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7화(27/589)
< 027 : 캐시 카우 >
“한… 한 달… 말씀이십니까?”
“그래, 한 달. 한미 정상회담이 다음 주에 있어. 차관 액수를 좀 손해 보더라도 임자가 말한 대로 각서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 미국이 딴 소리하기 전에 자네가 미군 선발대와 함께 출발하도록 해.”
“저를 선발대로 보내신다고요?”
갈수록 태산이었다.
미군 선발대와 같이 가라면 날 지켜줄 국군 장병들도 없이 가라는 말 아닌가.
“가서 미군이 시키면 고속도로든 병참 항구든 뭐든 지으란 말이야. 석유화학공장도 혼자서 지었다면서! 임자라면 뚝딱뚝딱 지을 거 아닌가!”
아니, 조사를 하시려면 제대로 해야지.
뭔 공장을 혼자서 지어요?
폐공장을 뜯어서 재조립 한 거라고요.
같이 일한 인부들이 수백 명이었단 말입니다.
하고픈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한 달이면 너무 짧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어느 정도는 마무리를 지어야 출국할 수…”
“됐어. 국내 일이야 아랫사람에게 맡기도록 해. 그리고 선발대로 가서 자리 잡히면 바로 연락해. 그쪽으로 군대를 파병할 테니까. 국군 장병들 목숨이 걸린 일이야. 잘 해야 해!”
“……”
수첩을 꺼내 텔렉스 번호를 적어줬다.
대통령 직통 번호가 분명했다.
“알았어? 몰랐어?”
“알겠습니다.”
“그래, 가서 일봐. 열심히 해.”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협상 막바지라지만 각서 준비를 일주일 만에 끝내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한 달 만에 날 선발대로 합류시킨다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안한다고 할 수 없었다.
눈앞의 양반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재벌이 되기는커녕 이 땅에 살 수도 없을 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차렷 자세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
“삼복아 나 왔다.”
“찬수야! 돌아왔구나.”
집에 돌아오니 삼복이가 내 몸을 더듬거렸다.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던가 보다.
“다들 어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걱정 마.”
다행히 직원들과 황 영감님은 괜찮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 사람들이 동네 경찰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나 뭐라나.
조만간 새로 부임할 성수동 경찰서장은 대세 실업이라면 쩔쩔맬 것 같았다.
“찬수야, 정말 대통령 각하를 뵌 거야?”
“그 양반을 만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 달 뒤에 내가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해.”
청와대 얘기를 하다 베트남이란 단어가 나오니 삼복이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뭐? 베트남으로 파병을 가? 네가 왜? 너 총이라도 쏠 줄 알아?”
“마! 군인으로 가라는 게 아니고, 건설하러 가라잖아. 가서 미군이 시키는 대로 고속도로든 병참 항구든 지으래.”
“거… 건설? 너 건설도 할 줄 알아?”
“… 당연… 아니, 울산 공장 지은 것처럼 뚝딱뚝딱 지어보래.”
“울산 공장이야 있던 공장 수리한 거고, 병참 건설은 전혀 다른 얘기지. 네가 무슨 건설을 해?”
맞는 말이긴 한데, 어째 좀 기분이 나쁜데?
나 고속도로든 항구든 다 지을 줄 아는데?
설비랑 사람만 있으면 정말 뚝딱뚝딱한다고.
“됐고, 너 나 좀 도와야겠다.”
“언제는 안 도왔냐?”
“내가 없을 동안 회사 좀 지켜라. 동남아 고객 잘 보존하고, 미국 쪽도 뚫어봐.”
원단 장사는 우리의 캐시 카우다.
사업에서 한탕 크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일정하게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줄은 매우 소중히 해야 한다.
“무슨 소리야? 너 혼자 베트남 가겠다고? 나도 가야지.”
나랑 같이 간다고? 전쟁터에?
정말 삼복이는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올 기세였다.
“마! 둘 다 없으면 우리 회사는 누가 지켜? 검사 새끼들 들이닥치는 거 못 봤어? 주변에서 우리 사업을 노리는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니야. 우리 공장뿐만 아니라, 혜성도 지켜줘야 한다고.”
“그… 그래도 너 혼자 가면 어째. 건설 일이라고는 해도 전쟁턴데.”
‘넌 그런 전쟁터를 나 때문에 가려는 거냐…’
삼복이 말에 울컥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벌컥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애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자. 내일 날 밝자마자 용산 가야할 것 아냐.”
“용산? 왜?”
