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6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63화(363/589)
< 363 : 방산도 돈이 된다 >
“제안이라니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식당에서 할 얘기는 아니고 아까 콜라가 있던 우물가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소박한 성찬을 깔끔하게 비우고 식판도 반납한 다음 아미치 장관과 함께 우물가로 향했다.
우물가에서도 한참을 망설이던 아미치 장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국가 간에 동반자 관계는 동맹보다 한 단계 아래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도 단순한 수교국보다는 훨씬 각별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략적 관계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우리 나이지리아는 지하자원을 제외하곤 국방, 치안, 경제구조 등등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지요. 심지어 국민들마저 부족별로 나뉘어 반목하니 역량을 제대로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은 정반대이고 말입니다.”
아미치 장관은 참담한 어조로 말했다.
옳은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라에 자원이 없어서 그렇지, 국란 극복이 특기인 민족이다.
물론 평소엔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각만은 아주 분명하다.
여하튼 아미치 장관의 솔직한 말에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자기 나라가 개판이라는 걸 대놓고 말하긴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유학파라 외국에서 보고 들은 게 많다 보니 자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남부지방에 새마을 운동을 더 격렬하고 광범위하게 실행해 주십시오. 남부를 부유한 농촌, 더 나아가 공업 도시로까지 발전시켰으면 합니다.”
“일단 남부부터 잘살게 한다는 전략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250개 부족이 죄다 자기 욕심만 차리고 있으니 남부라도 먼저 발전시켜서 일단 국고부터 안정적으로 채워야 합니다. 더 이상의 약탈과 부정부패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 양반 연구 많이 했네.
정부가 힘이 있으려면 일단 국고부터 넉넉해야 하는 거다.
물론, 아무리 넉넉한 곳간도 이상한 놈이 다루면 없느니만 못 하지만 말이다.
“국고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잘 지키고 제대로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가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한국제 무기를 수입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무기도 무기지만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했던 서양 군대를 끌어들일 수는 없으니, KDA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저희 정부군의 교관 역할도 해주시고, 각종 무기 체계와 특히… 고속 초계함을 팔아주셨으면 합니다.”
뭐야? 이런 엄청난 제안을 한다고? 대박!!!
어쩐지 대세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전략적 동반자 어쩌고저쩌고했던 이유를 알겠다.
무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방 체계를 한국형으로 갈아치우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로선 다시는 서방의 제국주의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고, 그러면서도 국방력은 강화하고 싶으니 가장 상황이 비슷한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아 국방체계를 갖추겠다는 소리였다.
누구랑 의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더 나은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저는 국방체계를 바꾸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회장님 정도라면 한국 정부에 충분히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짐짓 표정을 굳혔지만, 난 방탄복에 소총에다 총알까지 만드는 사람이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에 납품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국방체계는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한번 시작하면 수십 년간 고정고객이 되는 것이다.
겨우 적자만 면하던 방위산업이 날개를 달겠군.
뀌년을 지키기 위해 KDA를 설립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대박이 났다.
월남전 참전군인 중 일부만 끌어온다고 해도 나이지리아 파견 교관이나 KDA 인원을 확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애국하고 돈 벌고! 참전용사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까지 주는 것이니 이 협상은 역사에 길이 남을 협상이 될 것이다.
아미치 장관이 보는 것만 아니라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안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네, 뭐든 말씀하십시오.”
“대세는 동남아에 거대한 허브항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나이지리아 국영 해운사가 들어갈 수 있게끔 해 주십시오.”
“터미널을 할당해 달라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굳이 먼 동남아의 터미널이 필요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우리들은 여태 모든 통상을 미주 대륙과 유럽과만 해왔습니다. 당연히 칼자루를 쥘 수 없었지요. 이제 아시아와도 무역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야, 이 양반.
통상자원부 장관을 할 만하네.
협상에서 뭐가 중요한 지를 아는군.
대안이 없는 상대처럼 휘두르기 좋은 대상이 어디 있겠나.
“그러시다면 당연히 내어 드려야죠. 유틸리티 사용료를 포함한 실비만 받고 대여해 드리죠.”
“아, 그런 호의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나이지리아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이득을 챙겨도 충분하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아시아 쪽으로도 교역량을 키우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나이지리아가 뀌년을 중심으로 대(對)아시아 무역을 개시한다면,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 전역을 공략할 전초기지가 되어줄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동남아의 뀌년, 서유럽의 앤트워프, 미국의 포틀랜드까지 거대한 체인이 엮어지니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뀌년에 취항하게 되면 국방과 통상, 거의 모든 것을 한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 솔직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나이지리아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한국은 약탈하고 빼앗는 국가가 아닙니다. 서로 상생해서 같이 잘 사는 국가지요. 그걸 우리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상생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다.
