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6화(26/589)
< 026 : 급발진 >
“일단 고속도로부터 시작해볼까요? 어디로 생각합니까?”
밴 플린트는 퍼즐을 하자고 하더니 말투를 바꿨다. 협상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각하, (대답해도 됩니까?)”
“임자가 알아서 해봐.”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박 대통령은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관전모드로 들어갔다.
나를 한번 믿어보겠다는 투였다.
좋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아스팔트는 한국산으로 쓰시는 거겠죠?”
“한국산이 있기나 합니까?”
“울산 갈프사와 대한민국 합작 투자.”
합작사를 세워 아스팔트를 만들면 된다.
원래 역사에도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합작 투자를 했었다. 이번 역사에선 갈프사 지사장도 적극적으로 나설 테니 더더욱 문제없다.
“합작투자라, 좋아요. 그럼, 한국에 고속도로를 지을 기술은 있고요?”
“한국 건설사도 미 공군 활주로를 몇 번이나 닦았습니다. 고속도로쯤이야 눈감고도 하죠.”
현산 건설에 맡기면 충분했다.
난 고속도로 공사와 아파트는 안할 거다.
기술 장벽은 높지 않지만, 생각보다 건설 외적인 변수가 많아서 자칫하면 적자난다.
무엇보다 전생 후반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했다.
“으흠, 좋습니다. 울산에서 아스팔트를 조달하고 한국 기업에 입찰 기회를 주죠. 그럼 고속도로 위치는 어디죠?”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연결 구간입니다! 베트남 1번 국도의 옆구리를 찌르는 운송통로죠. 태국 국경은 비교적 안전한데다, 베트남 전역의 육상 운송통로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최적입니다.”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연결 구간은 현산 건설이 해외 진출한 최초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였다.
언론에서야 태국 정부가 발주냈다고 떠들었지만, 실제 발주처는 미군이었다.
밴 플린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지도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더니 반짝하고 눈을 뜨더니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설마, 베트남 근방의 동남아 지리를 다 외우고 있었나?
“괜찮은 아이디어군요. 그럼 공사비도 대충이나마 산정해봤겠군요.”
“왕복 2차선으로 길이 100키로, 총 공사비 650만 달러. 공기는 36개월 정도가 적당하겠죠.”
원래 역사대비 25%는 부풀려서 말했다.
이게 미국 회사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격과 정상적인 공사 기간일 것이다.
이 조건으로 수주하고, 공기 단축을 하게 되면 프리미엄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대충 산정한 것치고는 대단히 구체적이군요.”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니까요.”
내 말에 밴 플리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 베트남전을 예전부터 눈여겨봤다는 뜻이냐고 말이다. 맘대로 생각해라.
“… 좋아요. 그럼 항구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항구 건설에 한국산 시멘트를 쓰고, 철근이나 다른 자재는 미군이 무상 제공, 건설 설비는 무상 임대를 해주신다고 약속하시죠. 물론 군수품 하역 용역도 한국 기업이 맡았으면 합니다.”
“그 정도야 지원을 해줘야죠. 대신 작업 지시는 미국 건설사가 하는 겁니다.”
“그러시죠.”
솔직히 미국도 한국 기업이 일괄적으로 하청 업체를 맡아주면 나중엔 엄청 고마워 할 거다.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말이다.
“항구는 어딥니까?”
“일단 접근이 쉬운 사이공, 다낭에 병참 항구를 지어야 합니다. 물론, 미군도 충분히 예상한 곳일 겁니다.”
“일단이라… 그 말은 병참 항구가 더 필요하다는 뜻입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두 군데는 더 필요하죠. 특히 중유 저장고를 사이공이나 다낭에 지으면 큰일 아닙니까. 베트콩의 테러에 절대 안전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딥니까, 안전한 곳은?”
흥분한 밴 플린트는 내 정보의 소스가 어딘지도 따져 묻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내가 말한 것은 미군 정보부가 세운 군수물자 조달 계획에서도 1급 기밀에 해당되는 내용이거든.
절대 내가 빼낼 수없는 정보였기에, 내가 순전히 추론만으로 미군 정보부와 동일한 결과에 도달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
“각하, 이 다음부턴 각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미 정부 간에 각서가 합의되면, 경제 기획원을 통해 공식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마치 국가 비밀 요원이라도 된 듯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박 대통령님, 오늘 협의를 완료하기로…”
“플린트 장군, 오늘은 이쯤 합시다. 실무자들끼리 각서를 협의하는 게 우선일 것 같소.”
대통령이 직접 협상을 뒤로 미뤘다.
대통령이 아니라 마치 21세기 건설사 프로젝트 매니저 같은 말투였다.
“대통령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러시죠.”
“플린트 장군, 묵고 있는 곳은 편안하시오? 한국 음식이 입에는 맞으시고?”
