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2화(22/589)
< 022 : J. A. V. F >
“황 사장님, 안내하세요. 어서요.”
“이쪽으로 오세요.”
황혜성 사장을 쫓아 폐공장 뒷마당으로 마구 뛰어갔다. 공장 대지가 꽤 넓어 뛰어가는데 10분은 족히 걸렸다.
“어떻습니까?”
“오오오, 정말 중합로인데요?”
황혜성 사장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니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쭉한 원통 관 위에 가분수처럼 둥그스름한 챔버가 얹혀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노래방 마이크를 닮았다.
“일전에 그려주셨던 공정 흐름도대로 배관과 밸브를 달았습니다.”
황혜성 사장은 내가 그려준 공정 흐름도를 정말 열심히 봤던 모양이다.
종이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닳아 있었다.
심지어 자기만의 해석과 나일론 반응식을 첨삭해뒀다. 마치 황 사장이 공정 흐름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내게 점수를 매겨 달라는 듯 말이다.
“황 사장님, 이거 시험 치듯 하셨네요.”
“제 점수는 몇 점인가요?”
황혜성 사장이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그도 이 중합로에 기대하는 바가 아주 컸던 모양이다.
“빵점입니다.”
“예에?”
“근데, 백점이기도 해요.”
“예에? 그런 점수가 어딨습니까?”
농담과 진담을 연이어 말했더니 황 사장의 표정이 엉망이 되었다.
“왜 없어요? 난, 이 중합로로 나일론을 뽑을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 서… 설마 폴리… 폴리에스터를 뽑으시려는 겁니까?”
이 시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폴리에스터는 최신 섬유이자 최고급 섬유였다.
베트남전에 쓰일 군복도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야 한다. 나일론대비 폴리에스터가 염색은 힘들지만, 습기를 덜 먹으니까 말이다.
일제 군복보다 훨씬 품질이 좋을거다.
우린 염색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영감님이 있지 않나.
“이왕 대규모 합섬 공장을 만들려면 폴리에스터를 뽑아야죠. 안 그래요?”
“일본 회사도 겨우 한두 군데만 합성에 성공한 섬유인데, 사장님이 어떻게…”
“내가 좀 천재라서 말이죠.”
“……”
황혜성 사장의 표정을 보자니 가관이었다.
더 놀라게 해줘야지.
나는 공정 흐름도를 보면서 왼쪽 챔버에는 DMT 탱크를 연결했고, 오른쪽 챔버에는 에틸렌 글리콜 탱크를 연결했다.
이때를 위해 마련해둔 폴리에스터 원료다.
“거기 포대 자루를 여기 부어줘요.”
“예, 사장님.”
황혜성 사장과 함께 촉매로 쓰이는 탄산칼슘도 챔버에 쏟아부었다.
“내가 여길 저을 테니 황 사장님은 내 오더에 따라서 시험 운행을 해봅시다.”
“지금 당장 시험하신다고요?”
“이미 시작되었어요. 촉매를 부었잖아요.”
촉매를 부었으면 중간에 멈추면 안된다.
수동으로라도 원료를 저어야 한다.
“오더 주세요.”
“좋아요.”
나는 깨끗한 쇠파이프로 재료를 젓기 시작했고 황 사장은 온갖 게이지로 빼곡한 배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척하면 척 알아듣는 게 황 사장은 확실히 일머리가 있었다.
“레프트 챔버 히터 온! 타깃 197도!”
“챔버 히터… 197도.”
“제대로 복창 안해요? 정신 안 차립니까?”
플랜트 시험 동작 때는 제대로 복창하지 않으면 무조건 사고가 난다.
“아뇨! 아뇨! 합니다. 레프트 챔버 히터 온! 타깃 197도!”
“온도 게이지!”
“온도 게이지! 100, 130, 150, 170, 190!”
마치 안전 구호를 외치듯 내 말을 복창하며 간이 플랜트를 작동시켰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플랜트에 쫄지 마!”
“플랜트에 쫄지 마!”
우리가 플랜트를 시험하듯, 플랜트도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다. 어리바리 쫄면 진다.
“오른쪽 믹서 온!”
“오른쪽 믹서 온!”
중합로로 재료들이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배관들이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런 굉음에 당황해서 공정 조건을 변경하면 시험 운행을 망치는 거다
쾅! 쾅! 쾅!!!
“이 조건은 정확해! 잠자코 따라와, 이놈아!!”