“왜긴 왜야? 미군 용품 쓸어 와서 분석해야지. 그래야 납품을 하지. 군복 납품한다고 말했던 거 잊었어?”
“아, 맞다. 이중구조 원단이 있었지. 그거 만들려고 서울로 펠릿 싣고 달려온 거였지.”
삼복이 녀석, 이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삼복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왕 목숨 걸고 베트남 가는 데 돈 한 번 왕창 벌어보자. 군복, 야전상의, 판초우의, 양말, 배낭 할 것 없이 옷감으로 만든 건 다 입수해. 샘플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구할 수 있는 건 다 가져와봐.”
“제대로 해볼 생각이구나.”
어쭈, 녀석이 바로 감을 잡네.
“당연하지. 습한 동남아에선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이중 구조 원단이 최고야. 폴리텍이란 상호로 내놓자.”
폴리에스터는 기본적으로 물에 젖지 않기에 가볍고, 통기성이 좋고, 빨리 마른다.
그런 폴리에스터를 나일론과 조합해 이중으로 원단을 짜면, 일명 폴리텍이라 불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단이 되는 거다.
나일론이 땀을 빨아들이고, 주변의 폴리에스터가 땀을 분산시켜 공기 중으로 재빨리 발산시키거든.
폴리텍 원단의 유일한 단점이 워낙 통기성이 좋아서 보온력이 떨어진다는 거다.
폴리텍 아웃도어를 겨울에 입으려면 꼭 바람막이 외투를 걸쳐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보온력 따윈 필요 없지.
습기와 땀을 밖으로 배출하는 군복을 내놓으면 그냥 히트 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폴리텍? 왠지 있어 보이는 상호다. 너 정말 베트남 전을 예상하고 폴리에스터를 그렇게나 많이 뽑았던 거야?”
“어쩌다보니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진 거야.”
최대한 돈을 긁어보자.
원래 역사에선 국군 군복만 국산이었고, 미군 군복은 죄다 일본산이었다.
미군 군복 시장을 내가 장악한다고 나쁠 건 전혀 없었다.
나비 효과가 분명 있겠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겠나. 일본 기업 따윈 어찌돼도 상관없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긴 한데, 나라에서 네게 시킨 일은 건설 아니냐? 하청 건설사부터 섭외해야 하는 거 아니냐?”
“뭔 하청이야? 이 참에 건설사 만들어야지.”
계획이 모두 엉클어지긴 했지만, 이왕 하게 되었다면 건설사를 만들어야지.
나도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나기 전에는 건설사를 만들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또… 시작이냐? 대세 화학 하나만 해도 지금 우리 금고가 텅텅 비었다고.”
“걱정 마라, 돈 별로 안든다. 미군이 무상으로 자재를 공급하고 건설 장비도 무상 임대해주니까 우린 몸만 가면 된다.”
“뭐? 무슨 그따위 일이 있어? 미군은 자선 사업한다는 거야, 뭐야?”
“무슨 자선사업이야? 우리가 하청업자로 가는 건데. 베트남에 미국 근로자들 데려다 쓸려면 돈을 얼마나 줘야겠냐? 네가 미국인이면 자칫하면 뒈지는 전쟁터에서 일하고 싶겠어?”
“……”
우리에겐 기회로 여겨지지만, 미국 근로자들에겐 단순 건설 노동이라 그다지 높은 수당을 받는 일도 아니고, 가족과 떨어져 동남아 후진국에서 일해야 하고, 심지어 생명마저 위험한 일이다.
“그런 전쟁터에 찬수 네가 간다고?”
생각해보니 가서는 안 될 것 같지?
“목숨만 건지면 나름 대박이지. 월급 400불은 기본으로 받을 걸? 딱 1년만 하고 돌아올 테니, 회사 잘 지키고 있어라.”
“월급이 400불? 정말이냐?”
평균 근로자 봉급의 7배가 넘는 돈이었다.
각종 수당까지 더해 1년 정도만 일해도 10년 치 연봉에 육박하는 돈을 버는 꼴이었으니, 웬만한 기술자들이 서로 베트남 가려고 줄을 섰었다.
“그렇다니까, 하청 공사가 그 정도인데 미군 군납 시장은 얼마나 크겠냐? 내일부터 빡세게 미군 군장 모아보자. 일단 지금은 잠부터 자자.”
“덜덜 떨려서 잠이 안 온다. 너 살아서 돌아오는 거지?”
“그 말은 한 달 뒤에 출국할 때 해야 하는 말 아니냐?”
“마! 지금이 농담할 때야?”
“그만하고 잠이나 자자니까.”
