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09화(209/589)
< 209 : 허가받은 도둑질 >
나는 도착 당일 낸시와 근사한 식사를 하고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나, 낸시가 준 명함의 주소로 찾아갔다.
“대체 회사가 어디 있다는 거야?”
분명 주소가 맞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빌딩 후문 쪽으로 가보니, 상가 섹션 중 한 곳에 JJMA라는 스티커가 얌전히 붙어 있었다.
무슨 회사 간판이 초보 운전 딱지도 아니고, 이렇게 성의 없기도 힘들겠는데.
‘설마 로비 회사?’
로비 회사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찾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알음알음으로 검증된 사람만 오게끔 하는 효과가 있거든.
“실례합니다.”
“뭐해? 베팅해야지! 콜하던가.”
“그게 아니고, 지금 손님이 왔잖아.”
“잘못 온 거겠지. 이보쇼, 여긴 상가가 아니고 개인 사무실이니 돌아가시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는데도 세 명의 중년 사내들은 포커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낸시가 소개해준 곳이 이렇게 동네 복덕방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
퇴역 장교들이 차린 회사라면 나름 딱 부러지는 군인 느낌이 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거 미리 전화라도 하고 왔어야 했나?
아니, 그러고 보니 명함에 전화번호도 없었군.
여기 진짜 로비스트 사무실이네.
설계 사무실이 아니었어.
“국방부 N의 소개로 왔습니다. 추천인까지 밝혀야 합니까?”
“헉, 이런.”
“어이쿠, 고객님이셨군요.”
“미안합니다. 요즘 하도 잡상인들의 많아서.”
갑자기 3명의 중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날 소파로 안내하고, 없는 솜씨로 급히 커피를 내려 내 앞에 내밀었다.
“N의 소개라면 어떤 일로 오신 거죠?”
“구축함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여길 알려 주더군요.”
“구, 구축함 설계도라고요?”
“물론, 최신 구축함 설계도는 아닙니다. 폐기 처분된 설계도를 원합니다. 그걸 기초로 직접 구축함을 만들고 싶거든요.”
“특이한 분이시네. 여하튼, 그런 목적이라면 잘 찾아오셨소이다. 이래 봬도 우리가 미 해군 기술 장교 출신이외다. 하하하.”
“그러십니까? 어떤 분야를 담당하셨죠?”
“여기 존은 전기·전자 쪽, 저스틴은 병기, 나는 기관분야 기술 장교였소이다.”
자랑스럽게 소개를 했지만 실망이었다.
조함 설계 기술자는 없다는 소리지 않나.
“저는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여기 JJMA사에서 구축함 설계를 할 능력은 있으신 겁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고객께서 사적으로 물어보신다면 내 의견을 말하겠지만, 그렇게 공식적으로 물어본다면 대답할 말이 없군요.”
대답이 아주 걸작이었다.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날 떠보고 있는 건가? 둘 다라고 해야겠군.
더 얘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맥뮬렌을 기술자가 아니라 로비 때문에 고문으로 채용했던 건가?
“제가 잘못 찾아온 거 같군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봐, 맥뮬렌! 자네가 모셔다드리고 와. 우린 하던 게임을 마저 끝내야 해서 말이야.”
“그러지.”
맥뮬렌이 나를 배웅한답시고 따라나섰고, 나머지 둘은 다시 카드가 펼쳐져 있던 탁자로 주섬주섬 자리를 옮겼다.
“배웅까진 필요 없습니다.”
“아니, 필요합니다. 나름 우리도 미 해군성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라, 공식적인 얘기는 할 순 없지요. 하지만 이렇게 같이 걸으면서 비공식적 얘기는 충분히 가능하죠. 커피 한 잔 어떠십니까?”
그럼 그렇지. 로비스트다운 접근법이었다.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실 것 같으니, 커피 한 잔 정도야 제가 대접하죠.”
우리는 각자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산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N이 한국 기업과 합작한다고 하던데, 구축함 건조까지 도와주려나 보군요.”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군사 기밀상 오래된 설계도를 원할 뿐이죠.”
“그건 저희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어떻게 도와주시렵니까? 객관적으로 설계를 할 수 있는 회사로 보이진 않습니다만.”
“많이 급하시군요. 우린 지금 안면을 튼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맥뮬렌의 말이 옳았다.
구축함 건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일단 이 커피를 즐기는 게 먼저겠어요.”
뉴욕이야 봄보다 가을이 유명하지만, 알래스카게 있다 왔더니 따뜻한 뉴욕의 봄도 아주 좋았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 않은가.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즐겼다.
“내가 만약 고객님이라면 우리에게 설계를 요청할게 아니라 설계도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볼 것 같습니다.”
발상의 전환이군.
“모스볼 군함처럼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설계도가 있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고객님이 원한 것도 그런 설계도 아닙니까?”
“솔직히 믿기 어렵군요. 아무리 구식 설계도라 해도 내가 가져도 될 만큼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입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요. 설계도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했지, 그걸 가져오는 게 쉽다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어디 있죠?”
“이 정도가 커피 값입니다.”
