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29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293화(293/589)
< 293 : 초청장을 받는 법 >
“아이고, 그렇게 고민하실 일은 아닙니다. 상황 봐서 공사하기 너무 어려운 구간이라면 대세건설이 제안하는 경로로 틀 수도 있습니다. 우 사장님이 부동산 투기하실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내가 관자놀이를 문지르자 염 수석이 재빨리 대안을 말했다. 난 지하철이 아니라 영부인 피살사건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데 말이다.
“아, 노선은 현재 검토 중이군요.”
“그럼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교통분산과 공사 난이도를 고려해서 결정해야지요. 현재로선 서울을 한 바퀴 삥 돌아야 된다는 기본 개념 만 잡혀있는 상황입니다.”
기본 개념만으로 그린 것 치고는 21세기 2호선 노선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정말 우스갯소리로 청와대에서 20분 만에 지도에 쭉쭉 선을 그어 지하철 2호선 노선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잘 알겠습니다. 대세에서도 검토하겠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대세를 찾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그 어려운 당재터널을 성공적으로 뚫으셨지 않습니까. 대세가 나서면 뭐든 안전하고 빠르니까 그런 겁니다.”
당재터널 때문이라고? 2호선이 심층 지하철도 아니고 터널식으로 뚫을 이유는 없다.
개착식 공법이라고 해서 땅을 고랑처럼 파서 시설 공사를 한 뒤에 다시 노면을 복개하는 방식을 쓰면 그뿐이다.
역시 청와대답게 기술적 사항은 잘 모르겠고, 건설이 필요하니 대세건설에 맡기라고 한 거군.
일단 노선을 따라 살펴보고, 난코스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대세가 직접하고 나머지는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국내 공사야 업체가 많으니 대세는 해외 건설에 매달릴 때다.
주베일 항만 공사 같이 큰 건이 걸려있는 지금은 특히 그렇지.
그리고, 영부인 피살사건에도 너무 기력을 쓰지 말자. 살리는 방법이야 그 자리를 피하게 하면 될 테고, 오히려 그 일로 촉발될 나비효과에 대해서 곰곰이 따져보는 게 중요했다.
“2호선 건설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만 강남은 매번 물난리가 나는데, 지하철 공사보다 치수공사가 먼저가 아닐지요? 강이 범람하는 곳에 지하철을 만들 순 없지 않습니까.”
“예, 그 말씀도 맞습니다만. 소양댐과 팔당댐이 완공되었으니, 이제 한강 수계도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강변 공사도 필요합니다만, 지하철 공사가 하루 이틀 만에 될 것도 아니니 충분히 병행할 수 있을 겁니다.”
음, 듣고 보니 팔당댐이 지난달 완공이 되었군.
나름 정부도 이것저것 재고 있긴 하네.
강남 개발에 속도가 붙긴 하겠어.
“알겠습니다. 다만 대세는 해외건설이 우선이니, 2호선 전 구간을 맡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건 나중에 따로 협의 드리겠습니다.”
“아휴, 물론이죠. 대세가 벌어들이는 외화가 얼만데요. 참, 상공부는 물론 경제기획원에서도 사장님께 감사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경제기획원에서요?”
“예. 대세가 아니었다면 원유 수입한다고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텅텅 비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와중에 사장님께서 값싼 LNG도 공급해주시고, 휘발유 수출로 오히려 달러를 벌어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참나, 내가 경제기획원에서 칭찬을 들을 때도 다 있군. 하긴, 내가 일본 쪽 자금유입을 최대한 봉쇄한 덕에 경제기획원 내 친일파의 입김이 원래 역사보단 월등히 약해지긴 했지.
“저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국란 극복에 동참해야죠. 오히려 도시가스 건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예예.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지 오십시오.”
나는 염원철 수석을 배웅하고 다시 서울역 본사 현장을 살피는데 주력했다.
샵 드로잉을 살피며 하나하나 둘러보니, 정말 꼼꼼하게 잘도 해 나가고 있었다.
안전모와 보안경을 제대로 안 쓴 초짜들을 혼내는 감독관을 보고 있노라니 21세기 공사판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며칠 뒤, 런던.
“하하하, 정말 멋진 식사에 멋진 그림이군요.”
‘뭐야, 이 애송이는…’
밴 플린트 장군은 조금씩 지쳐갔다.
벌써 타깃을 3번이나 바꿨는데, 타깃을 바꿀 때마다 급이 내려가니 말이다.
이번 타깃은 그림 선물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사우디 국방부 발주 담당 중 한 명이라는데, 이 정도면 아예 영향력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런던까지 초청에 임해주셨는데 이 정도 그림이야 선물을 못하겠습니까? 약소한 선물을 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아쉽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필립홀쯔만은 이리 약소하지 않던데 말입니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정말 그림의 의미를 모르나 싶어 말을 꺼내 보았더니, 필립홀쯔만까지 언급했다.
필립홀쯔만이 이런 애송이에게도 기름칠을 했단 말인가?
