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8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86화(286/589)
< 286 : 줍줍 >
내가 스케치해준 중형차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 시대의 기술로 될까 싶었던, 매끈한 유선형의 보닛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금형 뜬다고 고생 많았겠네.”
“말도 마라, 대체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돈 들인 보람이 있지 않냐?”
삼복이는 여전히 보닛에 뺨을 대고 비벼대고 있었다. 대충 전장이 4.8m는 되는 것 같고, 전폭도 1.8m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헤드라이트도 개구리 눈알에서 벗어났네.”
“처음엔 네가 스케치를 잘못한 줄 알았어. 쭉 찢어진 눈이라 엄청 못되게 보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달아보니 스마트하게 보이는 게 멋지더라구.”
확실히 70년대 세단보다 21세기 세단에 가까웠다. 미국 애들이 환장할 디자인이 분명했다.
“이제 감탄은 그만하고 달려봐야지.”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사장님. 하하.”
삼복이가 문을 열어줬고, 우리 둘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기 비서, 여천까지 부탁해요.”
“예, 사장님.”
좌석에 앉아보니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장인어른이 선물해준 리무진만큼은 아니지만, 바닥 카펫도 질이 좋고, 각종 내장재에 가죽과 플라스틱이 적절히 조화된 것이 매력적이었다.
로열로더의 후속작답게 세단임에도 스포티한 멋이 있는 인테리어였다.
부르릉,
묵직한 엔진 소리와 함께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고속도로에 올라타자마자 냅다 가속을 하는데, 마치 거울 위를 내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장재의 대부분은 대세석유화학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것이며, 이런 승차감을 안겨주는 타이어도 대세석유화학의 제품이다.
역시 대세 그룹의 근간은 석유화학이다.
“멋지네. 가속력이며 서스펜션이 죽여줘.”
제대로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제로백이 10초대는 충분히 나오는 것 같았다.
놀라울 정도의 성능이었다.
“하하하, 기 비서. 우리 사장님 놀라시게 더 밟아봐. 꽈악!!!!”
“예, 전무님! 두 분 다 안전띠 매십시오.”
부아아아앙~~
나름 액셀을 밟으니 150을 가뿐하게 넘어갔다.
고속도로에서 그보다 더 가속을 할 순 없었기에 금방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머리가 뒤로 휙 젖혀질 정도로 가속력이 좋았다.
“삼복아, 대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차가 이리 잘 나가?”
“놀라지 마라, 이거 2000cc 엔진 기준으로 155마력까지 나온다. 트랙에서 실험했을 때는 최고속도가 시속 190까지 나오더라.”
“아니, 어떻게!!”
무슨 1970년대 차가 시속 190이야?
아무리 터보차저를 사용했다고 해도 190은 무리일 텐데.
“놀라지 마라. 우리가 DOHC를 구현했다.”
“DOHC?”
“크크, 처음 듣지? 미국에서도 개념은 나와 있다만 우리가 세계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네가 말 한 MPI(Multi-Point Injection) 연료 분사 방식과 찰떡궁합이더라.”
깜짝 놀라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가르쳐줄까 말까 했는데, 우리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엔진을 업그레이드 했다.
어쩐지 가솔린엔진 개발이 오래 걸린다 싶었다. 인간이 아닌 자들이 자기 한계를 또 깨부쉈어.
“DOHC라면,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각각의 캠 샤프트로 여닫는 걸 말하는 거지?”
DOHC 개념 자체는 1950년대부터 나오긴 했다.
경주용이나 최고급 수제 차에 간혹 적용하긴 했지만, 그걸 양산 단계까지 올리긴 결코 쉽지 않다.
“오, 너도 아는구나. 나만 그 논문 처음 본 거였냐? 천재들은 죄다 숨어서 공부하나 봐.”
DOHC 엔진을 쓰면 흡기와 배기 효율이 좋아져 같은 배기량에서도 출력이 월등히 높아진다.
차기 후속작에 히든카드로 쓰려고 했더니, 우리 엔지니어들이 먼저 선수를 쳤네.
“연비는?”
