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4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40화(240/589)
< 240 : 최적의 타이밍 >
난 인천제철의 신규 라인을 점검한 뒤, 뵈스트 이사에게 강관을 비롯한 각종 건설 자재를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하도록 지시하고 떠났다.
문제는 호주에서 최대한 싣고 오는데도 철광석 공급이 딸린다는 것.
빨리 11만톤급 광석 운반선을 바다에 띄워야 하는데 말이다.
대형 선박은 아무리 서둘러도 건조하는데 1년 이상 걸린다는 게 아쉬웠다.
21세기야 건조 기간을 8개월까지 단축하지만, 지금 70년대엔 그런 시도는 무의미하다.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공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데다, 기관실에 들어가는 엔진과 각종 모듈을 표준화해놔야 가능한 일이다.
“여하튼, 현산자동차 공장을 구경하러 가볼까?”
인천제철을 나올 때 현산에 연락했더니, 왕 사장님이 울산 현산자동차로 나를 초대했다.
나도 현산의 자동차 공장은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던지라 휙하니 나섰다.
**
울산, 현산자동차.
현산자동차는 초기 석유화학공단 부지로 지정되었던 곳에 세워졌다.
사업 초기 땅 투기꾼들이 하도 몰려서 내가 그보다 북쪽 땅을 국가에 헌납했고, 그 즉시 여기 땅값은 곤두박질쳤다.
그 뒤에 왕 사장님이 이 땅을 헐값에 매입해 자동차 공장을 세운 것이다.
“대세에서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아이고, 우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정문 통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왕 사장님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왕 사장님, 여태 기다리신 겁니까?”
“아닙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오는 시간이야 제가 빤하게 알죠. 딱 시간 맞춰 나온 겁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아주 반가웠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던지, 얼굴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왕 사장님도 이때는 한창 팔팔할 때다.
“회사 구경 좀 해도 되죠?”
“하하하, 당연합니다. 제가 공장 보여드리려고 초대한 건데 말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타사 자동차 사장이 들어온다면 경계부터 하겠지만, 내가 현산을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왕 사장님도 날 경계하지 않았다.
대세정공의 가장 큰 고객이 현산자동차 아닌가.
게다가 각종 건설 현장에서는 물론, 알래스카에서 같이 고생했던 경험까지 있기에 나와 왕 사장님은 나름 동료애를 느끼고 있었다.
“대세석유화학에 아스팔트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씀 하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에서도 고생 꽤나 했는데, 인도네시아도 만만찮아서 말입니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장대비가 쏟아지니 아주 환장하겠더군요.”
우리는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눴다.
“일주일에 사나흘요? 나름 우기를 피해 공사를 하시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요. 좀 더워도 우기만 피하면 된다고 계약했더니, 웬걸 현지인들조차 올해처럼 건기에 비가 잦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비의 도시라고 해도 그렇지.”
“비의 도시라고요?”
“고속도로의 중간지점인 보고로라는 곳이 현지어로 비의 도시라는 뜻이라더군요. 년 강수량이 6000㎜나 된다니 말 다했지요. 비가 한번 올 때는 앞이 안 보이더군요. 세상 참 넓습니다.”
어쩐지, 외국 건설사들이 적극적으로 공사 입찰에 나서지 않더라니.
“건기에 비를 그리 겪으시다니, 이제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텐데…
동남아는 대부분 5월에서 9월이 건기이며,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우기다.
건기에 빡세게 공사를 진행했어야 돈을 좀 남길 수 있는데, 걱정이 많겠군.
“도로 공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돈을 남기는데, 영 안 도와주는군요. 더욱이 어렵게 아스팔트를 깔아봐야 제대로 굳기도 전에 비가 내리면서 군데군데 패어나가니 아주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요청하셨던 거군요 물에 강한 아스팔트를 만들어달라고 말입니다.”
현산으로선 우기에 맞서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깔자마자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가 급격히 식으면서 바사삭 깨져나간다.
21세기에도 장마철 다음엔 도로 곳곳이 패이질 않나.
“그렇습니다. 우 사장님이라면 해결책이 있지 않겠습니까? 급합니다.”
기존 아스팔트를 개선하는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너무나도 당연히 해줄 거라 여기니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급하니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긴 대세 직원들도 날 이런 눈길로 쳐다보지.
“어찌어찌 개선 방법이 있을 것 같군요. 아스팔트에 고분자 합성 중합체를 첨가하면 물에도 강하고 내구성도 나아질 것 같습니다.”
“합성 중합체라니, 아스팔트에 고무를 섞는 겁니까?”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단순히 고무 조각을 썰어서 섞는 것은 아니고,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도록 해야겠지요. 여하튼, 웬만큼 비를 맞아도 패이진 않을 겁니다.”
아스팔트에 SBS라고 부르는 타이어나 신발 밑창에도 쓰는 폴리머를 섞으면 된다.
황혜성 상무라면 SBS와 아스팔트의 최적 배합비를 금방 찾아낼 것이다.
