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11)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11화(211/589)
< 211 : 국보급 >
입장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통령이 성큼성큼 접견실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덕분에 우리가 산유국이 됐어.”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산유국 아니고, 그냥 유전 지분확보라니까.
나는 대답을 꿀꺽 삼키고 예를 표했다.
“대세, 우찬수 사장에게 금탑산업 훈장을 수여하겠습니다.”
원래는 무역의 날에 수여하는 훈장이며 금탑 산업 훈장은 수훈자가 없는 경우도 잦은데, 이례적으로 평일 나에게만 수여하는 것이었다.
펑! 펑! 찰칵. 찰칵.
박수와 함께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고 TV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갔다.
유전 개발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시상 내역과 TV 중계용 멘트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쯤하면 된 것 같군.”
대통령은 촬영용 자세를 취해주는 걸 마지막으로 주변을 물렸다.
“취재는 여기까지입니다. 출구로 나오십시오.”
비서관들이 카메라와 기자들을 우르르 내몰았고, 접견실은 삽시간에 정리되었다.
“방금 도착했는데 취재가 길면 피곤하잖아!”
대통령은 내게 따라오라는 턱짓을 하고는 집무실로 향했다.
***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집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인사부터 했다.
“이게 말이야. 국가적인 경사가 생기면 개인적으론 좀 힘들어도 국민들이 으샤으샤하게 잔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거 무슨, 미국 눈치를 본다고 카퍼레이드를 취소해!”
자기는 미국 눈치를 안 보는 듯 말했다.
“눈치를 본다기 보다 국익을 위해 제게 이목이 쏠리는 것은 피하고자 했습니다. 대통령님의 요청을 수행하고 있기에 말입니다.”
“내가 요청했다고? 내가 언제 카퍼레이드를 취소하자고 했나?”
아까부터 계속 카퍼레이드만 생각하는 건가?
내가 게긴 게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잊으라니까요.
“그게 아니라, 구축함을 건조할 방법을 알아 오라지 않으셨습니까? 그 일이 우선인 데다, 혹시나 제 동선이 드러날까 봐 부담스러웠습니다.”
“… 아니,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 일이었나?”
“물론입니다. 미국 정·재계 실력자들은 대부분 석유 카르텔과 연관 있고, 괜히 유전 개발로 관심을 끌게 되면 제 행동반경이 매우 좁아집니다.”
꼬리표를 달게 되면 구축함 설계도 같은 극비를 입수하는 일은 앞으로 못하게 된다고, 이 양반아.
대통령은 내 말의 뜻을 이해했던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구축함 설계도를 입수했다는 뜻인가?”
“예, 대통령님.”
“커허! 그 일이 정말 가능했다고?”
일을 시킨 주제에 막상 일을 해냈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하긴, 나도 이렇게 단박에 확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염 수석님, 가방 좀 주시겠습니까?”
“예, 여기 있습니다. 우 사장님.”
문밖에 있던 염 수석이 급히 들어와 가방을 건네주었다. 가슴에 꼭 안은 채 한시도 떨어뜨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 가방에 설계도가 있다고?”
“구축함 설계도는 20000매 가까이 되기에 그걸 통째로 가져올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어 마이크로필름과 사양서를 보여주었다.
“이럴 수가.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마이크로필름이 아닌가?”
“예. 이 필름을 현상하면 전체 설계도를 출도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마이크로필름을 천장 불빛에 비춰보았다. 안력을 높여 한참을 살펴보더니 설계도라고 확신했던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군함 설계도가 확실해 보이는군. 그럼 이 책은 무엇인가?”
“구축함의 구조, 소재, 운영 스펙이 적혀 있는 사양서입니다. 설계도와 사양서를 분석하면 한국형 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자더러 구축함을 만들라고 했더니, 국보를 가져왔어. 국보를 가져왔어!”
국보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해당 자료는 비단 구축함 뿐만 아니라 각종 특수 선박 제조에도 큰 도움이 될 자료였으니까.
우리나라 조선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21세기의 웬만한 조선 기술은 다 꿰고 있는 엔지니어 아닌가.
이 설계도와 사양서를 우려먹는 걸 넘어, 내 지식을 더해 더욱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 이제 준비가 다 되었군. 임자, 그럼 구축함은 언제 건조할 건가?”
무슨 말이야, 급해도 너무 급하잖아.
“대통령님, 이제 겨우 참고할만한 설계도를 얻은 상황입니다. 최소한 1년 정도는 설계도를 분석하고, 모형 시험을 거친 뒤에야 진짜 구축함다운 구축함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 설계도도 있고, 임자 같은 실력자가 있으면 일단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저 혼자는 불가능합니다. 대세 엔지니어는 물론, 해군 기술 장교와 국방과학연구원 등등 프로젝트 팀부터 구성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서두르면 수십 년전 구형 모델을 베끼는 꼴이 될 겁니다.”
“… 그건 안되지. 최신 구축함을 만들어야지. 마음은 급한데 갈 길이 멀군. 그래, 원하는 인력을 맘껏 차출해서 팀을 구성해!”
