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1)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01화(201/589)
< 201 : 풀코스 정찬 >
“제 별장입니다. 식사하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지요.”
왜 산길을 달리나 했더니, 비포장도로 시험이 아니라 별장에 오기 위해서였군.
아니, 둘 다인가.
“집사, 식사 준비해줘요. 귀한 손님이니 잘 부탁해요.”
“예, 사장님.”
집사에게 식사 준비를 시키면서도 채핀 사장의 눈은 내 지프차의 보닛에 고정되어 있었다.
열어보고 싶다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엔진을 보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대로 차를 살피지 않고선 뭐든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군요.”
“그러시죠. 안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채핀 사장이 내 말에 반색하며 보닛을 열었다.
“엔진룸이 생각보다 단순하군요. 이런 시스템으로 그 정도 속도가 난다고요?”
“엔진 출력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만 트랜스미션이나 서스펜션 등은 아직 개선할 점이 꽤 있죠.”
다른 부품은 일본산이든 국산이든 기성품을 구매해 조립한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국산화율이 40%도 못 되는 걸.
“그런 기술적인 문제는 우리 AMC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것 때문에 내가 AMC를 만난 거라고.
“엔진 높이가 유독 눈에 띄는군요. 족히 10㎝는 낮아 보이는데요.”
“눈썰미가 대단하시군요. 맞습니다. 일반 군용 지프차 엔진보다 스트로크를 20㎜ 줄였습니다.”
“… 그러려면 콘 로드나, 크랭크 샤프트를 모두 바꿔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어려운 일을 잘도 했다는 듯 말했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고생 좀 했죠. 현재 2000cc 용량에서 112마력까지 나오니 웬만큼 최적화는 성공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12마력이라고요?”
2000cc 엔진이 100마력을 넘긴다고 하니 채핀 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에 터보차저를 달면 더더욱 출력이 높아지겠지만 70년대엔 이 정도만으로도 탑클래스 엔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심재홍 과장 같은 걸출한 엔지니어가 있어서 이런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양반이 아니었다면 한두 해 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대단하군요. 엔진 크기가 줄었는데 출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우리 회사로서도 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엔진을 만든 이유는 출력보다 다른 이유에서지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지요.”
나는 슬쩍 보닛을 닫았다.
무료 오픈은 여기까지다.
더 듣고 싶다면 나와 합작하셔야지.
그것도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런, 손님을 초대해 놓고 결례가 많았습니다. 다이닝 룸에서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채핀 사장도 분위기를 느꼈던지 훅하니 화제를 바꿔 나를 별장 안으로 안내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쉐프가 막 도착했을 시간이라, 간단한 핑거 푸드 정도가 차려져 있을 줄 알았는데 식탁 중앙의 화려한 센터 피스를 비롯하여 완벽한 풀코스를 서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주인을 위해서 셰프가 늘 대기를 하는 거야?
이런 한적한 별장에 이런 신선 재료를 냉장고에 채워두고 있는 거냐고.
“뭐,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보통 별장이 아닌 느낌이 들어서요.”
“딱히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호텔 대신 여기 별장에 머무십시오. 내일부터 저희 회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실 일도 많으실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머무신다면 저희가 영광이지요.”
“고맙습니다.”
이제 보니 이곳은 내가 조선소에 마련한 영빈관 같은 곳이군.
그걸 사장이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니, 정말 미국 부자들은 차원이 다르구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런 호화로운 별장을 개인이 운영하다니, 압축 성장의 대명사인 동북 아시아인이 보기에는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비효율을 방치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저희 AMC 투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걸 보면… 합작에 관심이 있으시긴 하군요.”
“AMC의 기술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작하려면 파트너의 현주소는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실물을 가져왔으니 성의를 보인 셈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합작을 논의하기 이전에 아까 말씀하셨던 엔진 사이즈를 줄인 이유부터 물어도 되겠습니까?”
감이 좋은 양반이었다.
우리 대세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엔진 사이즈를 줄이고 엔진룸을 밀도 있게 구성하면 차체 디자인을 날렵하게 뽑을 수 있죠..”
“차체 디자인 때문에 그런 힘든 작업을 했다고요? 유럽 시장에 지프차를 민수용으로 출시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말만 지프차고 실제론 디젤 승용차를 출시하려는 겁니까?”
“그런 편법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누가 봐도 지프차이지만 새롭다고 느끼는 차종을 만들어야 합니다. 군용 머슬카의 강력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말이지요.”
