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5화(25/589)
< 025 : 두 군인 >
저벅저벅.
비서관을 따라 건물로 들어섰다.
‘이게 말로만 듣던 60년대 청와대 영빈관인가?’
흰 대리석 바닥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멀리 대통령과 덩치 좋은 백인 사내가 보였다.
둘 다 군인처럼 보였지만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시커멓고 깡마른 GOP 군인과 후방에서 PX를 끼고 있는 사령부 군인 같다고나 할까.
“각하.”
“그래, 가봐.”
단순 명료했다.
비서관은 날 데려왔다는 말조차 아꼈다.
대통령이야 워낙 다큐멘터리로 많이 봤기에 익숙했지만, 밴 플린트는 예상과 다른 인상이었다.
분명 군인 출신의 거물급 정치인인데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뭔 딴생각이야? 정신 차려.’
여긴 호랑이 굴이다.
내 앞의 사람은 대통령이고, 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호랑이 굴에선 절대 딴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세 실업 우찬수라고 합니다.”
“알고 있어, 편하게 목부터 축여.”
날 불러준 이는 밴 플리트였지만, 대통령을 우선했다. 여긴 대한민국이고 그가 왕이다.
대통령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마치 길에서 우연히 친구 아들이라도 만난 듯 무심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수척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라는 수식어가 무색해보였다.
“그런데, 임자. 대세 실업이 아니라 대세 그룹이라고 해야 하지 않아? 울산에 대세 화학이라고 공장 하나 새로 세웠다며.”
그 짧은 시간에 내 신상을 파악한 건가?
“그룹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국가 경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폐공장을 수리해서 써볼까 하는 중입니다.”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녀석은 오랜만에 보는군.”
“결례를 범했다면 부디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결례라니, 산업 역군이라면 그 정도 당찬 대답은 해야지. 그렇지요, 플린트 장군?”
“하하, 그럼요. 베트남 전과 미국 인플레를 연관 지은 전문가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겠지요.”
밴 플린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베트남 전쟁과 미국 인플레 관계부터 말하는 걸보니, 역시 데이비드가 소개시켜준다고 했던 양반이 밴 플린트였네.
그 뒤로 갈프사 지사장에게도 내 이름을 들었기에 전화번호까지 남겼던 거겠지?
“정식 소개는 처음이군. 밴 플린트라고 하네.”
“대세 실업 우찬수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린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제임스 A. 밴 플린트」
「코리아 소사이어티 의장, 미 상공부 정책 고문, 로펌 스캐튼 사외 이사, 브라운&루트 사외 이사…」
명함에 온갖 직책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미 상공부 정책 고문은 예상했지만, 브라운&루트 사외 이사라는 항목에 깜짝 놀랐다.
‘뭐야? 밴 플린트가 브라운&루트사(社)의 사외 이사였어?’
브라운&루트사(社)는 일명 BR사(社)라고 불리는 기업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대박을 쳤던 군수업체였다.
미군의 군사물자 조달을 담당했던 것은 물론, 베트남전 관련 건설 공사를 대부분 독점했었다.
미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고, 그만큼 특혜 받던 기업이었다.
일명 ‘안보의 상업화’라는 개념을 정립한 군수복합기업의 대표주자다.
베트남 파병을 대가로 대한민국이 미군의 군수품 조달사업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던 협약을 ‘브라운 각서’로 부르는 것도 BR사(社)에서 따왔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대외적으론 미국 외교장관이었던 브라운의 이름을 따왔다고 알려졌지만 말이다.
‘설마 내가 브라운 각서의 조항을 두고 협상하는 현장에 참석한 거야?’
만일 그렇다면 이건 보통 건수가 아니었다.
브라운 각서를 근거로 BR사의 하청업체로 참여했던 현산건설과 한신통상은 단번에 재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두 기업 모두 하청 용역만으로 매출 1억불 이상을 올렸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21세기로 따지면 대략 10조 매출이었다.
“나도 반갑군. 여러 보고서에서 자네 이름이 보이더군. 미국 인플레 경고 보고서부터, 한국 석유화학 투자 검토서까지 말이야.”
“… 그 보고서들을 보셨군요.”
해당 보고서를 직접 읽어봤다는 건가?
지휘관 출신이라 그런가 꼼꼼한 양반이었다.
잘됐다. 문서를 싫어하지 않는 양반이었다.
“특히 갈프사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독점하겠다는 발상은 아주 신선했어. 마치 나프타 수요가 폭발할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일세.”
돌려 말했지만, 밴 플린트 또한 조만간 나프타 수요가 폭발할거라고 예상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당연해서 예상이랄 것까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군님도 이리 자리하신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지?”
“베트남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 석유 제품 수요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장기전? 미국이 베트남을 상대하는 전쟁이야. 장기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피식 웃었지만, 나를 시험하는 웃음이었다.
