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07화(207/589)
< 207 : 석유 시대 >
“우 사장님, 정말 구축함 건조가 가능하겠습니까?”
염원철 수석은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으로서,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을 알기에 당연한 질문이었다.
“당장은 어렵죠. 구축함은 독자적으로 설계를 할 수밖에 없는데 경험이 없으니 말입니다.”
구축함은 정식 군함이라, 참고할만한 설계도를 사 와서 독자적으로 다시 재해석해서 건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계를 해줄 외국 용역회사를 찾는 식으로 일을 했다간 필패다.
구축함은 구조, 장갑, 병기, 통신 등등 각 부분의 책임 소재를 따지다 보면 일 진척이 안된다.
컨소시엄으로 플랜트를 건조할 때 몇 번이고 겪었던 문제라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축함 성능에 대한 군사 기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외국 용역회사와 충분한 정보를 나누려야 나눌 수도 없다.
결국 돈만 낭비하고 구축함 건조는 부평초처럼 떠돌게 될 것이다.
무조건 우리 대세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어찌합니까? 국산 소총개발때처럼 매 국무회의 때마다 챙기실 텐데요.”
어쩌긴 어째? 잘 견디셔야지.
회의 때 깨지는 게 비서실의 주된 업무 아닌가.
“미 해군성의 도움을 요청해야죠. 참고할만한 구식 구축함 설계도를 얻는 데만 수개월은 족히 걸릴 겁니다. 그동안 예산이나 따주십시오.”
낸시의 도움이 절대적이리라.
“예산은 얼마면 되겠습니까?”
“척당 6000만불 정도는 잡아야겠죠.”
“예에? 6000만불요? 유조선보다 2배나 비싸단 말입니까?”
염원철 수석은 깜짝 놀랐지만, 나는 외려 그런 모습이 더 놀라웠다.
그럼, 구축함이 얼마쯤 한다고 여겼던 거야?
유조선을 감히 구축함에 어찌 비비나.
“대세가 건조하니 나름 저렴한 겁니다. 솔직히 무장에 따라 더 비싸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일단 우리 해군과 상의하는 게 우선이겠군요.”
“대통령 결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구축함에 대해선 대세 조선은 일체 관련하지 않겠습니다. 제 말씀 이해하시죠?”
“물론이죠. 지지고 볶고 하는 일은 저희 비서실에서 감당하겠습니다.”
보나 마나 청와대, 국방부, 국회 등이 서로 왈가왈부하면서 몇 개월은 보낼 거다.
될 수 있으면 올해 여름까지는 싸워다오.
“그럼, 다음에 뵙죠.”
“또 외국으로 나가십니까?”
“알래스카로 가야죠. 거기… 수고하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우린 서로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도 모르게 거기서 석유를 캐야죠라고 말할뻔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리에 누워서도 석유를 뽑아 올리는 꿈을 꾼다.
***
며칠 뒤, 대세 조선 영빈관.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삼복이, 아니 대세자동차 전무, 대세화학 황혜성 사장, 대세조선 스코우 부사장, 대세건설 김춘석 이사, 대세해운 윤상수 이사, 인천제철 뵈스트 이사, 빌 베인 비서실장까지 중역을 죄다 불러모았다.
처음으로 여는 전체 중역 회의라고 하겠다.
이제 1년에 한두 번은 전체 중역 회의를 할 때가 되었다.
“스코우 부사장, 떡국이 입에 좀 맞습니까?”
회의에 앞서 설날도 목전이고 해서 떡국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이때는 구정으로 불렸겠지?
“한국에 와서 두 번째로 접하는 음식인데 아주 맛있습니다. 이 수프를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니 좀 아쉽기는 합니다. 하하.”
다들 즐겁게 떡국을 즐겼다.
특히, 스코우 부사장과 뵈스트 이사는 객지 생활이니 이런 명절 느낌의 식사도 괜찮으리라.
다들 점심을 마치자 영빈관 직원들이 식탁을 정리하고 간단한 다과와 음료수를 준비해주었다.
본격 회의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대세 연구소, 대세 목재, 대세 정공, 인도네시아의 호프만 정도가 빠졌지만, 나중에 개별로 업무를 지시하면 되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 이렇게 중역들을 죄다 모으신 이유가 뭔지요?”
삼복이가 참석자 대표로 물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다들 궁금했던지 귀를 쫑긋하게 세웠다.
“올해부터는 국제 정세가 급변할 조짐이 있어, 정보도 공유하고 앞으로 우리 대세가 나아갈 바를 같이 논의하고자 다들 모셨습니다.”
“뭔가 큰일이 있는 거군요. 어째 월남도 그렇고, 미국 쪽 경기도 예전 같지 않던데 말입니다.”
삼복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삼복의 말에 빌 베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챠트를 끌고 왔다. 브리핑을 하기 전에 내가 손을 들어 잠시 멈추었다.
“베인 실장, 잠시만요. 발표하기 전에 뵈스트 이사와 스코우 부사장한테 묻고 싶군요. 한국에서 지내보니 어떻습니까? 이런 전략을 들어도 부담되지 않겠어요?”
