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2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29화(229/589)
< 229 : 제국과 유산 >
“아르주나 원유를 썼다고요? 샘플로 소량 입고되었을 텐데 용케도 그걸로 실험을 했네요.”
“예, 사장님. 상온에선 거의 묵처럼 굳어버리는 특이한 원유라 기존 저유고에 섞지 못하고, 따로 실험용으로 썼는데 이런 황금빛 윤활기유를 토해내더군요.”
황 상무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윤활기유가 고급 위스키처럼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아르주나 원유 성분이 윤활기유를 추출하기에 최적인 모양이다.
여기 윤활기유(Base Oil)에 첨가제를 섞어야 최종적으로 윤활유가 되겠지만, 기본 첨가제만 섞어도 최고급 윤활유가 될 것 같았다.
일반 자동차 윤활유엔 첨가제가 10% 남짓 들어가지만, 유압기나 터빈용 윤활유에는 첨가제가 고작 1% 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윤활기유가 윤활유 전체의 성능과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윤활유 성능은 실험해보셨습니까?”
“현재 첨가제 DOE(최적화 실험) 중이라 섣불리 말씀드리기 뭐합니다만, 실험실 기준으로 연비가 대략 2%는 개선되는 것 같습니다. 최적화가 완성되면 국제 인증기관에 의뢰하여 정식으로 연비 개선율 보고드리겠습니다.”
“2%라고요?”
일반인에겐 2% 연비 개선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윤활유 부문에서 2% 연비개선이라면 최상급 품질이었다.
내가 첨가제 최적화를 도와준다면 2.5%가 넘을 수도 있을 거다.
그 정도 연비 개선이면 단박에 국내 윤활유 시장을 재편하는 것은 물론, 수출도 가능하리라.
세계 유수 자동차 회사에 샘플만 뿌려도 주문이 쇄도할 테니까.
자동차 회사 뿐이겠나?
해운사들도 우리 윤활유를 쓰게 될 거다.
배는 기름 먹는 하마라서 연비를 1%만 줄여도 연간 수십만불을 아끼는 건 문제도 아니다.
연비 2% 개선이라면, 자기네한테 먼저 달라고 난리가 날 것이다.
“저도 솔직히 그 정도로 연비개선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엔진의 소음이 대폭 줄어들고, 엔진에 끼어있던 카본 퇴적물이 확확 벗겨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점도도 최적인데다 청정분산성까지 좋은 모양이다.
황금빛이 선명하니, 상품명을 ‘골드플로우’라고 해야겠다.
누구든 한번 써보면 연비 개선은 물론 오일의 교환주기까지 길어지니 골드플로우의 충성고객이 되어줄 것이다.
아르주나는 캐내기 힘든 유전이었던 만큼 보상도 확실했다.
“황 상무님, 이거 절대 비밀입니다. 우리가 알래스카, 아르주나, 두리, 중동산 원유를 죄다 다룰 때 비로소 출시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어디 원유를 쓰는지 노하우를 숨기자는 말씀이시죠? 윤활기유 제조는 저와 사장님만 아는 극비로 다루겠습니다.”
황혜성 상무가 직접 다룰 작정이군.
그 정도 보안이면, 인천정유의 윤활유 품질이 아르주나 유전의 윤활기유(base oil) 덕분임을 타사가 알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일반적으론 리비아산 원유가 윤활기유용으로 최상급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도네시아産 원유도 이런 품질이란 건 나도 처음 알았으니까.
타사는 우리가 다양한 산지의 원유를 조합해 윤할기유를 뽑는다고 생각할 거다.
오일쇼크가 닥쳐 사람들이 연비개선에 목을 맬 때, 인천정유의 윤활유는 엄청난 기세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오일쇼크때 대형선박의 연비 개선 아이디어를 들이밀어서 수주 경쟁을 하려고 했는데, 윤활유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무기가 생겼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걸 보고하려고 울산까지 내려오겠다고 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랑거리가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랑거리가 또 있다고요?”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가 드디어 PET 필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거야말로 정말 대세석유화학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PET 필름을 만들어냈다고요? 정말입니까?”
PET, 즉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는 PE(폴리에틸렌)의 개량판 플라스틱이라고 하겠다.
즉, 각종 합섬 원사를 생산하고 있는 황 상무가 PET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존재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제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도 단순히 PET 섬유가 아니라 필름을 제조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PET 필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초고순도 펠릿 중합 기술이 필요하고, 그 펠릿을 용출해서 균일하게 펴고 늘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즉, 얇게 펴도 안 찢어지게 불순물을 관리해야 하고 물질의 이방성도 없어야 하는 거다.
70년대엔 최첨단 화공기술인데, 그걸 황 상무가 성공했다고?
대세석유화학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 인천정유라고 퉁치고 있었던 게 미안할 정도였다.
“사장님이 그러셨죠. 이 플랜트가 원래 다우케미컬이 사용하려고 했던 거라고 말입니다.”
