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1)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1화(31/589)
< 031 : 왕 회장과의 거래 >
“당연하죠, 현산 건설 왕주영 사장님 아니십니까? 이래저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보통이라고 하더니 굉장하시군요. 그럼, 제가 찾아온 이유도 아십니까?”
“짐작은 갑니다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죠.”
언제고 경쟁자든 협력자든 어떤 형태로든 만나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도와주십시오. 우리 현산도 미군 공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마침 미군이 태국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하더라고요.”
태국 고속도로야 박 대통령과 밴 플린트가 함께 자리한 자리에서 밝힌 것이니 한국 기업이 참여해도 무방하리라.
“…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습니까?”
당연히 간단하죠.
원래 역사에서 왕 회장이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했으니까.
그리고 난 뀌년을 가야해서 태국엔 못 간다.
“고속도로 건설이 간단하진 않지만 주선하는 건 어렵지 않죠. 하실 수는 있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그럼 약속하나 하세요. 입찰할 때 생각하는 가격에서 100만 불쯤 더 쓰세요.”
“예에, 더 쓰라고요?”
100만 불을 더 써도 어차피 현산이 맡을 거다.
원래 역사에서 현산 건설은 태국 고속도로 건설에서 100만 불에 가까운 대규모 적자를 본다.
굳이 이번 역사에서 그런 적자를 감수할 필요가 뭐가 있나. 외려 이렇게 가르쳐줘서 왕 회장에게 빚을 지워야지.
“밀림에서 고속도로 놓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공기(工期) 단축은 엄두도 내지 마세요.”
왕 회장의 경쟁력은 공사 기간 단축이었다.
여타 외국 회사보다 싼 가격에 입찰하고서도 극단적으로 공기를 줄여 순익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인력을 갈아 넣은 건데, 태국 고속도로 건설은 그게 불가능하다.
“공기 단축은 엄두도 내지 말라고요?”
“왕 사장님도 퍼붓는 비를 멈추게 하는 능력은 없지 않나요?”
“!!!!!”
“돕는 김에 더 도와드리죠. 울산 갈프사와 협의해서 아스팔트를 시중가보다 더 싸게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헉! 아스팔트까지요.”
“대신 딱 두 가지만 제 부탁을 들어주시죠.”
“뭐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왕 회장답게 화끈하게 나왔다.
이 양반은 은혜는 은혜대로 갚고, 뒤끝도 쩔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왕 회장과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은 내가 고삐를 쥐는 것이다.
“첫째는 이 시멘트 국산화 해주세요. 국산화되면 제게 선점권을 주시고요.”
나는 미군이 지원한 시멘트를 왕 사장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주야장천 쓰게 될 시멘트였다.
“시멘트는 이미 국산화를 했습니다. 단양 공장에서 연간 40만톤이나 생산되지요.”
왕 사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단양은 석회암지대라 시멘트의 원료였던 석회석을 확보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 시멘트는 평범한 시멘트가 아닙니다. 내황산염 시멘트로, 현장에서는 5종 시멘트라고 부르는 종류입니다.”
“5종 시멘트라고요?”
“해수와 오염에 강한 시멘트죠. 항만 공사에는 필수입니다. 계속 수요가 늘 겁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원하는 대로 수급하기가 어렵다. 5종 시멘트는 물이 닿는 구조물에는 필히 써야하는 시멘트라 나처럼 플랜트 사업을 목표로 하는 경우엔 필수 소재였다.
“아스팔트를 주선해주시는 대가군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필히 국산화해서 우 사장님께 우선적으로 납품하도록 하지요.”
왕 사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현산 시멘트 입장에서는 고정 고객을 확보한 것이니 손해 볼 것도 없다.
“둘째는 태국 고속도로 공사 때 최대한 건설 장비를 망가뜨려 달라는 겁니다.”
“예에? 뭐라고요? 장비를 망가뜨리라고요?”
“미군이 건설 장비를 지원할 겁니다. 최대한 망가뜨리세요. 그래야 우리 게 될 테니까.”
“우리 게 되다니요. 망가뜨리면 물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어주긴 왜 물어줍니까? 장비야 쓰다보면 중고가 되고 중고를 계속 쓰다보면 망가지는 거죠. 정 물어달라고 하면 한국으로 옮겨달라고 하세요. 깔끔하게 수리해서 되돌려주겠다고 말이죠.”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은 안 되지.
그런데, 원래 역사에서 왕 회장이 그랬다니까.
태국 현지 날씨가 우기로 접어들었음에도 장비를 무리하게 운용하다가 장비를 망가뜨렸고 미군에게 장비 인수비를 엄청나게 지불했다.
적자가 100만 불이나 났던 주된 이유였다.
헌데, 더 재미난 건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했던 장비들이 현산 건설에게 있어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거다.