정보를 더 듣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소리였다.
“정보료야 얼마든지!”
“오늘은 일을 너무 많이 했군요. 나는 이제 일을 많이 하면 안 되는 나이라서요.”
내가 수표책을 꺼내자 맥뮬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 내일 또 오라는 얘기였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정보료는 올라가겠지.
솔직히 정보료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답잖은 기 싸움에 내 시간을 쓰기가 너무 아까웠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쯤하죠. 하지만, 난 바쁜 사람이라 이런 일에 장단을 맞춰줄 여유가 없어요. 내일 오후 1시에 올 테니, 그때까지 정보를 정리해둬요. 내 신원 확인도 하시고.”
나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 명함을 꽂아주고 공원 안쪽으로 걸어갔다.
내일 오후까지 시간이 생겼으니, 그동안 못했던 산책을 즐겨야지 싶었다.
공원에 소풍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이리도 재미있다니. 역시 알래스카 같은 오지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돼. 직원들도 교대를 시켜야겠다.
***
맨해튼 호텔.
“잠시만요, 미스터 우.”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프런트 매니저가 급히 달려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시간 되시면 비즈니스 룸에 잠시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미스터에게 끊임없이 텔렉스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지금 바로 가보죠.”
내가 혹시나 해서 빌 베인에게 여기 텔렉스 번호를 남겼는데, 업무보고라도 하는 건가?
곧바로 비즈니스 룸으로 갔더니 정말이지 프런트 매니저가 기겁할 만했다.
텔렉스 전문이 수북이 쌓여 있을 정도였다.
삼복이를 비롯한 중역들이 축하 전문을 보내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청와대는 물론 온갖 국회의원, 언론사까지 엄청난 양의 텔렉스를 보내왔다.
언론사에서야 인터뷰 요청이 대부분이니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면 그뿐이지만 청와대는 달랐다.
내게 훈장을 수여하고 카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니 언제 귀국할지 알려달라고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젠장, 무슨 카퍼레이드야.”
솔직히 내키질 않았다.
올해 말,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가보위법을 공시한다.
내년 말 유신 헌법을 통해 4선을 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할 것이다.
올해 말부터 대통령이 급격히 이상해지는데, 대통령과 카퍼레이드라니.
측근이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공항에서 꽃다발 받고, 청와대에서 훈장이나 받고 조촐하게 막걸리 파티를 하면 그걸로 족했다.
그마저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은데 말이다.
일이 커지기 전에 핑계를 대야 했다.
「수신 : 청와대 비서실.
급한 건입니다. 예정된 카퍼레이드는 취소해 주십시오. 유전 개발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나 과도하게 광고를 하면 미국 정부에서 지분 조정을 강요할 우려가 있습니다.
합작사에 남 좋은 일만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세부 계약을 유리한 쪽으로 확정 짓기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한 일이니 신중히 처리 부탁합니다.」
난 재빨리 회신을 했다. 이 정도 핑계면 카퍼레이드는 취소될 거다.
그리고 귀국 일정도 며칠 미뤄야겠다.
광풍이 조금이라도 잦아든 뒤에 귀국해야 꽃다발 정도로 마무리 하지.
어쩔 수 없이 TV에 얼굴이 비치는 거야 정치색을 띄지는 않을 테니, 그걸로 잔치 분위기를 퉁치면 된다.
그런 다음 대통령과 독대를 해야지.
군함 건조라는 카드를 들이밀면서 대세 화학이 본격적인 정유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에 더해 갈프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원유 수송권도 대세 해운이 지분을 가져올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뒤로 느긋하게 삼복이와 중역들의 축전에 간단히 답을 하고, 빌 베인이 보내준 주요 과제의 진척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즈니스 룸 담당에게는 팁을 넉넉히 쥐여주고, 내게 텔렉스가 오면 방문 틈으로 바로 밀어 넣어달라고 부탁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
다음날.
“아니, 이렇게 잘 꾸며놓으실 수 있는데 그동안 카드놀이나 하셨단 말입니까?”
JJMA 사무실의 분위기는 어제와 딴판이었다.
세 명 모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퇴역 장교답게 중후한 느낌의 신사들이었다.
마치 ‘우린 군함 설계 회사다’ 라고 과시하듯 각종 드로잉과 군함 사진들까지 벽에 걸려 있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린 은퇴했으니, 일을 많이 하면 안 되는 나이라고요.”
“일은 조금 하고 돈은 많이 버는 게 꿈이죠.”
“으하하, 그렇지. 우리 셋 다 그 꿈을 이루려고 은퇴한 것 아닌가? 별은 달아서 뭐 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저렇게 진중하게 하다니 세 명은 정말 친한 친구인 모양이다.
자기들이 듣기에도 우스운지 서로 옆구리를 찔러댔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되는 건가?
“농담은 그만하시고요. 설계도만 구해주시면 대가를 치를 테니, 제 시간만큼은 낭비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 사장님의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린 당신이 원하는 설계도가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아니까요.”
“그럼, 장소부터 말씀해 주시죠.”