“그랬죠. 뉴저지에서 정유업과 화학제품을 생산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플랜트 구성을 꼼꼼하게 살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화학물질 정제 플랜트를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친절하게도 매뉴얼에 초고순도 테레프탈산 정제용이라고 끄적거려놨더군요.”
“하하하! 우리가 엉겁결에 다우케미컬 노하우를 빼낸 거군요.”
테레프탈산은 PET의 핵심 원료다.
그걸 초고순도로 정제할 수 있다면 당연히 PET 필름을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들은 노하우가 빠져나간 줄도 모를 겁니다.”
플랜트를 셋업하면서 엔지니어가 메모해뒀던 사양서가 같이 딸려온 모양이다. 이런 재수가 있나.
그 메모가 없었으면 해당 플랜트가 무슨 용도인지 한참 헤맸을 것이다.
“어디 봅시다. PET 필름은 어디 있습니까?”
“이쪽입니다.”
황 상무는 한쪽 구석에 잠겨있던 캐비닛을 열더니 PET 필름을 가져왔다.
아직 개발 초창기라 투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걸 제외하면 제법 훌륭한 품질의 필름이었다.
“순도 개선은 더 해야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아주 훌륭합니다.”
PET 필름은 코닥, 듀폰, 영국의 ICI, 일본의 도레이 정도가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다.
다우케미컬도 시도해보려고 했던 모양인데, 덕분에 우리가 먼저 양산 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예, 시간만 조금 더 있으면 PET 포장재나 절연테이프도 국산화할 수 있을 겁니다.”
PET 필름은 포장지, 인쇄 용품, 점착 테이프, 절연 필름 등등 활용도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그까짓 거 별 필요 없지.
나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활용법을 안다.
“포장재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PET병을 만드세요. 페트병!”
“예에? 페트병이라고요?”
PET병, 일명 페트병은 70년대 중반 듀폰에서 제일 먼저 개발했다.
PET 필름을 용도 변경한 것에 불과하지만, 세상에 없던 제품을 고안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어려울 것 뭐 있습니까? 펠릿을 금형에 사출하고 공기를 불어넣으면 그뿐인데 말입니다.”
“플라스틱병이 딱히 상품성이 있겠습니까? 거기다 음료수를 담을 것도 아니고요…”
“걱정 말아요. PET는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서 독성이 극도로 적습니다. 세제 용기나 화장품 용기는 물론 음료수병으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플라스틱 용기는 유화제가 스며 나와 몸에 해롭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황 상무와 그 유해성을 논하기보다 일단 세제 용기 등으로 생산하고 차차 수요가 많은 음료수병으로 옮겨가면 될 것이다.
페트병은 21세기에 수없이 검증된 제품이니 안정성을 인증받는 거야 문제없다.
“그… 그럴 것도 같군요. PET는 결정화도가 높은 물질이니까요. 독성이 적을 수 있겠군요.”
오, 역시 황 상무답게 바로 알아듣네.
무해하다는 걸 설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페트병 만들어서 콜라 담아서 팔고, 간장 담아서 팔고, 물 담아서 팝시다.”
“물까지! 양놈들은 물도 사 먹는군요.”
내 말에 황 상무는 이 사업의 엄청난 스케일을 깨닫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병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 일부만 페트병으로 돌려도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순도를 조금만 높여서 국제 인증기관에 유해성 검증 의뢰하고 상품화하면 그뿐입니다. 페트병 특허부터 내시고, 올 하반기에 터뜨립시다. 할 수 있겠죠?”
“당연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페트병이야 수천 수만 개도 만들죠.”
“수천만 개겠지요.”
“아, 그렇군요.”
뚜껑과 입구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시행착오가 좀 있겠지만, 황 상무라면 잘 극복할 거다.
페트병은 그 편리함으로 시중에 내놓자마자 대히트를 칠 거다.
수많은 회사들이 카피를 하겠지만, 로열티를 받으면 되는 것이고 굳이 로열티가 아니더라도 시장을 선점한 효과는 엄청나리라.
유명 음료수 회사는 죄다 대세의 페트병을 쓰거나, 펠릿을 사가거나, 로열티를 줄 것이다.
내게 또 하나의 화수분이 되어줄 거다.
7광구 건으로 골치가 아팠는데, 이런 단비 같은 소식을 들을 줄이야.
“오늘따라 극비로 유지해야 할 정보가 많군요.”
“잘 지켜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회사 일을 떠나서, 황 상무님껜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고급 정보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내놓으시다니요.”
“사장님께 무슨 거래를 합니까? 인천정유, 아니 대세석유화학을 통째로 제게 맡겨주셨는데요. 이런 최첨단 플랜트 시설이 있으니 페트병도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모두 사장님 덕분입니다.”
황 상무는 외려 내게 감사를 표했다.
역시나 내가 황혜성 상무와 황 영감님을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일본에 빌붙어 엄청난 국부를 유출하면서 콩고물이나 받아먹는 정치인보다, 이렇게 국가발전에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이들이 더 잘살아야 한다.