여하튼 왕 회장은 망가진 장비를 인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몰리자 배 째라는 식으로 미군에게 강짜를 피웠고, 미군도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장비 인수가를 대폭 할인 해줬다.
결국 헐값에 장비를 인수해 국내로 반입했고, 주한 미군 공병단을 통해 수급한 부품으로 장비를 고쳐서 쓰게 되었던 거다.
그랬던 중장비들은 경부 고속도로와 울산 조선소를 지을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 큰 건설 프로젝트를 하는데 더 이상 중장비를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현산 건설을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일인데,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역사에선 나도 숟가락을 좀 얹어야지.
물론 나도 뀌년에서 비슷한 짓을 시도할 테지만, 미군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대놓고 장비를 망가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태국은 상황이 다르지.
실제 발주처는 미군이지만, 명목상 태국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니까 말이다.
감시가 헐렁해서 맘껏 장비를 망가뜨려도 된다.
“왜 말이 안 되죠? 우리야 미군이 실제 발주처라는 걸 알지만, 공식적으론 태국 정부가 발주처입니다. 장비를 망가뜨려도 태국 정부는 답답할 게 전혀 없습니다. 장비를 빌려준 미군이 답답할 뿐.”
“… 미군을 속이다가… 자칫…”
“속이는 게 아닙니다. 공사가 끝나면 미군은 장비를 태국 정부에 헐값에 팔 겁니다. 이왕 헐값에 팔 거 고생한 우리가 사야죠. 시공사로서 그 정도 권리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은 번지르르 하게 했지만 반쯤은 사기였다.
하지만 어쩌리. 그 비싼 건설 장비를 제 값 주고 어떻게 사나?
화끈하게 중고로 만들어서 헐값에 사야지.
“수리는 가능하겠습니까?”
“미 8군 공병단을 통하면 부품을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겁니다.”
“!!!!!”
“누가 봐도 현산 건설이 부도 직전까지 갈 정도로 확실하게 장비 망가뜨리세요. 그래야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요.”
이왕 미친 짓을 하려면 화끈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그러다 정말 부도가 나면 어쩌지요?”
“제가 타이밍 맞춰 들어 갈 겁니다. 반반씩 나누시죠.”
왕 사장이라면 화끈해서 잘 망가뜨릴 거다.
“우 사장님이 그 약속 못 지키면, 우리 현산 건설은 정말 넘어가는 겁니다.”
“겁나시면 안하셔도 됩니다. 저 혼자 하죠.”
“누가 안한다고 했습니까? 당연히 해야죠.”
왕 회장은 거침없이 악수를 청했다.
정말이지 인간 불도저답다니까.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고속도로 수주 미리 축하드립니다.”
“수주만 된다면 이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
보답한다라… 왕 회장에게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담담했던 심장이 꿈틀거렸다.
시대의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베트남 특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파도를 넘어 신세계로 나아갈 때였다.
***
1965년 5월 18일.
워싱턴 백악관.
“날씨마저 귀하를 환영하는 것 같습니다.”
“귀한 곳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정상회담의 공식 일정을 마친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에 위치한 장미 정원을 걸으며 가벼운 환담을 시작했다.
실무진끼리 하는 공식 협상회의에선 전투병 파병 문제든 차관 문제든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자연스레 공식수행원이나 보좌관의 동석 없이, 국가 수장끼리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비행기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보내주신 비행기는 마치 큰 호텔 같더군요. 덕분에 아주 편하게 왔습니다.”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까?”
“17시간 걸렸습니다.”
“다음에 더 빠른 비행기를 보낼 테니 자주 놀러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존슨 대통령은 미 대통령전용 보잉707을 한국에 보내주었다. 존슨으로선 깍듯한 국빈 대접을 한 것이었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외국 대통령의 전용기를 빌려 타야 하는 대통령이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일반인처럼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미국행 일본 민항기로 갈아타는 것은 더 치욕적인 일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를 키워야 해. 이번 기회를 이용해 무조건 자립해야 해!’
박 대통령은 눈빛을 감추며 주먹을 꾹 쥐었다.
자존심까지 건드리며 압박하는 존슨의 대화에 넘어가지 않으려 심호흡을 했다.
젊은 군인들의 목숨을 대가로 국가 경제의 탈출구를 찾는 천박하고 처절한 도박임을 알고 있었다.
“실무진에게 각서 얘기를 하셨다고요?”
“한미 동맹이 굳건함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존슨의 툭 찌르는 질문을 박 대통령은 퉁하고 튕겨냈다.
살짝 핀트가 어긋나는 대답이 기술이었다.