대통령은 툭툭 말을 뱉었지만 기분만은 좋은 것 같았다. 담배를 피워 문 것이 그 증거였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좋아, 좋아. 그 정도 일이면 카퍼레이드 정도는 취소할 수 있지. 왜 이리 늦게 귀국하나 싶었더니, 이걸 가져오려고 그랬던 것이군.”
예상대로 대통령의 기분이 훅하니 풀렸다.
협상의 시간이 돌아왔다.
“대통령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협상을 시작했다.
비서관들도 같이 자리하고 있으니, 나름 공식적인 협상이라고 하겠다.
“부탁? 하하! 그래, 이 정도 일을 했다면 부탁 정도는 할 수 있지. 뭔데 그러나?”
권력의 화신이라 이렇게 부탁받는 것을 은연중에 즐기는 것도 같았다.
“정유 사업을 하게끔 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는 이미 인천에 정유 사를 운영 하고 있잖아. 울산엔 한국석유 공사가 있고, 여천에는 금양의 정유사가 있으니 지역 배분도 아주 좋단 말이야.”
한국주식회사 총수답게 잘 알고 있네.
“원유 수급권을 저당 잡힌 합작사가 아니라, 원유 수급부터 정제까지 일괄 담당하는 독자 정유사를 운용했으면 합니다.”
“갑자기 독자 정유사라니. 임자는 갈프사와 유니온 오일과도 관계가 좋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석유 화학 단지를 만든 차관도 자네가 그쪽에서 빌려오지 않았나 말이야.”
물론 사이가 좋지.
하지만 오일 쇼크가 터지면 그들은 대번에 우리나라엔 원유 공급을 끊고, 미국으로 원유를 실어나르기 바빠진다.
훨씬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데다, 미국 정부가 전략 비축유를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거의 무한정으로 원유를 사들였거든.
따라서, 지금부터 준비해서 유니온 오일로부터 경영권을 가져와야 한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안정적인 원유 수급은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어 이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각국의 자원 보호주의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자칫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같은 자원 빈국은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짐짓 국가 안보를 들이밀며 원유 수급 문제를 제기했다. 이 시대에 애국자 행세는 그 어떤 경우에도 먹히는 카드였다.
“국가 안보라… 그래, 외국 기업의 손에 원유 수급을 맡겨두는 건 위험하긴 하지. 2차 세계대전에서도 석유가 승패를 갈랐으니 말이야.”
군인 출신 독재자답게 전쟁부터 떠올렸다.
난 전쟁은 모르지만, 오일쇼크가 얼마나 세계사에 큰 획을 그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금 독자적인 원유 수급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우리한테 석유를 원하는 양만큼 제값으로 공급해줄 회사는 나타나지 않아.
우리가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있어야, 외국 회사도 석유를 적정한 가격에 팔아주는 것이다.
“각하, 저도 우 사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합작을 하더라도 최소한 한 곳은 독자적인 원유 수송권을 가져야 합당한 경쟁 체제가 형성될 것입니다. 가격과 공급 안정성에서 필수적인 일입니다.”
평소 조용하던 나정렴 비서실장이 내 말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래, 비서실장의 말도 인정해. 하지만, 대세가 독자 정유사를 세우는 건 전혀 다른 일이야. 대세는 벌려 놓은 일도 많은 데다, 중복 투자에 특혜라고 공격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각하, 여론은 충분히 제어 가능합니다. 수에즈 운하가 막힌 것처럼, 원유 수송도 언제 사달이 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대세가 유전을 발견한 김에 순수 국산 정유사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로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나정렴 비서실장이 오늘따라 백기사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하긴, 이 양반은 나에게 특혜를 준다기보다 정말 국가 전체를 보고 원유 수급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매년 전세계 석유 소비량은 20% 이상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원유는 한정적이니 언젠가는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생각하는 거다.
“대통령님, 유니온 오일과의 지분 조정으로 독자 정유사를 만들 터이니 중복 투자는 아닙니다. 대신 외국 회사에 맡긴 원유 수송권을 조정해 주십시오.”
원유 수송권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우리나라에 원유를 수송해오면 톤당 3불 정도의 이득을 붙여 내수 시장에 풀 수 있다.
유조선을 운용해주는 외국 기업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셈인데, 이왕 내 원유도 수송해오면 나도 그런 지원을 받아야지.
더욱이 오일쇼크 때는 우리나라에 원유를 싣고 올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나도 운송비는 받아야겠어.
외국 석유 회사에는 운송비까지 따로 내주면서, 내겐 안주면 그건 역차별이잖아.
“참나, 뭔 말을 그리 돌려서 해? 유류세로 운송비를 보존해달라는 말 아냐.”
이런 말까지 안 나오길 바랬는데 어쩌리.
애국한다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송구합니다. 이제 국내 기업과 해외 석유 기업이 경쟁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태 우리나라 석유 사업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으로 사업이 아니라 배급 수준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 독점 아닌 독점을 깨야 한다.
내수 시장에 유류를 팔 목적보다, 내 공장을 제대로 돌리려면 독자적인 원유 수송권은 필수다.
