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8)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8화(28/589)
< 028 : 진달래 철공소 >
“미끼?”
미끼라는 삼복이의 말이 심상찮게 들렸다.
“그래, 미끼 상품을 끼워주는 거지. 군복 1벌에 양말 한 켤레씩 끼워준다고 하면 어때? 일제보다 잘 마른다고 말이야.”
“양말을 끼워준다고?”
“폴리텍 원단은 뽀송뽀송하고 극단적으로 잘 마른다며. 베트남 정글에선 면양말보다 백배는 낫겠지. 게다가 양말 한 짝 정도는 군복에 끼워줘도 그다지 손해도 아니잖아.”
군납 입찰에 끼워 팔기가 어디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소리도 아니었다.
‘미끼… 미군 병사들에게 양말보다 더 절실한 게 없을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팍하고 불이 켜졌다.
베트남 전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그걸 들이민다면, 미끼 상품 전략은 성공한다!
그래! 정글 군화! 베트남전 전용 군화!
“정글 군화! 허, 삼복아… 너 천잰데?”
“정글 군화? 뭐야? 양말을 끼워주자니까.”
삼복이의 말로부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머릿속으로는 정글용 군화도 납품해야지 생각했음에도, 그 상품을 미군 납품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못했다.
“아냐, 아냐, 정글용 군화를 미끼로 써야해. 그럼 미군은 우리 제품을 쓸 수밖에 없을 거야.”
“그래? 근데, 정글용 군화가 따로 있냐?”
“당연하지. 잘 마르고, 배수구까지 뚫려있는 베트남 정글 전용 군화!”
“군화에 배수구가 뚫려 있다고? 허참…”
삼복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난 OB들에게 정글용 군화에 대해서 재미있는 얘기를 몇 번 들었다.
미군은 베트남전 초기부터 군화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단순히 습기나 물이 아니라, 열대 밀림에서 수십 년째 썩었던 진흙이 썩은 물과 함께 군화로 기어들어오면 감당 못할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처음엔 불쾌한 정도지만 썩은 진흙이 사나흘 정도 군화에 머물면 발이 팅팅 붓는 정도가 아니라, 발바닥이 다 벗겨질 정도로 참호족염이 심했다고 했다.
웃긴 건 허접한 샌들을 신고 다니던 베트콩은 썩은 진흙은 밟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신발에 실리는 체중 때문에 썩은 진흙이 밖으로 흘러나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군은 기존 군화를 모두 정글용 군화로 교체했다.
목 부분은 가죽대신 잘 마르는 천을 쓰고, 배수구를 뚫어 썩은 물이 들락날락 할 수 있게 했다.
완벽하게 방수를 못할 바에는 차라리 배수구를 뚫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고, 실제로 적용했더니 매우 효과적이었다.
정글 군화는 더욱 발전해서, 군화 앞부분을 철판으로 보강해서 베트콩이 설치한 꼬챙이 함정으로부터 발을 보호했단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국군 장병들은 미군의 그런 정글용 군화를 엄청 부러워했는데, 예외가 있었다고 했다.
국군 해병대, 즉 청룡 부대가 신었던 군화만큼은 미군 정글 군화 못지않게 품질이 좋았단다.
우리나라 해안의 뻘도 베트남 밀림 못지않게 열악한 환경이기에, 해병대 군화는 뭐가 달라도 달랐던 모양이다.
해병대 군화를 모방해야 해!
“삼복아, 을지로 신발 거리 알지? 가자!”
“알긴 안다만…”
“어서 가자니까.”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오래된 신발가게는 대부분 을지로에 있다.
60년대인 지금도 분명 해병대 군화를 만들어본 기술자가 을지로에 있을 거다.
***
「청송 수제화」
“삼복아 저 가게 앞에 세워줘.”
“어? 아는 가게야?”
“그냥 느낌이다.”
“어후. 그 놈의 느낌.”
21세기에 언뜻 본 것 같은 가게였다.
수제 등산화로 유명한 곳이었다.
60년대 수제화 가게야 무슨 신발이던 만들던 때니까 해병대 군화도 있을 것 같았다.
“계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등산화를 취급하시네요.”
“그럼요, 많이들 찾으십니다.”
나는 선반에 놓인 신발을 보고 반가웠다.
이름은 등산화라고 적혀 있었지만, 죄다 군화를 닮아 있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다웠다.
“인사부터 드릴게요. 저는 대세 실업 우찬수 사장이라고 합니다.”
“엇, 저는 명함이… 임송정이라고 합니다.”
“저… 저는 대세 실업 이삼복 부장입니다.”
어리바리했지만 삼복이까지 신발가게 사장과 명함을 주고 받았다.
비즈니스를 논하려면 일단 명함부터 건네는 게 예의가 아니겠나.
그래야 이것저것 물어보기 편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들이 군화를 납품하는 사람들인데 신형 군화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신형 군화라고요?”
