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88)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88화(38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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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8 : 마스터 키 >
“감기동 박사라고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동독의 광학기술까지 알고 있었군요.”
“예, 대한반도체를 설립한 분인데 저희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성심성의껏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빌 베인이 당황스러웠다고 하는 걸 보니 사업가보다는 엔지니어에 가까운 사람인가 보네.
어쨌든 감기동 박사라는 양반이 우리나라의 반도체 분야에선 선구자인 모양이네.
반도체는 수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한 줄 알았더니 시작은 개인이 했던 모양이군.
하긴, 어느 분야든 처음부터 대기업이 시작한 경우가 어디 흔한가.
반도체야 극한의 장치 산업이다보니 결국 대기업 형태로 흘러갔을 뿐이다.
“그렇군요. 차후 여러 차례 조언이 필요할 테니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십시오.”
“예. 미국 모토로라 출신으로 경력의 폭도 넓고 대한반도체의 장비를 직접 셋업할 정도로 전문가이니 도움받을 일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라인도 셋업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다만 기술적으로 올인해서 그런지 경영에는 전문가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회사 설립때 물주와 50대 50으로 합작했다고 합니다. 최근 수성이 물주 지분 50%를 인수했다고 하니, 경영권을 잃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런, 물주보다 지분을 1%라도 더 가졌어야죠. 그게 기본인데…”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수성이 범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지분 50%를 매입하면서 경영권 장악에 나서면 감기동 박사 개인이 어떻게 막나.
오히려 지분을 비싸게 팔고 나오는 게 답이다.
하긴 빌 베인의 눈에도 띌 정도의 회사인데, 수성 쪽엔 절호의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가전 사업을 하면서 반도체에 대한 욕구는 커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수성이 이렇게 해서 반도체를 시작했구나.
감기동 박사의 회사를 꿀꺽하면서 초기 셋업 기간을 꽁으로 먹은 거다.
내겐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나비 효과를 고려하면 수성 반도체와 협업하느니 원래 역사에선 구석으로 밀려났을 감 박사를 끌어들이는 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
경영권 분쟁에서 나가떨어지면 스카우트해서 반도체 장비팀을 맡겨도 될 것 같다.
전후 사정을 짚어보니 대충 작전이 섰다.
칼자이스 기술은 들여와서 감 박사와 그의 동료에게 맡기고, 잠수함은 내가 직접 챙기면 되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보고서는 읽어볼 테니, 추가로 계속해서 정보를 모아주십시오.”
“예, 회장님.”
필립홀쯔만이 다리를 놓아줄 때 최대한 땡겨야 한다.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으리.
“동독 관련해서는 주간 보고회를 기다리지 말고 이슈가 생기는 즉시 보고하기 바랍니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빌 베인의 보고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처음에 모호했던 전략이 광학과 잠수함 기술도입으로 결정되자 숨 돌릴 여유가 좀 생겼다.
짐작대로 동독의 엔지니어링 기반은 전후(戰後)에 급격히 무너졌던 모양이다.
패전 직후 고급 기술자들은 대부분 서방으로 탈출하고 동독에 남은 이들이 극소수였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뒤져봐야지.
먼지가 쌓여있다고 해도 몇십 년간 아무도 손대지 않은 보물창고이지 않은가.
잠수함이야 영도조선소에 맡겨서 군함 건조와 시너지를 도모하는 게 맞고, 칼자이스 기술은 연구소로 돌리는 게 맞겠지?
울산으로 가는 길에 창원 연구소를 들러야겠다.
그러고 보니 한참 대학교를 짓고 있을 텐데, 황 영감님이 즐거워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겠군.
“아, 베인 실장!”
“예,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사우디에 수주팀을 파견하십시오. 리야드 아파트는 대세건설 김 이사에게, 시설 플랜트는 대세중공업 단충기 부장에게 맡기세요. DBB나 필립홀쯔만과의 소통은 마크 지사장에게 맡기고요.”
“예, 회장님. 조치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단충기 부장은 이번에 데뷔전을 치러야지.
베테랑들이 함께하니 나름 좋은 조건이다.
이미 윗대가리의 분위기는 잡혔으니, 실무진들끼리 접촉하면 수주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나는 빌 베인에게 업무 지시를 마치고 본사를 떠났다. 차 안에서 동독 보고서를 읽으며 창원으로 향했다.
***
창원공과대학교, 건설현장.
“이야, 황 소장님. 정말 멋집니다!”
“하하, 아직 완공도 못했는데 멋진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골조가 올라가는 것만 봐도 대충은 압니다. 게다가 대학교 캠퍼스에 이처럼 멋진 호수와 잔디밭이 있는 곳이 있을까요?”