“리터당 13.5km, 물론 우리 엔진오일을 썼을 때 기준이야.”
연비도 아주 좋다.
21세기 전자제어식 승용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70년대에 이만한 승용차라면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한번 해볼 만하다.
특히 기름 먹는 하마인 미국 차와 비교하면 거의 신개념 차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인증센터에 바로 보내야지.”
“물론이야. 지금 시제품으로 20대 정도를 만들어서 미국으로 보낼 거야. 로열로더가 대유행이라 이것도 금방 승인 날 거야.”
이번에는 자동차인증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염려는 없어 보였다.
“5마일 범퍼 장착해야 하는거 알지?”
“당연하지. 미국에 보낼 땐 장착해야지. 너무 안 이뻐서 떼고 온 거야.”
미국은 시속 5마일(약 8km)로 부딪혔을 때, 헤드램프나 연료공급 계통이 망가지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단박에 외형을 망치는 주범이지만, 가벼운 사고 발생 시의 수리비용 절감을 위해 미국 정부가 연방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준비 잘하고 있구나. 이번 박람회 가서 자랑할 게 하나 더 생겨서 너무 좋은 걸?”
“이런 물건을 사우디에서 먼저 오픈하려고? 뉴욕에서 해야 하는 거 아냐?”
“사우디도 장점이 있잖아. 인증 중인 제품을 미국에 팔 수는 없지만, 사우디는 다르지. 거긴 왕국이잖아. 왕 마음에 들면 바로 팔 수 있다고.”
“호오!!!!”
사우디는 우리에게 지프차를 사간 첫 번째 고객이지 않은가. 대접은 해줘야지.
로열로더도 이제 조금 물량에 여유가 생겼으니 사우디에도 좀 풀고 그와 함께 세단까지 내놓으면 대번에 납품하라고 할 것이다.
왕족들이야 럭셔리 리무진이나 벤츠를 몰겠지만, 일반 국민들에겐 한국 차를 사게끔 장려할 수도 있는 거다.
70년대 대한민국은 번갯불에 콩을 구워도 팝콘처럼 맛났다.
***
여천 대세자동차 공장.
“와아아아! 사장님 오신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던지 직원들이 정문에 줄을 쫙 서서 환영을 해줬다.
“다들 바쁠 텐데, 마중까지 나온 겁니까?”
“대세조선에 명명식이 있다면, 우린 시승식이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에에에에!!”
삼복이가 옆에서 대뜸 사람들을 부추겼다.
대세조선에선 명명식 때 해당 선박 건조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휴가다.
명명식 때마다 회사 앞 먹자골목이 흥청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장님, 오늘 점심 특식으로 드셔야죠.”
직원들을 대신해 주영길 과장이 운을 띄웠다.
“특식 정도로 되겠어요? 팀별로 모여서 술도 한잔해야죠.”
“다들 들었죠! 제가 오늘 사장님이 크게 한턱 내실 거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와아아아아!”
“사장님, 최고!”
“사장님!!! 소고기 먹어도 됩니까?”
“오늘은 팀 경비 무제한이니, 회를 먹든, 장어를 먹든, 꽃등심을 먹든 맘대로 드십시오! 전원, 먹자골목으로 돌격!!”
“돌격!!! 와아아아아아!”
개발팀이 로열프린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이들을 죄다 모은 것 같았다.
협력업체 복장을 한 이들도 꽤 있었으니까.
상관없다. 기껏 수백 명 정도인데, 내가 그 정도 회식비를 커버 못하겠나.
“어딜 가요! 주 과장. 나랑 한잔해야죠.”
“켁!”
“심 과장도요.”
“예, 사장님.”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던 주 과장과 심 과장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자연스레 나, 삼복, 주 과장, 심 과장이 연탄 불판 하나를 두고 둘러앉았다.
꼼장어 구이를 시켰는데, 주변 식당에서 홍어 삼합에 뼈회도 드셔보라며 가져오니 푸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인들이야 물주인 내가 너무 고마울거다.
“건배!”
“로열프린스를 위하여!”
“위하여!”