“필립홀쯔만과도 만나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 그 얘긴 못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그나저나 서양인들은 예술품을 좋아하나 봅니다. 돈 봉투를 줄 때 꼭 그림을 같이 주던데 말입니다.”
애송이인 걸 떠나서 어이없는 놈이었다.
와중에 로비에 응했으면 양다리는 걸치지 말아야지. 설령 양다리를 걸쳐도, 이렇게 부주의하게 입 밖으로 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비의 생명은 정보 보안인데 말이다.
“그림값이야 대중적인 평판은 물론 소장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달라지죠. 물론, 이번 경우엔 거의 가격이 나가질 않겠군요.”
“예에?”
“혼잣말입니다. 식사하시죠.”
밴 플린트는 식사를 대충 마치고, BR사 런던 지사장에게 뒷정리를 맡기고는 자리는 떴다.
“이번 일은 글렀어.”
밴 플린트는 시가를 피워보았지만, 딱히 번듯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타깃을 바꿔도 소용없었을 것 같았다.
저 정도 애송이까지 뇌물을 먹었다면, 필립홀쯔만이 정말로 전방위적으로 뇌물을 뿌린 것이다.
뇌물은 타이밍 싸움. 이미 늦었다.
말이 통하는 놈이 걸려야 6개월 공기 단축이라는 카드를 내밀며 승부를 볼 텐데, 그만한 타깃이 걸리지 않았다.
밴 플린트 장군은 시가를 끄고는 런던 지사로 돌아가 전문부터 날렸다.
「To. CS Woo.
이번에는 그림이 안 통할 것 같군. 모든 타깃이 이미 우산 속이야. 상대가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어 – From. 밴 플린트.」
밴 플린트 장군은 텔렉스를 보내고는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왕이면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띠리릭. 띠리릭.
“음?”
텔렉스 머신에서 곧바로 회신이 들어왔다.
「To. 밴 플린트 장군.
그럼, 정면승부를 해야죠 – From. CS.」
“하하하. 이 녀석, 반응 하나는 정말 빠르고 확실하다니까.”
밴 플린트 장군은 대번에 기분이 좋아졌다.
뇌물이 안 통하면 정면승부를 하면 된다니, 너무나도 단순명료한 작전이었다.
대세건설이 입찰 초청을 받지 못했다는 건 아무런 제한조건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오히려 힘 싸움을 포기하고 있었던 밴 플린트 자신이 늙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오랜만에 입찰 경쟁을 제대로 해보겠군. 나름 재미있겠어.”
밴 플린트도 처음 군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했을 그때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또다시 텔렉스를 쳤다. 이번에는 미국 BR사 본사였다.
「To. BR사 해외 지원본부.
호주와 멕시코 만에 배치되어 있는 중장비 여유분을 모두 사우디 주베일 지역으로 이동시킬 것. – 밴 플린트 이사.」
텔렉스를 보내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나름 선물이 될 거라고 말이다.
입찰에 성공하는 걸 전제로 한 선물이지만 CS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더구나 정면 승부라니 말이다.
***
같은 시각, 성수동 본사.
“밴 플린트 장군도 안 통한다, 이거지?”
거물급 로비스트를 들이밀어도 안된다는 말은 이미 필립홀쯔만이 컨소시엄을 꾸미고 발주처를 휘어잡고 있다는 소리였다.
원래 역사에서 수억불은 족히 남겨 먹었어야 할 입찰경쟁에서 현산이 저가 수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입찰 초청조차 못 받고 사방에서 물고 뜯으니 초저가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아주 정정당당한 입찰 경쟁을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원래 역사대로 흘러가나 싶으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원래 역사에서 9.5억불 정도에 낙찰받았으니 2등하고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가 관건이네.”
필립홀쯔만이 기술격차를 앞세우며 낙찰 결정을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격 차를 벌려야 했다.
최소 1.5억불은 적게 써내야 안전할 것 같았다.
“필립홀쯔만이 15억불쯤 입찰하면 좋을 텐데.”
그럼 나는 13.5억까지 써도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필립홀쯔만도 사력을 다한다고 했으니 그 정도로 높게 입찰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뿌린 뇌물이 있으니 손해볼 장사를 할 순 없을 테고… 정보 수집이 우선이네.
“빌 베인 실장, 내 방으로 올라와요.”
<예, 회장님.>
나는 내선으로 빌 베인을 불렀다.
빌 베인이 즉시 긴장된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내가 따로 부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거든.
“주베일 산업항 수주를 위하여 본사지원팀과 현장조직을 구성해야겠습니다.”
“주베일 산업항에 도전하시는 겁니까?”
빌 베인은 내가 도전하면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일단 비서실에선 필립홀쯔만이 사우디에 뇌물을 얼마나 뿌렸는지 정보를 수집하십시오.”
“예, 회장님.”
적의 뇌물 수준을 알면 대략 입찰가를 가늠할 수 있다.
“본사지원체제는 비서실에서 구성하도록 하고, 현장 조직은 이대로 실시하십시오.”
나는 통상의 해외 파견 조직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조직도를 건넸다.
