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1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12화(212/589)
< 212 : 베팅의 순간 >
정말 오랜만에 인천정유로 향했다.
유니온 오일과 합작한 회사라 대세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지명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보니 인천제철과 쌍으로 잘 어울리는 상호가 되었다.
“76 간판은 볼 때마다 눈에 확 띄네.”
76이라고 숫자가 적힌 상표는 유니온 오일의 상징이다. 1930년대, 당시로는 최고의 옥탄가 휘발유 제품을 개발했기에, 76이라는 옥탄가 숫자를 간판에 새겨넣은 게 상표가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내가 인천정유를 방문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50대 50 합작사인 데다, 전문 경영인을 두고 운영하는 곳이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70년대의 정유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 사실 누가 해도 성과에 차이가 없었다.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가 원유 수송권을 독점하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원유 공급 부족 상태였기 때문에 정유사가 석유 판매를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지역에 배급하는 식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각종 유류 소비 업체는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을 비벼가며 정유사에서 석유를 얻어가는 꼴이고 말이다.
기술적으로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증류탑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뽑아 연료로 팔고, 나프타를 뽑아내서 화공업체에 팔고, 벙커C유는 발전소와 선박 연료로, 아스팔트는 건설사에 팔면 재고가 남으려야 남을 수가 없었다.
재고가 안 남는 사업처럼 마음 편한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인천정유가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었다.
처음 계획으론 유니온 오일과 1일 10만 배럴 규모로 투자하기로 했는데, 6만 배럴 규모에서 투자가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장기저리차관을 더 못 당긴 게 안타깝긴 하지만 이쯤에서 내가 투자해서 규모를 늘리면 된다.
솔직히 한국 직원들이 가동률 121%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냈기에, 유니온 오일로서는 투자 규모를 늘릴 필요가 없었다.
물론, 국내에 이미 진출해있던 갈프사와 칼텍스사의 압박도 있었고 말이다.
메이저 회사가 인상 좀 쓰면, 중견 오일러인 유니온 오일이야 깨갱할 수밖에 없었다.
담합을 해치는 자에겐 합심해서 응징하는 게 그들의 관례니까.
여하튼 나는 여기 인천정유 덕분에 매년 800만불 이상 꾸준하게 흑자를 보았다.
물론, 그 덕분에 여기 한국인 직원들도 업계 최고의 성과급을 챙길 수 있었고 말이다.
그 동안 고마웠고, 이제는 나도 유전 개발에 성공했으니 인수할 때가 되었다.
똑똑.
“바쁩니까? 제퍼슨 사장?”
“우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리 앉으세요.”
나는 합작사의 최고위 경영자로서 비서실을 가볍게 통과해서 바로 사장실로 갔다.
당연히 제퍼슨 사장은 날 반갑게 맞이했다.
“인천제철에 들릴 일이 있어 근처에 왔다가, 문득 인천정유가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안 그래도 분기 보고서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아, 먼저 유전 개발에 성공하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더군요.”
제퍼슨 사장이 정중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 감사합니다. 여하튼, 요즘 내수 시장은 어떤가요? 소비량이 좀 늘었습니까?”
전문 경영인이 좋은 게 이런 보고서용 수치를 물어보면 즉각적으로 답을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1년 내내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제퍼슨 사장의 주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의 총 원유 소비량은 7000만 배럴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중 30% 정도를 우리 인천정유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갈프사나 칼텍스가 압박만 하지 않는다면 더 할 수 있지만…”
제퍼슨 사장은 내 앞이라서 그런지 갈프사와 칼텍스사의 압박에 대놓고 짜증을 냈다.
일개 지사장이야 그럴 수 있지만, 미국 본사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한국 시장에서 석유를 비싸게 팔아먹는 담합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소비량이 많이 늘었군요. 1일 소비량이 11만 배럴인 줄 알았는데, 거의 19만 배럴이군요.”
“작년까지 11만 배럴이었지만, 올해 급증했습니다. 그만큼 제철소니 조선소니 한국의 중공업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했다는 증거겠죠.”
1년 만에 70% 이상 원유 소비가 증가하다니 가히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속도는 상상 초월이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증세이군요.”
“예, 전 세계 평균 소비 증가율이 20%이니 3.5배나 높습니다. 솔직히 본사가 여유만 된다면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입니다.”
“나도 그래서 한번 와 본 겁니다. 지금에야 유전을 막 개발한 상태라 송유관도 없지만, 내년에는 알래스카에서 매달 원유를 60만 배럴씩 실어오면 여기서 정유해야지 싶은데 말이죠.”
“물론 그리 하셔야죠. 안 그래도 원래 대세와 유니온 오일에서 일산(日産) 10만 배럴 기준으로 투자하기로 하신 게 원안이지 않습니까. 한국 시장의 크기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매년 수십%씩 원유 소비가 증가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3, 4년만 지나도 연간 소비량이 1억 배럴을 훌쩍 넘을 테니 시장 규모는 충분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석유 소비량에서 세계 8위다. 산유국과 유럽 연합을 빼면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니온 오일과 추가 투자를 논의하려고 했는데… 요즘 미국 본사 사정이 영 안 좋은가 보군요. 무슨 일입니까?”
