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3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39화(339/589)
< 339 : 근사한 그림 >
나는 호텔로 돌아와 오르톨리 장관의 명함부터 찾았다.
직통 번호가 적힌 핫라인 명함이었다.
오후 시간이 통째로 비었기에 일정이 허락한다면 오르톨리 장관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프랑스에 왔다면 정찬을 즐겨주는 게 예의.
리비아 전투기 계약에 관한 뒷얘기도 들을 겸 말이다.
<여보세요, 오르톨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Woo입니다.”
<아이고, 언제 전화해 주시나 했습니다. 바쁘신 거야 알지만, 이렇게 애를 태우시다니요.>
응? 무슨 소리지?
내가 오르톨리 장관의 애를 태워?
“설마 제 전화를 기다리셨습니까?”
<그럼요, 코리아 대표로 우 회장님을 초청했는데 회신이 없으시니 말입니다. 어쨌든 내일 익스클루시브 파티 전에 연락이 닿아 천만다행입니다.>
익스클루시브 파티?
우리말로 하면 비밀 사교회 정도로 얘기할 수 있는 파티다. 정·재계 VIP들이 모여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기 곤란한 문제를 서로서로 품앗이하듯 도와주며 해결책을 찾는 파티다.
비공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투자금을 모아주기도 하고 인맥을 소개받기도 한다. 어쨌든 파티 호스트를 중심으로 서로 빚을 지우는 자리다.
빚을 지우고 도움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강력한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오르톨리 장관이 그런 파티를 주관해?
무슨 일이지?
“제가 외유 중이라 정부로부터 파티에 참석하라는 말만 들었지, 관련 정보는 듣질 못했습니다. 어떤 파티입니까?”
<어쩐지 회신을 안 주신다 싶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가 리비아에 전투기를 수출하고, 코리아는 대형 공사를 수주한다고 하니 사방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리비아의 기존 채무부터 해결해야지, 교역부터 터주면 어쩌냐고 말이죠.>
오르톨리 장관의 말에 대번에 상황파악이 됐다.
카다피는 기존 리비아의 채무는 국왕 개인의 부정축재라며, 채무상환을 일절 거부했다.
그게 리비아 경제제재의 시발점이었다.
즉,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리비아와 거래를 하려면 겉보기나마 리비아의 채무이행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해줘야 한다.
빚쟁이가 빚은 안 갚고 이리저리 큰돈을 쓰고 다니면 채권자는 속이 터지지.
청와대는 왜 내게 이걸 알려주지 않았지?
나는 하루에 최소 한 번은 대세 비서실과 소통하는데 말이다.
설마 청와대는 이 일을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던 건가.
괜히 리비아와 사이가 틀어지면 대형 수주가 날아간다고 말이다.
그래도 이 건은 멀리 내다보면서 챙겼어야지.
우리가 어디선가 공사대금을 못 받았을 때 국제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개인도 국가도 너무 가난하면 멀리 못 보고 눈앞의 돈에 연연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는 이 가난을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야 한다. 중진국으로만 도약해도 선진국까진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다.
“그랬군요. 단순 사교 파티 초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연락이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어디 호텔에 머물고 계십니까? 내일 7시부터 파티인데, 시간 맞춰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입니다. 기다리죠.”
<그곳이라면 파티 장소와도 금방입니다. 푹 쉬시고, 내일 파티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죠.”
전화 한 통화로 느긋했던 일정이 바빠졌다.
온갖 고위 인사들이 몰려들 테니, 일단 드레스 코드부터 맞출 필요가 있었다.
바로 백화점으로 가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싹 갈아치웠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시계도 명품으로 바꿔 찼다. 어째 돈을 많이 벌어도 이런 사치품에 돈을 쓰는 건 아까운 걸까?
리무진이나 헬기는 쓸모라도 있지, 시계는 같은 기능인데 이렇게 고가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뭐, 파티용 장비라고 생각하자.”
전생에 익스클루시브 파티에 딱 한 번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인도에서 수주한 플랜트 공사비를 떼일 상황에서 경영진의 협상을 돕는 실무자로서 말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인도를 상대하면서 꽤 고생을 했었지.
같은 계약을 매번 달리 해석하는 인도보다야 독재 국가라 해도 리비아를 상대하는 게 백번 나으니 마음은 외려 편했다.
쇼핑을 마치고 호텔 텔렉스로 본사 비서실과 긴급 소통을 했고, 오르톨리 장관이 청와대에 보냈다는 초청장을 입수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딱히 전화로 들었던 것 이외에 추가 정보는 없었으며, 청와대가 초청장을 씹었던 이유도 내 추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청와대는 프랑스의 물귀신 작전이라며 우려했지만, 나는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회신했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거든.
***
다음날,
“대세그룹 우 회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오르톨리 장관이 보내준 리무진으로 딱 제 시간에 도착했고, 매니저들이 정중하게 나를 안내했다.
나는 어느새 프랑스에서도 VIP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또한 70년대 대한민국의 원래 역사를 훌쩍 넘어선 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 회장님.”