“역시, 우 사장님에게 부탁하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이제 인도네시아 관리들이 찾아와 여기 패였네, 저기 패였네 하는 소리 안 들어도 되겠군요. 답답한 건 우리 현산건설이 더한데 말입니다.”
“단순히 비가 문제라면, 아스팔트도 아스팔트지만 천막부터 치시지 그러십니까?”
“천막을 치라고요?”
“대충 1, 2 킬로짜리 천막을 세우면 비가 오든 말든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해가 나면 걷어내고 작업하시면 되고요.”
비 때문에 공기 지연으로 날리는 비용을 따지면, 천막값이야 껌값이다.
“천막이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이군요!!”
“우리나라에선 그런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동남아에선 대형 천막을 치고 공사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런 종류의 현장 노하우에는 현산건설이 최고인데, 내 말에 왕 사장님이 이리 반응하니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가 있는 줄 알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들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아이디어야 정도야 얼마든지 드릴 테니, 텔렉스 마구 보내십시오. 사장님이나 저나 같은 건설쟁이인데 서로 체면치레할 이유가 어딨습니까.”
“감사합니다. 천막은 당장 적용하겠지만, 그렇다고 신규 아스팔트 개발 안 해주시면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대세 아스팔트는 꼭 써 보렵니다.”
“기존 아스팔트보다 10%는 비쌀 텐데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희가 하루 이틀 장사할 것도 아니고, 이번에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눈도장을 잘 찍어두면 언제고 다시 수주를 따겠지요.”
왕 사장님다운 투자였다.
이런 마인드이니 국내에서도 고속도로란 고속도로는 죄다 현산건설이 도맡아 하는 식이 되었다.
“그런 전략이라면 제가 좀 더 깎아 드리죠. 마진 없이 5% 정도만 더 받도록 하죠. 대신 저희 아스팔트 홍보 좀 많이 해주십시오.”
아스팔트엔 골드라는 명칭이 어색하니, 슈퍼팔트라고 이름을 붙여볼까 싶다.
“하하, 또 그리 도와주시는군요. 어차피 우 사장님이 개발한 제품이라면, 따로 광고 안 해도 불티나게 팔릴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왕 사장님은 자신의 입으로는 돈 좀 있는 노동자니, 농사꾼 출신이라 사업을 잘 모른다느니, 무학이라 닥치는 대로 일할 뿐이라느니 하지만, 화법만 봐도 사업가 기질이 굉장하다니까.
“그러면 아스팔트 문제는 끝난 겁니까?”
중동으로 가는 길에 잠시 인도네시아 현장에 들러 봐야겠다. 슈퍼팔트를 까는 것도 좀 보고, 공사 전반에 걸쳐 조언해줄 게 있다면 하루 정도야 투자해줄 수 있지.
현산이 고속도로 건설을 맡아준 덕분에 내가 두리 유전 지분을 25%나 받을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 일단 고속도로 기층(基層, 바닥 층)부터 닦고, 우 사장님의 아스팔트가 오면 단박에 표층을 깔아버리는 전략으로 가겠습니다.”
“그리하셔도 됩니다.”
내 생각에도 그게 낫겠다.
괜스레 기존 아스팔트를 깔아서 군데군데 패이면 보수공사에 돈이 더 들 거다.
“아스팔트 건은 해결됐으니, 이왕 오신 김에 저희 공장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럼요, 좋죠.”
오케이. 내게 보여줄 줄 알았다.
괜히 자동차 공장에서 약속을 잡았겠나?
앞으로의 자동차 사업에 대해서 말할 게 있으니까 이리 만난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보자고요, 왕 사장님.
“이쪽입니다.”
왕 사장님은 사무실로 향하던 걸음을 공장 쪽으로 휙하니 돌렸다.
그래, 나도 잉크 냄새보단 기름 냄새를 훨씬 좋아 한다.
“아니… 이거…”
나는 기분 좋게 왕 사장님을 따라나섰다가, 금세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야적장에 자동차 부품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심지어 시뻘겋게 녹슨 것까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부품을 이리 관리하다니.
“왜 그러십니까, 우 사장님.”
“야적장에 부품이 잔뜩 쌓여 있군요.”
“부품이 아니라 고철입니다.”
“고철이라고요?”
“이번 여름에 수해를 입은 부품입니다. 참나,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러더니, 국내에서도 물난리를 겪다니 참담합니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에 내가 SUV 개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때, 우리나라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나야 대세조선 도크 건설 때 벽이 터질뻔한 사고를 겪은 뒤, 각 공장마다 배수 관련 시설에 과할 정도로 투자했기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운 심정에 수재의연금만 내고 말았는데, 현산자동차가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을 줄은 몰랐다.
“늦여름 태풍에 저기 본관 건물과 사택 사이로 하천이 범람해서 공장을 덮쳤습니다. 야간 조 근무자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는데, 아무도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모든 직원들의 땀과 꿈이 배어있는 귀한 생산설비들이 진흙투성이로 변해 버렸을 현장을 상상하니, 내가 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여기가 원래 염전지역이라 울산에 물이 범람하면 여길 통해 바다로 간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석유화학단지를 세우지 않으신 거는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아니, 석유화학단지를 걱정하실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 정도 부품을 폐기하자면 손해가 막심할 텐데요.”