조만간 투자 합의를 했던 굿맨 부사장을 초대해서 대세 자동차와 조선을 보여주면서 차관을 당겨보려고 했더니,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
“이거 말씀드려야 할지 말지 모르겠지만, 본사가 크게 적자를 본 연유에는 우 사장님의 영향도 적잖아 있습니다.”
“뭐라고요? 내 탓도 있다고요?”
“미국 멕시코만 뉴저지에 다우케미컬이 원료와 연료를 자급할 목적으로 정유 공장을 세웠습니다. 미국 본사는 거기에 지분 50%를 투자하고 운영까지 담당하기로 했고 말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다우케미컬이 수직 계열화를 꾀한 거잖아.
유니온 오일로서도 대박 프로젝트지.
세계적인 대기업인 다우케미컬에 나프타와 연료유를 제공하는 사업이라면, 그냥 갈퀴로 돈을 긁어오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왜요? 좋은 소식 아닙니까?”
“합작할 때까진 아주 좋은 소식이었죠. 본사 주가도 10% 이상 뛰었으니까요. 그런데, 작년에 사장님께서 사우디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로 요르단에 제공하셨지 않습니까?”
“그게 왜요? 서… 설마… 다우가 천연가스를 쓰겠다고 정책을 바꾼 겁니까?”
화공 제품을 만들 때 꼭 나프타를 써서 만들 필요는 없다. 탈황 처리를 한 천연가스는 나프타를 대신할 수 있고, 연료유를 대체할 수도 있다.
“바로 그겁니다. 멕시코 만에서 원유만 뽑고 천연가스는 태워버리던 메이저 오일러들이 갑자기 다우케미컬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졸지에 해당 정유 공장은 완공되자마자 유휴 시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유니온 오일社로선 억울하기 그지없겠다.
다우케미컬이야 헐값에 천연가스를 쓰면 몇 년 안에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겠지만, 유니온 오일은 고스란히 투자비를 날리는 꼴이었다.
두 거대 회사가 합작했다면 적어도 수천만 불짜리 프로젝트였을 텐데 말이다.
“아니, 유니온 오일이 그런 꼴을 당하고만 있단 말입니까?”
소송의 나라인 미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해 배상을 받아 내야지.
“어쩌겠습니까? 다른 지역에선 여전히 다우케미컬이 대형 고객사이기도 하고, 해당 시설에 대해선 깔끔하게 모든 권리를 포기했는데 말입니다.”
제퍼슨 사장은 마음이 불안했던지 담배를 꺼내 물고 깊숙이 빨아댔다.
본사에서 구조 조정을 하면 해외 지사장이야 단박에 잘려나간다.
이야, 미국의 비즈니스 세계도 살벌하네.
이거 딱 봐도 메이저 오일러들이 유니온 오일을 자빠뜨리려고 합동 작전을 펼친 거다.
다우케미컬에 천연가스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게 주겠다고 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우케미컬이 완공한 공장의 지분을 그렇게 단박에 포기했을 리가 없다.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유니온 오일은 창립 초기부터 21세기 초 쉐브론에 합병되기 전까지 숱하게 메이저 오일러들의 공격을 받아 왔으니까.
‘잠깐… 그러면 원래 역사에서는 유니온 오일이 이 위기를 잘 넘겼다는 얘기네. 이 정유 공장을 어딘가로 잘 팔아 넘겼다는 뜻인가?’
천연가스가 넘쳐나는 지역에서 정유 공장을 누구에게 팔았지?
설마, 설비를 해체해서 조각조각 팔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이건 내게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온 오일이 해당 정유설비를 손상 없이 뜯어서 팔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원래 역사에선 누가 사 갔는지 몰라도, 이번 역사에선 내가 그 고객이다.
원래 정유공장은 가동을 멈추면 온갖 파이프가 급속히 부식되어서 고철값도 제대로 못 받는데, 유니온 오일이 뭔가 방법을 찾아낸 거다.
“그런 큰 공장이 망했다면 정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군요 나라도 그 설비를 뜯어와서 여기 인천정유에 붙이고 싶군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상압 증류탑만 해도 750톤에 60m가 넘고, 화학 플랜트만 해도 400여기가 넘는 대형 공단이나 다름없다던데 말입니다.”
화학 플랜트만 400여기? 사실이야?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대박! 대박!
다른 이들은 포기할 지 몰라도 나는 가능하지.
까짓거 죄다 뜯어서 바지선에 싣고 오면 된다.
우린 그 비슷한 짓을 수차례 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거니까.
“안타까워서 해본 소립니다. 여하튼, 인천정유에 투자하는 것은 나 혼자라도 검토해봐야 하니 올해 분기 보고서를 좀 주십시오.”
