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2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22화(222/589)
< 222 : 연판장 >
“빅맨이라고요?”
“데이비드 록펠러, 현 록펠러 가문의 보스지.”
록펠러가 파리에 왔다고?
게다가 가문의 보스라는 표현을 쓸 줄이야.
굳이 번역하자면 가주 또는 당주라 하겠다.
하긴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문의 구성원끼리 똘똘 뭉쳐 관리하는데, 직계 혈통의 장남이 최종 결정을 하니 그리 부를 만도 하다.
록펠러 재단이든, 엑손오일이든, 체이스맨해튼 은행이든 모든 결정권이 그에게 있다는 뜻이겠지.
초대 록펠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정·재계의 배후 조정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세간에서야 록펠러 가문의 재산이 많이 줄었으니 권력이 줄었다고도 생각하겠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재산을 줄여야 세금도 줄이고 부의 세습이니 뭐니 하는 정치적 견제도 덜 받을 수 있는 거다.
“엑손 사장이 아니라, 록펠러가 나섰다고요?”
웬만한 일이라면 록펠러 가주가 직접 행차까진 않을 텐데.
“그래서 나도 의외라고 한 거야. 미중 수교가 이뤄지면 제일 먼저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중국에 진출하기로 했다더군. 그 때문에 움직인 건지, 다른 이유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록펠러 가문의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중국에 진출해? 그게 사실이라면, 록펠러 가문이 미중 수교에서 엄청난 특혜를 받은 거다.
미국의 첫 번째 수출품은 전투기도 자동차도 아닌, 달러 그 자체니까 말이다.
중국이 달러를 무한정 매수해주면 달러의 가치는 자연스레 올라가게 될 테고 금태환 문제로 불거진 달러 약세 문제는 단박에 해결된다.
더욱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 미국 내수 경기를 끌어올려도, 찍어낸 달러를 중국이 흡수해주니 인플레도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쌍둥이 적자고 나발이고 미국인들은 맘껏 소비하며 넉넉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거다.
달러 창구 역할을 할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엄청난 이자를 챙길 것이고.
“그런 거물이 어째서 저를 만나겠다는 겁니까?”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이 가니 그런 거겠지. 엑손의 실질적 주인이 아닌가?”
“직접 나섰다는 게 좋은 신호일까요?”
“너무 걱정 말라고. 정중한 초청이니까. 혹, 자네가 페기를 만났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아무래도 딸자식 일이니 말이야.”
“그러면 더욱 곤란한데요. 그 일은 그다지 좋게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그건 자네 생각일 뿐 그쪽 생각이 어떤지는 모르지. 자, 가자고! 거물이 초대를 했는데 거절할 순 없지 않나.”
그래, 만나는 봐야지.
밴 플린트 장군과 함께 공항을 나오니, 리무진 기사가 정중하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리무진에 올라타니 금방 파리 외곽으로 빠져나가 멋진 별장으로 향했다.
미국의 갑부들은 세계 곳곳에 별장이라도 마련해 두는 건가?
AMC 회장의 별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이건 별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성이었다.
“록펠러 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접견실에서 잠시 기다리자니, 집사가 록펠러의 입장을 알렸다.
나는 순간 박수라도 쳐야 하나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록펠러에게 정중하게 묵례를 했다.
“오랜만이군요, 데이비드.”
“밴 플린트 장군, 이게 얼마 만입니까? 10년은 족히 된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와 밴 플린트는 반갑게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인사를 나눴다.
페기가 밴 플린트를 아저씨로 표현했듯, 두 가문은 서로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네가 미스터 우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CS Woo라고 합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우리 딸아이가 리우를 벗어나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 이제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
어쩐지 진작 납치를 당해도 몇 번은 당했을 곳에서 자선 사업을 하고 있더라니… 마을 전체를 경호하고 있었군.
그러려니 짐작은 했지만, 막상 당사자에게서 들으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록펠러에게 마을 전체를 경호하는 비용 정도는 푼돈에 불과했던 것이다.
페기는 나름 자신을 희생해 봉사한다고 여겼겠지만, 결국 부자들의 유희였을 뿐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나름 충격을 받은 것 같더군. 자기 일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 테니까. 곁에선 다들 훌륭하다고 떠받들었겠지.”
록펠러도 페기의 행동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이었던지, 혀를 끌끌 찼다.
그의 눈에도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였을 테지.
자선사업은 가문의 이미지 제고와 세금을 줄이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순간 제 조국의 상황과 비교되어 말이 거칠게 나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과라면 직접 만나서 하게나. 어차피 일주일 뒤에 한국으로 출발한다니 말이야. 나야, 내 딸아이를 혼낸 강심장이 누군지 궁금해서 직접 보러 왔을 뿐이네.”
독설을 날렸다고 인정을 받다니.
