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0화(20/589)
< 020 : 수백 배 장사 >
계약서에 정유 효율 5%를 높이는 대가로 폐공장을 넘겨받는 것과 나프타를 선점한다는 조항을 삽입하고 서명을 마쳤다.
“그럼 정제 효율을 높여볼까요?”
“직접 시연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담당자에게 플랜트 PFD를 가져오라고 하시죠.”
“… PFD까지…”
PFD란 Process Flow Diagram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공정 흐름도라고 할 수 있다.
공정 흐름도를 보면 말 그대로 이 공장이 어떤 식으로 원유를 증류하는지 알 수 있기에 일급 기밀문서다.
“시연을 하려면 증류 타워와 반응로(Reactor)를 어떤 것으로 써야할지 알아야 합니다.”
“…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셔야죠.”
썩 내키진 않겠지만 보여줄 수밖에 없지.
말톤은 이미 계약을 맺은 상태인데다, 시연을 위해 공정 흐름도를 요청하는 것은 엔지니어 입장에선 무척 당연했다.
“이보게, 당장 PFD 청사진을 내 방으로 가져오게. 아니… 내게 설명할 필요 없고, 가져와! 어서.”
말톤 지사장은 대뜸 실무자에게 공정 흐름도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오케이, 이제 기적을 보여줄 차례였다.
***
“여기 있는 증류탑이 적당하겠군요.”
나는 PFD를 보고 적당한 증류탑을 결정했다.
정유소에서 큰 원통형으로 세워진 구조물이 증류탑이다. 미국식으론 타워(Tower), 영국식으론 칼럼(Colum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증류/추출/흡수/세정 목적으로 지어진 구조체다.
겉보기엔 커다란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세로로 세워둔 것에 불과하지만, 가열된 원유가 내부로 주입되면 상하 위치에 따라 휘발유/경유/나프타/중유 등등으로 분별되어 빠져나온다.
당연히 각 석유 제품을 담는 저장 탱크들이 주르륵 연결되어 있다.
저장탱크와 증류탑을 잘 제어하면 연속적인 촉매 반응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말은 단순하지만 노하우의 영역이다.
“이건 시험 생산용 증류탑입니다. 이왕이면 메인 증류탑에서 시험하시지요.”
공정 흐름도를 가져온 실무자가 딴죽을 걸었다.
내가 증류 효율을 5%나 올리겠다고 하니 도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바로 메인 증류탑에서 시연하라고 말이다.
만약 내가 메인 증류탑을 말아먹으면 피해액이 장난이 아닐 것이니, 손해 배상을 걸어서 내 인생을 작살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이봐, 이 증류탑을 선택한 건 중유 탱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괜스레 얼굴 붉히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조작이나 해줘.”
“나보고 당신 보조나 하라는 소린가? 나는 여기 기술 책임자란 말이야.”
“설마, 어느 밸브가 어디로 연결됐는지 모르나?”
“뭔 소리야? 난 공장장이야. 리벳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아는 사람이란 말이다!”
공장장이었어?
어쩐지 공정 흐름도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무척 자존심 상해하더라니.
하긴, 내가 정유 효율을 5%나 올리면 이 양반은 여기서 최고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잃게 될 테니까 말이지.
“됐고, 날 돕든지 아니면 자리 비켜줘. 말톤 지사장에게 다른 사람 불러달라고 할 테니까.”
나는 기계음에 겁을 먹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말톤 지사장을 가리키며 공장장을 협박했다.
“다른 사람을 불러? 말이면 단 줄 알아?”
“이봐, 난 당신과 알량한 자존심 대결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지. 나는 한국인이니까 말이야.”
“무… 무슨 뜻이지?”
“노는 데가 아예 다르다는 말이야. 내가 아무리 노하우가 있어도 미국 회사에 취직해 성공하긴 어렵다는 얘기지. 난 한국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단 말이야. 하지만, 백인 남자인 당신은 어떨까? 내 노하우를 알면 미국 본사로 돌아가 부사장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60년대는 미국 내 인종 차별이 극심할 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이민법상 ‘아시아인 배제법’으로 인해 아시아인은 미국 시민이 될 자격이 없었으며, 60년대 중후반을 지나서야 겨우 아시아인 배제법이 폐지되었다.
지금 21세기 마인드로 미국에 진출했다간, 비웃음은 물론 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 서… 설마… 노하우를 내게만 알려준다는 말씀인가요?”
어쭈, 공장장이 순식간에 얼굴색을 바꿨다.
역시 미국인은 태생부터 자본주의적이라니까.
부자가 된다고 하니 단번에 공손하게 변했다.
“당연하지. 이 촉매를 어찌 다루는지는 당신과 나만 알아야하지 않겠어?”
