지사장의 얼굴에 당혹감과 경계심이 동시에 어렸다.
내가 기밀 상황을 꿰차고 있으니 당연했다.
“사업을 하면서 각계각층에 컨설팅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로비스트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말톤 지사장이 날 로비스트 취급을 했다.
“로비스트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갈프사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우리를 도우신다고요?”
“그럼요. 지금 갈프사를 돕지 않으면, 울산 공단의 투자 전체가 좌초될 위기가 아닙니까. 갈프사는 미국 투자자의 선봉으로 한국에 오신 건데 말입니다.”
“하하, 투자자의 선봉이라. 하긴, 우리 회사 신조가 미지의 개척자가 되자. 20세기의 콜럼버스가 되어보자는 것이죠.”
갈프사가 먹튀이든 아니든 해외 투자의 물꼬를 터줬다는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의 산업에 이바지한 바가 분명히 있었다.
게다가 이번 역사에선 날 만났으니 먹튀는 못 할 거다.
“20세기 콜럼버스라. 아메리카를 발견하고도 그다지 돈을 못 벌었다는 측면에선 갈프사와 비슷하군요.”
“… 어떻게 하면 저희가 돈을 벌까요?”
도발하려고 한 말인데 사정이 어지간히도 급했던지 화를 내기는커녕 질문을 해왔다. 데이비드의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제가 온 게 아니겠습니까.”
“저희 문제가 뭔지는 알고 계십니까?”
말톤 지사장이 내 실력을 떠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밀당이 시작되었다.
로비스트인지 사기꾼인지 판별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문제가 어디 한둘입니까? 한국 내수는 형편없고, 일본으로 수출도 여의치 않고, 심지어 제1공장은 걸레짝으로 변해서 신규 공장도 지어야 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겠죠.”
“하하…”
말톤 지사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거겠지?
이봐,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심지어 21세기에서 왔단 말이야.
“게다가 중동산(産) 원유의 품질은 치명타였을 테죠. 값싼 노동력에 공해 이슈도 없는 한국 땅에서 싸게 정유해서 일본에 비싸게 팔아먹으려 했는데, 정유 효율이 형편없으니 말입니다.”
“… 허…”
60년대 중반은 한창 일본이 잘나가던 때였다.
갈프사는 그런 일본 시장에 각종 석유 제품을 팔고 싶었는데, 비용 절감 측면에서 한국 땅을 생산 기지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첫 번째는 일본에 정유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가격 경쟁이 쉽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는 원유 품질에 얽힌 기술적인 문제였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지리적으로 중동산 원유를 주로 사오는데, 중동 원유는 미국산(産) 텍사스유나 북해산(産) 브렌트유 대비 찌꺼기가 많아서 휘발유나 경유가 덜 뽑혀 채산성이 아주 나빴다.
갈프사가 사업 검토를 소홀히 했던 탓이었다.
괜히 해외 사업에서 현지화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어려움은 한시적이지.’
지금에야 중동산 원유 때문에 죽을 맛이지만, 70년대를 관통하며 대한민국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며 외려 중동산 원유가 대박이 난다.
휘발유나 경유 못지않게, 나프타나 아스팔트 같은 저급 석유 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거든.
덕분에 갈프사가 나프타 사업권을 일본에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지.
그러니, 지금이 갈프사를 꼬드길 절호의 기회이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제 말이 틀립니까?”
“아닙니다, 너무 정확해서 놀랍군요. 솔직히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선 중동 원유를 들여와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중유(重油) 비율이 40% 이상일 줄은 몰랐습니다.”
중유란 일명 벙커C유라고 부르는 저품질의 원유 성분이다.
기껏 해봐야 선박용 연료로 쓰거나, 윤활제나 아스팔트 재료로 쓴다.
두바이유로 대표되는 중동 석유는 중유 성분 비율이 높아서,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70%까지 차지한다.
미국 텍사스유가 갈색을 띠며 점성이 낮은 원유인 데 반해 중동 두바이유는 시꺼멓고 유달리 끈적거리는 이유다.
“제가 그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드리려고 온 겁니다. 갈프사를 돕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좋은 일이니까요.”
이 시대에 애국자 행세는 언제나 잘 통하는 핑계였다.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요?”
“정유 효율을 5% 정도 올려드리면 해결되는 일 아닙니까?”
“… 5%라고요?”
정유 효율을 5% 올리면 정유사 매출은 대충 15%가 올라간다.
그 정도 정유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천만 불 수준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니, 순익 측면에서는 대충 5% 정도 올라간다고 계산한다.
순익 5%라면 제조업에선 대단한 숫자다.
“물론, 투자는 따로 필요 없습니다.”
“허헉!! 투… 투자 없이 5%… 미친!!!!”
처음엔 그저 그런 표정이다가, 투자가 필요 없다고 하니 말톤 지사장이 말을 더듬었다.
이 정도로 넘어오지 않을 사람은 없다.
**
“대체 어떻게 그렇게 효율을 높인다는 겁니까?”
“뭘 그리 서두르십니까? 비즈니스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설마 이게 공짜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말톤 지사장이 짐짓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그렇죠. 무슨 대가를 원하십니까? 그것부터 들어야겠군요.”
“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울산 공장의 나프타 독점 사업권이고, 두 번째는 폐공장을 넘겨주시죠. 그럼 정유 효율을 5% 올려드리겠습니다.”