“물론입니다. 밴 플린트 장군님도 장기전을 예상하셨기에 한국으로 날아오신 것 아닙니까? 미군만으론 전투 병력이 모자랄 것을 걱정해서 말입니다.”
OB들이 말했던 전설 같은 얘기를 떠올려보면, 한국전쟁 말기엔 미군이 퍼부은 폭탄이 2차 세계대전 때 썼던 폭탄량과 맞먹었다고 했다.
즉, 밴 플린트 장군이 한국전쟁 말기에 총 사령관이었다면, 이 양반은 물량으로 적을 압살하는 전략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향의 인물이 베트남 전쟁을 본다면 미군만으론 전투 병력이 어림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물론, 그리스 내전과 한국전쟁까지 겪은 최고 사령관이라면 베트남의 밀림과 게릴라전의 위험성을 사전에 캐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 생각도 우 사장과 아주 비슷해. 베트남의 정글은 미군은 물론 같은 아시아인인 우리 국군도 적응하기 힘들 거야.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어.”
박 대통령이 적당할 때 말을 보탰다.
군인 출신다운 의견이었다.
“예, 각하. 헌데, 플린트 장군께선 다른 상황도 우려하실 것 같습니다.”
“다른 상황?”
“미스터 우, 내가 다른 상황을 우려한다고?”
밴 플린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화였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장군께선 보이지 않는 적을 우려하시는 것 아닙니까?”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적인지 민간인지 구별할 수 없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남베트남 민간인이 주축인 게릴라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적이 분명 있는데, 소탕할 수 없으니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99.99%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허…”
“우 사장, 자네… 어찌 그런 면을…”
둘 다 내 말에 감탄했다.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던 것을 내가 콕 집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이 베트남 전에서 패배했던 이유는 아주 복잡하지만, 그중 핵심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 미군의 주적은 공식적으로 북베트남이라 부르는 월맹(越盟)이었지만, 실제 미군과 전투를 했던 조직은 남베트남 주민이 주축이었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었다.
흔히 베트콩이라고 부르던 이들 말이다.
미군은 공산주의에 맞서 인권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기에,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함부로 척결할 수 없었다.
베트콩은 그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거고.
“월남(남베트남) 정부가 청렴하지는 못해도 능력은 있어야 하는데, 무능하기 이를 데 없으니 미국으로서도 골치 아프겠죠.”
그때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 있는 월남 정부였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원체 외세 침략을 많이 당했던 인도차이나 반도라, 국민들에게 있어야할 국가관이 죄다 무너져 있던 탓이었다.
와중에 중공과 소련을 뒷배로 뒀던 공산당이 국가관에 근접한 조직력이라도 갖췄으니, 결국 베트남을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 보면 대한민국의 민족성과 저력은 세계 1등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매국노가 득세하고 지도층이 무능해도 결국 외세를 쫓아내고 나라를 바로 세웠으니까.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이었고, 국운까지 따랐기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친일파 잡것들이 있긴 한데, 우리 민족이 끝까지 저항하고 노력했기에 세계가 대한민국의 독립에 화답했던 거다.
여하튼, 이 자리에서 베트남전의 결과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나비 효과는 경계해야 했다.
나에겐 물론 우리나라에도 베트남전 특수는 백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니까 말이다.
“뭔가 방법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전쟁을 빨리 종결낼 방법 말일세.”
빨리 끝내면 안 되지.
“전쟁은 물량전이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물을 졸졸 흘려내는 것보다 일거에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 일거에 전선을 정리해야 합니다.”
“물량전이라.”
밴 플린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물량전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아무리 능력있는 지휘관이라고 해도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그 말이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들리면 더욱 더.
1,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군수품 조달을 누가 더 잘 하냐로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는 사실은 진리나 다름없었다.
현대전에선 무기와 탄약뿐만 아니라, 탱크/선박/항공기/미사일처럼 크고 비싼 군수품부터 군복/전투식량/구급 의약품/치약칫솔/양말까지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군이 베트남 전에 패배한 것도 게릴라전에 당한 것이 1차 원인이었지만, 월남에 제공했던 온갖 무기와 조달품이 뒷구멍을 통해 베트콩에게 줄줄 흘러들어갔던 탓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적과 아군 양쪽으로 물자를 대면서 전쟁을 하는데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기나.
군수품 조달이 어찌 흘러갈지 뻔히 알지만 모르는 척 하자.
“물량전을 위해선 베트남 주변 동남아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미군 군수품을 옮길 항구를 건설해야 하는데다 대규모 중유 저장소까지 지어야 합니다.”
“… 고속도로에 중유 저장소까지…”
밴 플린트로선 항구까진 생각했던 모양인데 고속도로와 중유 저장소는 의외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금방 내 말이 옳다는 걸 알아차렸다.