“다 좋습니다. 오늘 점심에 먹은 한국 불고기가 아주 맛있더군요. 이 샴페인과 함께 즐겼다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 뒤로 둘은 정치인답게 훅하니 화제를 바꾸더니 시답잖은 얘기를 주야장천 이어갔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오랜만에 그럴듯한 샴페인을 즐길 수 있어 나도 기분이 좋았다.
***
“임자, 아까 전에 깜짝 놀랐어.”
“죄송합니다.”
밴 플린트가 청와대를 떠나자 대통령과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죄송하다라… 그렇지. 자네 때문에 차관 협상이 결렬되었으니 대가는 치러야지?”
대통령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그도 일시불 차관보다 각서를 받아 국군의 현대화를 이루고, 국내 기업이 미군 조달 사업에 참여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 협상으로 미제 탱크와 전투기를 꽤 받았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일해서 갚겠습니다.”
대통령이 그리 말하는 이유야 당연했다.
나보고 시킬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들 임자처럼 말귀를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군. 그래, 일단 하나만 묻지. 울산 석유화학 단지는 얼마나 크게 지으면 되겠나? 내가 미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지을 거야.”
“단순합니다. 세계은행 사절단이 제시한 크기보다 딱 10배를 키우면 됩니다.”
“10배?”
석유 화학 산업은 크면 클수록 좋은 장치 산업이고, 60년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나프타 백만 톤급 규모로는 지어야 한다.
지금 갈프사의 나프타 캐퍼가 연간 9만톤 정도니까 지금보다 10배는 키워야 한다.
“예, 10배.”
“말이 되는 소린가?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런 대규모 투자를 하겠나?”
“미 정부로부터 1.5억불 차관을 들여오고, 갈프사나 다우커닝사(D社) 같은 정유사 및 화공 회사를 합작사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치십시오.”
“상업 차관이로군!”
민간 회사를 끌어들이라 했더니, 대통령은 대번에 상업 차관을 떠올렸다.
“반드시 그리 하셔야 합니다. 그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추진하셔야 국제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제품을 수출할 수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
“예, 생산량이 많아지면 단가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석유 제품은 생산량을 10배로 키우면 단가는 50%수준까지 떨어집니다.”
석유화학만큼 규모의 경제가 잘 통하는 산업은 없다. 건설비부터 유지비까지 장난 아니거든.
“공장을 크게 지으면 반값에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군. 수출도 늘고, 이윤도 늘겠어.”
“그뿐 아닙니다. 발전소와 상하수도 시설도 덩달아 크게 지을 수밖에 없으니 인근 국민의 생활 수준도 개선될 겁니다.”
“발전소! 그것도 커진다!”
대통령이 발전소라는 단어에 지금까지 중 제일 크게 반응했다.
이때 전력 사정은 정말이지 최악이거든.
솔직히 나도 60년대를 겪어보고 놀랐다.
한집 한등 끄기 운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수도 서울에서조차 시간별 송전 제한을 했다.
네온사인은 고사하고 가로등도 죄다 껐고, 상품전시 쇼윈도조차 형광등 하나만 켰을 정도로 밤거리는 그냥 암흑천지였다.
내가 울산에서 안전 때문에 야간 공사를 감행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무조건 10배로 키우긴 해야겠군. 허면, 미국이 받아들일까?”
“받아들입니다. 밴 플린트 씨가 군수물자를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군용차를 움직일 휘발유, 군함을 움직일 중유, 고속도로용 아스팔트를 생각해서라도 울산에 일단 투자를 할 겁니다.”
나는 정말 자신 있게 말했다.
사업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시작만 하면 수요 예측이 과한 게 아니란 게 증명될 거다.
“자신 있게 밀어붙여라, 그럼 저들이 필요해서라도 받아들인다. 이 뜻인가?”
“예, 일본이 휘발유며 아스팔트를 납품하는 꼴을 보실 게 아니라면 밀어붙이셔야 합니다.”
“일본이? 그건 절대 안 되지! 그 놈들이 한국전쟁으로 처먹은 게 얼만데!”
박 대통령은 발까지 구르며 언성을 높였다.
베트남전은 우리 사업이다, 이거지.
좋은 자세다.
“합작사를 세울 때 필수 조항이 있습니다. 외국 기업과 지분을 49대 51로 나누시고 대한민국 정부가 경영권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지적이군. 우리 땅에서 장사는 해도 우리나라 법을 따라야지.”
“예.”
경영권을 넘겨주면 합작사가 초법적으로 행동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얘기가 술술 풀렸다.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면 내가 갈프사와 맺은 계약은 대박중의 대박이 될 거다.
내가 연간 90만톤의 나프타를 독점한다면 일본 기업도 단번에 아래로 보낼 수 있다.
국제적인 규모로 봐도 연간 30만톤 정도가 A급이니, 연간 90만톤이면 S급이다.
지금은 60년대니까 말이다.
“좋아. 얘기가 잘 통하는군. 그래, 자네는 뭘 맡고 싶나? 고속도로야? 아님, 항만이야?”
“예에?”
뭔 소리야?
왜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고속도로? 항만?
