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04화(204/589)
< 204 : 쇼핑의 백미 >
다음날, 정부청사.
왕 사장과 내가 청사에 도착하니 염원철 수석이 기다렸던 듯 반갑게 맞이하였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곤 바로 두툼한 서류를 펼치고 설명을 시작했다.
“각하께서 국정 회의를 통해 해외건설 촉진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건설업체들의 중동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도 자랑스럽게 서류를 내밀기에 나는 무슨 법령인가 하고 살펴보았다.
예상보다 파격적인 조치였다.
내용의 골자는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해외 공사에 대해서는 국내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지급보증을 해주도록 하는 법령이었다.
이제 해외에서 수주하고 은행의 보증을 받기 위해 몇 날 며칠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번거로움은 덜게 생겼다.
게다가 신규시장을 개척한 건설사엔 해당지역 도급 우선권을 주도록 규정하는 내용까지 있었다.
즉, 해당 지역 독점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서, 해외 시장 개척을 종용하는 법령이었다.
“정말 이런 법을 제정한다고요?”
“각하께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다 불러 모아 초당적인 협조를 당부하셨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불경기인데 정치인들이 기업들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면서 말입니다.”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이 법령에 서명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연초에 국회가 열리면 이 법령부터 통과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두 분 사장님 같은 애국자들은 마음껏 해외 시장을 개척하시면 됩니다. 게다가 조세감면법까지 제정할 겁니다.”
“조세감면법? 세금을 깎아준단 말입니까?”
“예. 5년 간 외화 수입의 5%를 세액에서 빼고, 특별 감가상각까지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특별 감가상각이라니, 그게 뭡니까?”
“해외에서 장비를 쓰다 보면 쉬이 망가지지 않습니까. 감가상각비의 20%를 추가로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감가상각을 쳐주면 경비처리 액수가 꽤 커진다. 그 또한 세금을 깎아주는 셈이었다.
기가 막힌 잔머리인데?
“그런 파격적인 세금감면법에 야당이나 다른 정부 부처의 반대가 없었단 말입니까? 국정을 운영할 세금이 덜 걷히는 건데요. 기업 봐주기니 세제 혜택이니 온갖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아닙니까.”
내가 놀라서 묻자 염원철 수석이 더욱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경제기획원이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각하께서 찍어누르셨습니다. 사우디가 문을 열어젖힌 지금이 기회라고 말입니다. 대세 뿐만 아니라 현산도 사우디에서 수주를 따낼 거라고 기대하셨습니다. 왕 사장님, 나이프 왕자의 수행원들과 긴밀하게 얘기를 좀 나눠보십시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현산 건설도 사우디에 진출하라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나름 괜찮은 전략이긴 했다.
나이프 왕자가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니, 수행원들은 당연히 거기에 자잘한 건설 프로젝트를 얹었을 것이 분명했다.
큰 건수에 숟가락을 얹으면 어렵지 않게 사업비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콩고물 같은 프로젝트다.
비서실의 조언인지 대통령의 판단인지는 몰라도 상황 파악 능력만큼은 뛰어났다.
오일쇼크가 오기 전임에도 사우디를 시작으로 중동 건설시장이 달러 박스로 변할 것임을 예상하는 행보이지 않은가.
설마, 밴 플린트 장군과의 대화로 그런 낌새를 눈치챈 건가? 그랬으면 정말 대단한 건데…
아니, 그보다 월남 특수가 급격히 줄고 있으니 어디든 해외 건설 시장을 뚫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어렵겠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겠다.
조만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이지 않는가. 비전 제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중화학 공업 선언을 직접 듣게 되겠군.
“여하튼, 5%라… 깎아주신 만큼만 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왕 사장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뭐, 그게 최소치가 아니겠습니까? 더 내어주신다면야 각하께서도 통치자금에 여유가 생기시겠습니다만 그거야 사장님들이 판단하셔야지요.”
왕 사장의 질문에 염원철 수석이 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무슨 얘기인가 싶었더니 결국 비자금 얘기였다.
5%를 세금 감면해주면 고스란히 청와대에 바치겠다. 다만 그 정도로 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질문이었지만 이 시대 사람인 왕 사장으로선 당연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설마, 적자투성이인 고속도로 공사에서도 이런 식의 거래가 오갔던 건가.
내가 해외에서 주로 일하다 보니 이런 면에선 왕 사장이 많이 불려갔을 수 있겠다.
“왕 사장님, 그건 저희끼리 따로 얘기하시죠.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왕 사장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렇게 우리 둘을 불러서 해외건설 촉진법을 핑계로 세액 공제를 5%나 해주겠다고 얘기하는 건, 나에 대한 정중한 경고일 수도 있겠다.
내가 비자금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해외진출은 나보다 현산을 더 챙겨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이프 왕자가 입국하는 당일 카퍼레이드 후에 공식 만찬이 있습니다. 참석하시겠지요?”