나는 손에 들린 포대 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황산으로 표면 처리한 벤토를 중유에 섞어버리면 소재가 뭔지 분석하기가 아주 어렵고, 촉매 반응을 재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노하우를 지키면 윈윈이다, 이 말씀입니까?”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내가 촉매를 독점 제공하고, 당신은 공정 레시피를 독점하는 거지. 어때? 서로 배신할 가능성은 없지 않겠어?”
석유 화학 산업에선 기술을 특허로 등재하는 것보다 노하우로 보안 유지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석유 화학 공정이 수학이나 기계 공학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 설비와 유틸리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기술 컨셉만 알면 특허 회피가 무척 쉽기 때문에 특허 등재하는 것은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유사의 보안이 엄격한 이유다.
정유 산업 시설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다, 폭발 사고 위험 때문에 국가 1급 보안 시설로 취급되니 보안 유지가 용이하기도 하다.
“공정 레시피를 우리 둘만 아는 거군요.”
“물론이지. 그러니, 당신보고 도우라는 거잖아. 혼자 머리론 기억 못해? 딴 사람 부르고 싶어?”
“아뇨, 아닙니다. 제가 합니다. 제가!”
공장장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예, 미스터 우.”
단박에 내 호칭이 당신에서 미스터 우로 올랐다.
“스탠바이!”
“스탠바이!”
“중유 챔버 히터 온! 분당 2도 상승! 타깃 온도 90도!”
“분당 2도, 타깃 온도 90도!”
공장장이 내 말에 따라 각종 스위치를 조절했다.
이때는 제어 컴퓨터가 없어서 직접 현장에서 게이지를 보며 동작시켜야 했다.
능숙하게 조작하는 모습으로 보건데 이 공장을 제대로 아는 양반이 맞았다.
“스팀 챔버 온! 스팀 밸브 12psi(기압 단위)!”
“스팀 챔버 온! 스팀 밸브 12psi! 마스터.”
중유는 딱딱하게 굳은 엿이나 마찬가지여서 배관에 흘려주려면 열을 가해야 하고, 스팀 챔버를 연결해 뜨거운 증기까지 섞어줘야 한다.
“오케이. 스팀 챔버 홀드 온!”
“스팀 챔버 홀드 온, 마스터.”
급기야 내 호칭이 마스터가 되었다.
기술자가 상급 기술자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부르는 말이다.
내 제어 명령이 공장장이 듣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던 거다.
솔직히 내 수준이면 마스터보다 더 높지.
내가 외우고 있는 화공 조건을 다 털어놓으면 이 시대 노벨 화학상도 받을 수 있을 거다.
노벨상보다 그 기술로 재벌 되는 것이 수백 배는 낫기에 그러지 않을 뿐이다.
후루루루룩.
내가 촉매 가루가 담긴 자루를 스팀 챔버 입구에 연결하니 순식간에 가루들이 빨려 들어갔다.
12psi이면 약한 진공이 걸려있는 상태이기에 이리 되는 것이었다.
“피더 오픈(Feeder open, 주입 파이프 열어)! 믹서 오픈!(Mixer open, 혼합 파이프 열어!)”
“피더 온! 믹스 온! 마스터.”
쿠르르르릉. 쏴아아아아아.
“커억! 이상합니다. 마스터, 압력이 너무 올라갑니다.”
당연하지. 중유에 촉매가 반응해서 휘발유와 경유가 미친듯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침착해! 라이저 오픈!(Riser open, 혼합 통로 열어!) 노말 타깃 프레셔 30psi!”
“30 psi는 너무 압력이 높습니다. 마스터!”
“닥쳐, 미친놈아. 게이지나 쳐다봐! 그러다 터진다!”
다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21세기라면 컴퓨터로 제어하면 그뿐이었지만 지금은 수동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도 실제 생산을 할 때는 밸브마다 컨트롤러를 달아서 자동화하겠지만, 지금은 시험 작동이니 수동으로 조작할 수밖에 없다.
“옛설!”
“섹션별 싸이클로트론 압력 게이지 읽어!”
“버텀 섹션 17 psi, 미들 섹션 28 psi, 탑 섹션 34 psi! 마스터.”
“탑 섹션 익스트렉션(배출구) 오픈! 탑 섹션 타깃 프레셔 25 psi!”
“갓 잇! 탑 섹션 익스트렉션 오픈! 탑 섹션 프레셔 33, 31, 30… 25! 휘발유가! 휘발유가 터져 나옵니다.”
공장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했다. 기껏해야 선박 연료나 아스팔트 재료로 쓰던 중유에서 고급 휘발유가 콸콸 뿜어져 나오니까 말이다.
“아직이야. 집중해! 미들 섹션 오픈! 타깃 프레셔 20 psi!”
“미들 섹션 익스트렉션 오픈! 프레셔 28, 27, 26… 20! 허, 미친… 미쳤습니다.”
증류탑의 중간에서 경유마저 수돗물처럼 뿜어져 나오니 공장장은 얼이 빠져버렸다.
