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1)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1화(21/589)
< 021 : 재건 >
‘굳이 환영회는 참석 안 해도 될 것 같네.’
이미 갈프사와 계약을 맺었으니, 굳이 환영회에 참석해서 정치인들과 엮이기 싫었다.
이 시대 군사 정권과 잘못 얽히면 대세 실업처럼 작은 회사는 한방에 날아간다.
물론 80년대 군사 정권도 멀리해야겠지만, 그때는 나도 어느 정도 덩치가 커져 있을 테니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창업 초기엔 이처럼 외국인들과 직접 연계해 수출업체로 덩치를 키우는 것이 낫다.
웅성웅성.
“으잉?”
황혜성 사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려 했는데, 폐공장 근처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우 사장님!”
“황 사장님, 이분들 다 뭡니까?”
“모래 살포기 기능공과 용접공들입니다. 데려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샌드 블래스터가 있던가요?”
“장생포 항구에 가니 있던데요? 원래 선박 수리할 때 많이 쓰는 장비라고 하더군요.”
헐, 이때 샌드 블래스터가 있었구나.
여하튼, 아무리 내가 기능공을 구하라고 했다고 벌써 이렇게나 모아왔어?
“이 많은 분들을 어찌 구하셨나요?”
“그간 울산에 비료 공장이니 정유소를 짓는다고 한창 떠들썩했다가, 회사들이 손 털고 나갔다고 하더군요. 일당 500원에 이리 잔뜩 몰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울산 석유화학 단지 조성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
워낙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던 사업이라, 미국에서 1.5억불의 차관을 들여오고서야 비로소 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베트남 특수로 석유 화학 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하자 더욱 가열차게 추진되었다.
“이왕 모였으니, 밥부터 먹죠.”
“예에?”
“자자, 여러분들. 우거지 해장국 왼쪽! 순대국밥 가운데, 선지 국밥은 오른쪽에 서세요.”
“사장님, 여기서 밥도 주십니까?”
당연하지.
난 밥 빨리 먹고 청소하는 사람만 쓴다.
설렁 설렁 시간만 때울 기능공들에게 일당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합니다. 허니, 후다닥 국밥 별로 줄 서요. 시간은 돈입니다. 다들 아시죠?”
“우와아아아!”
울산 폐공장에서도 기능공 면접을 실시했다.
***
며칠 뒤,
“모두 비켜요. 배관 옮깁니다.”
“비켜. 모두 비켜!”
산소 절단기로 잘라낸 배관을 기중기에 걸었다.
나는 제일 먼저 폐공장의 파이프부터 해체했다.
나프타에서 화학 섬유를 뽑으려면 기존 공장을 개조하는 것보다, 배관을 몽땅 뜯어내서 내 방식대로 플랜트를 재구성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기중기! 기중기 조심해!!”
“비켜! 비키라고! 이 미친놈아.”
어디선가 기중기 옆에 사람이 나타났다.
신호수는 물론 기중기 운전기사도 기겁했다.
“허헉!”
“당신 뭐야! 왜 여기 있어? 경고다!”
나는 기중기 바리케이드 근처에서 어리바리 대던 기능공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끌고 나왔다.
“헉! 죄송합니다.”
“따라 외쳐! 안전거리! 안전거리! 안전거리!”
“안전거리! 안전거리! 안전거리.”
“경고 3회면 쫓아낸다.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까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안전거리를 외치도록 했다.
단순 경고가 아니었다.
나는 어리바리한 척하며 안전을 무시하는 놈들은 시급만 정산해 주고 쫓아냈다.
자기 몸의 안전도 챙길 줄 모르는 인간은 일도 제대로 못한다. 대충 시간만 때우려는 놈들이다.
“스테인리스 배관은 이쪽, 강철 배관은 저쪽.”
“예, 사장님.”
“뭐야? 배관 굵기 별로 분류하는 거 모르나? 그리고 고정 핀을 왜 안 끼우지? 여기 안내판에 적혀 있잖아! 굴러 떨어지면 사람 다친단 말이다.”
모든 현장에서 마찬가지지만, 특히 플랜트 현장에서 정리정돈은 효율 및 안전과 직결된다.
“헉! 죄송합니다.”
“경고다! 이름표 보여 봐!”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이름표 보자니까! 뭐야? 당신, 경고 누적 3회잖아.”
이름표를 살폈더니 경고를 벌써 두 번이나 받았던 기능공이었다.
“이… 이번 건 실수입니다. 봐주십시오.”
“뭔 실수를 3번씩이나 해? 당장 현장에서 나가! 정문에서 시급 정산해줄 거다.”
나는 놈을 당장 내쫓았다.
난 지금 사흘 째 기능공을 골라내는 중이었다.
다들 어찌나 밥을 잘 먹던지, 밥 먹는 속도로는 기능공들을 제대로 골라낼 수 없었다.
“한번만! 한번만요! 사장님.”
“뭐합니까? 이 사람 당장 끌어내요!”
인정사정없이 쫓아냈다.