나는 짐짓 개인사를 묻는 것처럼 질문했다.
그들은 엄연한 외국인.
대세의 대외 전략을 논하기 전에 그들에게 다짐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정보 보안이 부담스럽다면 자리를 뜨면 될 일이지만, 그랬다간 그 순간부터 직위 해제다.
“저에게 대한민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 뵈스트 가문의 숙원을 풀었으니, 저는 이미 한국인입니다. 귀화 절차도 밟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저도 반쯤은 한국인입니다. 20년간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퇴물 취급을 받던 저를 받아준 대세 조선 아닙니까? 보은할 기회를 주십시오.”
둘 다 내 말의 행간을 잘 읽어 답했다.
이런 대답을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모두 앞에서 다짐하는 형식이 필요했다.
빌 베인이야 스톡옵션이 있기에 우리 대세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 분명하고 말이다.
“둘 다 확실한 대세맨이군요. 됐습니다. 베인 실장, 시작하죠.”
“예, 회장님.”
빌 베인은 챠트를 훅하니 넘겼다.
“비서실에서 분석한 정보에 따르면, 미국은 조만간 금태환제를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5월에 각종 회기가 접히니, 4월 말에 전격 발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에, 뭐라고요? 그럼 달러가 어찌 되는 겁니까? 무역을 무슨 돈으로 하죠?”
다들 동시에 비슷한 질문을 했다.
“물론 미국도 손 놓고 있을 리 없습니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원유를 달러로만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니, 여러 정황상 확실해 보입니다.”
내가 빌 베인에게 넌지시 힌트를 줘가면 조사를 시켰더니, 이런 정보를 가져왔다.
역시 뭐든 알고 나면 보이는 법이다.
“그럼. 전 세계에 달러가 무제한으로 풀린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에 따라 환율도 요동 치겠군요. 아니, 모든 나라들이 변동환율제를 적용하겠군요.”
“유가와 달러를 연동시키다니, 정말 기가 막힌 전략입니다.”
다들 수출입 업무에 익숙했기에 달러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페트로 달러체제는 21세기 인간인 내겐 매우 당연한 체제이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겐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들렸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원화 환율도 달러당 400원에 육박할 겁니다. 아니, 결국 400원을 뚫겠지요.”
“그럼 인플레가 엄청날 것 같은데… 지금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난린데 말입니다.”
삼복이를 비롯해 다들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외화가득률이 떨어지는 경공업 위주의 기업이나 난리가 나겠죠. 우리에겐 기회입니다.”
“사장님, 저희도 경공업보단 낫지만 원자재 수입은 엄청납니다.”
다들 믿기 힘들어했지만 사실이다.
“그러니까 외화가득률이 매우 높은 해외 건설업을 해야죠. 원자재야 수입하지만, 건설은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잖습니까. 게다가, 4월 이전에 수출물량을 최대한 밀어내고 수출 대금은 5월 이후로 받으면 환차익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이건 단연코 기회입니다.”
내 말에 다들 눈을 번쩍 떴다.
듣고 보니 그렇지? 단 한 번의 기회이지만 잘만 이용하면 대세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금태환제가 폐기되기 전에 최대한 미국으로 의류와 목재를 수출하고, 중동 건설을 수주하고, 조선소에 대규모 투자를 하시는 것도 모두 이 상황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신했던 것까진 아니고, 위험 분산 차원에서 그리했는데 결과적으론 잘 되었군요.”
“그럼, 사장님께서 저희를 불러 모은 이유가…”
그제야 다들 낌새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다들 모여서 작전을 짤 때가 된 거지.
“맞아요. 우리에겐 3개월 남짓 시간이 있습니다. 미국이 금 태환을 포기하는 순간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값이 폭등할 것이고, 중동 쪽에서의 물류가 폭증할 것입니다.”
“중동은 몰라도 미국의 경기는 급격히 침체하지는 않을지요. 전반적으로 국제 경기가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해운사 중역으로, 무역에 밝은 윤상수 이사가 의견을 보탰다.
“그건 걱정 말아요. 페트로 달러 체제가 확고해지면 중동으로 돈이 몰리고, 그 돈은 중동의 국토 개발과 국방비로 투자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우린 그런 돈의 순환에서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오일쇼크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유가가 몇십 %는 뛰게 될 거다.
사우디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엎고, 원유 판매 배당금을 잔뜩 챙기려고 슬금슬금 유가를 올릴 게 뻔하니까.
솔직히 오일쇼크는 갑자기 당하면 엄청난 시련이지만, 준비만 한다면 거대한 돈의 순환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
특히 나는 알래스카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석유 시추에 성공할 것 아닌가.
“정유사가 떼돈을 버는 시기가 오는군요.”
순간 황혜성 사장이 핵심을 짚었다.
와중에 정유사와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있기에 대번에 돈의 흐름을 눈치챘다.
“황 사장 말이 맞아요. 산유국이든 미국이든 최대한 석유를 팔아 재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니까.”