“그렇긴 합니다. 시험 삼아 부품 몇 개를 씻어서 조립해봤더니 영 못 쓰겠더군요. 고물상에나 팔아야지 하고 있습니다.”
물먹은 부품은 세척한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세하게 낀 이물질과 부식문제로 성능 저하는 물론 안전상으로도 위험하다.
21세기 기술로도 재활용이 안된다.
“고물상에 파시면 안됩니다. 제가 수거하죠. 인천제철에서 녹여서 특수강 생산에 쓰겠습니다.”
“예에? 고물상에 팔면 안된다고요?”
“재생 부품으로 이용하는 못된 자들이 꼭 있을 겁니다. 안전하게 제게 맡기세요.”
괜스레 이상한 작자들 손에 들어가면 100% 문제를 일으킨다. 현산자동차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문제다.
“듣고 보니 옳은 말씀이군요. 하긴 더 이상 포드 놈들에게도 보여줄 필요도 없으니, 당장 용광로에서 녹여버리죠. 가져가십시오.”
“포드… 설마, 부품가 참작을 안 해주던가요? 현산과 포드는 합작사 아닙니까?”
자연재해로 불가피하게 손해를 입으면 포드 같은 글로벌 기업은 보험비 청구를 할 수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부품 원가만 회수하고 운송비와 마진은 합작사를 위해 포기하는 게 국제관례라 하겠다.
“포드 놈들 아주 치사하더군요. 아무리 우리가 하청업체 노릇을 한다지만, 동업자인데… 부품이 이리 되었으면 좀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납품가에서 십원 한장 안 깎아 주더군요.”
“포드한테 항의차 저리 쌓아두신 거군요.”
“예, 우리가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소용없더군요. 기껏 담당자라는 놈이 와서는 입금 날짜부터 챙기고 말입니다. 상종 못할 놈들!!! 올해 부로 합작 종료한다고 하고 쫓아 보냈습니다. 미국 놈들은 원래 그렇게 재수가 없습니까?”
왕 사장님은 아직도 분했던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포드 놈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분명 합작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이사회에서 지원책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한국 시장이 커지고 현산도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대응은 180도 달랐겠지.
“분해서 잠이 안 오더군요. 그래도 여태 저는 신의를 지켜 포드차의 조립과 판매에 최선을 다했는데 말입니다.”
“본때를 보여주셔야죠. 세계시장에서 포드를 눌러주면 되는 겁니다. 지금부터 자체 모델을 개발하셔야 합니다.”
“휴우, 아직 저희는 대세처럼 자체 개발은 힘듭니다. 일본과 합작해서 조금씩 국산화를 추진해보려고 합니다.”
대세를 선례 삼아 현산도 일찌감치 자체 개발에 나설지도 모른다고 여겼는데, 그건 아니네.
“일본과 합작이라면…”
미쓰비시 자동차겠지?
“미쓰비시 자동차와 합작하기로 했습니다. 몇몇 핵심 부품은 사와야 하지만, 나머지 부품에 대해선 면허 생산이 가능한 조건입니다. 시간만 들이면 국산화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굳이 미쓰비시 자동차와 합작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제가 합작사로 여러 군데를 조사해보니, 미쓰비시 자동차가 미쓰비시 중공업 계열사 중에서 서자 취급을 받고 있더군요. 나름, 계열사 간 경쟁을 위해서라도 시장 확대를 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산과 상호보완적인 합작이 가능할 겁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미쓰비시 자동차가 그룹 내 입지 강화를 위해 현산과의 합작에 동의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것만이 합작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역사의 이면을 들은 셈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미쓰비시의 사내 정치까지 조사한 현산의 정보력이 놀라웠다.
“일본이 우리를 하청업체로 이용한다면, 우리도 일본을 기술 습득의 도구로 이용하면 되죠. 왕 사장님의 전략도 강점이 있다고 봅니다.”
나름의 방법으로 현산이 자생력을 키운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왕 사장님은 내가 일본 회사를 경쟁자로 여기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포드 대신 미쓰비시와 합작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날 여기로 초대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군.
“그리 생각해주시니 마음이 편하군요. 그러니, 어디든 데려가 주십시오.”
“데려가 달라니… 무슨…”
“알래스카 송유관 공사 같은 일이 또 필요합니다. 그 건이 없었으면 올해 현산은 부도났을 겁니다. 사장님이 가시는 곳엔 돈이 흐르지 않습니까. 미국이든 동남아든 어디든 좋습니다!”
이 양반, 타고난 사업가라니까.
촉이 좋은 건지, 정보력이 좋은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타이밍만큼은 기가 막혔다.
“… 어디든 좋다고 하시면, 중동은 어떠십니까? 조만간 거기로 출장 가려는데 말입니다.”
< 240 : 최적의 타이밍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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