“각하, 현재 외국 석유사에 주는 운송비가 톤당 3.48불입니다. 작년에 갈프사에 간 돈만 2000만불이 넘습니다. 그중 절반만 대세가 담당해도 국부 유출을 1000만불이나 줄이는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염 수석이 말을 보태주었다.
확실히 내 편이었다.
“그렇게나 큰돈이었단 말인가?”
“대통령님, 외국으로 줄줄 새던 원유 수송비를 제가 대신 거둬서, 우리 산업계에 몽땅 재투자하고 싶습니다. 그게 저 같은 기업인이 애국하는 길이 아닐지요.”
“크흠…”
“대통령님, 그리고 그 일은 대한민국에서 제가 그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짐짓 단호한 표정까지 지으며, 국가안보와 애국심에 기업가 정신까지 들먹였다.
“그래, 임자의 욕심과 능력은 인정하지. 하지만 중복투자니 정경유착이니 하는 여론도 만만찮은 부담이야. 그러니, 둘 중 하나를 택해!”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하시면…”
“신진 자동차나 수성 조선소 중 하나를 인수해. 그리고 정상화해. 그러면 대세 이름으로 정유사를 하든 원유 수송권을 잠식하든 적극 지원하지!”
뭐야? 그런 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거야?
그럼 미리 말씀을 하시지!
이렇게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었잖아.
여하튼 표정 관리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정상화가 필요할 정도입니까? 나름 자생력이 충분한 기업이라 여겼는데 말입니다.”
“자생력은 무슨! 일본이 철수하니 뿌리까지 뽑힌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던데. 차를 뽑지도 못하고, 조선소 공사도 진척이 안 돼. 불러다 호통을 쳐도 묵묵부답이고 말이야.”
하긴 도요타에서 차량 부품을 죄다 수입해서 조립만 하던 신진이니 자동차를 생산할 수가 없겠지.
수성 조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 건설사에 설계와 시공을 맡기고, 일본인 현장 감독이 조선소 공사를 수행하고, 선박 건조도 일본인 엔지니어들이 주도했을 테니까.
주4원칙(周4原則) 때문에 가장 타격이 큰 두 회사라고 하겠다.
여하튼 수성 조선소는 내가 인수하기엔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다.
조선소 도크만 확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프라를 죄다 짓는 거라 인수 비용이 8000만불은 족히 들어갈 거다.
나도 지금 그만큼 투자할 여력은 없다.
차라리 그 돈을 내 계열사에 투자하면 더 효과가 좋을 거다.
하지만 신진은 지금이 인수하기 적기지.
무엇보다 신진을 인수하면 가솔린 엔진의 승용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 않나.
물론, 내수 시장보다 해외 시장 진출이 더욱 중요했다.
“조선소 인수는 덩치가 너무 크기도 하고, 수성도 대한민국의 중공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는 국산화와 해외 시장 진출이 급하니 신진 자동차는 어렵더라도 제가 인수를 해보겠습니다.”
나는 장고를 거듭한 것처럼 호흡을 조절해 가며 말했다.
특히 어렵더라도 인수한다는 말에 액센트를 잔뜩 넣어서 말이다.
“그렇지. 유전 개발로 번 돈은 자동차에 투자해야지. 그래야 휘발유도 더 잘 팔릴 것 아닌가.”
대통령은 자기의 의도대로 골치 아픈 기업을 떠넘겼다고 생각했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나도 신진 자동차 인수는 원했던 그림이었다.
더욱이 정부가 이렇게 나서주면 인수할 때 불필요한 잡음도 없어지리라.
“예, 대통령님. 유전으로 번 돈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일류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원하시는 국민차도 만들고, 완전 국산화도 이루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비서실은 적극 도와줘. 물론 구축함 건조부터 챙기는 거 잊지 말라고! 알겠나?”
“예, 각하!”
“아! 그리고 이 구축함 설계도 필름과 사양서는 사본을 만들어서 해군도 보관하도록 해.”
“예, 각하!”
대통령이 연신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집무실을 벗어났다. 비서실과 상세한 얘기를 나누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우 사장님, 신진 자동차뿐만 아니라 한국 기계도 인수해주셔야 합니다. 신진이 경영을 포기해버렸는데, M16 생산을 멈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 어렵지만 한국 기계도 인수해보죠.”
대통령이 나가자마자 급한 건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 기계까지 제 발로 이렇게 굴러들어오다니, 일이 술술 풀렸다.
“보셨죠, 나 실장님. 대세라면 한꺼번에 인수 가능할 거라고 말씀드렸죠!”
“감사합니다, 우 사장님. 불경기에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앉을까 봐 마음을 졸였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인수 조건을 잘 좀 챙겨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비서관들이 나를 청와대 밖까지 배웅했고, 나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여독부터 풀고, 인천에 가봐야겠다.
구축함 건이야 청와대 비서실에서 팀원 추천부터 할터이니, 시간이 좀 걸릴테니 말이다.
여태 유니온 오일과의 합작은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이번 기회에 경영권을 가져오자.
내 쪽에서 과감하게 투자를 하면, 상대적으로 유니온 오일의 지분이 줄어들 것이다.
< 211 : 국보급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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