“당연히 참석해야지요. 그보다 기업 순방은 어찌 됩니까?”
“그다음 날부터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헬기로 광주의 대세 자동차 공장, 울산의 포항제철과 석유화학단지를 시찰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일정으론 대세조선소를 들를 계획이고요.”
고속도로로 토목 능력을 살피고, 제조기술은 대세 자동차와 조선소로 가늠하겠다는 생각이군.
포항제철을 둘러보는 것은 원자재 수급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리라. 나름 사우디도 진심이네.
포항제철도 1차 완공이 코앞이고, 규모도 인천제철보다 크니 보여줄 만 할 거다.
그러고 보면 포항제철 건설도 원래 역사 대비 한참 빨라서 오일쇼크로 인한 초호황기를 좀 더 길게 누릴 수 있을 거다.
더욱이 2차, 3차 확장공사가 연이어 일어날 것이니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할 거다.
“그런 일정이라면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요? 얼마든지 하십시오.”
“대세 자동차에 국군의 날 행진을 했던 군인들을 좀 보내주십시오. 대통령님도 같이 오실 테니, 조촐하게나마 사열식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하아, 기막힌 생각이십니다. 각하께서 군부대를 보여주지 못해 많이 아쉬워 하셨는데 말입니다.”
나이프 왕자도 얼마나 보고 싶겠어?
데려갈 교관 수준을 확인하고 싶을 거 아닌가.
거기에 우리 지프차를 광고하면 딱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만찬 때 뵙지요. 공장 쪽은 잘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세부 사항은 보고서에 다 있으니 틈나는 대로 읽어보십시오.”
염 수석은 우리에게 서류를 나눠주고는 일이 바쁜지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둘만 남자 왕 사장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우 사장님, 비자금은 어찌할까요? 5%면 좀 적은 듯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깎아준 만큼만 바치면 성의는 어디서 보일 거냐 하는 거겠지.
“같이 7%로 하시죠. 특별 감가상각을 고려하면 손해는 아닐 것 않습니다.”
빌어먹을… 세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달해주는 꼴이라니 속이 쓰렸다.
그래도 7% 정도면 타협할만한 수치였다.
“7%라 딱 좋군요.”
나와 왕 사장은 손쉽게 합의를 보았다.
누구 하나 적게 내거나 많이 내면 서로 곤란하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나중에 대통령이 폭주할 때를 생각해서라도 보험을 들어놓긴 해야겠다.
여태 일이 우선이라는 핑계로 정치적 보험은 차일피일 미뤘는데 더 이상은 힘들겠다.
“그리고, 왕 사장님. 중동 진출 관련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 사장님 조언이라면 무조건 감사하지요.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사우디 왕자가 왔으면 분명 큰 프로젝트에 자잘한 프로젝트가 잔뜩 끼어있을 겁니다.”
“큰 프로젝트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그건 이미 대세 건설의 몫이지 않습니까.”
왕 사장이 당연한 듯이 말했다.
겉으론 시골 아저씨 같지만, 속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황 파악을 끝내놓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하튼, 염 수석 말대로 사우디에서 자잘한 수주를 노리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긴 합니다만, 중동의 수수료를 생각하신다면 차라리 다른 곳을 뚫는 게 나아 보입니다.”
“중동에선 현지 에이전시가 필요하고, 기름칠을 과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을 뚫으라니요. 어딜 말입니까?”
“저라면 이번 기회에 이란으로 진출하겠습니다. 현산에도 영업 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이란으로 보내서 수주를 따오십시오.”
“아니, 이란에도 큰 건수가 있습니까?”
왕사장이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현재는 없겠죠. 하지만 사우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자마자 건수가 생겨날 겁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왕 사장은 아직은 중동 패권 경쟁에 대한 지식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21세기 인간이라 사우디와 이란이 각자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며 으르렁거리는 관계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수십 년간 양국은 군비 경쟁을 지속했고, 결국 이란이 군비 경쟁에서 밀리자 핵무기 개발이라는 초강수를 뒀을 정도로 패권 경쟁에 진심이었다.
“사우디가 해군기지를 확장하면 이란도 당장 해군기지를 확장합니다. 사우디와 이란은 역사적으로든 지리적으로든 아주 앙숙이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걸프만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모양새군요.”
“특히 이란의 팔레비 왕가는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모토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습니까? 사우디가 걸프만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나서면 대번에 이란이 눈꼴 시리다며 기지 건설에 나설게 분명합니다.”
“우리 현산도 대규모 해군기지 공사를 따낼 수 있다는 얘기군요.”
물론 이란을 어떻게 설득하냐가 문제겠지만, 그건 현산의 능력이다.
“분명히 그럴 겁니다. 저야 사우디 공사를 맡을 테니 이란 쪽 공사를 수주하기 껄끄럽지만, 현산은 가능하지요. 수주에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전체로도 좋은 일이고요.”