지나가던 시민들이 ‘대세 직원들이네’, “좋겠다…” 등등 한마디씩 하고 갔다.
대세 직원들이라면 사회적으로 인식도 좋고, 돈도 많이 벌기에 일등 신랑감들이었다.
“이 전무에게 들었는데, 이번에 개발한 가솔린엔진이 DOHC 엔진이라면서요?”
“예! 경주용 차라면 몰라도, 일반 승용차에선 세계 최초 양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 과장, 어떻게 그걸 만든 겁니까?”
“심 선배가 하면 될 것 같다고 하기에 했죠.”
주 과장이 소주잔을 휙 비우며 심 과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심 과장은 손을 마구 저어댔다.
“아, 아닙니다. 제가 개발한 게 아니고, 주 과장이 논문을 가져왔기에 저야 이것저것 만들어 본 것 뿐입니다.”
논문을 봤다고 그게 만들어지면 세상에 개발 못할 사람이 어디 있나?
“주 과장, 논문은 또 어찌 구했어요?”
나는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했다.
분명 이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 스스로 뛰기 시작한 것인데, 계기를 알고 싶었다.
“뭐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장님께서 실린더 하나당 흡기 밸브 두 개를 배정하자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개수를 바꿀 수 있다면 제어방식도 바꿔도 될 것 같기에, 캐나다 파견자와 대세 장학생들을 괴롭혔죠. 밸브 제어 관련 논문이나 책을 싹 조사해서 보내라고요.”
“대세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했군요.”
드디어 정보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우리 대세는 매년 우수 직원들을 몇 명씩 뽑아 유학을 보낸다.
대세 6박사는 그들에게 대선배격이니, 주 과장의 요청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21세기야 유학생이 넘쳐나지만, 지금은 대세 유학생이 100명도 채 안 될 테니 6박사를 주축으로 아주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졌겠군.
“예, 그래서 건진 게 이 논문입니다.”
주 과장이 품에서 논문을 꺼내 보여주었다.
경주용 차에서 출력 향상을 위해 DOHC를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연구했던 논문이었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던지 종이가 너덜너덜할 지경이었다. 관련 참고문헌도 죄다 찾아서 읽어봤던지, 주석도 꼼꼼히 달아놓았다.
“이 정도 자료로 DOHC 엔진을 만들어내다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니고, 심 선배가 했다니까요. 이 방식, 저 방식, 다 합쳐서 최소 엔진 20개는 깨 먹었습니다.”
“아니, 주 과장. 그걸 지금 실토하면 어째요. 회식 끝난 뒤에 털어놓기로 했잖아요.”
“아!!!”
“하하, 괜찮아요. 괜찮아요. 한 80개 깨 먹을 줄 알았는데, 20개면 아주 양호하죠!”
이미 삼복이가 중간중간 보고했기에 비용이 많이 깨지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정도 비용으로 DOHC 엔진을 개발한다면 그보다 10배를 더 써도 된다.
우리 직원들에게 하면 된다고 자기 확신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미국이고 일본이고 별거 있겠냐며 쫄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고 실험을 거듭해 결국 성공했다.
드디어 이들이 배우는 법을 배운 거다.
이들 몸에 성공 DNA가 새겨졌다.
대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나는 소주잔을 들며 속으로 이들을 축하했다.
‘아우, 취한다. 바람 쐬러 가자.’
삼복이가 내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담배도 안 피우는 녀석이 무슨 바람을 쐬나.
내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마시고 있어요.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예, 다녀오십시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주변에서 직원들도 소주잔을 들고 일어섰다.
“주 과장님, 한잔 받으세요.”
“심 과장님도요. 오늘은 야근 없습니다!!!”
“으아아, 조금만, 조금만, 악, 넘친다!”
“으하하하!”
주 과장과 심 과장은 동료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좋았다. 유머와 실력을 두루두루 갖췄기에 그런 모양이다. 아, 심 과장은 유머는 아닌가.
“좀 걷자, 사장이랑 전무는 이쯤에서 빠져줘야 맘껏 먹고 마시지.”
“그래, 네 말이 옳다.”
삼복이의 말에 나도 녀석을 따라 걸었다.
