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0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00화(300/589)
< 300 : 내가 필요한 이유 >
“어서 와요, 스미스 선장.”
나는 배에서 내리는 스미스 선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런 날씨를 뚫고 제때 도착해주니 정말 고마웠다.
“하하하. 이런 날씨에 마중까지 나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뭔 대수입니까. 모래폭풍을 뚫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도 있는데요. 자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묻고 싶은 게 많아요. 권 선장도 들어갑시다.”
“예, 사장님.”
나는 스미스 선장과 권칠득 선장을 양쪽에 끼고 현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도 모래가 기어들어 오지만, 그래도 입에 모래가 바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자, 일단 콜라부터 한잔하세요. 대접할 게 이것 밖에 없군요.”
“이런 날씨엔 콜라만 한 게 없지요.”
콜라로 입을 한번 씻어내고 마시면 그럭저럭 상쾌한 기분이 든다.
“오는데 큰 문제는 없었죠?”
“예, 여기 페르시아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휴가 나온 듯 쉽게 왔습니다.”
“연비는 어떻든가요? 최고 속도로 달려봤을 거 아닙니까.”
LNG 추진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LNG를 채울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원래 있던 중유 연료탱크는 여전히 달려있었다.
LNG가 떨어지면 중유로 보일러를 데워 엔진을 돌려야 하니 말이다.
“뀌년에서 LNG를 보충할 때 보니 정확하게 연료통의 35%를 사용했더군요. 즉 뀌년에서 LNG를 보충할 수 없었다면, 사우디에 도착할 때쯤엔 LNG는 다 쓰고 중유로 엔진을 돌려야 했을 겁니다.”
뀌년에 중유 저장고와 함께 LNG 저장고도 지어놓길 정말 잘했군.
이래저래 뀌년의 입지가 참 좋았다.
“그럼 LNG를 가득 채우면 한 번에 12000km를 달릴 수 있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속도를 늦추면 좀 더 멀리 갈 순 있을 겁니다.”
여하튼 중간에 연료를 보충하지 않고서는 한국과 사우디를 왕복할 수는 없다는 거네.
물론 중유를 싣고 다니면 되지만, 그러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사우디에 LNG 플랜트가 생길뻔하다가 좌초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중동에도 LNG 기지가 생기면 말 그대로 LNG 추진선 수요가 폭발할 텐데 말이다.
이거 주유소가 없어 차가 안 팔리는 꼴이다.
일단 주베일 프로젝트를 챙기고 차츰 이에 대한 전략을 생각해보긴 해야겠다.
“그 외 운항에는 문제없었다 이거죠?”
“물론입니다. 오히려 가스를 태워서 그런지 출력제어가 아주 쉬웠습니다. 33노트에서 22노트로 급격히 운항속도를 줄여보았는데, 아주 부드럽더군요. 대박입니다.”
스미스 선장은 SL-7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대박이라며 연신 엄지척을 했다.
계속 이 배만 타겠다고 할 것 같네.
그럼 안 되지. 다음번엔 미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선이나 로로선을 타셔야지.
“권 선장, 물길은 어땠어요? 예인선으로 자켓을 끌고 올만 하겠던가요?”
“말씀하신 대로 한차례 수송 물량이 5500톤 내외라고 하면 충분히 해볼 만 할 것 같습니다. 다만 큰 파도를 만날 때를 고려해서, 바지선 2척을 연결해서 이동했으면 합니다.”
딸랑 500톤짜리 자켓 하나만 싣고 가는 게 아니라 자켓 여러 개에 기타 자재까지 합치면, 한꺼번에 5500톤 정도로 수송하게 될 것이다.
“바지선 2척을 연결한다고요?”
“예. 1만 5000톤급 바지선을 앞에 두고, 그 뒤에 가벼운 5000톤급 바지선을 매달아야 파도에 안전할 것 같습니다.”
“배를 두 개로 분리해 파도로 인한 충격을 줄인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듣고 보니 아이디어가 대단했다.