나는 발꿈치로 녀석을 밀어서 도롱이처럼 이불 채로 돌돌 말아줬다.
꿈틀거리던 녀석도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덜덜 떨려서 잠이 안 온다더니, 잠이 안 오긴 개뿔이 안 와.
‘젠장, 원래는 군복으로 대박치고 중동 건설 붐을 노리려고 했는데… 베트남에서 건설이라니.’
외려 내가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창밖의 초롱초롱한 별빛처럼 정신이 말똥말똥하다고나 할까. 아직도 청와대에서 겪었던 긴장이 풀리지 않은 탓이리라.
대박인 듯 아닌 듯 불안하긴 나도 매한가지지만, 이왕 일이 이리 된 거 제대로 해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원래 역사에서는 병참 기지 건설은 현산건설이 대박쳤던 사업 아니었나? 아마, 깜란 항만이었지? 내가 해도 되려나?’
미군복 납품과 달리 내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나비효과가 엄청날 것 같았다.
현산건설은 미군이 주도한 태국 고속도로 사업에서 쪽박을 찼다가, 깜란 항구 건설로 대박을 치면서 손해를 만회하니까 말이다.
“깜란 항구는 좀 그런가?”
내가 깜란 항구를 낚아채면 현산건설은 그대로 폭삭 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오지랖 넓은 성격도 아니고 남 걱정해줄 필요는 없지만, 굳이 현산 건설의 앞길을 막을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다.
나비 효과로 현산 건설이 깜란 항만 공사를 맡지 않는다면 내가 꿰차면 되는 일이고 말이다.
‘일단 깜란을 제외하면 사이공, 다낭… 하나가 어디였더라? 아, 뀌년이었지!’
동남아에서 플랜트 프로젝트를 했던 전생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되었다.
베트남의 뀌년 항구는 미군 병참 항구로 개발되었다가, 21세기에 들어서는 동남아시아 4대 항구로 불릴 정도로 큰 국제항구로 성장했다.
“그래, 뀌년이 좋겠네.”
원래 역사에서 한신통상이 대박쳤던 곳이다.
21세기에 리만 사태로 망해버리는 해운사니, 지금 망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총수 집안이 갑질로 유명한 곳이잖아.
나비 효과를 우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잠이 쏟아졌다.
***
다음날,
“네가 말한 대로 미 군용품 싹 쓸어왔다.”
삼복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차 트렁크에서 온갖 물건을 쏟아냈다.
새벽 일찍 사라져서 점심 먹기 전에 되돌아왔다.
이 녀석도 한국인이 분명했다.
주배낭, 보조배낭, 반합, 개인천막, 모포, 침낭, 전투복, 판초우의, 탄띠, 전투화, 런닝, 팬티, 양말, 전투모, 숟가락, 세면도구 등등 정말 총과 수류탄만 빼고 다 가져온 것 같았다.
“어후, 잘도 구했네.”
“용산 미군부대 옆에 가니까 진짜인지 짜가인지 모르겠다만 많이 팔더라. 최대한 진짜 미제로 골라서 종류별로 가져왔다.”
“군복, 배낭, 판초우의, 양말에 집중해야겠네.”
“응, 네가 말한 대로 폴리텍 원단으로 만들면 어째 비벼볼 만 할 것 같더라. 그런데, 그리 만들면 납품할 수는 있는 거냐? 미제야 싣고 오기 어렵다고해도, 일제는 품질이든 가격이든 우리보다 나을 텐데.”
“마! 비벼 볼만한 게 아니라 압도할거라니까. 이중 원단으로 기본 품질은 확실하고, 봉제 인건비가 싸니까 가격 경쟁력도 있을 거다.”
일본이 한해에 팔았던 군복은 최고로 많았을 때가 25만 벌에 달했다.
그 물량을 몽땅 내가 차지해버릴 거다.
“그래, 그래. 사장님이라면 그런 자신감은 있어야지. 헌데, 꿈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잖아. 대세 실업 군복이 일제 품질을 압도한다고 말해봐야, 미국 놈들이 콧방귀나 끼겠냐?”
“… 쩝…”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 군납을 들이밀 때는 밴 플린트를 끼고 들어가야 하나? 제대로 평가해달라고 말이지.
아냐, 늘 일이 있을 때마다 줄을 타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질 못 한다.
한마디로 코가 꿰는 거다. 어쩌지?
“미끼 상품을 같이 들이미는 건 어떨까?”
“미끼?”
삼복이가 요상한 말을 했다.
< 027 : 캐시 카우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