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4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47화(347/589)
< 347 : 중공업 백화점 >
박수를 치며 우릴 맞이한 이들에게서 엔지니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자유 진영과 달리, 국영기업을 맡은 양반들이 경영보다는 기술적으로 관리 책임을 지는 이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덕분에 나랑 잘 통하게 생겼다.
“대세그룹, CS Woo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코다 중공업, 포코로니 사장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자와 공업, 자네크라고 합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내가 중공업 기반의 사업가임이 알려졌던지 공업계통 대표들이 먼저 인사를 해왔다.
스코다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들이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눴다.
“이쪽도 인사 나누시죠, 코리아 전(前) 상공부 차관이셨고, 현(現) 경제수석 비서관이십니다.”
“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 경제수석 비서관이라니 정말 코리아의 VVIP께서 참석하셨군요.”
염 수석을 소개하니 참석자들이 날 보는 눈빛이 한 번 더 달라졌다.
이들의 관점에선 내가 공산당 수석비서를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니는 꼴이지 않나.
마치 나를 부서기장급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착각은 자유지만, 이런 착각이라면 나야 고맙지.
이런 저런 사업가들과 한참 동안 명함을 교환하고 악수하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나는 연회장의 상석에 도착해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요? 내가 코리아의 경제를 책임지는 거물 회장님을 모셨으니, 그대들은 우 회장님과의 시간을 1초라도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오. 자, 건배합시다.”
이라체크 장관은 좌중의 분위기부터 잡았다.
그리곤 내게 건배사를 하라며 정중하게 와인잔을 건넸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내 건배사를 기다리는 듯 사뭇 톤을 낮췄고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익스클루시브 파티 못지않은 격조가 느껴졌다.
“저는 이런 자리를 참으로 기다렸습니다. 넥타이 풀고 허심탄회하게 의논한다면, 코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모두에게 도움 되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겠지요.”
짝짝짝짝짝.
“건배하겠습니다. 양국의 우호와 발전을 위하여!”
“발전을 위하여!!!”
“브라보!”
기업가들이 딱 원하는 건배사를 해주니 모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건배를 했다.
“회장님, 저희는 패션전문 리알토라고 합니다. 코리아에서 원단과 신발을 수입했으면 합니다.”
“저희는 생활용품 전문점입니다. 회장님은 가전제품도 취급하시는지요?”
“원하신다면 뭐든 가능하죠. 헌데, 개별로 말씀하시면 제가 외우질 못하지요. 어디 한 곳에 정리를 해보시죠.”
건배를 마치자 사방에서 사업 제의가 들어왔다.
새로운 무역 통로가 뚫릴 기회라 여겼던지, 원하는 품목부터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칠판을 가져와서 적어보시게. 그래야 정리가 될 것 아닌가.”
“예, 장관님.”
이라체크 장관이 대번에 손짓으로 파티 매니저를 불러 칠판을 대령했다.
기업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품목부터 적기 시작했다.
각종 원단, 신발, 철강, 가전제품, 세제, 기초 의약품, 각종 건축자재 등등 필요한 것이 한두 종목이 아니었다. 생필품 부족이 심각한 모양이다.
“이왕이면 필요수량도 적어주시죠. 그래야 대략 예산에 맞춰 물량을 준비하지요.”
“아, 그렇군요. 다들 필요수량을 적어보라고.”
동네 주민들이 모여 반상회를 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공산주의 사회에 젖어있다 보니, 비즈니스 회의를 어찌하는 지도 잊어버린 것이다.
필요한 걸 말하면 정부가 어찌어찌 융통해서 배급해주니, 어떤 식으로 협상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염 수석도 나중엔 웃음을 참기 어려웠던지 연신 음료수를 들이켰다.
나도 우습긴 마찬가지였지만, 칠판에 적힌 목록을 차분하게 수첩에 옮겨 적었다.
목록 정도는 미리 조율해서 내게 서류로 줘야 단가를 협상할 텐데, 그런 준비가 전혀 없었다.
이런 엉성함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생각보다 잠재력이 큰 시장이란 느낌이 들었다.
뀌년을 통해 각종 생필품과 자재를 중개하려면, 대세실업이 종합상사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음, 원하시는 물량이 많군요. 단가를 최대한 싸게 해드리긴 하겠습니다만, 채권 규모에 맞추려면 물량 조정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야 우 회장님께서 조율해주시는 대로 따라야지요. 중립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싸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라체크 장관의 말이 옳았다.
나는 체코 쪽에 6천만불어치 물건을 주면서 9천만불처럼 느끼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목록을 받았으니 물량 조절이야 내 소관이다.
뉘앙스로는 한두 번 거래로 끝날 게 아니니, 이번 거래에서 성의를 보여달라는 식이었다.
걱정 마시라.
동구권의 첫 번째 고객이니 잘 모셔드리지.