“외국 대학교엔 죄다 호수와 잔디밭이 있더군요. 비가 올 때는 우산 없이도 건물을 오갈 수 있게 지붕 있는 통로도 있고 말입니다.”
황 소장님은 외국 캠퍼스 사진을 여러 장 내게 보여주었다. 홍보 사진인 걸 감안해도 멋지기 그지없었다.
“스탠퍼드 대학을 참고하셨군요.”
딱 보니 스탠퍼드 캠퍼스 사진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출장 가면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꼭 둘러보는 필수 코스가 아닌가.
21세기에서야 별다를 것 없지만, 70년대에 한국인의 시각에선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90년대에 첫 출장을 갔을 때엔 푸르른 잔디밭에서 도넛과 커피를 즐기는 미국 학생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한참을 쳐다봤었다.
추억이라기엔 마냥 좋은 기억은 아니다.
가난한 고국의 모습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타국의 모습에 짜증이 날 정도였으니.
내 아이들은 그런 열패감 따윈 느끼지 않도록 정말 잘 살게 해주고 말리라.
‘여기가 그 일의 시작이군.’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그 일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직접 가진 못해도 자료는 많이 봤는데 이곳처럼 짓고 싶더군요. 어쨌든 대학생이면 들고 다닐 책도 많은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다니기 번거롭지 않습니까? 대학교에선 매 수업마다 강의실을 옮긴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 해주다니 대단했다.
“학생들도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런데, 제가 여기 학생이라면 기숙사에 더 열광할 것 같습니다. 2인 1실에, 식당도 바로 붙어 있고, 매점, 샤워실, 세탁실까지 있다니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끔 짓겠다길래 대세건설에 이르길 공사비는 걱정 말고 황 소장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라고 했더니 꽤 고급스러워졌다.
정말 이 정도 시설이면 스탠퍼드 기숙사 못지않았다. 아니, 70년대 한국에선 거의 호텔급이었다.
캠퍼스엔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 학생회관, 대형 강당까지 있어 편의 시설도 좋았다.
“객지로 나와서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 빨래 정도는 편하게 해야지요. 서구의 대학교는 이런 식으로 기숙사를 운영하더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도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을 제대로 대접해줄 때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기둥이 될 인재들인데 말입니다.”
역시 황 영감님이다.
로열티로 번 돈을 아낌없이 퍼붓고 있었다.
현재 들어간 공사비는 대략 28억원, 이대로 완공까지 대략 80억 정도가 들것 같았다.
21세기로 따지면 1200억은 족히 될 거다.
전 재산을 털어서 하는 일인데 이렇게 기분 좋아할 수 있다니.
물론 이렇게 돈을 쓰실 수 있게 내가 로열티를 잘 챙겨드리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훗, 이거 너무 낸시스러운 생각이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생각을 실천해낼 수 있는 황 영감님은 정말 특출하신 분이다.
“그래야죠. 여하튼, 이런 속도면 내년부터는 신입생을 받을 수도 있겠는걸요?”
“물론입니다. 록펠러 연구소에서 교수진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저명한 한국 교수들도 대거 지원하더군요. 학생 30명당 1명꼴로 교수진이 구성되었습니다. 기자재만 갖추면 됩니다.”
“학생 30명당 교수 1명이라고요?”
“1년에 딱 500명 정도만 뽑아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과대학인데, 콩나물 교실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쳐서야 되겠습니까?”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70년대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황 영감님은 정말 교육계의 큰 별이 되겠군.
“다른 캠퍼스는 여길 참고해서 확장하실 계획이군요.”
“그렇습니다. 일단 창원부터 시작하고 단점을 보완해 여수와 부산 캠퍼스를 시공할 예정입니다. 거기 들어갈 돈도 모아야 하고 말이지요. 하하.”
“돈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남아 국가와 협력해서 대규모 타이어 공장을 만들 겁니다. 타이어 코드(내부 보강재)로 카블라가 들어가니 로열티가 더 늘어날 겁니다.”
솔직히 돈은 부족하지 않을 거다.
본 캠퍼스인 창원에도 고작 80억원, 1600만달러 정도 들어갔는데 여수와 부산 캠퍼스야 30억원 정도면 충분할 거다.
“허허, 그런 말씀은 언제 들어도 반갑군요. 여윳돈이 있으면 여기 도서관에도 대세 도서관처럼 전세계 저널과 원서를 죄다 사들이려고 했는데, 당장 투자해도 되겠군요.”