“갈프사와의 계약을 최대한 연장하겠습니다. 아니, 거래 물량도 늘리겠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대세 화학과 같이 대세 해운도 유니온 오일과의 계약을 길게 연장하십시오. 그리고, 올해 말 월드와이드 쉬핑사로부터 유조선을 용선할 테니, 미리 사우디와 원유 수송 계약도 체결하십시오.”
“사장님, 외람되지만 지금도 원유는 판매량보다 저장량이 많습니다. 판매처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염려 말아요 우리나라도 여천이고 인천이고 정유 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습니까. 올 하반기부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등 아시아 시장에만 풀어도 충분합니다.”
솔직히 아시아 시장에 풀 물량도 없을 거다.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량도 극단적으로 증가할 테니까. 중공업은 석유 먹는 하마다.
“소비는 문제없을 겁니다. 이미 한국만 해도 하루평균 소비량이 11만 배럴을 넘어섰고, 매년 20% 이상 소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현상입니다.”
빌 베인이 더욱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크게 봐도 미국과 서구권을 중심으로 정유산업은 오염산업으로 인식되어 아시아 쪽으로 산업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
이런 와중이니 휘발유와 경유 같은 정제유의 수출은 더욱 늘어날 거다.
“게다가 중유는 내수 발전소와 산업체에서 쓰고 정제유를 수출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원유는 아무리 많이 실어와도 무조건 남는 장사입니다.”
빌 베인이 완벽하게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김춘석 이사님.”
“예, 사장님. 말씀하십시오.”
상황 정리는 끝났으니 나는 각론으로 들어갔다.
“SNEP(사우디 해군기지) 공사 입찰은 어떻게 되고 있죠?”
“입찰 준비는 끝났고, 말씀하셨던 가격으로 2주 뒤 사우디 국방성의 입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공사비 지급은 달러나 원유로도 가능하다는 입찰 조건을 추가해주십시오.”
“현물로 대금을 받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달러가 곧 원유고, 원유가 곧 달러입니다. 게다가 사우디의 재정상 원유로 받겠다고 하면 추가 옵션이 따라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 조건이라면 무조건 낙찰 받겠군요.”
이미 낙찰받은 거나 다름없었지만, 밝히지는 않았다. 괜스레 BR사나 사우디와의 커넥션이 새어나가서 좋을 건 없으니까.
“여하튼, 요르단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사우디로 나가게 되는데 괜찮습니까?”
“휴가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얼마든지 보내주십시오.”
역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울산항과 포항항 건설을 마무리한 것을 휴가로 표현하다니.
“대세 인터내셔널은 올 상반기 미국으로의 수출을 최대한 늘려주고, 대세 목재는 중동 쪽도 뚫어야 합니다. 비서실에서 챙기십시오.”
“예, 회장님.”
“인천제철은 파이프 생산에 투자해주십시오. 4월까지 완료해야 합니다.”
“예, 사장님.”
“대세 자동차는 AMC사와 합작을 마무리해줘요. 사우디 지프차 모델은 외화가득률을 높일 수 있게, AMC사와 협력하되 국산 부품 채용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삼복이는 잘 할 거다.
유럽향 SUV 전략에 대해서도 따로 말해줬으니, AMC 기술자들을 잘 요리하겠지.
“스코우, 알래스카에 워터 인젝션 플랜트가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합니다. 반드시.”
“염려마십시오. 반드시 임무 완료하겠습니다.”
“다들 명심해주십시오. 우리 대세의 각 계열사는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이 손발을 맞춰줘야 유기적으로 돌아가니, 상호 소통에 온 힘을 기울여주십시오.”
“예, 사장님.”
이번 상반기만 잘 준비하면 우리 대세는 대기업의 면모를 갖출 것이다.
세계 유수 기업들과 당당하게 겨루게 되리라.
가자, 더 높은 곳에서 놀아보자.
“외치십시오. 대한민국을 세계로!”
“대한민국을 세계로!”
우리는 음료수 잔을 들고 대세의 모토를 크게 외쳤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알래스카로 향했다.
***
1971년 4월 말,
<저, 닉슨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재무장관에게 교환중지명령을 내렸습니다. 달러와 금을 말이죠.>
닉슨은 일요일 밤 TV 방송을 통해 전격적으로 금태환 중지를 선언했다.
닉슨 쇼크라고 불리는 일이었다.
전 세계는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들겠지만, 준비된 나에겐 쇼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달러의 가치를 의심한 각국 정부가 달러 대신 금을 모으자, 현물시장에서 금값이 온스당 50달러를 육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이 35달러에 금 1온스를 교환해주니 달러를 금으로 바꿔 국제시장에 팔면 대번에 40%의 이득이 생기게 된 것이다.
프랑스가 제일 먼저 움직여 20억불을 금으로 교환했고, 영국마저 30억불을 바꿔가겠다고 나섰기에 닉슨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장님, 플랜트 바지선이 프루도베이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왔군요. 갑시다.”
플랜트가 제때 도착했다.
나는 TV를 끄고 프루도베이로 향했다.
알래스카도 이제 봄이다.
< 207 : 석유 시대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