아버지를 주재 중역으로 삼고, 그 밑에 부장 5명, 차장 17명, 과장 28명까지 해서 간부급만 수십 명에 달하는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 밑에 대리, 사원, 기능공을 따지면 파견 인력만 수천 명에 달하리라.
“회장님, 현장에 간접 부서도 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필요합니다. 현장과 바레인 지사 간에 오가면서 교대 근무를 할 수 있게 하십시오.”
SNOS 프로젝트에다 주베일 산업항까지 끼어들면 기능공들 월급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간접부서 인력들이 죽어날 거다.
초대형 프로젝트라 추가 업무나 노무 관리에도 인력들이 필요할 거고 말이다.
특히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선 간접부서가 공사 진행률을 예측하고 적기에 설비, 인력, 자재를 조달해야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아낄 수 있다.
하루만 어리바리해도 수백대의 트럭과 수천명의 직원들이 손가락 빨고 놀게 되는 거다.
일반적인 프로젝트와는 차원이 다른 일정 관리과 선제적 자재 수급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대세조선에 연락해서 SL-7 한 척은 회색으로 도색하라고 전해주십시오. 긴급입니다.”
“회색으로 도색을…”
“그 배를 타고 사우디를 방문할까 싶어서 말입니다. SNOS 현장에 식료품과 자재도 전달할 겸 말입니다.”
SL-7을 미끼로 파이잘 국왕을 끌어내야 했다.
이왕 이리 된 것, BR사가 아닌 대세가 입찰 주체로 나서야 하지 않겠나.
왕자들의 권력다툼으로 입찰 초청장을 못 받았으니, 당연히 더 위를 노려야지.
“자꾸 여쭤서 죄송합니다. 굳이 비행기가 아니라 배로 가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쾌속선이긴 합니다만, 회장님의 시간을 잡아먹고 불편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정도 쇼는 해야 우릴 주목할 겁니다.”
내 말에 빌 베인은 알듯 말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선을 회색으로 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와대에 연락해서 군 보급선 흉내를 내겠다고 얘기하고 사우디를 방문할 거다.
남의 나라 군함이 해군기지를 방문하면 그 나라 국왕에게 보고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SNOS 현장도 엄연히 해군기지이지 않나.
거기에 우리나라 해군이나 사관생도가 방문할 핑계는 충분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파견한 훈련 교관도 있고.
“설마 군함으로 꾸미실 생각이십니까?”
“바로 그겁니다. SL-7엔 보급품을 싣고, 초계함엔 해군 사관생도들을 잔뜩 태워서 가야죠.”
“사관생도 원양훈련이군요.”
“물론이죠. 이번에 사우디와 한국이 친선협의 박람회도 개최하지 않았습니까? 해군사관생도들의 교류는 당연한 일이죠.”
전통적으로 해군사관생도들은 졸업하기 전에 군함을 이끌고 우호 국가를 순회하며 국가 간의 친선을 다지는 행사를 한다.
특히 70년대처럼 냉전이 일상화된 시절에는 매년 하는 연례행사이니, 이번에는 사우디 해군기지를 방문한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었다.
운이 따르면 파이잘 국왕을 직접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양반이 국가안보에, 특히 해군력 강화에는 진심이지 않았던가.
***
며칠 뒤, 청와대.
“그간 강령하셨습니까, 대통령님.”
“어서 오게, 임자. 많이 바쁘지?”
“송구합니다. 최근 초고속 컨테이너선을 도입했기에 그걸 분석하느라, 사우디 박람회 건도 제대로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
“송구하긴 무슨. 박람회야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수차례 보고받았어. 참여한 중소기업은 물론, 수성이나 금양사도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하더군.”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댔다.
성과도 좋았던데다가, 내가 부탁을 하러 청와대를 찾아온 게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해군사관생도들과 함께 사우디로 원양훈련을 나갔으면 합니다.”
“그것도 들었네. SL-7인가 하는 고속선을 보급선 삼아 간다고?”
대통령은 그야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비서실을 통하면 외교 행사로 꾸미는 데 전혀 문제 없겠다. 목적 달성이다.
“예, 원래 컨테이너선으로 들여온 선박인데 보면 볼수록 해군 보급선으로 아주 적당해 보여서 말입니다.”
“33노트로 달릴 수 있고, 스크루 하나가 망가져도 운항에는 지장이 없다지?”
“예, 대통령님.”
국방과학연구소에서도 몇 번 대세조선을 방문했던 터라, 보고를 받았던 모양이다.
자주국방에 진심인 대통령도 눈여겨 봤을 거다.
“이번에 원양훈련을 마치면, SL-7 중 한 척은 정말 해군 보급함으로 개조해보도록 해. 기본적인 무장도 갖추고, 내년쯤 구축함과 함께 진수식도 거행하면 아주 좋을 것 같군!”
“예. 국방과학연구소 및 해군과도 상의해서 제대로 개조를 해보겠습니다.”
역시 대통령은 예상대로 반응한단 말이지.
대번에 SL-7 한척을 내놓으라고 하잖아.
많이 남겨먹지는 않을테니 걱정 마쇼.
< 293 : 초청장을 받는 법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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