나는 유리 탁자에 물을 부어 손가락으로 차체 디자인을 그렸다.
채핀 사장은 처음에 ‘뭐지?’ 하다가 유리판 위의 그림을 보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내 그림 실력이 아무리 어설퍼도 21세기 SUV 디자인을 70년대 사람인 채핀이 보면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이런 디자인의 차를 생산할 수 있습니까?”
70년대 성냥갑처럼 네모반듯한 왜건 차량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세련된 디자인이니까.
“당연히 생산 가능하지요. 지프차 프레임에 승용차 보디를 얹은 식으로 디자인한 거니까요. 물론, 우리 엔진처럼 컴팩트해야 가능한 디자인이죠.”
“그래서 굳이 엔진을 수정하신 거군요. 이런 신형 지프차를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프차처럼 보일 뿐, 실상은 전혀 다른 범주의 차형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SUV라고나 할까요?”
“SUV? 하, 이름도 멋지군요.”
“4WD 전환 옵션으로 지프차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5단 기어와 서스펜션을 보강해 승용차같은 편안한 승차감을 고객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원래 SUV가 승용차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차종을 구상하면서 나온 개념인데, 나는 거꾸로 표현했다.
뭐, 결과야 같으니 뭐든 어떤가.
“그래서 이런 디자인이 나온 거군요.”
채핀 사장은 물로 그린 내 그림이 지워질까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차량 뒷면에 스페어타이어를 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차는 지프차가 아니라 SUV로 불려야 합니다.”
70년대 지프차는 무조건 스페어타이어를 뒷면에 달고 다녀야 한다고 여겼다.
이걸 없애는 것만으로도 젊은 층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으리라.
“그런데 아무래도 승차감은 승용차대비 떨어질 텐데, 디자인만으로 승용차 시장을 잠식할 수 있겠습니까?”
“고객에겐 승차감 못지않지 않게 하차감도 중요하지요. 이런 세련된 디자인에 남성적인 멋까지 더해졌으니 분명 수요가 있을 겁니다.”
“하긴 저라도 이런 차가 나오면 오프로드를 맘껏 달려보고 싶군요.”
“실제 고객도 마음만 그러할 뿐 오프로드를 매번 달리진 않죠. 중요한 건 남성의 로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족들을 태우고 짐까지 잔뜩 실을 수 있으니 실용적인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듣고 보니 그리 보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SUV를 사고 싶다고 하면 아내도 ‘트렁크도 크고 애들 태우고 다니기도 편하겠네.’ 하며 구매에 찬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차종이 아닌가.
출시만 되면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무엇보다 승용차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입니다. 이런 컨셉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Big 3를 뛰어넘지요.”
“… Big3를… 하아…”
채핀 사장은 살짝 흥분했던지 와인을 물처럼 벌컥벌컥 마셔댔다.
“우 사장님, 어떤 식으로든 좋습니다. 저희와 계약하시죠. 우 사장님과 함께하는 사업이라면 뭐든 성공할 것 같군요. 그리고 합작 조건도 매우 합리적일 것 같고 말이지요.”
와인 잔을 내려놓더니 대뜸 계약하자고 했다.
더 이상 간을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좋습니다. 합작하시죠.”
“집사, 계약서 가져와요.”
채핀은 급했던지 식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집사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특약 사항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사소한 것은 양측 비서실에서 조율하겠습니다.”
집사는 우리 사이에 작은 책상을 놓고선 비서실 직원처럼 행동했다.
“디젤 엔진, 가솔린 엔진을 포함하여 양사의 특허에 대해서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해외 영업망을 공유하고, 합작 모델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득을 반반 나누시죠.”
집사는 내가 말하는 특약 사항을 쓱쓱 계약서에 옮겨 적었다. 채핀 사장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걸로 봐서 그 정도는 동의하는 모양이다.
“그 정도면 큰 골자는 정했으니, 나머지는 실무진에게 맡기죠. 우린 건배부터 합시다. AMC와 대세, 대세와 AMC의 합작을 위하여!”
“위하여!”
쨍!
채핀 사장은 마음이 급했던지 일단 계약 성사부터 하길 원했다. SUV는 신세계로 보였을 것이다.
빌 베인의 땅따먹기 실력도 AMC사 비서진보다 못하진 않을 것이다.
합작 모델 개발권과 생산권만 가져오면 50대 50 합작이라고 해도, 칼자루는 내가 쥐는 셈이다.