뻔히 배관이 굵기 별로 나뉘어져 있고 작업 안내판도 걸려 있는데, 거기다 배관을 아무데나 던져놓고 가는 놈이 무슨 일머리가 있겠나?
귀찮다고 아무데다 두면 나중에 또 옮겨야 한다.
일의 효율은 물론, 이렇게 일하는 놈은 언제고 사고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나는 저런 놈과 일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전생의 김부장처럼 내 명을 어기고 아파트 무너질 걸 알면서도 공구리치는 놈들은 이번 생엔 절대 직원으로 뽑지 않을 거다.
회사가 망하는 꼴은 전생에 충분히 봤다.
이번 생엔 절대 안 망할 거다!
현장에서 일 해 본 사람은 다들 알 거다.
인명 사고는 저렇게 부주의한 놈이 당하는 게 아니라, 부주의한 놈이 사고를 쳐놓은 곳에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지나가다 사고를 당한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억울하기 그지없다.
귀찮다고 대충 결착한 비계를 밟고 낙사하고, 걸쇠를 제대로 닫지 않아 크레인에서 중량물이 떨어지고, 신호를 무시하고 후진하다가 사람을 치고, 구덩이를 방수포로 덮어놔서 지나가던 작업자가 빠지고, 고정 핀을 대충 꽂아 자재가 굴러 사람을 덮치고 등등… 인명 사고의 대부분은 대충 일하는 놈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
“이보쇼. 다 쫓아내면 어쩝니까? 같이 먹고 살아야지.”
“당신은 누구지?”
“요 앞 울산용역에서 나왔는데, 우리 쪽 인부도 좀 써주고 하셔야지.”
“방금 쫓아낸 인부가 당신네 인부야?”
“그건 알거 없고, 이 동네에선 사람 함부로 자르는 거 아니오. 여긴 서울이 아니거든.”
누군가 했더니 내가 혐오하는 부류였다.
일명 용역소 깡패. 건설 현장에 동네 양아치나 어리바리한 한량들을 인부로 밀어 넣고 일당을 벗겨먹는 놈들이었다.
60년대에도 용역소 깡패가 있는 걸 보니 아주 역사가 깊은 직업이긴 하네.
“우와, 깡패다.”
“어디요, 어디요, 사장님.”
내가 비웃음을 날렸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달려온 이들의 대부분은 기능공 중에서 해병대 출신으로 주먹 좀 쓰는 이들이었다.
“이 사람. 울산용역인지 나발인지에서 나왔다는데, 자기 쪽 인부 쓰라고 하네요. 어쩔까요?”
“이런 빌어먹을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 어… 이거 왜 이래? 나 울산용역이야. 내 빽 알고나 덤벼.”
“사장님, 이 놈 턱주가리 날려도 됩니까?”
내 현장은 안전하고 대우도 좋기 때문에 대부분이 여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알고 있었다.
내가 정규 직원을 뽑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적당히 타일러서 경찰서로 넘겨요.”
“예, 사장님.”
“으아악, 왜 이래? 물러서, 물러서라니까.”
용역 깡패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건설 현장 인부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양반들이라 간이 일반인에 비해 몇 배는 크고 완력도 상상 이상이다.
몸이 재산이라 웬만한 사달에는 성질을 죽이고 살 뿐이다.
허나, 지금처럼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다르지.
양아치가 커터를 빼들어도 코웃음만 칠뿐이다.
쇠 파이프 몇 번 휘두르면 땡이다.
“아가야, 내려놔라. 손 벤다.”
“이 새끼들! 내가 울산용역이라고… 커헉!”
퍽! 퍽! 퍽!
해병대 출신 기능공들이 적당히 몽둥이 찜질을 시작했다.
“아가야, 힘 빼. 힘주면 뼈 부러진다.”
“아악. 으아아악!”
이 시대 해병대 출신은 지역 경찰과도 끈끈했고, 무엇보다 지역의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기에 이 정도 일은 쉽게 묻혔다.
동네 양아치를 일일이 상대하기도 그렇고, 60년대답게 일처리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땡땡땡땡.
“모두들 저녁 드세요.”
저 멀리서 저녁 종이 울렸다.
오늘 하루 일과가 끝난 거다.
“오늘 하루,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정규 직원을 모두 골라내지 못했기에 야간작업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제대로 검증 안 된 이들로 야간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사고를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스 안전! 안전! 안전!”
“가스 안전! 안전! 안전!”
사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안전 구호를 외쳤다.
내가 하도 지랄했더니 퇴근 점검이 확실했다.
가스 잠그고, 산소 절단기 호스를 꺾고, 가스통의 압력 게이지를 가리키며 안전이라고 외쳤다.
보기엔 유치해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 구호와 손짓까지 해야 사고가 안 생기는 법이다.
‘저 팀은 정규직원으로 뽑아야지.’
마음에 드는 팀이 벌써 몇 개는 있었다.
언뜻 똑같이 일하는 것 같아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가 야무지게 일하는지, 누가 건성인지 훤히 보였다.