그게 올바른 세상이다.
내가 반드시 이뤄주지.
“페트병으로 생기는 수익은 대세석유화학에 죄다 쏟아부어야겠군요. 안 그래도 저유고부터 확장하려고 했는데 잘 됐습니다.”
“저유고를 확장하신다고요?”
“초기 계획이 얼마였죠?”
“기존 200만 배럴에 75만 배럴짜리 대형 원유 탱크 1기와 25만 배럴짜리 소형 탱크 1기를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총 300만 배럴이란 소리네. 역시 너무 작네.
유전 개발해서 뭐하겠나, 투자해야지
“저유고는 총 600만 배럴로 키우고, 각종 완제품과 반제품을 저장할 시설도 200만 배럴 용량으로 만드십시오.”
원유와 제품 저장고 비율이 3대 1이면 적당할 것이다.
“사… 사장님, 600만 배럴이라고요?”
“걱정 말아요. 다 채워줄 테니까요. 우리 유전 많아요. 금방 생산할 겁니다.”
우리 원유로 다 못 채워도 상관없다.
최대한 빨리 동해 가스전 개발로 산유국 타이틀만 따면, 중동 원유 선물시장에 뛰어들어 원유 사재기를 해도 된다.
여차하면 장인을 뒷배로 세우면 문제 될 것 없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면 투자비가 3000만불은 족히 들어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유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우리 대세를 위해서도 충분히 비축해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국가 안보까지… 역시, 사장님이 보시기에도 국제 정세가 심상찮은 모양이군요.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습니다.”
뭐,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나?
그냥 오일 쇼크대비 원유 사재기하는 겁니다.
“대세는 충분히 안전하니 걱정 마십시오. 윤활유와 페트병 개발에만 신경 써 주십시오.”
“예, 사장님. 기필코 올해 하반기까지 양산성 확보하겠습니다.”
대세는 정말 걱정할 거 없다.
유전 개발 덕분에 완전히 선순환에 들어섰다.
스노우 볼을 어떻게 굴리냐가 문제일 뿐이다.
“바쁘신데 내가 시간을 많이 뺏었습니다. 그럼 축하 파티는 페트병이 완성되면 그때 하시죠.”
“예,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나는 황혜성 상무와 가볍게 악수를 하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 신혼집부터 들렀다.
귀국한 지 사흘째인데 이제야 시간이 났다.
***
울산 근교,
“어째, 정원이 마음에 듭니까?”
페기는 큰 모자를 쓰고 정원을 손보고 있었다.
연둣빛 새순이 초록으로 변해가는 시점이었다.
사실 정원이랄 것도 없었다.
페기가 자연과 가까운 곳이 좋다고 하고, 나도 더이상 영빈관에 머물 순 없기에 서울 집과는 별도로 울산 근교에 집을 마련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근처 야산을 끼고 세워진 양옥집을 구매해서 리모델링을 했을 뿐이다.
울타리를 넓게 쳤더니, 자연스레 숲까지 이어진 마당이 정원처럼 되어버렸다.
“어서 와요. 찬수 씨.”
페기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와서 포옹을 했다. 한참 동안 볼을 비빈 뒤에야 떨어졌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요.”
“여기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누가 손댄 흔적이 없어서 제 맘대로 정원을 꾸미는 재미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곳을 좋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귀국하고 바로 집으로 못 와서 미안해요. 이리저리 일이 많았어요.”
“아니에요. 제가 시간이 더 많으니 다음부터 공항에 마중을 나가야겠어요.”
록펠러 가문의 여식이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리우에서의 자선활동도 허영심이나 보여주기식이 아니었던 건가?
새삼 리우에서 그녀의 행동을 깎아내렸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론 나도 좀 더 신경 쓸게요.”
“정말로 괜찮아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는 것 잘 알아요. 그리고, 명명식은 내일이니 오늘 하루 여유가 있잖아요?”
“그렇죠. 내일 명명식엔 같이 갑시다.”
“네. 그런데, 배 이름을 제가 지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선주가 부탁한 건데요. 너무 이상하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것 없어요.”
내 말에 페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름 멋진 이름을 생각해뒀나보다.
“음… 정원을 가꾸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한 척은 월드 다이너스티, 나머지 한 척은 월드 헤리티지로 하면 좋겠더라고요.”
“월드로 시작하는 배 이름이군요. 대부분 대서양이든, 태평양이든 바다 이름을 붙이는데.”
“당신의 무대는 월드잖아요. 그리고 선주도 월드와이드 쉽핑社라고 해서 말이에요.”
“다이너스티와 헤리티지라, 멋진 이름이군요.”
“세계를 주름잡을 당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고르다 보니 그 두 단어가 떠올랐어요.”
페기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 페기의 말대로 난 제국을 세우고 그 유산을 대대손손 남길 것이다.
< 229 : 제국과 유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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