남쪽 동네라서 그런가, 어디선가 아카시아 꽃향기가 밀려왔다.
“이번에 사우디 출장 가면 한참 있다 오겠네. SNOS 외에도 수주할 게 잔뜩이라며?”
“응, 로열프린스도 나왔으니 너도 같이 가자.”
“나도 필요해?”
“어, 필요하다. 간 김에 수주도 따고 이래저래 들릴 곳이 많은데 박람회를 지켜줄 호스트가 필요하다. 네가 딱이지.”
로열프린스 개발이 끝났으니, 삼복이도 한숨 돌려야지.
“여기저기 들른다고? 뭔 비즈니스인데?”
“로열로더가 돈이 되는 건 맞는데, 옮기는 배에 빈칸이 너무 많잖아. 이참에 화물선 쇼핑 좀 할 생각이거든.”
사우디에 간 김에 로로선(Roll on-Roll off 선박, 자동차 운반선)과 컨테이너 전용선을 사 올 생각이었다.
“엥? 화물선 쇼핑을 한다고? 배는 대세조선에서 만들어야지, 뭔 쇼핑을 해?”
“직접 만드는 것도 좋지만, 지금처럼 중고 선가가 폭락했을 때 잔뜩 사는 것도 좋은 투자야.”
이참에 대세해운의 덩치를 키워놔야 한다.
게다가 최신식 중고선을 잘 고르면 기술이전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어디서 살지 벌써 다 생각해둔 눈친데?”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사우디 친선협회 박람회에 적극 동의하고 나선 거야.”
“사우디가 배도 팔아?”
“사우디는 무슨, 바레인이 팔지.”
“바레인?”
“거기 우리가 수리조선소를 만들어줬잖아. 금융거리와 함께 말이야.”
“거기서, 무슨 배를 산다고… 아!! 저당 잡힌 놈이라도 있는 거냐?”
“빙고! 바로 그거야. 도박판에서 판돈 다 잃은 놈이 차 맡기고 도망치는 것처럼 거기도 마찬가지야. 해운업은 도박판이거든.”
해운사가 급전이 필요하면 수리조선소에 배를 정박시켜두고 수리비를 조달한다는 명분으로 돈을 빌리기도 한다.
그런데, 오일쇼크는 차원이 좀 다르지.
오일쇼크로 유가가 몇 개월째 고공행진을 하는 이때, 굵직굵직한 해운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일쇼크 이전에는 해운사의 전체 운용비용에서 연료비의 비중은 대략 1/4 이하였지만, 이젠 1/2 정도로 폭등한 상태다.
원래 역사에서 이때 해운업계에서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OB들에서 들었었다.
일명 FSS(Fast Sealift Ship), 또는 SL-7으로 불리는 고속 컨테이너선을 보유했던 대형 해운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말이다.
연료를 많이 쓰긴 해도 고속선으로 빨리 오가면서 운행횟수를 늘리고 급행료를 받아 이익을 남기던 해운사였다.
다른 경쟁사 선박에 비해 3배나 많은 연료를 쓰기에, 지금 같은 고유가에선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곧 적자였다.
그런 배는 여느 해운사엔 골칫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다르지.
값싼 LNG 연료통을 갖다 붙여서 수출용 컨테이너선이나, 로로선으로 개조하면 되고, 한두 척 정도는 우리 해군의 고속 보급선으로 개조해서 뀌년에 배치해야지.
그럼, 1타 3피쯤 되는 건가?
아니, 33노트(시속 약 61킬로)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2000TEU급 컨테이너선이기에, 보고 배울 기술까지 합치면 1타 4피다.
“이야, 마치 우리가 이걸 바라고 바레인에 수리 조선소를 지어준 것 같잖아!”
“이런 걸 줍줍이라고 하지.”
“줍줍?”
“응, 다들 금덩이인 줄 모르고 버리는데 우리가 줍기만 하면 돈이 되는 거잖아.”
“우와~ 신난다!! 줍줍!!”
삼복이에게 21세기 단어를 가르쳐줬다.
< 286 : 줍줍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