“사장님, 식사 하셔야죠.”
“황 사장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서 가시죠.”
내가 흙먼지를 옴팡 뒤집어썼다면 황 사장은 검댕을 잔뜩 묻히고 나타났다.
내가 파이프 절단을 챙기고, 황 사장이 파이프 청소를 챙겼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은 현장 식당으로 향했다.
이 주변에 자잘한 식당이 여럿 있긴 하지만, 현장 식당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제일 좋았다.
“아주머니, 2인분 주세요.”
“고등어조림에 봄동 쌈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맛있겠네요. 식권 두 장 드리면 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장님.”
무엇보다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아주머니, 여기 고추장 좀 주세요! 비벼 먹게.”
“기다려요, 총각.”
“여기 시래깃국 좀 더 주세요.”
“예. 예.”
간이 천막에 판자를 덧댄 가건물이지만 2백여 명에 가까운 인부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사장님, 이렇게 공짜로 밥을 퍼주셔도 되는 겁니까?”
“공짜긴요. 엄연히 80원짜리 식권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데요.”
나는 기능공들에게 매일 식권 두 장을 나눠줬다.
집으로 퇴근하는 양반들은 두 끼를 현장에서 해결하고, 현장 숙소에 기거하는 이들은 세 끼 중 한 끼는 굶든지 제 돈으로 사먹어야 했다.
“누가 보면 자선 사업한다고 하겠습니다. 인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깨끗한 화장실에다 목욕탕까지 제공하시지 않습니까.”
“간이 시설에 플랜트 보일러를 연결한 것뿐인데, 자선 사업이라뇨.”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해야만 했다.
도저히 푸세식 화장실은 견딜 수 없었고, 아무리 피곤해도 샤워를 안 하고선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맘 같아서 땀에 쩐 작업복도 매일 갈아입고 싶었다.
“아휴, 사장님 같은 분만 있으면 다들 부자 되겠습니다.”
“당연히 다들 부자 돼야죠. 그러려고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건데요.”
“… 그… 그렇긴하죠.”
황 사장은 아직 내가 하는 짓이 얼마나 큰돈이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정도 대접은 해줘야 우리 회사에 충성할 거 아닙니까.”
21세기 작업 환경에 비하면 대접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60년대 기능공들은 일명 보로꾸라고 부르는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간이 숙소에 감격해 했다.
솔직히 나도 여관보다 간이 숙소가 차라리 나았다. 깨끗하게 씻고 잠자리에 누워 라디오를 듣다가 잠들면 되니까. 새벽 2시까지 팝송을 틀어주는데다, 아침엔 모닝콜 역할로도 쓸 만했다.
“사장님께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아직 폐공장 부지 인수는 진행 중인데, 이처럼 수리부터 해도 되는 겁니까?”
황 사장은 내가 이 폐공장을 최종 인수하려면 울산 시청에서 부지 명의도 넘겨줘야 한다는 걸 우려했다.
명목상 갈프사에게 공장 부지를 특혜로 준거니까 말이다.
“괜찮아요. 내가 공장을 인수 못하면 갈프사로선 나프타 판매는 물론, 촉매도 납품받지 못할 테니까요.”
울산 시청이 갈프사의 입김을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을 거다.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입김을 무시 못 하듯 말이다.
“그렇군요.”
갈프사가 내 편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갈프사 입장에서 정유 효율을 5%나 올려주는 촉매를 제공하고, 나프타 전량을 소화해주는 나를 배신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보다 마이크 타워 마련되었나요?”
“마이크 타워라뇨?”
“리엑터(Reactor, 중합 반응로) 말입니다.”
리엑터란 각종 원료를 투입해서 특수한 조건으로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구조체다.
생긴 모습이 꼭 노래방 마이크를 닮아서 흔히 마이크 타워라고 부른다.
“아! 중합로 말씀이군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깔끔하게 내부 청소해서 오늘 용접까지 끝냈습니다.”
“헐, 벌써요?”
나는 고등어를 발라먹다가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황 사장에게 반응로 도면을 건넨 것이 불과 나흘전인데 말이다.
기존 타워를 해체해서 도면대로 개조하려면 적어도 두 달은 필요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장님이 그려주신 중합로와 비슷한 놈이 폐기물 창고에 있더군요. 깨끗하게 녹을 벗겨서 타워에 붙여 놨습니다.”
“정말입니까?”
대박! 완전 대박이었다.
여기 공장에 원래 설계에서는 정유 시설에 나프타 제련 플랜트까지 붙이려고 했던 모양이다.
“밥 먹고 보여드릴까요?”
“물론이죠.”
“잘하면 시범 운전도 가능할 겁니다.”
“정말입니까?”
황 사장도 중합로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시범 운전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정말 가능한 거다.
대박! 대박!
나는 허겁지겁 밥을 입안에 우겨넣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잘하면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지도 몰랐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다.
21세기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90년대 양옥집에는 살고 싶었다. 서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삼복이한테도 얼른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 021 : 재건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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