그것도 그녀의 아버지한테 말이다.
하긴, 초대 록펠러도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는 부류였지. 젊은 시절 주급 4달러로 일했던 걸 평생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고 들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좋아. 사담은 이쯤하고 비즈니스 얘기를 좀 해야지? 베트남 총사령관과 엑손 사장이 뀌년을 미군령 기지로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들었네.”
“적잖이 잘못 들으셨군요. 미군령이 아니라 자유무역항입니다. 게다가 뀌년에는 한국군이 주둔할 겁니다. 미군철수는 북베트남이 원하는 협상의 전제 조건일 테니까요.”
“뭐 그게 그 말이지 않는가. 어찌 되었든 엑손 사장보다 내가 직접 챙기는 게 좋겠더군. 밴 플린트 장군까지 나서는 걸 보니 웬만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물론입니다. 제국주의 시절도 아니고, 20세기에 동남아의 홍콩을 만드는 일이지 않습니까?”
밴 플린트 장군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동남아의 홍콩! 뭘 할지 바로 이해되는군요. 그래서 뀌년을 자유무역항이라고 굳이 정정했군요.”
“네. 그렇습니다. 엑손에 로비를 부탁했던 이유기도 하지요. 파리 협정에서 뀌년의 처리 방안을 합의해야 합니다.”
“우리 록펠러가 얻을 이익은 무엇인지요?”
이어지는 록펠러의 질문에 밴 플린트 장군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답할 질문이었다.
“이미 엑손에 밝힌 대로, 뀌년 앞바다에 대형 유전을 개발할 겁니다. 엑손, 대세, 그리고 협상 관련자 등등해서 유전 지분을 적당히 나누어 가질 겁니다. 물론, 통일 베트남엔 판이 깨지지 않게 뀌년의 임대료를 잘 치러줄 거고요.”
내 말에 록펠러가 턱을 쓰다듬었다.
엑손 사장이 이미 보고를 했을 텐데, 어째서 다시 묻는 걸까?
지분 배분 이외에 더 나눠줄 이익은 없다.
뀌년에 공장을 세우든, 부동산에 투자하든 그거야 록펠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 내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네. 중공에 진출해 금융 사업을 할 것이냐, 아니면 뀌년의 뒤를 봐주며 유전 지분을 얻을 것이냐. 자네 생각엔 어느 쪽이 내게 더 이득일 것 같은가?”
“당연히 중공에 은행을 세우는 일이죠.”
그걸 물어서 뭐하나.
객관적인 사실인데.
“이거 참, 대답이 너무 즉각적인 거 아닌가? 내게 뭔가 변명… 아니, 설득이라도 해보게. 그래야 내가 뀌년에 투자할 생각을 해볼 거 아닌가.”
뭐야? 나보고 설득하라고?
설득당할 자세를 취하는 거야?
웃기는 양반이네.
“중국 진출과 비교하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십시오. 다른 파트너를 구하면 되는 일입니다. 대신 사업상 비밀은 지켜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나는 설득 대신 손을 떼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이런 비즈니스를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파트너라면 처음부터 배제하는 게 낫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게 이런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CS, 왜 그러나?’
옆에 있던 밴 플린트 장군도 움찔하며 놀라는 기색이었다.
설득해야 할 상대를 내가 내치는 꼴이니 그럴 것이다.
‘절 믿으세요.’
내 표정에 밴 플린트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일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프로젝트니, 끝까지 내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이런 파트너가 진짜 파트너인 거다.
“아니, 내가 협조 안 하겠단 말이 아니고… 나를 설득… 이런,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군. 일단 자리에 앉지.”
록펠러는 마치 내게 설득당하고 싶다는 듯 나를 원탁에 앉혔고, 집사는 기다렸다는 듯 위스키와 곁들임을 탁자 위에 깔았다.
위스키 잔부터 곁들임으로 내놓은 초콜릿마저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크흠, 무슨 말이든 해보게나.”
한참 동안 록펠러가 내 말을 기다렸기에 나도 말을 이었다.
“현시점에선 중공 진출이 뀌년 투자보다 훨씬 중요하겠지만, 중공 진출을 위해 뀌년 투자를 포기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즉, 취사 선택이 아니라 둘다 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럴까? 중공은 미중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총 세 가지를 내걸었네. 대만 대신 중공을 인정하라.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라.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손을 떼라고 말이지.”
“협상에서 전제 조건을 100% 들어주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한개는 제대로 들어주고, 나머지 두개는 들어주는 척만 해도 미중 수교는 문제없습니다.”
“제대로 들어줄 한가지가 베트남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아닌가. 여기 파리 평화 회담의 목적이 베트남에서 발을 빼기 위한 핑계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네.”