“한국군의 증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차관 확대와 주한 미군 철수를 포기하는 조건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사단급 병력을 투입하면서 월남전에 발을 들여놓은 미국은 미 대사관 폭파 테러 사건 이후로 한국군의 증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국도 전투병 파병에 노력해야 한다지만, 미국 국회에서도 청부 전쟁이니 용병 전쟁이니 하며 반대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국회가 아니라 일부 언론의 과장된 표현일 뿐입니다. 귀하라면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존슨은 이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정부기관에 메모를 보내 박 대통령 환영 절차를 ‘빈틈없이’, ‘거창하게’ 할 것과 신문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크게 취급하도록 지시하고, 박 대통령 일행이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웬만한 성명 발표는 보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 일행이 머무는 블레어 하우스에는 쌀밥과 김치를 준비했고, 박 대통령 내외에게 순금 대통령 문장, 은제 세트, 백악관 유화, 존슨의 저서, 휴대용 전축 등을 선물하며 환대했다.
환영 만찬 무도회에서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니, 각서를 통해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각서를 재차 들이밀었다.
“너무 일방적인 조항이라 실무진에서 반발이…”
“각서는 내가 직접 미 상공부 고문과 함께 검토했습니다. 귀하께서만 나서주신다면 합의에 이를만한 조항들입니다.”
박 대통령은 존슨이 왜 이러나 싶었다.
일방적인 조항이라니. 말이 안됐다.
밀사로 왔던 밴 플린트와 이미 합의했던 각서가 아니던가.
“파병에 동의한다는 공동 성명부터 발표하고 각서에 대해선 추가 협상하시지요.”
“각서가 우선입니다.”
공동 성명서야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정해져 있는 결과 발표에 불과했다.
“휴우, 담판을 원하시더니 거침없으시군요.”
“일방적인 각서가 절대 아닙니다. 공산 침략에 대항해 자유를 수호하는 전쟁에 나서는데 필요한 상호 신뢰의 다짐입니다.”
박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가시지요. 귀하의 용기에 제가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슨은 박 대통령을 장미 정원의 후문 쪽으로 안내했다. 그쪽에는 이미 존슨의 보좌관들이 각서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박 대통령은 각서에 서명하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 읽어보나 마나 각서 조항은 예전에 이미…
–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장비와 재정을’ 미국 정부가 부담한다.
– 주월 한국군을 위한 물자와 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조달한다. ‘주월 미군의 군수품도 가능한 한 특수 채용의 형태로 한국에서 구매한다.’
– 베트남에서 실시되는 각종 구호와 건설 등 제반 사업에 한국 기업을 우선적으로 참여시킨다.
뭐지? 조항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바뀐 정도가 아니라 한국기업 우선 참여 조항까지 삽입되어 있었다. 박 대통령이 봐도 한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설마, 우찬수 사장이?’
박 대통령의 머리에 우찬수가 스쳐갔다.
각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자신과 밴 플린트가 합의한 조항을 고칠 정도로 미친 녀석은 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베트남에 1년 정도 도망쳐 있으면 내가 잊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조국에 유리한 조항이니 내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건가? 그리도 정치권과 가까워지는 게 싫었나?’
박 대통령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누르고 서명을 서둘렀다.
옆에서 존슨도 서명을 마쳤다.
“악수는 기자들 보는 데서 하시지요.”
“그러시지요.”
존슨의 보좌관이 정원의 뒷문을 열어젖히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파병에 합의를 하신 겁니까?”
“어떤 대가를 주고받은 겁니까? 주한 미군 철수는 없던 일이 되는 겁니까?”
“차관이 수억 달러에 달한다는 데 그에 대한 국회 승인은 떨어졌습니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떼거리로 모여 있었고 서로 마이크를 들이미느라 몸싸움이 한창이었다.
존스는 공동 성명 발표를 위해 단상에 섰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미국은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주한 미군을 유지할 것을 약속드리는 바이며, 차관은 1.5억 달러를 투자해서…”
존슨이 오늘 신문의 헤드라인이 될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미 공동 합의문은 몇 번이나 다듬었기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박 대통령님, 발표하시지요.”
어느새 존슨은 발표를 끝내고 발언권을 박 대통령에게 넘겼다.
“한국 정부는…”
박 대통령은 준비된 공동 성명서 원고를 읽으려다 고개를 들었다. 앵무새처럼 존슨이 발표했던 성명서를 한국말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 워싱턴에 오기 전에 본인은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한국인의 노력과 공산 침략에 대항하여 자유를 수호키 위한 한국인의 투쟁에 미국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지 의심했지만, 이제 이 두 가지 의구는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국민의 희생을 최대한 포장해야 자신에게도 득이 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 대통령이었다.
“오오오오.”
기자들은 상투적인 성명서를 벗어난 담화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통역사조차 흥분에 겨워 목소리가 떨렸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한국은 지금 이 시각부터 동맹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관계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와아아아아아!”
펑. 펑. 펑. 펑.
존슨 대통령 때보다 더 세찬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 031 : 왕 회장과의 거래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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