나는 중합로 배관을 힘껏 걷어찼다.
플랜트를 시험 가동할 때 발길질은 일상다반사다. 플랜트를 오래 하다 보면 정말이지 거대한 짐승을 길들이는 느낌이 든다.
해상 플랜트에 비하면 이까짓 육상 플랜트는 까칠한 고양이에 불과하다.
봐라, 몇 번 갈기니까 조용해지잖나.
“지금이에요! 리엑터 오픈! 타깃 프레셔 11psi!
“리엑터 오픈! 타깃 프레셔 11psi!”
“곧바로 리엑터 히터 온! 타깃 온도 250도!”
“리엑터 히터 온! 타깃 온도 250도!”
“최대 출력!”
“최대 출력!”
히터에 가해지는 가스 압력을 최대한 올렸다.
반응이 제대로 안 일어나면 폭발한다.
믿어라. 난 전문가다. 이 조건은 정확해!
콰르르르릉. 쿠어어어어어어어어
중합로가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참아라, 참고 버텨서 내가 원하는 물질을 토해내란 말이다.
“스팀 익스트래션 오픈! 타깃 프레셔 3psi!”
“스팀 익스트래션 오픈! 타깃 프레셔 3psi!”
쉐에에에엑!
중합로가 뜨거운 김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라면 뜨겁다고 야단법석이겠지만, 플랜트 장이들에겐 그냥 뜨끈한 수증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스팀을 뽑아줘야 폭발하지 않는다.
“계속 오픈해요.”
“예! 잡고 있습니다.”
황 사장이 수증기 레버를 끝까지 잡았고, 나도 원료를 끊임없이 젓고 있었다.
원료는 한톨 남김없이 모조리 들어가야 한다.
“우 사장님, 온도가 28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기어 펌프! 기어 펌프 온!”
“기어 펌프 온!”
위이이잉!
경쾌한 기계음과 동시에 톱니바퀴가 돌아갔다.
엿처럼 끈적이는 물질을 뽑아낼 때는 기어를 맞물려 끄집어낸다.
어떤 물질이 뽑힐까?
일단 색깔은 차치하더라도 대충이라도 물엿 같은 놈만 나오면 절반은 성공….
“나온다! 나온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투명한 듯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질이 물엿처럼 뽑혀 나왔다.
완벽한 조성의 폴리에스터다.
실크처럼 부드럽고, 물로 빨아도 된다고 물실크라고 불렸던 합섬 섬유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기어펌프를 통과한 폴리에스터가 실크처럼 흩날렸다.
이걸 적당히 끊어서 실뽑는 방사기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폴리!!! 폴리에스터!!”
사방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마치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린 부자다!”
“부자다아아아아아!”
너무 기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부자라는 말만 연신 해댔다.
***
3주 뒤,
3주쯤 지나니 울산 폐공장이 공장다워졌다.
일머리 좋은 기능공들을 추려 정식 직원들도 채용하고, 해병대 출신 기능공들은 보안 요원으로 채용했다.
폐공장을 고쳐 대세 화학이라는 회사를 세웠고, 벤토 촉매도 같이 취급했다.
울산 갈프사.
“대세 화학에서 촉매 납품 왔습니다.”
“이쪽 챔버에 투입하십시오!”
이제 나는 갈프사를 방문하면 협력 업체 사장 대접을 받았고, 똘똘한 대세 화학 직원들이 촉매 납품을 척척 해냈다.
대세 화학이라고 일괄 지칭하긴 했지만 벤토 구매, 황산 처리 공장, 출고 및 납품 창고를 따로 떼어놓고 담당 직원마저 완전히 분리하여 촉매 노하우가 새어나갈 가능성을 최대한 없앴다.
“파이프 오픈해주십시오!”
“파이프 오픈!”
특수 트럭에 파이프를 연결하자 벤토 촉매가 갈프사의 중유 탱크로 쏟아져 들어갔다.
특수 트럭이라고 해봐야 트럭에 뚜껑을 씌우고, 꽁무니에 파이프를 뽑아놓은 것뿐이다.
“정말 몇 번을 봐도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촉매를 넣는 것만으로 휘발유가 쭉쭉 뽑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갈프사 공장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쪼록 본사에 어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기분 좋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10톤 트럭 한 대분을 납품할 때마다 10만 불씩 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원가라고 해봐야 재료비가 10만원에다 인건비를 포함한 각종 경비를 다 합쳐도 100만원이 채 안 드는 데 말이다.