“조만간 뀌년에 물량을 준비해서 연락드리죠. 선박을 보내시면 물건을 싣고 선화증권으로 리비아 채권을 상계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그러십시오. 자자, 다들 칠판 그만 붙들고 이리 오시게. 우 회장님께서 다 정리하셨어.”
이라체크 장관이 기업인들을 죄다 자리로 불러들였고, 본격적인 만찬이 시작되었다.
영화에서 볼법한 유럽식 정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공산국가의 만찬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
프라하 호텔,
만찬을 마치니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염 수석님도 푹 쉬시고, 내일 보시죠.”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염 수석과 인사를 했다.
“우 회장님, 송구합니다만… 이렇게 환영 만찬을 마무리 해도 되는 겁니까? 우리가 줄 것만 챙기고, 받을 것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지 않았습니까.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경우가 아니긴. 내가 일부러 의도한 건데.
이라체크 장관이 계속 옆구릴 찔렀지만 난 일부러 딴청까지 피우며 원하는 걸 말하지 않은 거다.
“조급해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뀌년을 통해 한국산 제품을 한번 접하면 절대 체코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시면…”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더 가지고 싶어 안달할 때, 그때가 우리가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아, 그렇군요. 굳이 남의 안방에서 협상할 이유는 없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물론, 여기 온 김에 윈도쇼핑은 하고 가야지요. 체코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뀌년에서 바꿔줄 물건으로 뭘 가져다 놓을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이지 회장님 말씀을 듣다 보면 제가 아는 게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청와대 수석비서를 맡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염원철 수석답지 않게 고개를 늘어뜨리며 풀죽은 표정을 했다.
언제나 활기차고 둥글둥글한 양반인데 말이다.
“아니, 잘 하고 계시는데 왜 그러십니까? 저야 장사꾼이라 그런거고, 정치야 염 수석님이 저보다 훨씬 전문가이시지 않습니까.”
“휴우, 요즘엔 제가 정치마저 초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이없게 경호실 따위에 면박을 당하다니, 비서실의 격을 지키지도 못하지요.”
“안 그래도 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구축함 명명식 때도 대통령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을 모르시던데 말입니다.”
나는 라운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얘기를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도 내게 하소연을 하고 싶으니, 괜스레 이런 말을 꺼낸 거다.
“눈치채셨습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이 득세를 한다 싶더니, 최근엔 ‘대통령경호위원회’라는 별 희한한 기구까지 만들었습니다. 각하의 경호를 위한 기구라는데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방, 법무, 내무, 외교부 장관 등을 죄다 그 밑에 위원으로 넣었습니다. 이런 정부조직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뭐야? 거의 초법적인 조직인데?
“그게 가능하긴 합니까?”
“뭐, 나정렴 실장님은 물론 국무총리도 항의를 했는데 각하께선 이왕 만들어졌으니 한번 실행해 보라고 하셨다더군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염 수석은 잘 피우지도 않던 담배까지 피워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대통령님도 알고 계셨다는 뜻이군요.”
“물론, 광복절 피격사건을 떠올리면 경호실 개혁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호실이 국정에 관여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심지어, 각하께 기어오르는 재벌도 손봐야 하다며 공공연히 떠들어대니 도저히 역겨워서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기업인들까지 손을 본다고요?”
“해외건설로 떼돈을 벌게 해주는데도 각하께 명절 인사조차 안 오는 자들이 있다면서 말입니다. 경호실이 나서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다더군요. 미친 놈도 아니고…”
차지철, 이 놈 봐라.
듣자 하니 날 지목한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심각한 문제인데?
“설마 날 지목한 겁니까?”
“에이, 설마요. 감히 우 회장님을 어찌 건드립니까? 다만, 국기 하강식 때 우 회장님을 초대해서 애국심을 검증하겠다고 하길래 비서실장님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가 지금 비서실 전체에 일이 없어졌습니다.”
“국기 하강식?”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모르는 척 하십시오.”
국기 하강식이라…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다.
차지철이 벌인 어이없는 짓거리 중 하나였다.
정·재계 인사들을 죄다 모아놓고 경호실장에게 거수경례하고,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는 행사가 아닌가. 이번 역사에서도 그 뻘짓이 반복된다고?
“대통령님은 그런 짓거릴 용납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 특유의 분할 통치식 용인술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번 역사에선 영부인도 멀쩡하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저희도 모르니까 답답하지요. 물론, 이해되는 면은 없잖아 있습니다. 총알이 각하의 관자놀이를 스쳐 갔고, 영부인도 참석하셨다면 참변을 당했을 일이었으니 경호실을 중히 여기시는 건… 아니지, 영부인도 우 회장님 덕분에 화를 면한 것 아닙니까! 어휴!!! 이거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염 수석도 말을 하면서 새삼 화가 치미는지 담배를 마구 비벼껐다.