내 사업이 성공하려면 갈프사 정유 공장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독점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기술이 있어도 재료가 없으면 제품을 만들 수가 없지 않나.
나프타는 합성수지, 합성 섬유, 합성 고무의 원료이기도 하지만, 아스피린이나 사카린을 만들 때도 쓸 정도로 그 활용 범위가 어마어마하다.
21세기 반도체가 떠오르기 전까지 ‘산업의 쌀’이라고 하면 나프타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물론, 나는 나프타를 합성 섬유를 뽑는데 몽땅 쓸 생각이다. 현재 갈프사 공장 생산량으로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를 뽑는 것만으로도 벅찰 거다.
“나프타를 독점적으로 구매하고, 공장은 고쳐서 쓰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난 폐공장 수리비로 20만 불을 다 쓸 거다.
공장 인수 대금을 줄 돈 따윈 없어.
“나프타야 독점하신다 해도 고객께서 시가로 구매하시는 거고, 폐공장이야 팔려고 내놓은 거니 정유 효율이 5%나 올라간다면 흔쾌히 드려야죠.”
“그럼 이걸로 딜이 성립되었네요.”
“헌데, 제일 중요한 전제조건은 그 기술이 실재하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톤은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던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약하시면 지금 바로 보여드리죠. 내 말이 거짓이면 바로 계약서를 찢겠습니다. 아니, 해당 기술을 계약 조건으로 명시하면 되겠군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계약을 맺기 전에 절대 기술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칼자루를 거꾸로 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바로 시연을 보여주신다니 감사…”
“계약을 하면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말톤이 얼렁뚱땅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기에 나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말톤 역시 계약 직전 마지막 항목을 짚었다.
“… 다 좋은데 나프타 독점 사업권은 어렵습니다. 독점이 아니라 선점으로 하시죠. 독점이라면 고객께서 소화를 못하시면 저희는 생산한 나프타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선점으로 하죠.”
말톤이 이러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프타는 그 활용 범위가 넓은 만큼 그걸 다루기 위한 기술력이 만만찮거든.
휘발성이 워낙 강한 물질이라 수송과 저장이 어렵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분해/급랭/압축/분리/정제가 필요하다.
즉, 일단 나프타를 분해하면 고무든 섬유든 아스피린이든 제품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쓰다가 남는다고 어디 저장해둘 수가 없다.
나프타 공장 주변으로 관련 제품 공장이 잔뜩 모여 있는 이유다.
심지어 해당 공장들은 공업용수와 전기를 공동으로 이용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얼마나 공장을 밀집시키느냐가 최종 제품의 원가에 큰 영향을 주기에 콤비나트(결합생산)형 산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멀리서 가져오기도 멀리 가져가기도 힘든 게 나프타이기에 울산에서 나온 나프타는 울산 단지에서 써야 하는 거다.
“… 크흠… 선점이라면 미스터 우에게 공급하고 남는 나프타를 다른 데 팔겠다는 뜻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우선권만 보장하시면 됩니다.”
남에게 팔 나프타 따위는 없을 거다.
그러니 선점이 곧 독점이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아시아 전역의 나프타 수요도 폭발하게 되거든.
그래서 70년대로 들어서면 일본이 울산 공장의 나프타 사업권을 비싼 값에 사가는 거다.
“선점권은 당연히 챙겨드려야죠. 잉여 물량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시니 말이죠.”
실제로 정유사는 나프타처럼 모아두기 어려운 석유 제품은 나오는 족족 팔아 재껴야 수익 구조가 탄탄해진다.
이렇게 계약하면 갈프사도 나프타 판매에서 손해볼 염려는 전혀 없다.
“그런데, 대체 갈프사 생산량이 얼마나 되기에 물량이 남는 걸 걱정하시는 겁니까? 저는 소규모로 나프타 사업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만.”
포커에서 한방 크게 땡기려면 상대가 자기 패를 믿고 배짱을 튕길 때 묻고 더블로 가야한다.
이 경우는 물량만 키우면 되는 쉬운 케이스다.
“음? 이 공장의 생산량을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일년에 원유를 700만 톤이나 정제하고, 그에 따른 나프타 생산량이 9만 톤이나 됩니다.”
‘겨우 연간 9만 톤이었어?’
으스대는 말톤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60년대라 생산량이 적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연간 10만 톤도 안 될 줄은 몰랐다.
80년대 말만 되어도 우리나라 연간 소모량이 100만 톤을 훌쩍 넘기고, 90년대 말에는 연간 300만 톤을 넘게 된다.
“9만 톤이라고요? 그 물량이면 나프타 판가는 얼마입니까?”
“나프타 가격은 톤당 20불입니다. 연간 구매 비용이 180만 달러나 됩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헐? 나프타가 그렇게나 싸? 톤당 20불?’
21세기에는 나프타 갑이 톤당 1000불까지 올라서 플라스틱이 금값 됐다고 했는데, 고작 20불?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너무 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오일 쇼크가 안 왔구나.
원유 가격이 껌값일 때였네.
폐공장을 공짜로 인수하고 나프타 선점권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계약인데 나프타 가격까지 싸다!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짐짓 태연한 척 했다.
“나프타 가격에 동의하시면 계약하시죠.”
터무니없이 싼 판가에 놀라는 내 표정을 반대로 읽었는지 말톤 지사장이 계약을 서둘렀다.
< 019 : 선점이 곧 독점이다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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