권 선장은 선박이 겪을 슬래밍(Slamming)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파도 때문에 선체 바닥이 공중으로 떴다가 다시 수면과 부딪힐 때 받는 충격이 지속되면 바지선이든 자재든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배를 두 개로 분리하면 슬래밍 현상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다. 배의 허리가 끊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게 뭐 대단할 것까지야…”
“아닙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권 선장처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에 몇 없어요.”
대세에서 미친 수준의 예인을 여러 번 하다 보니 12000km짜리 예인도 겁내지 않는 거다.
“과찬이십니다. 저야 사장님 뜻에 따라 예인선만 주야장천 몰았을 뿐입니다. 오히려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영광입니다.”
“과찬이라뇨. 그동안 철광석으로 대세가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데요. 이번 일도 흔쾌히 나서준 거 잘 압니다. 고맙습니다.”
권칠득 선장도 이제 촌티 빈티 다 벗고 어엿한 선장으로 거듭나 있었다.
정복이 잘 어울렸고, 바닷바람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선 강인함을 넘어서 관록마저 느껴졌다.
“아닙니다. 사장님 덕분에 선장도 해보고 대기업 과장도 달고 번듯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장님께 백배 천배 감사드려야지요.”
“하하하!”
텅텅 가슴을 쳐대며 고맙다고 해주니, 나도 불끈 힘이 솟았다.
대세해운엔 이런 베테랑들이 쫙 깔렸으니, 선순환에 들어선 지 오래다.
대세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하겠다.
“다들 뭐해, 앞이라도 보일 때 얼른 컨테이너 옮겨야지. 사막에서 천막 펴고 잘 거야?”
선장들은 쉬도록 두고 사무실 밖으로 나서니 현장 감독들이 한창 닦달 중이었다.
모래폭풍이 다소 잦아들자 SNOS 항에 부린 자재를 주베일 산업항 현장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재 중에서도 숙소를 만들 컨테이너가 먼저였다. 일단 잘 곳이 그럴 듯해야 일도 하는 거다.
숙소는 컨테이너를 2층으로 올려서 짓는다.
워낙 햇빛이 뜨겁기에 2층에 올린 컨테이너는 숙소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재와 공구 등 물품보관소로 쓴다.
자연스레 1층에 에어컨을 연결하면 그럭저럭 잘만한 숙소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식당, 화장실, 샤워장, 헬스장, 탁구장, 매점 등등 공동시설을 만들면 끝이다.
“이제 이동합시다.”
“사장님, 앞장 서시죠.!!!”
“갑시다, 주베일로!!!”
“와아아아아!”
다들 안전모에 안면 마스크를 쓰고 있기에 총만 한 자루 들면 게릴라처럼 보일 정도였다.
트럭에 컨테이너 샤시를 매달고 사막을 내달렸다. 주베일 산업항 현장은 SNOS에서 별로 멀지 않기에, 그쪽에도 우리 캠프를 차리면 주베일 전역엔 사우디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을 것 같았다.
***
한 달 뒤,
숙소 공사를 비롯한 예비 공사는 대충 끝났고, 본 공사가 시작되었다.
“야이 이 놈들아,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스타 비트를 누가 이따위로 만들래!”
“과장님, 왜 그러세요. 시방서에 나와 있는 대로 만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스타비트(Stabit)는 사람 人자 모양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방파제에서 파도를 막는 용도로 쓰인다.
거푸집이 간단해서 비교적 현장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기에 테트라포드의 하위호환형 자재라고 하겠다.
설계상 방파제와 호안 공사에 7톤짜리 또는 15톤짜리 스타비트를 도합 16만 개 정도 쓰게끔 되어 있기에 어마어마한 물량을 만들어야 했다.
어쩌나 싶어 현장에 나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황금종 1기가 후배들을 잘 교육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답답하긴 했다.
믹스트럭이 콘크리트를 작업장에 쏟아내면 150톤급 크레인 5대가 버킷으로 콘크리트를 퍼담아 스타비트 거푸집에 붓고 있었다.