뭐야, 대통령이 PTSD 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하긴, 21세기엔 교통사고만 당해도 PTSD 치료를 받는데 누군가 자기 목숨을 노렸다고 생각하면… 맹목적인 추종자를 곁에 두고 싶어지나?
원래 역사에서도 차지철이 득세하면서 대통령도 총기를 잃어갔던 모양이다.
여태 나는 미래를 고민만 했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면 대통령이 더 망가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부터 해야겠다.
고민만으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군부 독재만큼은 두고 볼 일이 아니지 않나.
그 일을 외면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휴우, 국내 정치도 많이 어렵군요. 그래도 여기 일부터 처리하시죠. 체코와 외교 물꼬를 트는 것은 인정받든 못 받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예, 그래야지요. 괜한 넋두리로 우 회장님 생각만 복잡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운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알아야 피하지요.”
“그리 말씀해주시니 제 마음도 편합니다. 정말 우 회장님과 쓰러져가는 여관방에서 소주 한잔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체코까지 와서 국빈 대접을 받으니 정말 세월이 무상합니다.”
나라 걱정에 추억까지 들먹일 필요 없다.
쓰레기들만 싹 치워버리면 대한민국은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다.
우린 그런 민족이다.
세상에 이런 민족은 없다.
“뭘 그러십니까? 앞으로 하실 일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여기 일도 곧 추억이 될 겁니다.”
“예, 우 회장님 말씀이니 믿겠습니다.”
염 수석이야 내 말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겠지만, 난 진심이었다.
70년대 경제성장 정도가 나와 대한민국의 목표치가 아니지 않나.
그보다 수십 배는 더 커져서, 아무도 딴지 걸지 못하는 선진국이 되어야지.
70년대를 잘 헤쳐가면 반드시 그리 될 것이다.
오랜만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미친 놈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체코만 후딱 처리하고 바로 귀국하자.
***
이틀 뒤,
“하하하, 잘 주무셨습니까?”
“예, 어젯밤 서기장님의 만찬사 덕분에 간만에 숙면을 취했습니다. 통 크게 연락사무소를 허락하셨으니, 이제 안심하고 귀국해도 되겠다 싶더군요.”
아침 일찍 찾아온 이라체크 장관에게 짐짓 내일이면 훌쩍 떠날 것처럼 말했다.
장관의 표정에 뭔가 스쳐 가더니 결국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연락사무소 뿐이겠습니까? 서로 강대국 눈치 좀 보다가 이때다 싶으면 영사관도 개설하고, 대사관도 개설해야지요.”
냉전 시대에 공산국가와 대사 관계를 맺기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그 말은 사실이 될 것이다.
“듣기만 해도 좋군요. 저도 귀국하면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공식 일정이 없으시니 저랑 같이 관광이나 하시는 건 어떤지요?”
드디어 이 능구렁이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줬다. 정말 이대로 귀국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결국 내가 이겼다!
“하하, 좋습니다. 헌데 아시다시피 저는 제조업자라, 관광보다 체코의 기업들을 한번 둘러 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오, 잘 됐군요. 안 그래도 보여드리고 싶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쫙 한번 둘러보시죠.”
먼저 말을 꺼냈으니 나도 본색을 드러내 줬다.
서로 장단을 맞추니 어디선가 염원철 수석이 척하고 끼어들었다.
“앗! 오늘 관광이 아니라 산업현장을 둘러 보시는 겁니까? 저도 끼워주시면 영광입니다.”
“물론이죠, 염 수석님도 같이 가시죠.”
염 수석은 언제 구했는지 관광객처럼 카메라를 목에 걸고 따라나섰다.
나야 대놓고 사진을 찍긴 뭐하지만, 약간 어리바리 대는 염 수석이 찍어내면 뭐라고 못할 거다.
그리 보면 염 수석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해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양반이다.
괜스레 수석 비서관까지 올라간 게 아니다.
“자, 가시죠. 체코 슬로바키아 최고의 자랑인 스코다 중공업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라체크 장관은 대번에 스코다로 우릴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그럴 줄 알았다.
현재 우리나라에 국빈들이 방문하면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게 포항제철과 대세조선이지 않나.
70년대 체코에서야 스코다 중공업이 최고지.
“스코다 중공업? 아, 환영회 때 명함도 교환했습니다. 발전기부터 전차까지 안 하는 게 없다고 하더군요.”
환영회 때 이런저런 얘기로 찔러봤는데,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저희는 오래전부터 시계부터 기관총, 각종 엔진, 아음속 전투기까지 웬만한 건 죄다 생산했던 공업국가입니다. 게다가 동유럽에선 원자력 발전의 주요 기술보유국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살펴보면 주고받을 게 많을 겁니다.”
“이거 기대가 큽니다. 어서 가시죠.”
우리는 대번에 차에 올랐다.
드디어 쇼핑이 시작되었다.
< 347 : 중공업 백화점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