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3화(23/589)
< 023 : 쌀알 모양의 펠릿 >
다음날,
땡. 땡. 땡. 땡.
“밥 먹고 합시다.”
누군가 점심 종을 울렸다.
“벌써, 점심때야?”
오전 내내 아무것도 못했는데 시간이 가버렸다.
어젯밤 내내 고민을 해도 밴 플린트 그 양반을 만날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도 한미 정상 회담에서 울산 석유 화학단지에 차관을 얼마나 내줄지 협의차 방문했을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1.5억불이라는 초대형 차관을 미 정부가 승인토록 만들어준 양반이니까.
그리보면, 데이비드가 소개 시켜주고자 했던 양반도 밴 플린트였던 것 같다.
데이비드도 그분이라 칭하며 대단한 양반이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 양반의 호기심을 자극해버렸나 본데…”
데이비드를 통해 한 번 내 얘기를 듣고, 말톤 지사장에게서 한 번 더 나에 대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거물이 날 꼭 보겠다고 전화번호까지 남겼겠나.
“사장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아, 예. 많이 먹고 힘내요.”
“감사합니다.”
지나가던 직원이 내게 인사를 했다.
많이 먹고 힘내라고 답해줬다.
이 시대엔 밥 많이 먹으라는 게 덕담이었다.
폐공장… 아니, 대세 화학은 나름 공장다워졌다.
일머리 좋은 기능공만 추려서 직원으로 뽑았고, 화학이나 물리학과 출신의 기술자도 다수 뽑았다.
다 합치면 200명 가까이나 된다.
철제 빔으로 뼈대를 만들고 시멘트 블록을 쌓아 만든 식당도 봐줄만 했다.
단열재를 삽입한 컨테이너를 쌓아서 만들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아직 컨테이너도 없는 시절이었다.
“찬수야! 아니, 사장님! 대체 어디 있었어? 오전 내내 찾았구만.”
“어, 삼복아! 울산엔 웬일이냐? 전화도 없이?”
식당 앞에서 삼복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놈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어휴, 직원들 월급은 주면서 식당 아줌마 식권 정산은 왜 안 해줬어? 직접 전화하셨더라.”
“내가 그런 실수를 했어? 아주머니도 참… 말씀을 하시지.”
“네게 말하기가 어려웠나보지. 혼자서 끙끙 앓았나보더라. 은행 이자까지 쳐서 280만원 정산해드렸다.”
“하하, 잘했다. 역시 넌 내 친구야.”
삼복이에게 경리를 맡긴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자칫했다간 악덕 업자가 될 뻔했네.
“너 대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은 아냐? 내가 매주 보내는 결산 보고서는 안보냐?”
“그걸 내가 왜 보냐? 네가 보잖아?”
돈 계산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걸 분석하려면 심력까지 써야 하고 말이다.
거기 시간을 쓰느니 차라리 1분이라도 더 일하거나, 1분이라도 더 잘 거다.
난 돈 계산이 아니라 돈 버는데 집중해야한다.
“적자인지 흑자인지, 주요 지출은 뭔지 정도는 파악해야지. 너 사장이잖아.”
“적자일리가 있겠어? 우리 장사 엄청 잘 되지 않아? 싱가포르에서 달러 엄청 들어오고 있잖아.”
적자면 삼복이가 펄쩍펄쩍 뛰었겠지.
요즘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적재적소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씨! 이럴 줄 알았어!”
팍!
“마! 무슨 짓이야! 아프잖아, 새꺄.”
삼복이가 냅다 박치기를 해왔다.
“장사야 잘 되지. 아주! 매우! 어이없을 정도로 잘되지. 헌데, 네 녀석 지출은 그보다 더 어이없지!! 봐! 보라고! 네가 한 달 동안 써재낀 돈을 보란 말이야!”
녀석은 장부를 펼쳐 보였다.
“엥? 잔고가 5만 불이 전부야?”
어이가 없었다.
싱가포르 수출 대금이 계속 입금되고 있고 갈프사 촉매 납품으로 매주 10만 불씩이나 벌고 있는데, 잔고가 이렇다고?
“네가 쓴 돈을 봐. 공장 수리비에 직원들 월급은 그렇다고 쳐. 대체 공장 기숙사가 호텔이라도 돼? 목욕탕에 수세식 화장실을 왜 지어? 그래, 똥 누는 건 중요하다고 인정해줄게. 그래도 이건 뭐야? 이 공장 부지가 이렇게 넓은데 주변 땅은 왜 사? 부동산 투기 하냐? 그래, 이 촌구석도 언젠가는 땅값이 오른다고 치자. 그런데, 스테인리스 배관? 벤토나이트? 탄산칼슘? 제올라이트? 암모늄부티랄? 에틸렌 디클로라이드, 아씨.. 발음도 어렵네. 이따위 걸 왜 사!!! 원단 수출해서 받은 그 귀한 바터권으로 이따위 걸 왜 수입 하냐고!”
짜식, 바터권을 쓴 걸 따지러 온 거네.
하긴 따질 만도 하지. 여유만 되면 나도 바터권을 프리미엄 받고 팔고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원부자재가 있어야 플랜트가 돌아가는 걸.