“그런 아이디어를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 빚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빚이라뇨. 대신 사우디에서 생기는 자잘한 프로젝트는 도림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군요.”
대통령의 행보를 고려할 때, 대세와 현산의 타깃 국가가 같아서 좋을 게 없었다.
여차하면 대세와 현산을 저울질하며 경쟁을 시킬 태세니까.
이럴 땐 정치적으로 앙숙인 국가로 타깃을 나누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늘은 우 사장님도 저도 시간이 안 되지만, 나이프 왕자가 돌아가고 나면 우리끼리 소주라도 한잔하시지요. 우 사장님한테는 들을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소주엔 알래스카 물개고기보단 돼지고기죠.”
“하하, 조만간 보시죠.”
“예, 살펴 가십시오.”
***
일주일 뒤
와아아와아아!
서울 시내에는 온갖 색종이가 흩뿌려졌고, 건물 창문마다 사우디 국기와 태극기가 나부꼈다.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거리엔 시민들이 꽃을 흔들며 나이프 왕자를 환영했다.
시민들은 사우디 왕자를 왜 환영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TV에서 며칠째 떠들고 옆에서 대통령이 손을 흔들어주니 열렬히 환영했다.
나이프 왕자는 예상외의 환대에 기분이 좋았던지, 만찬에서 와인까지 한잔하며 여운을 즐겼다.
원래 무슬림은 커피나 즐겨야 하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에선 왕자가 아니라 왕 대접을 받은 셈이었다.
“미스터 우, 이번 SNEP 공사는 잘할 자신이 있는가? 아직 바레인 쪽 공사는 계속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일세.”
SNEP은 사우디 해군기지 공사 (Saudi Naval Expansion Program)의 줄임말로 나이프 왕자는 이미 나를 시공사 대표로 대하고 있었다.
“문제없습니다. 요르단 쪽 공사가 거의 마무리 돼서 그쪽의 인원과 장비를 옮기면 됩니다.”
“허허, 그 정도 인원으로 되겠나? 우리 해군기지 규모가 보통이 아닌데 말이지. 부두만 5개에다 드라이 도크도 만들어야 한다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기술자 100여 명, 기능공은 1500명 가량 투입할 예정이니 걱정 마십시오. 조선소를 건설해봤던 베테랑들이 대거 참여하니 원하시는 품질에 공기도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허, 공기까지 단축해? 대단하군. 건배!”
“건배!”
내가 자신감을 보이자 나이프 왕자는 건배를 청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국민들에겐 왕 대접을 받았지, 이미 수수료는 밴 플린트 장군으로부터 두둑이 챙겼지, 대통령은 군사교관도 파견해 준다지, 나는 건설 공기마저 단축하겠다고 하지 않나.
좋은 소리란 좋은 소리는 다 듣는 것이다.
사우디로 돌아가서 자랑할게 한둘이 아니지.
“물론 공기 단축은 지역 주민들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진입로나 임시 하역 부두를 만들 때 주민들이 반대하면 공사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사람을 붙여줄 테니까 말일세. 그보다 지역 유지들과 잘 지내보게. 간혹 식사라도 같이 하고 말일지.”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왕자님께서 하사품 하나만 내려준다면 그걸 매개로 지역 주민과 긴밀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저 같은 외지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왕자님의 영향력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습니까.”
난 이때다 싶어 하사품을 청했다.
사우디는 전근대적인 사회라, 왕족의 입김을 증명하기엔 왕족의 하사품을 내미는 것이 가장 쉽고 빨랐다.
“그야 그렇지. 미스터 우에게 내 증표를 하나 하사하지. 가져오라.”
“예, 왕자님.”
나이프 왕자가 손을 휘휘 저으니 곁에 있던 수행원이 대번에 보석 상자를 가져왔다.
왕자는 상자 안에서 단검을 꺼내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왕자님. 나이프 왕자님께 영광을!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나는 무릎을 꿇어 예를 다해 두 손으로 단검을 받았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고 말이다.
나이프 왕자의 단검이라면 지역 유지나 공무원들을 구워삶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자잘한 수수료도 엄청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삼복아, 바통 터치!’
‘오케이!’
나는 미션을 완수했기에 눈짓으로 삼복이를 불렀고, 녀석은 눈치 빠르게 휙하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왕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왕자님께 인사드리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SB! 이게 얼마 만인가?”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삼복이가 특유의 넉살로 나이프 왕자와 인사를 나누고 만찬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나름 대통령도 카퍼레이드는 자신이 주도했지만, 만찬은 사업가들 위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잘 이어나가서 산업체 시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사우디 왕족이 해외로 나왔는데 마음껏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쇼핑의 백미는 충동 구매 아닌가.
< 204 : 쇼핑의 백미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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