인력과 장비의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비효율을 어찌 해결하려나 싶어 멀리서 느긋하게 구경을 했다.
“마! 여기 생산 계획에 뭐라고 되어 있어? 하루에 최소 200개는 만들어야 한다고 되어 있잖아! 안 보여?”
“보… 보이죠… 그게 왜요? 지금 생산속도면 하루에 200개는 충분히 만드는데요.”
“어이쿠, 이 답답아! 그런 생각으로 무슨 부자가 되겠다고 그래! 초과 생산을 해야 능률급을 받을 거 아냐! 중동까지 와서 기본급만 받고 갈 거야!”
황금종 1기가 냅다 후배들의 조인트를 까고 있었다. 대세는 팀별로 능률급제를 실시하기에 품질에만 문제없으면 생산량의 증가는 즉각적으로 그들의 일당에 반영된다.
“십장님, 무슨 방법 있는 거죠? 그쵸!!! 어떻게 할까요?”
조인트를 까이면서도 후배들은 좋다고 황금종 1기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당연히 있지! 내 말대로 하면 하루에 300개도 만든다!”
“와아아아아!!”
“뭘 하면 됩니까, 십장님.”
자그마치 일당이 25%나 오르는 일이었다.
생산량이 50% 늘면 그 이득에서 회사가 반, 그걸 실행한 팀이 반을 가져가는 거다.
“뭐긴, 그냥 비탈을 만들어. 믹스트럭이 비탈길 위에서 거푸집으로 콘크리트를 바로 쏟아부으면 되지. 뭐하러 번거롭게 바가지로 퍼담고 있냐! 여기가 동네 공사냐!!”
“헉! 그래도 되요?”
“안 될게 뭔데? 시방서에 어긋나?”
“와아아아아! 십장님, 만세!!!”
“날 만나서 땡잡은 줄 알아, 새끼들아!”
하하, 역시 황금종 1기 다웠다.
돈 버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으쓱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실상은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바로 부어도 문제 될 게 없는지 시방서를 한참 검토했을 거다.
“아이고, 수고 많습니다.”
“헉! 사장님, 저 욕한 거 아닙니다.”
“언제 욕 했어요? 나는 못 들었는데. 여하튼, 수고가 많아요. 이거 팀원들하고 회식이라도 해요.”
나는 담당 십장에게 돈 봉투를 집어주었다.
현장을 돌아보는 경영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능률급제로 보상해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장에게 칭찬을 받으며 팀원들 앞에서 받는 돈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남는 크레인은 방파제 쪽으로 이동시키고요.”
“예, 예. 사장님.”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면 장비도 효율적으로 배치되기에 더욱 좋았다.
***
이번엔 호안 건설 현장 쪽으로 나아갔다.
“왼쪽으로, 왼쪽! 왼쪽이라고 이 미친 놈아!”
현장에선 벌써 기초 사석을 놓고 있었다.
무슨 공사든 기초가 중요하기에, 호안 건설은 바다에 사석을 투입한 후에 바다 밑바닥을 평평하게 정리하는 게 첫 번째 단계다.
표면정리를 하다 보면 기복이 심한 곳엔 보충 사석을 투하해야 하는데, 지금 초짜 크레인 기사가 엉뚱한 곳에 사석을 투하한 것이다.
“푸하! 미쳤냐! 왜 오른쪽에 사석을 뿌려! 왼쪽! 왼쪽 모르냐!!!”
급기야 잠수사들까지 수면으로 올라와 욕지거리를 해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바닥 고르기가 끝난 오른쪽에 사석을 뿌렸으니,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해야 할 판이었다.
작업 인원은 크레인 기사 1명, 십장 1명, 잠수부 4명, 잠수보조 2명인데 잠수부와 육지에 있는 크레인 기사와 십장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수중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웃기는 건 베테랑조차 왼쪽 오른쪽이 헷갈린다는 거다.
잠수사가 보는 방향이 크레인 기사가 보는 방향에서 거울 면이거든.
“아유, 힘들어 죽겠는데… 빌어먹을 초짜 새끼!”
