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2화(32/589)
< 032 : 궁극의 섬유 >
대세 실업 성수동 공장.
나는 아버지에게 부산항의 컨테이너 작업을 부탁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나도 떠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삼복이와 함께 군화 샘플을 보고 미군 납품 문제도 논의해야 했고 말이다.
“염색하러 간 놈이 죽었나 살았나.”
혜성 나일론에 맡긴 샘플을 찾아온다는 삼복이 녀석이 나타날 생각을 안했다.
「쾌거! 현산건설 초대형 해외 건설 수주」
「현산건설 태국 고속도로 건설 수주」
「현산건설 522만불 짜리 해외 진출」
기다리면서 신문을 뒤적거렸다.
헤드라인이 죄다 현산건설이었다.
박 대통령이 한미정상 회담을 위해 출국할 때도 이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하긴 월남 파병이야 찬반이 나뉘지만 현산건설 수주 소식이야 모두가 즐거워하는 일이긴 했다.
기사를 읽어보니 현산건설의 수주는 역사상 최초의 해외수주이며, 수주액 522만불도 단일 공사액수로는 최대라고 했다.
해외 건설은 수주액이 1억 달러는 넘겨야 그럭저럭할만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여기는 21세기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었다.
물론 나도 해당 기사에 감탄하긴 했다.
내가 주선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일이 진행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불과 며칠 전에 대통령 비서실과 현산건설을 연결해줬는데, 단박에 수주가 결정되어 버렸다.
왕 사장과 박 대통령이라는 빨리빨리의 대표 격이 움직이니 일이 이리 된 것 같았다.
벌써 각서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인 한미정상회담도 오늘이든 내일이든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는 의미였다.
그 양반 오기 전에 베트남으로 튀어야 했다.
자꾸 얽히면 최단 코스로 세계적인 재벌이 되고자 하는 내 계획이 삐거덕 거릴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왕 사장 통이 왜 이리 작아? 입찰가로 650만 불은 썼어야지, 고작 522만 불이 뭐야?”
생각하는 금액에서 100만 불쯤 더 쓰라고 했는데 결국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원래 역사처럼 엄청난 적자를 보겠군 싶다.
내가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었다.
왕 사장이 스스로 수업료를 내겠다는데 뭘.
오히려 다음엔 내 말에 좀 더 무게가 실리겠지.
신문 기사를 보니 16개국 28개 업체와 경쟁했다고 되어 있었다.
막상 입찰 서류를 들이밀 때 쫄렸던 모양이다.
뭐 결과적으로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 좋은 보약을 들이켠 격이다.
이 사업을 통해 현산 건설은 국제규격의 고속도로 시공 실적을 쌓게 될 것이며, 미군 시방서 확보, 중장비 운용 능력, 현지 조사 없이 입찰하면 쪽박 찬다는 경험 등등 선진 건설사가 갖춰야 할 것들을 얻게 될 테니까.
물론 나야 그런 경험을 할 필요가 없지.
실패 따윈 전생에 몰아서 했기에, 이번 생에는 건설 장비만 있으면 단박에 S급 건설사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찬수야! 크하하하. 찬수야, 하하하하.”
삼복이가 미친놈처럼 웃으며 달려왔다.
몸에 원단을 둘둘 감고 양손에는 군화를 든 채로 말이다.
“뭐냐, 그 꼴이.”
“으아, 새꺄. 내가 얼마나 쫄았는데. 너 없을 때 샘플 엄청나게 말아먹었거든. 근데, 네가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떡하니 샘플이 완성됐네.”
“삼복 부장이 우 사장 없을 때 맘고생이 심했어. 친구는 전쟁터 가는데, 자기는 시킨 일도 제대로 못한다고 말이지.”
뒤따라 걸어오시던 황 영감님이 말을 보탰다.
“황 영감님, 제가 언제 그랬어요?”
“한두 번이 아녔어.”
“또 영감님한테 신세타령했구나.”