“유럽에 출시할 SUV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고, 일단 최초의 합작 모델은 사우디 군용 지프차가 맞겠지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AMC사는 사우디에 대해 어떤 비즈니스 정보를 얻으신 겁니까?”
“사우디 쪽에선 일단 군수용 지프차가 아니라, 의무용(醫務用) 차량을 도입한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군용차를 수입하면 미국과의 밀월 관계를 들킬 염려가 있어서 그렇겠지요? 하하.”
그럴법한 정보였다.
의무용(醫務用) 차량은 군용차가 아니라고 우기면서도, 군용 스펙을 모두 점검할 수 있다.
나름 사우디의 잔머리도 대단하고, 그걸 미리 알아낸 AMC의 정보력도 대단했다.
“그러면 조만간 국제 입찰을 하겠군요.”
“그렇죠. 문제는 사우디가 워낙 폐쇄적이라 입찰 초청장을 극소수의 회사에만 보냈다고 하더군요. 우 사장님께서 나이프 왕자에게서 초청장을 받아주실 수 있으실는지요?”
“아하, 그게 첫 번째 임무군요. 그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대세 자동차로 초청장을 보내 달라고 하면 거절할 분이 아니죠..”
삼복이가 나이프 왕자에게 정중한 편지 한 통만 쓰면 단박에 초청장이 날아올 것이다.
솔직히 나이프 왕자는 우리가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초청장을 부탁하면 낙찰 약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원 자체를 막지는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입찰 자료를 보여드리죠. 가져오게.”
채핀 사장의 말에 집사는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내게 정중히 건넸다.
입찰서에는 대략적인 사양과 드로잉이 첨부되어 있었다. 납품가야 당연히 미정이고 말이다.
“이것 참, 이대로 제출했다간 당장 입찰에서 배제되겠군요.”
“뭐라고요? 뭐가 잘못되었길래 입찰에서 배제까지 된다고 하십니까?”
“여기 적십자 마크가 있지 않습니까.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지요.”
“네? 의무 차량엔 당연히 적십자 마크를 새겨야죠. 적군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길을 트게 만드는 마크 아닙니까?”
“중동에서는 십자가 대신 달을 새깁니다. 붉은 초승달 말이죠.”
“그… 그렇습니까?”
채핀 사장은 내 말에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얼굴까지 붉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했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십자가를 들이밀면 누가 환영하겠나? 그에 앞서 이슬람 의무병들이 그런 마크를 단 차를 타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미국인들은 타국의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아니, 국가나 지역이 다르면 미국과 문화가 다를 것이란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다.
“우 사장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그룹의 기본이 건설업이라 중동 이곳저곳을 다닐 일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주워들은 것이 많죠.”
“그렇군요. 이걸 안 보여 드렸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군요. 입찰 전략도 대세가 주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희 엔지니어를 보낼 테니 군용차 디자인도 최종 컨펌을 하시지요.”
얘기를 하다 보니 중동 비즈니스의 무게 중심이 확하고 내 쪽으로 기울었다.
내가 중동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자동차를 이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예상 밖임을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그럼 일단 입찰 초청장부터 받고, 입찰 세부사항을 실무진끼리 논의하라고 한 다음 최종적으로 우리 둘이 다시 한번 더 검토하시죠.”
“알겠습니다. 급히 엔지니어부터 파견하죠. 이제 이 정도면 일 얘기는 충분히 한 것 같군요. 정말로 와인을 즐길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최고급 정찬을 앞두고 일 얘기만 하다니 쉐프에게도 매너가 아니지요. 그럼 다시 건배할까요?”
“중동 진출을 위하여!”
“유럽 진출을 위하여”
와인 잔을 부딪히며 정찬을 즐겼다.
다른 건 몰라도 스테이크 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역시 스테이크는 미국이지.
롱 바텀 회장과 식사를 할 때는 위스키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말이다.
역시 어디서나 지리적 문화적 차이는 존재하고 경쟁력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
나는 그다음 날부터 AMC사의 VIP 대접을 받으며 라인 투어와 개발자들의 브리핑을 들었다.
우리에게 좀 부족한 조향 장치나 변속기 등등에 대해 질문을 해가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채핀 사장은 ‘Confidential’이라고 표시된 자료를 나눠 갖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엔 한국에서 보시죠. 제가 영빈관에서 모시겠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나는 각종 자료를 삼복이 앞으로 보내고 알래스카로 향했다.
AMC사의 브리핑 자료에 내 의견까지 더했으니, SUV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특약으로 가솔린 엔진에 대해서도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었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 201 : 풀코스 정찬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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