잠수사들은 물 위로 올라와 벌러덩 하늘을 보고 누워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화를 삭혔다.
워낙 대규모 공사라 초짜 투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주베일 현장에선 흔한 일이었다.
21세기엔 수중 굴착기로 원격 조정을 하면 되지만 이 시절엔 이런 수작업이 대세였다.
“당신들도 초짜였을 때가 있었잖습니까.”
“헉! 사장님.”
“다들 올라와요, 이번엔 좀 바꿉시다. 예전처럼 하기엔 여기 호안 공사는 너무 길어요.”
“예, 사장님.”
내 말에 잠수사들이 뭍으로 올라왔고, 크레인 기사와 십장마저 뛰어왔다.
우린 마치 동네 꼬마들이 구슬치기를 하듯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잠시 공사를 중단하고, 정리대를 만듭시다.”
“정리대라고요? 그런 설비도 있습니까?”
“그냥 이름을 그리 붙였어요. 이처럼 다리가 달린 육면체를 만들고 그 가운데 넓적한 삽날을 달도록 해요. 그걸 크레인이 들어서 사석 위에 놓으면 잠수부가 삽날 높이를 조정해서 앞뒤로 움직이는 겁니다.”
나는 바닥에 끄적거리며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럼 삽날이 높은 곳은 깎고 낮은 곳은 메워준다는 말씀이군요.”
직원들은 대번에 이해했다.
거미처럼 생긴 철 구조물에 삽날을 장착한 것이라, 만들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바로 그겁니다. 정리대를 쓰면 10×10 정도 되는 면적을 대번에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일종의 수동형 수중 굴착기였다.
기준선 측량도 쉽게 할 수 있을 테니 여러모로 유리할 거다.
“사장님은 정말 천재십니다.”
“천재가 아니고, 필요하면 장비도 만들어서 쓰는 것 뿐입니다.”
“당장 만들어서 배치하겠습니다.”
“일 빨라져서 능률급 보너스 받으면 나한테 한턱 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그리고 초짜는 혼내지 말고 잘 다독거려 키워야죠. 대세에 들어온 사람은 웬만큼 실력자인 거 다들 알잖아요.”
솔직히 공채든, 황금종 기능공 시험이든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들이다.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화이팅 좋네요.”
나는 초짜 크레인 기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크레인 기사 중에 초짜가 있는 시대라니, 21세기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만큼 일자리가 넘쳐나는 낭만 시대다.
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너무 더워서 옷벗고 바다에 첨벙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한 달간 현장을 훑었으니 한국으로 복귀하자.
임시항구와 호안공사만으로도 앞으로 몇 개월은 똑같은 짓의 반복이니까 말이다.
“사장님!! 사장님!!!!”
뭐지? 어디선가 아버지가 마구 달려왔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김 이사님, 무슨 일입니까?”
“본사에서 긴급 텔렉스가 왔습니다.”
“긴급 텔렉스요?”
나는 깜짝 놀라, 텔렉스를 낚아챘다.
설마 홑몸도 아닌 페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긴급 보고 : 사장님께
원전 관련하여 긴급히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서면 보고가 어려우니 귀국을 부탁드립니다.
– 선봉석 과장 배상」
그런데 발신자가 아주 이상했다.
빌 베인 실장도 젖히고, 선봉석 과장이 내게 직접 긴급 텔렉스를 보냈다고?
그리고 내용도 이상했다.
원전 관련해서 긴급한 일이 뭐가 있지?
기껏 해봐야 지금 원전의 외벽 공사를 하는 중일 텐데 말이다.
“설마…”
순간 우려되는 일이 떠올랐다.
아니, 그보다 기술적으로 가능해?
현재 재처리시설도 없고 재처리를 한다 해도 일본으로 몽땅 내보내기로 한걸 다 알잖아.
청와대 비서실도 바보가 아닌데 말이다.
아니다. 섣불리 단정짓지 말자.
일단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자.
나는 텔렉스 전문을 잘게 찢어버리고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 300 : 내가 필요한 이유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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