“아냐, 마. 그냥 업무 얘기를 했을 뿐이야. 자자, 샘플이나 봐봐라. 죽여준다.”
나와 황혜성 사장이 곁에 없으니 얘기 나눌 사람이 황 영감님 밖에 없었나보다.
“폴리텍, 이중 패턴이 정말 잘 빠졌네.”
“네가 말한 대로 벌집 패턴이 가능하긴 하더라. 염색도 기가 막히게 뽑혔어.”
이름은 벌집이지만, 마름모 패턴이 반복되는 형태였다. 마름모 내부가 나일론이고 마름모 둘레가 폴리에스터로 직조된 이중 원단이었다.
물론, 천을 뒤집으면 내부가 폴리에스터, 둘레가 나일론으로 반전되는 이중 구조였다.
전문용어로는 조능직 패턴(Entwining twill)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염색이었다.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는 염색 정도가 달라서 군복 색깔이 얼룩덜룩했다.
60년대 군복은 우리 육군이나 미 육군이나 짙은 녹색 계통으로 단색이었다. 우리 해병대처럼 특수 부대만 개구리 복이었고 말이다.
“이번에도 황 영감님 작품입니까?”
“오늘따라 번쩍 생각이 들더군. 자네가 발견한 초산암모늄을 타기 전에 양잿물 처리를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지. 양잿물로 기름때를 빼면 식초 계열의 염료가 말을 잘 듣잖나.”
역시 황 영감님은 보통 양반이 아니야.
산성 염료를 쓰니 염기성 전처리를 통해 중화반응으로 반응속도를 맞췄다는 얘기였다.
배움 대비 경험을 응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정말 제대로 대학 교육을 받았다면 세계적인 화공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양반이었다.
“찬수야, 근데 이거 품질 시험은 어째야 하냐?”
“어쩌긴 어째, 폴리텍은 직접 겪어봐야지.”
나는 재미있는 경험을 시켜줄 요량이었다.
삼복이와 황 영감님의 팔에 원단을 한 바퀴 감아주었다. 그리곤 물을 한 바가지 퍼 와서 다짜고짜 뿌렸다.
“뭐하는 거냐?”
“안 느껴져? 폴리텍만의 느낌말이야.”
“으이? 어디서 선풍기 트는 거여. 팔이 갑자기 시원~한데?”
“영감님은 바로 아시네.”
“어, 정말이네. 시원~하네. 야, 이거 엄청 신기해. 물이 마르는 게 보여.”
“나일론이 스펀지처럼 수분이나 땀을 흡수하고, 폴리에스터가 수분을 공기 중으로 흩어내는 거야.”
폴리에스터가 소수성, 나일론이 친수성 소재라 벌집 패턴에서 수분 발산 능력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런 폴리텍의 기능성 때문에 전세계의 스포츠 웨어 시장을 휩쓸었다.
“엄청난 기술이네. 단순한 이중 원단이 아니었구나. 넌 정말 천재다, 찬수야.”
“특허 써놨으니까 국내 출원부터 하고, 내가 없는 동안 국제 출원도 좀 챙겨줘.”
“알았어.”
나는 생각난 김에 작성해둔 특허를 건넸다.
이동 중에 짬짬이 수첩에 적어둔 것이었다.
“우 사장, 나 좀 읽어봐도 되겠나?”
“예, 그러시죠.”
삼복이에게 건네려던 수첩을 황 영감님께 드렸다. 폴리텍의 기본 개념을 적어둔 것이라 황 영감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냉감 원단이라… 폴리텍 원단이 원래 체온을 식히는 게 목적이었군.”
“옷이 보온만 한다고 여기는 것도 편견이죠.”
21세기에서 온갖 기능성 옷을 다 보고 왔지 않은가.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냉감 소재였다.
끈적이는 동남아 플랜트에서나, 열사의 중동에서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이 냉감 원단으로 만든 토시와 목까지 감싸는 안면마스크였다.