뭘 그리 놀라나?
21세기엔 이보다 효율이 3배나 좋은 정유 기술도 있다. 나중에 내가 쓰려고 이 정도만 알려주는 거다.
“허헉, 중유 챔버 압력 게이지 상승합니다. 15, 18! 22 psi! 촉매가… 촉매가 중유 챔버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쩝니까? 마스터.”
“걱정 마, 그게 정상이야.”
“이게 정상이라고요?”
“그래, 중유와 촉매가 섞여 자동 순환하는 게 이 공정의 노하우야. 이제 밸브에서 손 떼고 즐겨.”
“… 자동… 자동 순환한다고요… 이럴 수가…”
이 공정의 특징이자 최대 장점이다.
증류탑에서 휘발유와 경유가 빠져나오고 높아진 압력으로 말미암아 중유 찌꺼기들이 다시 초기 중유 챔버로 넘어가고, 그게 다시 증류되는 거다.
한마디로 한번 기름을 짠 참깨를 새로운 참깨와 섞어서 다시 기름 짜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동으로 순환하면서 말이다.
“어때?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들겠지?”
“하하, 무턱대고 흉내 내다간 설비를 통째로 말아먹겠는걸요.”
“혼자 할 수 있겠어?”
“물론이죠. 한 번 돌리면 자동 순환인데요. 물론 마스터가 촉매를 납품해주신다면 말이죠.”
“싸게 주지. 톤당 1만 불에 말이야.”
촉매는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싸게 팔아도 된다. 기술자들도 당연시 하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공장장은 웬만큼 승진하기 전에는 이 공정 조건을 보물처럼 다룰 것이다.
대세 실업이 촉매를 납품하는 즉시 중유에 섞게 하면 보안 유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보가 새긴 하겠지만 적어도 4~5년은 안전할 거다.
“오, 미스터 우. 이게 정녕 정유 효율을 5%만 올린 게 맞습니까?”
“5%가 넘을 수도 있죠. 미니멈 5%를 개런티하는 공정이니까요.”
불안하게 윙윙거리던 증류탑이 안정되자 말톤 지사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입으로는 나에게 말을 걸면서도 눈은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녹색 조명을 훑기 바빴다.
이때의 정유 공장은 컴퓨터 제어 방식이 아니었기에 휘발유와 경유가 쏟아지면 해당 밸브에 장착된 게이지가 녹색 불빛을 번쩍거리는 식으로 시각화했다.
즉, 녹색 불빛이 번쩍거리면 공장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 효율이라면 촉매도 계약에 포함할 걸 그랬습니다.”
“말톤! 이미 서명하셨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계약서가 든 윗주머니를 툭툭 두들겼다.
정유 효율 5%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실제 눈으로 보면 엄청나지.
아무리 나프타 선점권과 폐공장을 받았지만, 촉매까지 알려줄 순 없지.
갈프사가 이 기술을 쓰면 쓸수록 나는 촉매를 더 많이 팔아 부자가 될 거다.
그리고 이 기술이 새어나갈 때면 나는 더 효율 좋은 촉매로 갈아탈 거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나프타를 전량 구입하시는데, 저희도 촉매를 그쪽에서 사야죠.”
“지사장님, 촉매는 다른 곳에서 사고 싶어도 못삽니다. 이 같은 중유 재처리 기술은 당사의 초특급 기밀로 다뤄야 합니다. 저와 사장님만 아는 기밀 말입니다.”
공장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 그래, 공장장. 확실히 이게 초특급 기술이긴 하다 이거지?”
“초특급 기술이고말고요. 저 말고는 흉내도 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요, 마스터?”
“당연하죠. 공장장님 같은 전문가는 되어야 제 기술을 실제 플랜트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멋지군요. 기술 전문가에 설비 전문가에 경영 전문가가 모였으니 돈을 긁어모을 일만 남았습니다.”
말톤 지사장이 갑자기 너스레를 떨었다.
가운데 자리해서 나와 공장장의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자기가 이 일의 중심이다, 이거지.
“폐공장을 고치면 연락드리죠. 나프타를 바로 연결해주십시오.”
“당연합니다. 마스터.”
“나는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겠습니다. 본사 이사회와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군요.”
그래, 미국 본사에서 정치질을 하고 싶겠지.
마음껏 해라.
난 이 거래로 날개를 얻은 격이니까.
“저는 메인 공정을 바꿔놓겠습니다. 촉매 입고 바로 부탁드립니다.”
“10톤은 바로 납품하죠. 딱 10만 불 어치군요.”
“하하, 10만 달러야 바로 입금하죠.”
다들 기분 좋게 웃었다.
난 오늘 하루만에 270배 장사를 했다.
벤토 10톤을 10만원에 사서 10만불, 즉 2700만원에 팔았으니까.
기껏해야 벤토에 물과 황산을 붓고 끓이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 020 : 수백 배 장사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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