제국주의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 협력 관계의 국가들에 위압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컨벤션센터도 아니고 한낱 우물가에서 나누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은 축복이니 나름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나이지리아도, 대한민국도 이 회담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겁니다.”
나는 그리 말하며 여태 나눈 내용을 수첩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서명을 했다.
보고 있던 아미치 장관도 따라서 서명을 했다.
정식 협정서는 아니지만 이걸 근거로 우리 정부와 나이지리아 정부 실무자들이 구체적인 협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전략적 동반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국방 회담은 정부에서 따로 주관할 테고, 통상 회담은 뀌년에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대여할 터미널도 돌아보시고 뀌년 창고에 쌓여 있는 한국산 물건도 보시면 수출입 물품에 대해서도 논의하기 편하실 겁니다.”
솔직히 나이지리아산 철광석이 탐이 났다.
여태 운송비가 많이 들어서 포기했었는데, 구상 무역 형태로 단가를 싸게 책정할 수 있다면 호주산 못지않게 대세에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 통상 회담을 뀌년에서요? 좋습니다. 나이지리아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제3국이니 공평한 협상이 되겠군요.”
“양국 모두에게 멋진 회담이 될 겁니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여기까지 오셨으니 라고스까진 초계함으로 가시죠. KDA 직원이 모셔다드릴 겁니다.”
“하하하,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지요.”
아미치 장관은 그런 배웅이 마음에 들었던지 껄껄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때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새마을 지도자들과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이리 모이십시오. 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죠.”
“와아아아, 사진이다.”
사진 찍자는 말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고 아미치 장관도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드넓은 논밭을 배경으로, 마지막으로 초계함을 등 뒤에 두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라고스로 되돌아가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할 증거 사진이 되어줄 것이다.
“조만간 뀌년에서 보시자고요!!!”
“예에! 뀌년에서 봅시다.”
아미치 장관은 떠나가는 내내 손을 흔들었다.
연신 마을을 눈에 담는 걸 보니 움막집이 벽돌집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울컥했던 모양이다.
우리도 그 마음 잘 알지.
가난을 벗어나는 건 감동과 희열! 그 이상이다.
***
며칠 뒤,
“이거 참, 끊임없이 텔렉스가 쏟아지는군.”
내가 청와대 비서실에 나이지리아의 제안을 텔렉스로 보냈더니 답신은 즉각적이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떤 무기를 수출하면 되겠냐며 무기 리스트를 주르륵 열거해 보내주기까지 했다.
받자마자 찢어버리긴 했지만,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은 무기를 만드나 싶을 정도였다.
81㎜ 박격포, 106㎜ 무반동총, 155㎜ 곡사포까지 이거 언제 만들었지 싶은 것들이 꽤 있었다.
각종 방산업체도 나름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하긴 대통령이 내게만 숙제를 줬겠나?
아, ADD도 엄청 굴렸겠지.
ADD에도 방산 전문가들이 수두룩하지 않나.
“회장님, 배가 들어옵니다.”
“아! 드디어 들어오나요?”
비서실의 텔렉스를 곱씹어 보고 있자니, 신중도 차장이 달려와 흥분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SNOS 공사를 마친 대세건설 직원들이 드디어 나이지리아로 들어오는 것이다.
워낙 대규모 공사였기에 절반은 리비아로, 절반은 나이지리아로 배치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여기 프로젝트가 커지면 UAE 쪽에서 공사 중인 DBB 컨소시엄을 불러들이면 된다.
“예, 회장님. 좋은 소식이 또 있습니다. SNOS에서 남은 자재를 가져오는 데다, 공기를 단축할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직접 설명하겠답니다.”
남는 자재야 당연히 가져오는 거지만, 공기를 단축한다고? 여기 프로젝트도 정말 빡세게 일정을 잡아놨는데, 그걸 앞당길 수 있다고?
“그래요? 어서 마중 나갑시다.”
어떤 아이디어인지 궁금했다.
여하튼 SNOS 공사를 담당하는 이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기에, 그들을 신중도 차장에게 붙여주기만 해도 일은 척척 진행될 거다.
나는 그들을 맞이하고 귀국해야지 싶었다.
아무리 나이지리아의 가스전이 대박이라고 해도 그룹 회장이라는 놈이 한 달 내내 여기 일만 챙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챙겨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뿌우우우우…
“와아아아아! 꼬레아! 꼬레아!”
“배가 들어온다! 배가 온다!”
사람들은 대세가 뭔가를 또 싣고 오니 일단 환호부터 했다.
이번에 온 배는 워낙 커서 임시 항구에 정박할 수 없고 예인선으로 물건을 하나하나 옮겨야…
어?
“신 차장, 뭐죠? 웬 바지선 입니까?”
“저… 저도 잘…”
들어오는 배가 SL-7인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옆에 딸려오는 것들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대형 데릭크레인 바지(바지선 위에 장착된 크레인)였다.