그거 없으면 일하는 와중에 따가운 햇빛, 먼지, 땀, 기름 범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찝찝함을 선사한다.
베트남 정글이라고 뭐가 다르겠나?
토시, 안면 마스크, 스타킹까지 만들어 가면 대박 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른 군납 업체가 따라 하지 못하게 특허 출원을 해두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꺼번에 물량을 터뜨리는 거다.
“으잉, 이건 뭔가? 방수투습 원단?”
황 영감님이 수첩을 뒤적거리다 뒷장까지 넘겼던 모양이다. 그건 아직 아이디어일 뿐인데.
“아, 그건 아직 특허 못 내요. 제가 베트남에서 복귀해서 실험해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방수투습(放水透濕) 원단은 궁극적인 기능성 소재지만 개념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폴리우레탄이라는 신축성이 뛰어난 섬유 물질을 원사에 코팅해서 원단을 짜는 초보적인 방법이 있고, 신소재인 테플론 필름을 겉감과 안감 사이에 끼워 넣는 다소 세련된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가 흔히 코어텍스 등산복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폴리우레탄이든 테플론 필름이든 합성이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미국과 일본, 독일 정도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
내가 코어텍스 특허를 못내는 이유였다.
소재 합성도 못 하면서 코어텍스 개념을 특허 출원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니까.
내 특허를 보고 물건을 만들어낸 미국 회사와 내가 특허 소송을 붙어 이길 확률은 제로다.
지금처럼 덩치가 작을 땐 제품 출시와 특허를 동시에 해야 한다.
시간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폴리우레탄과 테플론은 이미 시중에 존재하지만, 방수투습이라는 코어텍스 기능은 1969년도쯤 되어야 개념이 만들어지니까. 내 기억으론 그렇다.
“아니, 우 사장. 특허 얘기가 아닐세. 방수투습 원단이라니, 물은 튕겨내고 습기는 통과시킨다는 기술이 정말 가능한가 묻는 걸세.”
습기보다는 땀이 옳겠지만 그게 그거다.
“당연히 가능하죠. 물방울은 크고 습기는 눈에도 안 보일 정도로 작지 않습니까. 습기만 통과하는 아주 작은 기공을 가진 섬유를 만들면 되는 거죠.”
폴리우레탄 코팅이나, 테플론 필름에 있는 기공의 크기는 수 마이크로미터로 물방울보다는 2만 배 이상 작고, 수증기보다는 700배 이상 커서 방수와 투습이라는 상반되는 특징을 같이 갖게 된다.
누군가 비닐에 바늘로 수 마이크로미터의 구멍을 빼곡하게 뚫을 수만 있다면 코어텍스 원단을 만들 수 있다.
“… 자네… 정말 진심인가?”
“참나, 믿어야 해 말아야 해?”
황 영감님과 삼복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중에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세요? 내가 베트남에만 안 갔으면 그거부터 만들었을 건데요. 그걸로 미국 시장이든 일본 시장이든 싹 휩쓸었을 텐데 아쉬울 뿐입니다.”
안타깝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코어텍스 개념이 나오는 1969년 이전에만 완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물질을 합성해내면 된다는 건가? 두 가지 물질이 있는데…”
“어느 거든 상관없습니다. 폴리우레탄이든 테플론이든 둘 다 방수투습 성질이 있거든요.”
“내가 합성해보면 안되겠나? 자네든 나든 누구든 먼저 하면 일본보다 먼저 성공하는 거 아닌가.”
황 영감님이 내가 그려놓은 공정 흐름도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PFD(공정 흐름도)가 정확한 게 아니라서요. 울산에서 몇 번 해봤는데 계속 폭발해서 실패했습니다.”
“실패? 자네가 같은 천재가 실패를 해?”
천재로 불러주니 영광이긴 한데, 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죠.
솔직히 폴리우레탄용 플랜트를 만들어보긴 했지만, 실제로 합성을 해보지는 않았거든요.