현재는 보름에 한 차씩 납품하지만 갈프사 생산량에 비례해 꾸준히 늘어나리라.
“하하, 벌써 본사 기술자들이 노하우 좀 알려달라고 난리입니다. 듣자 하니 본사 회장님도 여기 울산에 투자하는 거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사 투자가 결정됐다고요?”
생각보다 빠르네.
그럼 한미 정부끼리 차관 협상도 마무리됐다는 소리니, 조만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겠군.
준비할 시간이 빠듯하네.
폴리에스터 합성에 성공했지만, 아직 대량 양산을 위한 준비는 멀었다. 갈프사와 나프타 배관도 아직 연결 못 했으니까 말이다.
“텔렉스로 그리 적혀 있더군요. 아, 그리고 우 사장님께 직접 전해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직접 전해달라고요?”
“예, 그분이 꼭 만나 뵙길 바란다고 연락처를 같이 적어주셨습니다.”
공장장이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텔렉스 종이를 내게 건네주었다.
「J. A. V. F : 01-0004」
대체 뭐길래 그런 표정을 짓나 했더니 어이없게도 딱 한 줄짜리 텔렉스 메시지였다.
J. A. V. F? 사람 이름 약자인가?
그분이라니 누구지?
그리고 전화번호가 뭐가 이래?
이런 전화번호가 대한민국에 있어?
“말톤 지사장님이 사내 정치가 바쁘지 않았다면 그분을 직접 소개를 해줬을 거라고 아쉬워하셨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우 사장님을 보고 싶다고 하니 꼭 연락해보세요.”
“그분이라뇨, 대체 누구십니까?”
“우사장님도 모르는 게 있군요. 딱 보면 모르십니까? 밴 플린트 장군인거죠.”
“밴 플린트 장군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공장장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 유명한 사람을 모르냐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밴 플린트 장군을 모르세요? 맥아더 장군 후임으로 한국전쟁 총사령관을 지냈던 분이잖아요. 아이젠하워 전(前)대통령하고도 친분이 깊다던데.”
“아… 그분이군요.”
나는 깜빡했다는 투로 얼버무렸다.
딱히 들어본 적이 없는 양반인데, 맥아더 장군의 후임이었다고? 내가 이 시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네.
“외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어서 유독 한국에 애착을 둔다는 소문이 있어요. 한미 간에 비공식 대사로 활동한다는 소문도 있고요.”
‘헐? 그 양반이 이 양반이야?’
OB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울산 석유화학 단지의 차관 승인과 베트남 파병 당시 물밑 협상을 담당했다는 거물.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스 내전,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모든 전쟁에 참여했다는 그 전쟁영웅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나프타 배관 연결해도 되나요?”
공장장은 더 이상 밴 플린트를 입에 올리긴 부담된다는 듯 화제를 훅하니 돌렸다.
“언제든지요. 이제 우리 공장도 일부긴 하지만 정상 가동이 가능합니다.”
나도 화제 돌리기에 응했다.
“언제든지라면 지금 열어드리죠. 솔직히 나프타야 저희 쪽에서도 골칫거리인걸요.”
공장장은 온 김에 나프타 배관이나 연결하자고 했지만, 나는 미칠 정도로 좋았다.
드디어 내 공장에 나프타 배관이 연결되는 것이다. 미친듯이 나프타를 분해해서 폴리에스터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
“어이! 거기 나프타 밸브 열어! 대세 화학에 연결한 거 말이야.”
“예, 공장장님.”
“돌아가셔서 대세 화학 쪽에서 배관 열면 나프타가 쏟아질 겁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당연히 협조해야죠. 나프타를 구매해주시는 귀한 고객이신데.”
“하하하하.”
갈프사 공장장과 나는 증류탑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악수를 했다.
갈프사와 인맥이 두터워지는 느낌이었다.
먹튀라고만 느꼈는데, 잘만 하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쩌지… 이 양반을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프사는 벗어났지만,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밴 플리트… 솔직히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양반이라 나비 효과도 우려되는 데다, 그 양반을 만나게 되면 결국은 이 시대의 정권과 연결고리를 갖게 될 거다.
방패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검이 될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섣불리 휘두르다간 크게 다치는 양날의 검 말이다.
< 022 : J. A. V. F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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