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2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24화(224/589)
< 224 : 파트너 >
다음날.
“잘 잤어요? 여독은 좀 풀렸고요?”
“예, 아주 좋았어요. 바닥이 따뜻한 방이라니, 참 신기하네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묵는 곳을 보고 싶다며, 페기는 호텔을 두고 굳이 온돌방이 있는 장급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내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고 했죠? 보여줄 테니, 같이 갑시다. 오늘 하루는 시간을 내줘요.”
“근처가 아닌가 보네요.”
“울산이라고, 서울에서 대략 30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페기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기 비서는 훅하니 경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한국에 이런 멋진 도로가 있다니, 놀랍군요.”
“한국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도로죠. 400km가 넘는 거리를 2년 5개월 만에 완공했습니다.”
“예에? 그렇게 긴 고속도로를 고작 2년 반 만에 지었다고요? 설마, 한국식 농담인가요?”
“농담 아닙니다. 한국식 건설인 건 맞지만.”
내 말에 페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놀람은 계속 이어졌다.
울산으로 들어가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포항제철, 그리고 대세 조선까지 쭉 둘러보게 했다.
그 모든 게 불과 몇년 만에 이룬 성과라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녕 인간의 힘으로 그게 가능한가? 하는 표정이었다.
“이 모든 사업체가 미스터 우의 소유인가요?”
내가 무슨 록펠러인가?
“국가 기간시설을 보여드린 겁니다. 내 사업체는 대세화학, 대세조선이에요. 제철소는 인천에 따로 있고 말이죠.”
“전 당연히 석유 탐사 회사인 줄 알았어요.”
그렇겠지. 엑손을 찾아오는 석유 탐사 회사가 얼마나 많겠나.
탐사를 해보니 정말 좋은 곳이 있더라, 같이 파보겠냐? 하면서 말이다.
“난 석유 사업도 하는 중공업쟁이입니다. 솔직히 석유 탐사보단 탐사 플랜트를 만드는데 더 진심이죠.”
“기술자였군요. 어째 그리 보이긴 했어요.”
나를 기술자로 봐주는 사람이 있네.
돈이나 배경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네.
하긴, 그녀보다 금력과 배경이 대단한 이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나.
“오늘은 이쯤 돌아보고, 여기 영빈관에서 쉬어요. 별관은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식 숙소니 거기에 머물면 될 겁니다.”
울산에 이만한 시설의 호텔은 없다.
“여기도 미스터 우의 건설사가 지은 건가요?”
차에서 내린 페기는 영빈관을 보더니 감탄했다.
“예, 대세 건설 작품이죠.”
“정말 예술이네요. 주변 환경과 완벽히 조화로운 집이라니. 아, 저기 언덕은…”
“저기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이곳을 방문하는 선주들도 다들 좋아합니다.”
언덕에서 바라보면 해안가로 쫙 뻗어 있는 조선소가 한눈에 보인다.
지금처럼 어스름이 깔리고 야드에 조명이 들어오면 더더욱 멋지지.
짙은 남색 바다와 정말 잘 어울리거든.
특히 그런 조명 아래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풍경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정말 한국은 살아 있군요. 미스터 우가 말하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실례가 안된다면 한국을 좀 더 돌아봐도 될까요?”
역시나 페기도 경치에 감동했다.
“그래요. 사람을 붙여줄 테니, 여기 영빈관에 머물면서 원하는 대로 한국을 돌아봐요. 관광이든, 사업체 견학이든, 사람 사는 모습이든, 기 비서가 안내할 겁니다.”
내 말에 기 비서가 정중하게 묵례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기.”
“예, 페기님.”
내가 하루 정도 시간을 냈으면 손님 대접은 충분히 한 거다.
한국에서 관광을 하든, 자선 사업을 구상하든 그거야 페기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사흘 뒤,
벌컥.
“마! 찬수야!”
“아니, 삼복아. 무슨 일이야?”
혼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자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삼복이가 들이닥쳤다.
뭔데 이리 흥분한 거야?
“무슨 일이긴! 너 여자 생겼더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진짜였어!”
“… 너, 뭔가 오해하나 본대. 그런 거 아니야.”
“뭔 오해야? 여태 네가 여자는 쳐다도 안 보고 일 밖에 모른다고 말해줬더니, 페기 양이 아주 싱글벙글하던데?”
“무슨 소리야? 페기는 또 언제 만났어?”
“어쭈, 페기라고 부르는 사이냐?”
나랑 나이 차가 얼만데, 페기라고 부르지 기 비서처럼 페기 님이라고 부르리?
“흰소리 그만해. 페기랑 같이 온 거야? 기 비서는 어딨어? 관광을 시켜주랬더니, 대세 자동차에 간 거였어?”
“페기 양은 영빈관으로 올려보냈지. 그보다 페기 양이 내가 너 친구라니까 너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라.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냐? 부모님 다 돌아가셨다니까, 언제 돌아가셨냐?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내가 명절마다 불러서 같이 놀아주고 떡국도 먹였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알려줬지!”