“T 조선소 도서관에 있소이다. 우리 선배들이 고문으로 갔던 곳 중 하나지요. 거기서 슬쩍하면 그뿐이오.”
T자로 시작하면서 군함을 건조했던 이력을 가진 조선소겠군. 거기 도서관에 이력 관리 차원에서 설계도를 보관하고 있다는 소린가?
나름 그럴싸한 소리였다.
아니, 낸시가 소개한 이들이니 정보는 확실할 거다.
“슬쩍한다고요? 도서관이라면 정식 관리를 하는 곳일 텐데, 자료를 빼돌려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얘깁니까?”
“이상 없게 해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요. 아니, 돈 받고 해줘야 하는 일이죠.”
“그럼, 돈 얘기를 해볼까요?”
나는 준비해온 계약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구축함 설계도는 건당 1000만 달러는 족히 받아야 하죠. 하지만, 버려진 구식 설계도이니 딱 반 잘라서 500만 달러로 합시다.”
“그 정도로 정식 용역비를 받으시려면 설계도 세부 내역을 제시하시고, 구축함의 성능 보장도 하셔야죠. 가능합니까?”
실제 설계는 대세 조선이 할 건데 무슨 500만불을 달라는 거야? 장난해?
“크흠, 그러면 400만 달러 정도로…”
“50만 달러로 하죠. JJMA에서 제공하는 것은 단순 정보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아니, 아니오. 그 정도로 싸구려 정보는 아닙니다. 우리가 그 설계도에 아이디어를 보탤 수 있소이다. 대세 조선이 설계할 때 도움이 될 겁니다. 부품 업체도 소개해주고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양반들 기술 장교들이었지?
최근 미국 구축함의 대략적인 구조와 부품 납품 업체만 알아내도 도움이 되긴 할 거다.
게다가 대세 조선에서 군함을 건조할 거라는 걸 알아낸 걸 보니, 확실히 낸시와 끈이 있었다.
고문으로 채용해두면 만일에 하나 문제가 발생해도 보험이 될 수 있겠다.
“좋습니다. 그럼 세분 모두 우리 회사 고문으로 모시죠. 최소 한 분은 한국 본사에 근무하셔야 합니다. 각자 2년 계약에 연봉 4만 달러.”
연봉 4만불이면 기술 매니저들과 동급이다.
업계 최고 연봉이니 매력있는 조건이다.
“음, 그럼 정보료는 2년에 걸쳐 총 74만 달러가 되는 거군요.”
“50만 달러는 일시금으로 드리죠.”
나는 수표에 50만불을 적어서 계약서 위에 얹어 놓았다. 만약 해당 설계도가 완전 쓰레기면 은행에 지급 거절을 해버리면 그뿐이었다.
“구축함 설계도가 74만 달러라니 말도 안 돼.”
“이 나이에 한국에서 근무하라고?”
“좋습니다. 계약하죠.”
“맥뮬렌! 자네, 뭐하는 짓이야!”
다른 이들이 얼굴을 붉혔지만, 맥뮬렌은 수표를 이미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봐, 친구들. 우리가 은퇴하고 벌써 반년이 넘었어. 언제까지 카드놀이만 할 거야? 한국엔 내가 갈 테니 걱정 마. 내 텔렉스에 회신이나 재깍재깍 하라고.”
“허, 자네가 간다면 문제없지.”
“오늘부터 자네가 우리 사장이야.”
다투나 했더니 어째 세 친구가 단박에 합의에 이르렀다.
“자, 그럼 이제 정해야지. 타코마 조선소 도서관장과 누가 데이트 할 거야?”
“당연히 맥뮬렌 자네지. 자넨 홀아비잖아.”
“어제 카드 게임에서 꼴찌를 했잖나. 이걸로 벌칙을 대신하지.”
이런, 아주 재미있게 사시는 분들이네.
듣자 하니 타코마 조선소에 설계도가 있고, 거기 도서관 담당이 여성인 모양인데?
“젠장, 알았어. 미스터 우, 내가 그 할망구와 데이트를 할 때 도서관에 들어가서 설계도를 들고나오면 그뿐입니다. B-17번 서가에 꽂혀있습니다. 그 뒤는 내게 맡겨요.”
이때 조선소 도서관에 보안 경찰이나 CCTV가 있을 것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한 일 같았다.
“도서 목록 자체를 지울 셈이군요.”
“아,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걱정 말아요.”
낸시와 한통속인 이들이니, 고르고 골라서 문제가 되지 않을 설계도를 내게 권하는 것이리라.
어제 내가 사무실을 떠난 후로 낸시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어쨌든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의 기술과 지식을 우리 군함에 제대로 녹여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자자! 서명합시다. 타코마까지 갈 길이 멉니다.”
조금 전 사장이 된 맥뮬렌이 JJMA의 대표 자격으로 내 계약서에 서명했다.
딱히 계약서를 읽어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낸시가 중간에 끼어 있으니, 나도 그렇고 상대도 나를 믿는 것이다.
스카웃은 잘 한 것 같았다.
< 209 : 허가받은 도둑질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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