이봐요, 난 석유화학 플랜트 전문가입니다.
대세 실업, 대세 화학 사장이라고요.
“뭐야? 베트남에 갈 생각도 없이 그렇게나 자신 만만하게 말했던 거야?”
“저는 나일론 원단을 파는 장사꾼입니다. 미군수품 조달 사업에서 군복을 맡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원래 역사에서 베트남 전에서 건설 쪽은 현산 건설이 주축으로 참여하지 않나.
딱히 내가 끼어들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21세기 기술자이지만, 건설업에 진출하기엔 장비며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다.
석유화학 사업으로 자본을 모아서 70년대 중동 건설 붐에 올라타는 것이 훨씬 현명했다.
그게 더 이윤이 크고 훨씬 안전하니까.
재벌되는 길이 뻔히 눈앞에 있는데 내가 뭐 하러 베트남엘 가나.
“이거 실망이군. 한국 기업이 베트남 인프라 사업을 선점하지 않으면 일본 기업이 먹을 텐데, 그걸 나보고 지켜보라는 말인가? 최대한 많은 한국 기업이 참여해야지.”
“……”
물론 돈이 되는 사업이긴 하지.
하지만 국내에서 미군 군납 사업에만 참여해도 충분히 대박이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미군 인프라 사업에 왜 끼어드나.
내가 가진 거라곤 여윳돈 5만 불에 인력도 고작 2백여 명밖에 없다.
그마저도 건설사 인력이 아니다.
욕심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따르는 게 맞다.
“군복 사업도 일본 쪽 쿼터를 뺏어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내년부터 미 군복 사업만 해도 년간 25만 벌씩 팔릴 겁니다.”
“… 그래? 그럼 군복도 팔고 건설도 해.”
연간 25만 벌씩 팔린다고 하니 깜짝 놀라긴 했지만, 베트남 가라는 말을 취소하진 않았다.
“그뿐만 아닙니다. 정글용 군화, 모래주머니, 헬멧, 낙하산, 방충망, 인스턴트 포장재, 제트엔진 연료 등등 석유 화학 제품만 해도 수출량은 엄청 납니다. 석유 화학에 집중하게 해주십시오.”
“석유화학도 하고 건설도 하라니까. 고속도로와 항구 중에 택해. 어디가 좋아?”
“각하! 다른 건설사를 시키십시오. 저는…”
“나 대통령이야. 시키면 이유가 있는갑다 하고 따라야지. 미군 건설에 참여하란 말이야. 그래서 건설현장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파월 장병들을 배치하란 말이야. 그럼 우리 군인들 안전해지잖나! 전방 안 가도 될 거잖나! 안 그런가!”
“헉!”
왜 고집을 피우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였군.
최대한 많은 한국 기업을 보내서 국군을 그 주변에 배치하는 명분을 얻으려 했군.
듣고 보니 무척 당연했지만, 21세기에서 온 나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이디어였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상기된 얼굴로 되물었다.
“……”
의도는 알겠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눈먼 총알인데.
쾅!
“대답해! 명령이다!”
대통령이 응접 테이블을 내리치며 화를 냈다.
하긴 이 시대에 이렇게까지 대통령 말을 거부하던 놈이 있었을 리 없지.
더 개겼다간 제명에 못 죽겠다.
“가겠습니다. 갑니다. 헌데, 조건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뭐라고 해도 이번 생은 오롯이 내 것이다. 누구의 뜻에 동의는 할 수 있어도,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조건? 말해봐!”
“제 회사를 탐낸 놈이 있습니다. 그에 협력한 검사놈도 있었고요. 박살내 주십시오.”
“그래? 아주 산산조각을 내주지.”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이놈 봐라 하는 표정이었지만 하나로 끝낼 순 없었다.
목숨을 거는 일인데다, 여태 내가 세운 계획이 모두 엉클어지는 일이었다.
그만한 대가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미군과 하는 계약은 오롯이 제 권한입니다. 건설사를 만드는 것부터, 누굴 뽑아서 갈지, 어떻게 사업을 할지 모두 제가 결정할 겁니다. 정부 입김을 싹 거둬 주십시오.”
“정부 입김을 거둬 달라?”
“예, 정부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괜히 정부 인사가 끼어들면 달러를 벌 시간에 정치인 수발들까 우려됩니다.”
“달러를 버는데 집중하겠다?”
“예, 이왕 가는 거 최대한 벌어서 와야죠.”
좀 세게 나가서라도 최대한 정치권을 멀리 해야 한다. 내게 갑질하는 인간이 더 이상 생기면 안 된다.
“좋아. 기특한 자세군. 다 들어줄 테니, 한 달 뒤에 바로 출국할 수 있게 준비 마쳐놔.”
“한… 한 달… 말씀이십니까?”
뭐야?
아무리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해도 한 달 만에 베트남으로 가라니, 너무 한 거 아니야?
한 달 안에 뭘 어떻게 준비하라고.
< 026 : 급발진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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