삼복이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아이고, 그랬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친구야.”
“나 잘한 거 맞지?”
“그래. 아주 잘했다, 쨔샤. 올라온 김에 사우디 납품이랑 SUV 개발 현황이나 얘기해봐.”
나는 삼복에게 흥분 좀 가라앉히라고 콜라부터 권했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담은 쑥 들어가고 업무 모드로 바뀌었다. 전무다웠다.
“서면 보고한 것처럼 잘 되고 있어. 사우디에 지프차는 전량 납품했고, SUV는 현재 시제품을 만드는 중이야. 가솔린 엔진도 같이 개념 설계 중인데, AMC 엔지니어들이 4명 더 합류했다.”
AMC가 생각보다 적극적이네.
그들이 봐도 SUV 모델은 확실히 돈이 될 것 같은 모양이다.
“좋네. 사우디 반응은 어때?”
“안 그래도 정리해서 보고하려던 참이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이집트, 요르단, 심지어 이란까지 구매 의사를 밝혀 왔어. 엄청나지 않냐!”
“이란? 거긴 좀 곤란한데…”
“곤란하다고?”
“그쪽은 생산량이 부족해서 납기를 못 맞출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해.”
“못하긴 뭘 못해? 그게 돈이 얼만데! 할 수 있어. 라인 조정하고, 야근 좀 하면…”
“안 돼. 사우디와 이란은 양립할 수 없는 비즈니스야. 중동 왕가한테 괘씸죄 걸리면 그냥 사업 전체가 날아간다고. 이란은 둘러댈 핑계가 생겼을 때 진출해야 해. 무턱대고 자의로 진출하면 사우디한테 미운털 박힌다.”
“아, 듣고 보니 그러네. 안 되지, 안 돼. 나이프 왕자 심기 건들면 안 되지. 빼먹을 돈이 얼만데…”
삼복이도 나름 중동 전문가라 사우디와 이란이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라.
오일 쇼크가 터지면 이란에도 진출할 수 있다.
사우디가 우리 대한민국을 미국 편으로 싸잡아 뺨 한번 세게 때리잖아.
그때 어이쿠하며 이란까지 데굴데굴 굴러가서 비즈니스 하면 된다.
“지프차 영업은 바레인 지사에 맡기고, 넌 SUV 개발에 좀 더 신경 써. 완성만 되면 끝장나게 투자해줄 테니까.”
정말 원 없이 투자할 거다.
사방에서 유전이 터질 거니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돈 쓰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다.
그것도 잘 될 것이 확실한 사업에 말이다.
“투자 좋지. 아니, 그보다 내가 이런 말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그럼 뭣 때문에 왔냐? 한참 바쁜 놈이.”
어쩐지… 전화로 수다를 떨어도 될 일을 굳이 광주에서 울산까지 와서 떠들 이유는 없었다.
자동차 개발 내용도 평상시처럼 보고서로 전달하면 될 내용이고 말이다.
“너 괜찮냐? 각하께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셨잖아. 또 어디 위험한데 가는 거 아니냐? 중공이나… 설마… 북한?”
“뭔 소설을 쓰고 있어? 내가 그런 델 왜 가?”
뭔 소린가 했더니 비상사태 선포 때문이었다.
나야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일반 국민들이야 굉장히 놀랐겠지.
“왜? 너 미사일 때문에 인도네시아도 갔다 왔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데! 미중 수교 때문에 북한 놈들이 준동한다는데, 각하 특명으로 갈 수도 있지.”
“됐다. 그럴 일 없다. 그리고 우리 사업에도 별일 없을 거다. 국제 정세가 어지럽고 주한미군도 일부 철수했으니, 다 같이 안보에 신경 쓰자… 뭐 그런 의미인 거야.”
나는 차마 이게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내년 10월에 유신헌법을 만들어 4선 대통령에 오르는 걸 생각하면, 그때가 더 걱정이다.
뒷배가 급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냐? 난 또 네가 파리도 갔다 오고 해서 정치질에 얽힌 줄 알았지.”
“쨔샤, 이번엔 정치가 아니라 돈 벌러 갔다 온 거야. 조금만 있으면 유전이 빵빵 터질 거다.”
“이야!!! 유전이 또 터져? 그래서, 페기 양이 한국에 왔구나! 이름부터 페기 어쩌고저쩌고 록펠러던데! 찬수 너, 한국의 석유왕이 되는 거냐?”
어라, 이번엔 소설을 그럭저럭 잘 썼는데?
삼복이는 엄청 흥분했는지 콜라까지 새로 땄다.
“알래스카에서도 성공했는데, 다른 데서 성공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냐? 조금만 기다리면 우린 화수분을 가지게 될 거야!”
“으아아아! 역시 내 친구! 넌 국보야, 국보!”