내가 섬유 업체 직원은 아니었으니까.
즉, 해당 공정도는 기계 구성과 들어가는 원료는 정확하지만 공정 레시피는 모르는 겁니다.
“화학식에 근거해 공정을 꾸며봤는데, 들어가는 촉매와 각종 첨가제가 너무 복잡합니다. 촉매로 쓰는 발포제가 폭발을 일으키더라고요. 베트남에서 돌아오면 저와 함께 교차실험 하시죠. 많이 위험하니, 혼자서는 하지 마세요.”
“그… 그래… 그러세나.”
황 영감님은 약간 실망한 듯 수첩을 삼복이에게 다시 건넸다.
솔직히 나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최종 구조식을 알고 있었기에 한두 번만 해 보면 될 줄 알았는데 폴리에스테르 중합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민류 유기 촉매, 지르코늄 계열의 금속 촉매, 발포 보조제, 난연제, 사슬연장제, 가교제, 산화방지제 등등 온갖 첨가제의 양에 따라 반응이 극과 극을 달렸다.
시도했던 모든 조합에서 팝콘 터지듯 펑! 하고 터져버려 최적 조합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뭐든 열성적이던 황혜성 사장조차 일단 실험을 뒤로 미루자고 했을 정도였다.
그 뒤로 내가 베트남으로 가게 되는 사달이 벌어졌고 말이다.
짝. 짝.
“아니, 이렇게 엄청난 폴리텍 원단을 앞에 두고 왜들 그런 표정이세요? 누가 보면 회사 망한 줄 알겠네. 우린 이것만 팔아도 부자예요. 부자!”
삼복이가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듣고 보니 그랬다.
코어텍스 못지않게 폴리텍도 어마어마하게 대박을 쳤던 제품이었다.
“삼복아, 잘 들어라.”
“응, 듣고 있다.”
“특허 출원하고 미군 군복, 정글 군화, 메리야스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쟁여놔. 그리고, 내가 베트남 가서 물건 보내라고 하면 한꺼번에 실어 보내.”
“잉? 군납부터 따는 게 아니고?”
“정식 군납으로 가면 도면을 제출해야 하고 시험 성적도 받아야 해. 그럼 기술 뺏기는 거야. 일단 물건부터 팔고 그 다음에 군납 따야해. 이거 베트남 전용이거든.”
“베트남 전용! 그렇구나. 한탕하고 마는 거구나.”
내가 만든 건 베트남 밀림 전용 군장이다.
처음 들이밀 때 최대한 팔아야 하는 거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 더 이상 팔리지도 않을 거다. 누가 배수 구멍이 뚫린 군화를 신나?
원래 역사에서도 60년대 후반으로 가면 베트남전 군장 수요가 급감했다.
“군장은 아니지만, 토시, 안면 마스크, 스타킹도 만들어놔. 그건 군복이랑 별도로 어느 정도 물량만 모이면 바로 보내.”
“토시, 안면 마스크, 스타킹?”
“그건 바로 팔 수 있어. 베트남은 모기, 거미, 거머리 천지야. 보통 원단이면 긴 옷 입으면 더워 죽겠지만, 폴리텍이면 괜찮지 않겠냐?”
“!!! 벌레 때문에 그렇구나.”
“이보게, 모기가 많다면 살충제와 모기장도 가져가야지. 숲 근처라면 모깃불부터 피우고 말이야.”
황 영감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살충제는 대세 화학에서 만들 수 있지.
나프타에서 톨루엔을 뽑아서 만들면 그뿐이다.
“삼복아, 영감님 말씀 들었지? 모기장 만들어서 보내. 살충제는 울산에서 만들도록 할게.”
“이야, 챙길 거 많네. 다 돈이네!”
베트남이라는 전쟁터를 가는데, 돈이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출국이 코앞인데 회식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 032 : 궁극의 섬유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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