동남아엔 고속도로는커녕 일반 도로도 형편없지 않은가. 게다가 밀림으로 우거진 곳이다.
배로 군수 물자를 항구에 실어놨다고 해도, 차가 다닐 도로가 있어야 전방 주둔지까지 군수품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처럼 군수품을 낙하산에 묶어 비행기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면, 이미 그 전쟁은 진거다.
게다가 군수품을 싣고 온 선박이 다시 되돌아가려면 연료를 채워줘야 하지 않나.
그럼 중유 저장고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병참 기지 못지않게 수송 인프라가 제대로 있어야 물량전이 가능하지.”
“플린트 장군, 군수품을 우리 한국에서 조달해야 합니다. 그게 전투병 파병의 핵심 조건이오.”
대통령이 훅하니 말을 끊고 들어왔다.
대통령님, 군수품 못지않게 인프라 건설 사업도 짭짤하다니까요. 그걸 놓치면 안 됩니다.
“해당 인프라 건설에 한국 기업도 참여해야합니다. 물론, 전투병 파병의 전제 조건으로 말입니다.”
“하하, 이거 원… 놓치는 게 없군.”
둘 사이에 내가 끼니 왠지 이야기가 휙휙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전투병 파병의 대가로 구체적인 항목이 하나씩 정해진다고나 할까?
군수품 조달, 병참 기지 및 수송 인프라 건설에 참여한다는 협약만 맺으면 대한민국은 대박치는 거다. 월남전은 절대 쉽게 안 끝나고, 미국이 퍼부었던 돈은 상상을 초월했다.
“장사꾼으로서 당연한 추론일 뿐입니다.”
“그게 당연한 추론이라면 고속도로는 어디에, 항구는 어디에 지어야 하는지도 추론할 수 있나?”
“당연합니다.”
“어디지?”
“각하, 제 의견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밴 플린트의 질문을 툭 튕겨내고 박 대통령에게 공을 돌렸다.
“하하하, 말하기 전에 목부터 축여야지.”
대통령은 내게 샴페인을 따라주었다.
나보고 섣불리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기업인들에겐 싸구려 막걸리만 권하며 기를 꺾었다던데, 샴페인을 받은 이는 내가 처음이 아닐까?
“대통령님, 미스터 우의 컨설팅에 대가를 지불해 드리죠. 원하시는 차관 액수가 얼마입니까?”
내가 샴페인을 쫄쫄 빨며 대답을 회피하자, 밴 플린트는 박 대통령에게 딜을 걸었다.
“우리 정부는…”
정보의 대가로 대통령이 제시하는 차관 액수를 수용하겠다는 의사였다.
안 돼.
차관 액수는 1.5억불로 이미 정해져 있어.
내 정보는 그 정도 대가로 넘길 싸구려 정보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미군 병참 기지를 어디다 지어야 하냐? 하는 정보란 말이지.
쨍.
“각하께선 차관 금액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부드럽게 잔을 부딪치며 박 대통령의 말을 끊었다.
이 시대 인간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나는 21세기 인간이다.
그리고 이미 여긴 호랑이 굴이다.
호랑이 굴에서 제대로 몸값을 띄우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맛있으면 통째로 잡아먹히거나, 맛없으면 그대로 잊힐 뿐이다.
나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감히 내 말을 끊어?’
대통령의 눈빛에 노여움과 이 놈 봐라? 하는 감정이 동시에 맺혔다.
그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차관 따윌 협상해선 안 된다.
“차관이 중요치 않다고? 농담이 과하군.”
“각하께선 국가의 수장이십니다. 차관 액수 따윈 실무자끼리 논해야죠.”
“그럼 뭘 원한다는 말인가?”
“한미 정부 간의 협약을 원하십니다. 전투병 파병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입니다. 그 정도라면, 한미 동맹을 대외적으로 명시하고, 미국이 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하며, 미군 군수품 조달사업에 한국이 참여한다는 각서 정도는 받아야 공평하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 역시, 요즘 젊은이는 달라. 내 마음을 훤히 읽다니 말이야.”
대통령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와 닿는 손길이 사뭇 달랐다.
“한국이 미군의 군수품 조달 사업을 감당할 수나 있을까?”
“한국인에겐 불가능 따위는 없습니다.”
내 말에 밴 플린트의 얼굴이 묘해졌다.
성공한 건가?
최소한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은데?
“좋군. 오랜만에 제대로 된 협상가를 만나니 나도 즐겁군. 어때, 나와 퍼즐을 시작해 볼까?”
“얼마든지요.”
밴 플린트가 툭하고 치고 나왔다.
미래를 아는 21세기 인간과 놀아보시겠다고?
얼마든지 받아주지.
< 025 : 두 군인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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