“혹시 해병대가 신는 군화를 아십니까?”
“아, 육면 군화요? 알죠. 그런 스타일로 등산화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거든요.”
“육면 군화요? 군화가 각이 졌나요?”
육면 군화라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하, 6면체 군화가 아니고 해병대 군화에 쓰는 가죽이 육면 가죽이라 육면 군화라 부릅니다.”
“육면 가죽이 뭔가요?”
“가죽 외피를 벗겨 내피만으로 만든 게 육면 가죽입니다. 유연한 것도 장점이지만, 가죽 표면에 진흙이나 물방울이 몽실몽실 맺혀서 잘 털리죠. 젖어도 빨리 마르고 물이 잘 빠지죠. 일반인들이야 흔히 세무 가죽으로 부르는데, 육면 가죽이 정식 명칭입니다.”
전문가답게 가죽 분류부터 특별했다.
여하튼 해병대가 육면 군화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죽 표면이 잔털로 거칠어서 푹 젖어도 빨리 마르고 물이 잘 빠지는 거네.
일종의 투습성이 있는 재질인거다.
“그럼 혹시 육면 군화를 닮았다는 그 등산화를 볼 수 있을까요?”
“예, 육면 등산화가 한 켤레 있긴 있죠.”
수제 등산화 가게 사장이 육면 등산화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척하고 가져왔는데 딱 내가 찾던 스타일이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군화 스타일 말이다.
밑창도 두껍고 패턴도 단순한 것이 접지력도 좋을 것 같았다.
“사장님, 이 등산화에 목을 더 높이 세워주실 수 있나요? 가죽이 아니라 저희들이 원하는 천을 덧대어서 말입니다.”
“목 부분에 가죽 대신 천을 덧대요?”
“예, 그럼 더 잘 마를 것 아닙니까. 신형 군화로 해병대에 납품해보려고 하거든요.”
“허허, 신기하군요. 여하튼 못할 것 없죠. 테두리에만 가죽을 대면 모양은 유지가 될 테니까요.”
“신발 코에는 양철 판을 대 주세요. 금속 꼬챙이에 찔려도 괜찮게 말입니다.”
“신형 군화에는 양철 판을 대는군요.”
가게 사장은 맞춤 요구에 익숙한 듯 수첩에 이것저것 적기 시작했다. 수제화 가게다웠다.
“하나만 더요. 군화 옆구리 아래 봉제선 근처에 배수구를 좀 뚫어주세요. 물이 들락날락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예에? 방수 처리가 아니라, 배수 구멍을 만들어달라고요?”
경험자 말론 베트남 정글에선 아무리 군화에 방수 처리를 해봐야 소용없었답니다.
차라리 송곳으로 배수 구멍을 몇 개 뚫어주는 것이 훨씬 유용했다니, 그리 믿어야죠.
“그렇게 만들면 한 켤레에 얼마나 할까요?”
“글쎄요. 좀 손이 많이 가니까, 만원은 하겠죠?”
만원을 부르다니 역시 수제화다웠다.
이 시대에 만원이면 기능공 월급의 2/3이며, 달러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37불이었다.
“천 켤레, 아니 만 켤레를 만든다면 단가가 얼마나 떨어질까요?”
“헉! 그렇게나 많이요?”
“군인들에게 납품하려고 한다니까요.”
“그 정도 물량이라면 5000원까지는 어떻게 될 것 같군요.”
“그럼 샘플로 몇 켤레 만들어주세요. 저희들이 납품을 시도해볼까 하거든요.”
“예, 해보겠습니다. 사흘 뒤에 오시면 받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신발값을 미리 치르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대충 10만 켤레를 납품하면 단가를 2500원, 대략 10불쯤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럼 30불에 납품하면 되겠지?
딱 세 배 장사만 하자.
“10만 켤레면 단가를 2500원쯤에 맞출 수 있겠는걸? 그 정도 물량이면 되겠지?”
어라, 삼복이도 비슷한 계산을 했다.
“응, 10만 켤레쯤은 생각해야지. 샘플 나오면 여기 가게에 먼저 발주주고, 캐퍼 계산해서 다른 하청 업체도 알아보자.”
10만 켤레는 팔고도 남을 거다.
미군이라면 이걸 한번 신으면 안 신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청 준다고? 군화 공장은 안 만들어?”
“군화는 길게 끌고 갈 사업은 아니니까. 네 말대로 군복 납품을 위한 미끼 상품에 불과해.”
“이제 이걸 어디를 통해 미군 조달 담당의 손에 쥐어주냐가 문제네. 너 미국 회사 찔러볼만한데 아는 곳 없냐?”
“아니, 없어.”
밴 플린트를 통하면 되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물은 거물답게 아껴둬야 한다.
이 정도의 이권으로 끌어들이면 내 그릇이 그 정도로 끝나는 거다.
이 정도는 나 혼자서 해내야 한다.