“진정해. 진정. 나프타만 있다고 해서 합섬 섬유를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래.”
“나프타? 그게 뭐냐?”
“납사!”
“납사? 여기가 납사 공장이었어?”
이때는 나프타를 납사라고 불렀다.
영어식 발음으로 납사라고 해도 되지만, 독일쪽 발음인 나프타가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화공 기술은 역사적으로 독일이 강했거든.
“그래, 이 공장에서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원료를 뽑을 거다. 그럼 혜성에서 실을 뽑게 될 거고. 넌 성수동 공장에서 원단을 뽑는 거지. 그런데, 내가 이런 사실을 안 알려줬냐?”
“알려주긴 개뿔! 너도, 황혜성 사장도 울산 일은 기밀이라며 입 꾹 닫았잖아.”
“이야, 우리 회사 보안 대단한데? 본사 유일의 부장님도 모르게 일을 진행하다니.”
빡!
“죽을래!”
삼복이가 민망했던지 박치기를 해왔다.
원사를 국산화하기 위한 원료를 수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난리 피우진 않았을 테니까.
“짜증 그만내고, 보여줄게. 가자.”
“어어. 이거 안 놔?”
“사장이 직접 브리핑 해주는 호사를 이때 아니면 언제 누리겠냐?”
나는 녀석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공장 뒤쪽으로 갔다. 공장 앞쪽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지만, 뒤쪽 플랜트는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었다.
대세 화학의 최고 보안 구역이었다.
***
철커덩.
나는 보안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긴 열쇠를 가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황 사장님!”
“우 사장님, 벌써 점심 마치셨어요?”
“일 마치고 나가서 먹으려고요. 오랜만에 이 부장이 내려 왔거든요.”
오늘도 황 사장은 점심을 미루고 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전에 가면 줄 안서고 바로 먹을 수 있으니 그때까지 일하는 것이다.
황 사장처럼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혜성 나일론의 성장과도 직결되는 일이니 열심히 하는 맛은 있을 거다.
“아, 삼복님이 내려오셨구나.”
“아니, 이게 뭐에요?”
삼복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허접한 공장 앞쪽에 비해 뒤쪽은 휘황찬란한 중합로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으니까.
“합섬 원재료 중합로에요. 우 사장님께선 마이크 타워라고도 부르시더라고요.”
솔직히 나도 중합로를 이렇게 빠르게 셋업할 줄 몰랐다. 공장 창고에 크고 작은 중합로 부품이 수두룩했기에 공정 흐름도에 맞춰 용접만 하면 됐다.
아마도 원래 공장의 컨셉이 정유소와 중합로 복합 플랜트였던 모양이다.
“마이크 타워… 어? 서… 설마 이거 펠릿?”
주변을 돌아보던 삼복이가 한 번 더 놀랬다.
한쪽에 쌀알 모양의 펠릿(Pellet)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중합로에서 바로 실을 뽑는 게 아니라, 중합로에선 일단 작은 알갱이 형태의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펠릿을 만들고 그걸 녹여서 방사기라는 기계를 통과시켜 실을 뽑는다.
중요한 것은 이곳 중합로에서 만든 원료 덩어리가 저급한 플레이크가 아니라 최상급 품질인 쌀알 모양의 펠릿이라는 것이다.
삼복이도 섬유 업계 종사자라고 수북히 쌓여있는 펠릿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예쁘죠? 폴리에스터 펠릿입니다. 성수동으로 가져가서 실을 뽑기만 하면 됩니다.”
“설마 우리가 폴리에스터를 국산화 한 겁니까?”
“우리가 아니라 우 사장님께서 국산화에 성공하신 거죠. 여기 있는 모든 플랜트를 우 사장님이 직접 설계하시고, 공정 조건도 잡으셨습니다. 가히 대한민국 최고의 화학공학 천재십니다.”
며칠 전만 해도 감격해서 눈물까지 줄줄 흘리던 양반이 이젠 담담하게 말했다.
“화학공학? 찬수 너, 경영학과 출신이잖아.”
“나 평소 화공에 관심이 좀 있었어. 몰랐냐?”
난 거들먹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게 관심 좀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냐?”
“내가 좀 천재인 건 사실 아니냐?”
“아니거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예상과 달리 삼복이의 반응은 상당히 담담했다.
찬수 너라면 가능하지, 뭐 이런 느낌?
어째 내가 천재인 걸 인정하는 눈치였다.
“아, 황 사장님. 어제 오후 갈프사에서 나프타 메인 밸브 열었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밸브 열죠.”
“그렇습니까? 드디어 폴리에스터를 양산하는 겁니까?”
“나일론도 뽑긴 해야죠. 일단 싱가포르에 보내는 것은 나일론 원단이니까.”
“카프로락탐(나일론 재료) 뽑는 것은 걱정 마십시오. 2호기로 몇 번이고 시험해봤습니다.”
뒷마당엔 중합로가 몇 개 있는데, 규모가 큰 1호기는 폴리에스터에 배정하고 조금 작은 2호기는 나일론용으로 배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일론보다 폴리에스터 수요가 늘어날 테니 당연한 배정이었다.