파티는 파리 외곽의 고색창연한 고성에서 열렸다. 예상대로 참석자들은 옛날 프랑스 귀족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나 또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슈트를 선택했다고 여겼건만, 참석자의 의상에 비하면 너무 모던해보일 정도였다.
드레스 코드와는 별도로 참석자들은 내게 샴페인 잔을 들고 건배를 하듯 환영해줬고, 나도 웰컴 샴페인 잔을 들고 허공에서 잔을 부딪혀줬다.
내가 여기서 쫄 필요가 전혀 없다.
이 파티의 주관자는 명목상으로나마 오르톨리 장관과 대세 그룹 회장인 나다.
“어머, 파트너도 없이 혼자 오신 거예요?”
“허, 맥파젠 양.”
어디선가 BP社 맥파젠 영애가 다가왔다.
내게 나이지리아 화물선 수주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으며, 나는 보답으로 그녀에게 초호화 요트를 선물했었지.
“이거 반갑다고 해야 되나요, 아니면 따질게 있다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혼자 오셨다면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급히 아버님 대신 참석하는 거라…”
“팔짱은 곤란하지만, 손은 빌려드리지요.”
나는 결혼반지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손을 내밀어 맥파젠 영애의 손을 잡아 주었다.
파티에 남자는 혼자 참석해도 여자가 혼자 참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무니, 이 또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축하부터 드려야겠더군요. 성공적인 리비아 진출에 앤트워프社도 꿀꺽 하셨잖아요? 덕분에 우리 BP社는 완전 헛짓을 한 셈이 되었고요.”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리비아가 공사비를 원유로 제공하고, 대세는 원유 수출길을 뚫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예,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우린 요트도 주고받은 사이인데, 정보는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우리가 괜한 고생 안 하게요.”
“일이 이리 될 줄 알았다면 연락했겠죠. 급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니, 모쪼록 양해 바랍니다.”
나는 아주 정중하게 맥파젠 영애를 대했다.
예전보다 훨씬 정치적인 얘기를 대놓고 해댔다.
이제 맥파젠 가문의 후계자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 모양이다.
“그럼 이번 파티에서 우리 BP쪽 사정 좀 봐주시나요? 리비아에 뺏긴 BP사 자산이 6천만 달러가 넘는데 말이죠.”
벌써 중재가 들어왔다.
오르톨리 장관과 내가 이 파티의 주관자이니, 중재에 나서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다피 의장이 세븐시스터즈에 돈을 갚을 리 없죠. 결국 리비아의 재진출을 바라시는 거겠죠?”
“… 어머, 들켰나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장인어른마저 엑손이 리비아에 재진출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해했다.
“리비아가 아니라 엑손과 협의해보죠. 물론,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겠지만 말이죠.”
“앤트워프를 포기한 거로는 안되는 건가요?”
“그건 대가가 될 수 없습니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위를 바라보는 건 대가를 치른 게 아니다. 그냥 경쟁에서 진 거다.
“휴우, 거절은 아니니… 와중에 다행이긴 한데… 엑손을 만족시킬 대가가 어디 쉽나요.”
맥파젠 영애가 날 찌릿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뭐 어쩌겠나.
결국 리비아의 유전 지분의 재탈환은 장인어른이 나서줘야만 가능한 일인걸.
“리비아 밀라드 총리께서 입장하십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맥파젠 영애와 얘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밀라드 총리가 납셨다.
“오오오오!”
“어서 오십시오. 밀라드 총리님.”
사방에서 사람들이 파티장 입구로 몰려갔다.
오르톨리 장관이 깍듯하게 VIP 대접을 하며 밀라드 총리를 단상으로 안내했다.
빚쟁이도 진 빚이 너무 크면 이리 대접받는다.
“이런 멋진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존 리비아 국가 채무는 혁명정부의 탓이 아니며, 리비아 국민의 탓은 더더욱 아니며, 일부 부도덕한 벌레들이 저지른 부정축재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기에 이렇게 관련 공무원들과 동행했으니 최대한 합의점을 도출하도록 노력해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멋진 말씀이오!”
“리비아가 돌아왔도다!”
“브라보!!!!”
참석자들은 리비아가 채무상환 협상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환호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전 리비아 국왕이 빌려 갔던 차관의 일부만 돌려받아도 대성공이라고 여길 것이다.
“밀라드 총리님, 고생 많으십니다.”
“우 회장님! 여기서 뵈니 더욱 반갑군요.”
밀라드 총리는 날 보자마자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런 파티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리비아의 교역 통로는 뚫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리에 대규모 실무진도 함께하시고, 큰 결심 하셨습니다.”
“대세가 물꼬를 트셨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리비아의 발전을 위해서도 외교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하니, 채무청산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여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무원들과 온 겁니다. 카다피 원수님도 채무청산을 적극 추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주변에서 들으라고 립 서비스를 해줬고, 밀라드 총리도 딱 알맞게 정답을 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그 일에 저도 한 말씀 보태도 되겠습니까? 밀라드 총리님.”