그래야 밴 플린트와 동등한 수준에서 딜다운 딜을 할 수 있다.
“아는 사람 없어? 일전에 미 대사관으로 전화하는 것 같더만.”
짜식, 꽤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이 일과는 관련 없는 사람이야. 그냥 내게 맡겨줘. 너는 군화 샘플이나 챙겨줘. 구 반장들에게 군복 원단 뽑게 하고, 동대문 쪽에 봉제 업체도 섭외해야지.”
“그러고 보니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구 반장들 한명은 군화 쪽으로, 한명은 봉제 쪽으로 업무 분장 다시 해. 너 혼자서 다 뛰어다니진 못할 거야.”
“알았어. 그럼, 너는? 울산으로 다시 갈 거야?”
“아니, 부산으로 갈 거야.”
“부산? 뜬금없이 부산엘 왜 가?”
삼복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베트남 가려면 부산항에서 출발하잖아. 거기서 꼭 실어가야 할 게 있어.”
“아, 그래? 그럼 후딱 가야겠네.”
“바로 갈게. 수고해줘.”
“지금 간다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겠다.”
“일주일 뒤에 올라올 게. 그때까지 샘플 확보해 놔! 알았지?”
“아, 예에에. 사장뉘이임.”
가져갈 물건이 있다고 핑계를 댔지만, 실상 베트남에 가기 전에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나 나비 효과로 길이 엇갈릴까봐 그간 부산 근처도 안 갔는데, 지금이라면 내 아버지가 전포동에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아버지, 기다려요. 아들 갑니다.’
내 아버지의 인생을 바꿔줄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그길로 부산으로 향했다.
나비 효과 따윈 두렵지 않다.
난 모든 걸 바꿀 거다.
내 부모님의 인생이라면 더욱 더.
***
부산 전포동 철공소 골목.
왕복 2차선 차로 옆으로 줄줄이 철공소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군. 그때나 지금이나… 아니, 지금이 그때보다 이전이네.”
내 기억 속에 있던 철공소 아저씨들이 훨씬 젊은 얼굴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진달래 철공소」
분홍빛 페인트로 상호를 적은 곳이 보였다.
간판이 깨끗한 걸 보니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지지직. 지지직.
내 아버지가 용접을 하고 있다.
‘계시네… 다행이네.’
눈물부터 났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었다.
그 마음을 누르자니 한참동안 숨 고르기를 해야 했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근처에서 지켜보았다.
처음부터 숟가락을 찍어내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베트남 파병이 있었을 때 철공소를 시작했다는 말씀이 사실이었다.
그때 기회를 잡았어야 했다고 늘 아쉬워하셨지.
“이보세요. 용접 불꽃을 그리 빤히 쳐다보면 눈 다 버립니다. 이런, 눈이 벌써 시뻘건데요.”
“쳐다봐서 그런 게 아니고,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겁니다.”
“뭐, 찾는 게 있습니까?”
“철공소 이름치고 특이하군요. 진달래 철공소라뇨.”
나는 짐짓 딴 소리를 했다.
제 시간에 찾아왔는지는 확인을 해야 했다.
총각 때라면 이대로 물러났다가 다시 찾아와야 했다.
“제 아내가 진달래를 하도 좋아해서 말이죠.”
‘휴우… 다행이네.’
난 부모님이 정확히 언제 결혼했는지도 몰랐다.
두 분 다 계시니 된 거다.
“젊어 보이는데 결혼하셨군요.”
“나이는 젊어도 경력은 꽤 됩니다. 뭐든 맡기시면 잘 만들어드립니다. 용접 제품이든, 기계 수리든, 단순 철제 제품이든 다 취급합니다.”
내 아버지가 불쑥 기술 자랑을 했다.
내가 뭘 맡기러 온 손님으로 보였나보다.
“용접을 잘 하시면 컨테이너를 주문해 볼까 합니다.”
“컨테이너요?”
“외항선에 물건 실을 때 쓰는 큰 철제 박스를 그리 부릅니다.”
“아, 짐 싣는데 쓰는 거군요. 그 용도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죠.”
“그걸 좀 변형할 수 있을까요? 배에서 물건 실을 때도 쓰고, 항구에 내려서는 집으로도 쓸 수 있게끔 말입니다.”
“집으로 쓰신다고요? 뭐… 손님이 요청한다면야 뭐든 못 하겠습니까?”
역시 내 아버지네. 뭐든 할 줄 안다고 하네.
“뭐든 하신다니 좋군요. 대세 실업 우찬수 사장이라고 합니다.”
나는 척하니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했다.
“김… 김춘석이라고 합니다.”
“나랑 돈 좀 벌어보실래요, 김 사장님?”
“예에?”
악수를 청하자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철공소 안에서 뭔 일인가 하며 살짝 내다보는 앳된 얼굴의 어머니가 보였다.
“아유, 오늘따라 눈에 계속 먼지가…”
< 028 : 진달래 철공소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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