“찬수야, 양산하면 원사가 얼마나 쏟아지냐?”
삼복이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물었다.
“글쎄, 연간으로 따지면 폴리에스터 3만톤, 나일론 3만톤쯤 나올 것 같은데? 기타 코팅제로 쓸 플라스틱도 1만톤은 나올 테고 말이다.”
“미쳤어? 무슨 재료를 수만 톤씩 뽑아? 그렇게나 많이 어떻게 팔려고?”
“아이고, 부장님. 못 팔까봐 걱정 되세요? 나중엔 왜 이것밖에 못 뽑냐고 난리 칠 텐데 말이죠.”
나는 삼복이를 부장님이라 부르며 놀려댔다.
단언컨대, 2~3년만 지나면 삼복이는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닦달하게 될 거다.
“이게 농담할 일이야? 나일론 3만톤도 어마어마한 수량인데, 거기에 폴리에스터까지 3만톤을 뽑으면 어째! 정도껏 해야지.”
삼복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걱정마라. 우리 원단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팔릴 거다. 우린 동남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휩쓸 거라고.”
“전 세계를 휩쓴다고?”
“우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뽑아낼 수 있어. 발수 코팅된 나일론을 외피로 삼고 폴리에스터를 내피로 대면 어떨 것 같아? 방수, 방풍, 통풍, 세탁, 건조 등등 모든 품질이 여타 원단을 압도할걸?”
“… 원단이 이중 구조라는 거야? 그게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너… 정말 천재…냐?”
“아마도.”
내 대답에 삼복이가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지 해당 원단은 천재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거든. 90년대 폴리텍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스포츠 웨어를 석권했었다.
중요한 것은 폴리텍 원단으로 스포츠 웨어뿐만 아니라, 미 해병대 군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욱 마음에 드는 점은 그 원단을 처음 만들었던 회사가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망했다는 점이다.
즉, 내가 폴리텍 기술을 선점해도 나비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거라는 거다.
충분히 제어 가능한 수준이다.
“황 사장님, 이왕 말 나온 김에 여기 좀 잠시 맡아주세요. 저 서울에 좀 다녀올게요.”
“제가 여길 맡으라고요?”
“대충 일주일 정도만 견뎌주세요. 황 영감님께 여태 생산한 펠릿 넘겨서 폴리에스터 뽑고, 색깔별로 원단 만들어서 싱가포르에 보내봐야죠. 물론 이중 원단으로는 군복 시장도 뚫어보고 말이죠.”
“군복이라고요?”
“베트남 전쟁요.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
내 말에 둘 다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당연하지?
지금 신문에서도 한국군이 베트남에 참전해야 하나 마냐로 엄청 시끄럽잖아?
이때 사회 전반은 베트남 참전으로 외화 벌이를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전투병을 파병하지 않으면 주한 미군을 빼게 될 거라 안보에 구멍이 난다는 논리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 찬수, 너 진짜 천재야!”
“아까부터 왜 자꾸 천재타령이야.”
“이번엔 진짜야. 넌 천재야! 장사의 천재라고.”
“그만하고 트럭에 짐이나 실어. 서울 올라가자.”
“올라가자!!!”
처음엔 불퉁한 표정으로 내려왔던 삼복이가 기분 좋다며 붕붕 뛰었다.
황혜성 사장도 기분 좋게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펠릿을 트럭에 실었다.
내 마음속의 펠릿들은 이미 휘황찬란한 폴리텍 원단으로 변해 수출 선박에 오르고 있었다.
“안전벨트 매라.”
“밟아라! 찬수야!”
“너 트럭 면허 따 놔라. 안 따면 부장 자른다.”
“아이고, 무서워라!”
“농담 아니고.”
“아, 예. 사장님.”
우린 농담 따먹기를 하며 서울로 냅다 올라갔다.
가다가 점심을 거른 것이 생각나서 시원한 냉면을 사먹었다.
벌써 냉면이 땡기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
혜성 나일론.
“황 영감님!!”
“영감님!!”
“어, 어디 가셨나?”
저녁 때 도착했기에 펠릿부터 내리고 밥도 얻어먹으려고 했더니, 황 영감님이 자리에 안계셨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 사장님 아니에요.”
“어, 사모님. 영감님 어디 계세요? 부탁드릴 물건이 있는데요.”
“우 사장님, 일 얘기할 때가 아니에요. 어서 공장으로 가 봐요. 지금 난리 났다니까. 영감도 거기 뛰어갔어요.”
“우리 공장요? 무슨 일 생겼어요?”
“생기다마다. 시커먼 사람들이 공장을 덮쳐서 미스 김이랑 직원들이 잡혀 있다니까. 난리 났다고. 어서 가봐요. 어서!”
“예에? 우리 직원들이 잡혀있어요?”
뭔 생뚱맞은 소린가?
삼복이를 쳐다봤지만, 녀석도 영문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어서 가보자, 찬수야.”
“그래!”
앞뒤 잴 것도 없이 공장으로 달려갔다.
< 023 : 쌀알 모양의 펠릿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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