“그건 미국 위주의 판단이겠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중공은 대만 문제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국 영토 문제가 아닙니까?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모양새만 갖추면 나머지 두개는 대충 하는 척만 해도 무방합니다.”
내 말에 록펠러는 긍정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다른 질문을 했다.
“미국도 대만을 포기 못하네. 중공도 바보가 아닌데, 그런 위장 전술에 속을 것 같은가?”
“중공은 기다림의 대가입니다.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문구만 얻는다면 일단 만족이죠. 게다가 중공으로선 경제발전이 시급한 당면 과제입니다.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중공 진출은 이미 확정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대만 문제가 100이라면 나머지 두개를 다 합쳐도 채 10도 안될 거다.
한국이며 베트남이 자기 영토도 아닌데, 거기 문제로 미중 수교라는 대박 찬스를 걷어찬다고? 가당찮은 소리다.
“이미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라… 그래,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가능성이 높긴 하겠지.”
“데이비드, 잘 될 겁니다. CS의 상황 판단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여태 CS가 한 일에 대해선 충분히 알아봤을 거 아닙니까?”
잠자코 있던 밴 플린트 장군이 말을 보탰다.
정말 록펠러는 내 뒷조사라도 한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뀌년이라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까? 하는 것만 남았군요.”
“유전 지분이야 이미 엑손 사장과 합의했고, 뀌년의 임대료와 투자에 대해선 차차 논의를 해야 할 겁니다. 모든 걸 사전에 협의할 순 없습니다.”
솔직히 유전지분마저 명확히 나누질 못했다.
대부분의 지분을 나와 엑손이 나눠 갖겠지만, 밴 플린트, 고델, 낸시, 키신저, 월맹의 레둑토 등등 자잘하게 나눠줘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숟가락이 많이 얹혀야 뀌년이 안전해진다.
“음, 좋은 자세군. 모두가 만족하면서도 모두가 불만족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전략인가?”
정확한 판단력.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은 록펠러의 가주다운 모습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투자가 될 겁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오가는 모든 선박이 뀌년에서 기름을 채울 것이고,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하는 돈은 죄다 뀌년을 거쳐 갈 테니 말입니다.”
“내가 만약 투자하지 않는다면?”
“싱가포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물론, 저는 그 꼴을 두고볼 생각이 없기에 엑손 대신 다른 투자자를 찾을 테고 말입니다.”
“싱가포르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세계 지도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얘기다.
인도차이나반도에 금융허브와 물류허브가 없는 것은 말이 안되거든.
“싱가포르에 화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중공이 개방되면 화교자본은 중공 본토의 싼 인건비와 결합해 전세계로 확산되겠죠. 싱가포르는 그 전초기지가 될 거고요.”
중국 자본이 성장하느니, 원래 부자인 록펠러 가문이 더 부자가 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화교 자본이 중공과 결합할 것이다… 싱가포르를 대체할 허브 무역항을 만들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그런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럼, 부탁하나만 하지.”
“말씀만 하십시오.”
“뀌년에 체이스맨해튼 은행 건물부터 지어주게. 자네는 건설사도 있다고 들었거든.”
“최고의 건물을 지어드리죠.”
건물을 지어달라는 말로, 로비는 물론 투자까지 하겠다는 말을 대신했다.
“데이비드, 여기 계약서입니다.”
밴 플린트 장군이 척하니 계약서를 내밀었다.
딱히 계약 조항이 있는 게 아니라, 뀌년과 관련해 비밀을 지키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업 성공을 돕겠다는 내용이니 연판장이나 다름없었다.
“이것 참, 내가 연판장의 첫 번째가 아닌 자리에 서명하게 될지는 몰랐군.”
연판장엔 나, 밴 플린트 장군, 고델 장군, 낸시가 서명했다.
가까운 이들 중엔 낸시가 마지막으로 서명했다.
밴 플린트 장군이 낸시로부터 뀌년에 한국군이 주둔하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판장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서명했다.
이제 레둑토와 키신저를 설득하는 건 문제없다.
초대형 물주가 뒤에 있는데 뭐가 문제겠나.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돈이다.
“이제 북베트남과 키신저만 설득하면 되겠군.”
록펠러도 상황을 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물주를 자처한 록펠러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잘 부탁하네. 뀌년의 일이든… 다른 일이든.”
록펠러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한참을 쳐다보더니 자리를 떴다.
“하하, 키신저와 물밑 접촉을 마치자마자 자네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군.”
“예에?”
“페기를 잘 부탁한다잖아. 리우에서도 퇴짜놓고 한국에서는 마중도 안 나가려고?”
“하긴, 제가 한국으로 와보라고 한 건 사실이니…”
“이런! CS, 자네가 초청한 거였나? 잘 되고 있었군. 괜히 걱정을 했어. 하하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밴 플린트 장군이 하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기에, 딱히 반박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 222 : 연판장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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