유전 개발하면 애국자에다 국보까지 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했다.
나도 어느새 그 정서에 젖어 들었고 말이다.
“그만해, 새꺄!”
“대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만세!”
내 뺨에 뽀뽀를 해대는 녀석을 걷어찼더니, 녀석이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뜬금없이 대한독립만세는 왜 외치는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일하러 간다! 너 유전 꼭 성공하는 거다. 그리고 대세 자동차 두 배로 늘려줘! 알았지!”
“오케이!”
“난 간다! 아, 페기 양 꼭 반겨줘라. 너에게 관심 많더라. 얘기해 볼수록 사람 괜찮더라!”
여러 가지로 안심이 되는지 삼복이는 페기까지 부탁하고는 휙하니 사무실을 떠났다.
떠들썩한 녀석이 사라지자 갑자기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다시금 책상 위의 보고서를 집어 들다가 덮어버렸다.
“페기가 영빈관으로 돌아왔다고?”
산업체 견학이든 관광이든 어쨌든 사흘 만에 복귀한 셈이다.
삼복이 말대로 맞아주긴 해야지.
그래도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인데…
나는 사무실을 정리하고 영빈관으로 올라갔다.
기 비서의 차가 언덕 근처에 있는 걸 보니, 페기는 또 언덕에서 경치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수고 많았습니다. 페기 양은요?”
“저기, 언덕 위에 계십니다.”
언덕 아래에 기 비서가 서 있었기에 잠시 얘기를 나누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엔 벤치를 대신하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앉아 노을을 즐기고 있었다.
동해라 해가 넘어가는 것은 잘 보이지 않지만, 서쪽에서 길게 늘어지는 노을만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안 추워요?”
나는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페기가 아직도 리우에서 가져온 얇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쇼핑할 시간도 없었던 건가? 이 계절에 얇은 니트 티 차림이라니.
“아, 미스터 우. 춥긴요, 이런 경치를 보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걸요.”
“조선소 풍경에 이처럼 몇 번이고 감동하는 이는 흔하지 않은데 말이죠.”
“조선소가 아니라 조선소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감동이죠. 저쪽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네요. 크레인까지 동원해서 말이죠. 중요한 일인가 봐요.”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석유 시추선 모듈입니다. 저게 현장에 도착하면 인도네시아에서 대형 유전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겠죠.”
“시추인데 확정적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확정이에요. 시간을 조절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인도네시아 유전이 터지면, 엑손 오일에서는 베트남 뀌년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언론에 터뜨릴 테고, 그 소식은 파리로 곧장 전해져 파리 평화회담 성공으로 이어지겠죠.”
나는 대충 돌아가는 일을 설명해주었다.
조만간 벌어질 일이고, 록펠러 가문이 관련된 일이라 숨길 이유는 없었다.
“제가 필요한 이유가 그거였군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난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절실하게…”
기술과 열정이 있어도 해외자원 개발 사업은 정치적 뒷배가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몰라도 70년대 대한민국은 내 유전을 지켜줄 뒷배가 되질 못한다.
아직 세계 무대에 명함도 못 내밀 후진국인 데다, 오히려 내 유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내가 미국 석유회사를 끌어들이고자 한 이유라고 할 것이다.
“좋아요. 미스터 우가 원하는 걸 드리죠.”
“제가 뭘 원하는 지 아십니까?”
결혼에 이렇게 쉽게 동의한다고?
“안전이겠죠. 저도 석유 사업을 하는 집에서 나고 자랐어요. 돈이 모이는 곳에 어떤 일까지 생기는지 모르지 않아요..”
페기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짚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준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갑자기 닥칠 줄은 몰랐다.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실제로 제게 필요한 거니까요.”
차라리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역시 솔직하시네요.”
“제가 가진 카드가 없으니까요. 그보다 페기 양이야말로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뭡니까?”
“나도 미스터 우가 마음껏 원하는 사업을 하는 걸 보고 싶으니까요. 한국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파트너라, 정략결혼의 이유로 이보다 더 합당한 것이 있을까.
이렇게까지 건조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니, 정략결혼에 이 정도 상황이면 최선인가?
마침 노을까지 멋지지 않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페기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혹시나 해서 리우로 갈 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프러포즈용 반지가 만져졌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페기 양.”
“네? 미스터 우… 이게 뭐죠? 설마 파트너란 게 청혼을 의미했던 건가요?”
뭐야? 내가 오해했다는 건가?
그럴 리가.
난 분위기를 잡진 못하지만, 분위기 파악까지 못하는 놈은 아니다.
“사업 파트너는 엑손 사장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왜 리우까지 당신을 보러 갔겠습니까?”
“아! 그래서 리우까지…”
내 말에 어째서인지 페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셈이죠.”
“… 이런 청혼도 나쁘지 않네요.”
잠시 망설이던 페기가 손을 내밀었다.
< 224 : 파트너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