“아직 6월 실적은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합작 회사의 좋은 점이었다.
미국 시장을 비롯해 주요 시장조사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독자 정유사업을 꿈꾸는 내게 아주 요긴한 자료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보고서를 받아들고 인천정유를 나왔다.
이왕 투자할 생각을 하니 주변이 달라보였다.
인천정유가 들어선 70년대의 원창동은 인적조차 드문 뻘밭이나 다름없었다.
매립 허가만 받으면, 수만 평의 공장부지를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물론 매립 허가를 받으려면 돈이 좀 들겠지만, 인천 시내 방향으로 땅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
게다가 차관의 대가로 인천정유가 누리고 있는 면세 혜택도 올해 말로 종료되니까, 유니온 오일 본사도 내년부터 내가 투자 지분을 늘리는데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다.
일단 투자를 하기 전에, 빌 베인의 미국 안테나를 이용해 상황파악부터 해야겠다.
***
인천제철.
인천 정유에 온 김에 인천제철을 방문했다.
여긴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여길 인수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쑥덕거렸지만, 나날이 발전하고 있잖아?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뵈스트 이사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뵈스트 이사, 이제 인천제철이 제철소인지 강관회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있네요.”
“예, 요르단 수로용 파이프부터 알래스카 송유관까지 종류도 많고 물량도 많습니다.”
야적장에 쌓아둔 강관은 10인치부터 104인치까지 다양했다.
“드디어 미국에 송유관도 수출하는군요.”
“그럼요. AWWA(미국 수도협회)와 API(미국 석유협회) 스펙을 모두 맞췄는데 수출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 인증을 두개나 받았다니 참으로 뿌듯했다.
솔직히 미국 인증은 미국 내 제조업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세운 기술 장벽이라 단박에 패스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인천제철의 기술력이 탄탄하다는 말이자, 뵈스트 이사를 영입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는 증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워터 인젝션 플랜트에 들어간 내식성 파이프도 품질이 정말 좋았습니다. 신경 많이 써줘서 고맙습니다.”
“그거야 풍신금속 공입니다. 워낙 기술력이 있는 회사더군요. 벌써 해외 건설사들도 관심을 보이니 수주를 받으면 곧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풍신금속은 총알을 만들기 시작하면 꽤 돈이 될 거라는 계산에 인수했는데, 그 전에 이미 특수 파이프로 제 몫을 넘치게 해주고 있다.
그리 보면 제일알루미늄도 자동차 엔진 주조 때문에 인수했는데, 초계함 건조에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점이 비슷했다.
특히 구축함의 상부 구조물에는 알루미늄 합금이 많이 쓰이니 앞으로는 더 역할이 커질 것이다.
해수 내식성도 좋지만, 갑판에 무장을 해야 하는 군함에선 무게 중심이 과도하게 위로 올라가는 걸 방지하는 목적이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특수강 업체의 인수와 인천제철을 중심에 두는 계열화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쯤 되면 강관 공장을 새로 지어야겠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존 강관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고급 스테인리스강관의 생산을 위해서도 신규 공장은 꼭 필요합니다.”
스테인리스 강관은 화학 플랜트, 발전소용 고온고압 파이프, 군함 의장, 자동차 머플러 등등 온갖 군데에 활용된다.
뵈스트 이사의 눈이 가까운 미래 정도는 내다보고 있었다. 좋다.
“투자비는 얼마쯤 예상됩니까?”
“일단 공장 부지로 5000평 정도 매입해야 하고, 각종 설비투자를 따지면 대략 1500만 달러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1만평 규모로 크게 지으세요. 요 앞 갯벌을 매립하면 공장 부지야 문제없으니 말입니다. 2000만달러 이상 투자해도 되니 폴리에틸렌 코팅 강관도 만들어야 합니다.”
“폴리에틸렌 코팅 강관이라고요?”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석유시대로 들어서고 있지 않나. 조만간 전국적으로 도시가스 배관망을 깔아야 하는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이 시대의 단어를 쓴다면 주유종탄(主油從炭)의 시대, 즉 석탄보다 석유 소비가 월등해진다.
내가 국내 도시가스 건설에 신경 쓸 여력은 없지만, 가스관은 공급할 수 있지.
인천제철과 대세화학이 있는데 강관에 코팅을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대세화학과 대세연구소에 요청해서 코팅법을 개발하라고 하십시오. 24인치 이상의 강관에선 코팅이 어려울 테니, 일단 24인치까지만 하라고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황 씨 부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연구를 하시겠군.
빌 베인에게 또 투자를 한다고 한소리 듣겠군.
유전 개발로 유동 자금이 풍부해질 거라고 좋아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지금이 풀 베팅할 때다.
지금 최대한 투자해야 남들이 어려움을 겪는 오일쇼크 때 나는 열매를 딸 수 있다.
< 212 : 베팅의 순간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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