최소 600톤은 거뜬하게 들어 올릴 것 같았다.
대세조선에서 운영하는 해상 크레인이 아닌데, 대체 저 비싼 장비를 어디서 구한 거지 싶었다.
더욱이 일부 예인선은 거대한 자켓을 실은 바지선을 임시항구로 끌고 들어왔다.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자켓과 데릭크레인 바지라니… 심지어 SL-7 갑판에는 엄청난 물량의 파일도 실려있었다.
“회장님!!!”
“아니, 이게 누굽니까!”
예인선에서 누군가 훌쩍 뛰어내리기에 봤더니 아버지였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도 모르게 와락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김 이사님이 왜 여길 온 겁니까? 주베일 현장은 어쩌고요?”
“오랜만에 회장님을 뵙고 싶어서 말입니다.”
“농담 말고요.”
“하하, 걱정 마십시오. 주베일도 공사 시작한 지 이제 22개월째입니다. 제가 잠시 외부 지원을 나와도 주베일 현장은 충분히 잘 돌아갑니다.”
하긴 장장 2년 동안 아버지는 주베일 공사를 훌륭하게 책임지고 있었다.
중동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주베일 산업항 프로젝트는 찬사 일색이었다.
온갖 험담과 질시 속에서도 우리 대세는 묵묵히 서구 건설사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의 속도와 공사 품질을 증명해냈다.
“그래요, 김 이사님 말이라면 나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기 데릭크레인 바지와 자켓은 뭡니까?”
“BR사와 벡텔사가 회장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전해달랍니다. BR사는 어쩌다보니 데릭크레인 바지에 여유가 생겼다며 24개월간 공짜로 빌려준다고 하고, 벡텔사는 다른 공사에서 대형 자켓 2개가 남았다며 회장님께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뭐라고요? 하하하!”
이런 비싼 장비와 자켓이 남아돌 리가 있나.
이 양반들, 내가 나이지리아를 혼자서 다 먹을까 봐 뇌물을 주는 거구만.
“그리고 BR사가 공동 설계를 제안했습니다. 대세라면 공기를 절반은 아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처음 제안하는 신공법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BR사가 제의한 설계 보고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두 회사의 선물 공세가 끊임없었다.
LNG 플랜트 설계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걸 대세 혼자 하지 말고 BR사와 같이 하자는 의미였다.
“신공법… 허! MP공법이라니.”
무슨 당근을 주려나 싶었더니 자그마치 MP 공법이었다. Modulization and Prefabrication.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모듈단위 조립공법? 정도가 될 것이다.
해안가에 대규모 플랜트를 건설할 때 하부구조인 자켓을 먼저 설치하고 그 위에 미리 만들어둔 상부 구조물을 얹어서 완공하는 공법이다.
말이 쉽지, 온갖 시설을 야드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으로 싣고 와서 조립하는 것이라 토목, 건축, 배관, 기계, 전기 등등 웬만한 기술력 없이는 시도조차 못하는 공법이었다.
심지어 공차관리마저 극도로 어렵다.
그 모든 노하우를 BR사가 우리 대세건설 설계팀과 나누겠다고? 배워가려면 어디 한 번 배워가 봐라, 하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래, 이 정도 당근은 줘야 나이지리아에서 같이 일하지. 우리 설계팀이 또 한 계단을 뛰어오르겠군.
“저희가 주베일항만에 파일부터 박고 OSTT를 시공하는 걸 보고 해볼 만 하다고 판단했답니다.”
그래서 대세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했군.
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쓰이는 공법이니, 자그마치 10년은 족히 앞서는 기술이다.
BR사와 벡텔사가 신공법을 미리 실험해보자는 의미로 설비와 자켓을 지원한 것이다.
신공법이 가능하다고 여긴다면, 나이지리아 공사도 DBB 컨소시엄으로 하자는 뜻이군.
나야 당연히 이게 성공한다는 걸 알고 있다.
세심한 설계 기술이 필요해서 훗날을 기약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LNG 플랜트의 발주처는 나이지리아 정부, 상업 차관은 BP와 대세, 건설 주체는 DBB가 되겠군.
이상적인 배분이다.
“그래서 주베일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시범을 보여주러 온 겁니까?”
“예, 아무래도 한 번 해봤으니 조금은 낫지 싶어서요. 신중도 차장이 여기 책임자라 알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김 이사님이 도와주신다면 천군만마지요.”
신 차장은 정말 고마운지 연신 허리를 굽혔다.
“좋습니다. 김 이사님을 믿고 난 귀국하죠. 신 차장은 장차 나이지리아 전체를 맡을 사람이니 잘 협의하시기 바랍니다.”
“헉! 회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신 차장은 감격했고, 아버지는 그런 신 차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 363 : 방산도 돈이 된다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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