“엇! 이라체크 대사님.”
“하하하, 오랜만에 들어보는 직함이군요. 이젠 그냥 이라체크입니다. 리비아에서 쫓겨난 뒤 아직 대기발령 상태이니 말입니다.”
“이런… 면목 없습니다.”
갑자기 우리 사이에 이라체크라는 중년 사내가 끼어들었다.
헌데, 밀라드 총리가 그를 보고는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다.
‘전 리비아 주재 체코 대사였어요. 자그마치 1.2억 달러나 떼였다고 하더군요.’
‘1.2억 달러나요?’
‘체코가 몇 년 전에 뭐라더라 600MW? 여하튼 엄청나게 큰 발전소를 지었는데 공사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카다피가 공사비는 돈 들고 도망친 왕이나 그의 측근들이 지급해야 한다고 말이죠.’
옆에서 맥파젠이 내게 귓속말을 해줬다.
리비아의 10억불 채무 중에 1.2억불이 체코에 진 빚이었어?
딱 봐도 밀라드 총리는 체코의 채무만큼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카다피는 과감히 배를 짼 거고 말이다.
여하튼 600MW급 발전소면 어마어마한데?
역시 70년대 체코의 발전기 터빈 기술은 수준급이라니까. 1.2억불이라는 공사비를 전액 체코가 받아야 한다면, 거의 모든 자재와 설비를 체코산으로 공사를 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체코를 만날 줄이야…’
‘뭐라고요?’
‘혼잣말이에요. 여하튼, 고마워요. 맥파젠양.’
리비아에 진출하는 대가로 낸시에게 체코와의 연결 끈을 원했는데, 이건 단연코 행운이었다.
‘나는 이렇게 정보를 잘 드리는데, 우 회장님은 뭐 좀 없어요?’
‘엑손을 적극 설득해보죠. 약속합니다.’
내 말에 맥파젠은 환하게 웃으면 내게서 훅하니 멀어졌다. 내가 밀라드 총리와 이라체크 사이에 끼어들 자세를 취하니 그랬을 것이다.
눈치도 빠른 여자다.
“이라체크 대사님, 체코의 발전소 공사 대금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저도 발전소 사업을 하니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미지급금이 1.2억 달러나 된다고 말입니다.”
“대세도 이번에 벵가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신다지요? 공사비는 선금 지급조건으로 계약하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떼입니다.”
“아, 이라체크 대사님…”
“밀라드 총리님, 저 이제 대사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뇌물도 아니고, 정당히 일해준 대가조차 못 챙긴 자가 무슨 외교관입니까?”
이 양반 정말 외교관 맞네.
아주 정중하면서도 푹푹 찌르는 압박을 해댔다.
주변에 채무상환을 기대하던 이들도 점점 굳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오르톨리 장관은 휙 사라졌다.
아니, 파티 주관자라는 양반이 자리를 피해?
“자자, 잠시 자리를 옮길까요? 이런 일은 조용한 곳에서 차분히 얘기하셔야죠.”
나는 두 양반을 정원 외곽으로 몰아갔다.
나로선 체코와 연줄이 닿을 이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비아와 체코에 얽힌 일은 내가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대세의 우 회장님이시죠? 요즘 자동차 시장에서 아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계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라체크는 타고난 외교관이었다.
방금 전 밀라드 총리를 푹푹 찌르더니 내게는 호의를 빙자해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절 그리 생각해주시니, 중재를 해볼 용기가 나는군요.”
“허! 중재라고요? 그게 가능할까요? 밀라드 총리께선 빚을 갚으실 생각조차 없으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아… 대사님… 제발.”
“공사대금을 전액 받으려고 하시면 협상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이라체크 대사님. 공사대금을 50% 탕감하면 어떻습니까?”
“헉! 50% 탕감이라뇨!!! 말도 안 됩니다.”
이라체크가 화들짝 놀랐지만, 난 밀라드 총리를 쳐다보며 대답을 종용했다.
“고려는 해볼 수 있겠지요. 자국산 부품을 쓰셨으면, 이익률이 25%는 되셨을 거 아닙니까.”
“50% 탕감이라면, 국가원수께서도 더이상 회피하지는 못할 겁니다.”
밀라드 총리는 그 정도면 설득 가능하다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체코로서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단 반이라도 받는 게 나을 것이다.
“그 말씀이 맞다해도 원금의 25%나 손해보라는 말씀 아닙니까? 그게 무슨 중재입니까?”
“물론, 제가 그 25%를 벌충할 수 있는 특약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트… 특약이라고요?”
“우 회장님의 특약이라면 리비아는 무조건 찬성합니다.”
이라체크 대사는 고개를 꺄우뚱하고, 밀라드 총리는 대번에 찬성하고 나섰다.
리비아, 체코, 거기에 대한민국… 아니, 뀌년을 합치면 근사한 그림이 나오지 않겠나.
< 339 : 근사한 그림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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