“얼마든지 하십시오. 최고의 공과대학인데 저널과 원서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전세계 공학 자료란 자료는 죄다 끌어모으십시오.”
일본이 기초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국가에서 도서관을 잘 운영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 공립 도서관은 독서실 수준이지만, 산업계만큼은 대세 도서관이 버텨주고 있다.
이제 학계에서는 창원공과대학 도서관이 받쳐준다면 그럭저럭 자료 품귀 현상은 줄어들 거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마땅한 책이 없다, 연구를 하는데 참고 논문을 찾을 수 없다면 그 나라 과학기술은 망하는 거다.
연구는 누군가가 쌓은 탑 위에 더 높이 쌓아나가는 과정이지, 누군가 했던 일을 헤딩해가며 깨치는 과정이 아니다.
“아, 오늘 좋은 소식을 듣는 날인가 봅니다. 회장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카블라 소식도 그렇고 정부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정부에서요?”
“여기 창원공과대학 학생에겐 국가가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석사를 마치면 군 특례도 준다고 합니다.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여기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 그런 특례를…”
“여기 입학생들은 나라의 기둥이 될 거라는 제 말에 청와대 비서관들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염 수석이 황 소장님의 계획을 듣고 청와대로 달려가 울먹이며 주먹 한번 불끈 쥐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라의 기둥이 될 인재들은 길러낼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물론 대학원을 마치고 방산업체에 5년간 복무하는 조건이겠지만, 그래도 군대보다 훨씬 낫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등불과도 같은 정책이 되겠군.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리겠어.
“황 소장님의 나라 사랑을 청와대에서 알아준 게 아니겠습니까.”
“허허, 부끄럽군요.”
청와대가 입으로야 맨날 국방력이 1순위라고 부르짖지만, 실제론 먹고사는 문제와 국가 기술력 향상이 나라의 근간임을 잘 알고 있는 거다.
독재자라 내심 욕하긴 하지만, 이번 특례법만큼은 청와대에 들르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한마디 해 줘야 되겠네.
황 소장님과 나는 아주 기분 좋게 캠퍼스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헤어졌다.
딱히 황 소장님께 동독에서 기술을 들여올 테니 준비하고 계시라는 말은 안 했다.
흐뭇한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울산 집으로 돌아왔다.
“유진아, 네가 대학교 갈 땐 우리나라가 아주 근사해지겠어!”
“꺄아아아아~ 좋아~ 좋아~”
“아빠가 비행기 태워주니까 재미있지?”
“더 빨리~ 더 빨리~ 꺄아아아아~”
“동독 갔다 올 때 맛난 것 사 올게! 기대해.”
“케이크~ 케이크~”
“하하, 알았어. 케이크.”
“안돼요, 찬수 씨. 그런 거 자꾸 먹이면 안 돼요. 고델 장군님이 애 버릇을 망쳤어!”
나는 여독을 푼다는 핑계로 유진이를 비행기 태우며 놀았고, 페기가 깎아주는 참외와 수박으로 사우디 커피 맛도 지워냈다. 대세조선에 출근해서는 영도조선의 잠수함 계획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촤르륵. 촤르륵.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막스밀리언 회장으로부터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텔렉스로 온 전문에 불과했지만, 내겐 훌륭한 파티 초대장처럼 보였다.
“가자! 쇼핑 한 번 근사하게 해보자.”
나는 내 자신을 다독거리며 공항으로 나섰다.
***
서베를린, 테겔 공항.
“어서 오십시오, 우 회장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라뇨. 회장님께서 직접 마중까지 나와주시니 감동입니다.”
막스밀리언 회장이 직접 마중까지 나왔다.
“우 회장님께서 합작이라는 큰 결심을 해주셨는데, 이 정도도 못 하겠습니까? 제가 동독 입국 절차는 다 마쳐놓았으니 가시지요.”
동독으로 입국하려면 각종 서류절차와 심문절차까지 겪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내겐 예외였다.
동독으로 들어가는 기차의 귀빈실에 앉아 있으니 공무원이 찾아와 여권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친절했다.
독일에서 필립홀쯔만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기차로 동 베를린에 도착해서는 차로 갈아타서 한참을 내달렸다.
공기가 좀 매캐해졌을 무렵 차가 멈췄고, 동독 산업단지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는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허름하게 보이지만 규모는 엄청난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간혹 콘크리트 뼈대만 남은 폐공장도 보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공단은 정상 가동 중인 것 같았다.
“여기가 동독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단지인 마그데부르크-앙크라트 공단입니다. 자동차, 화학, 기계, 철강, 전기, 식품, 의류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공단치고는 너무 다양한 업종들이 모여있군요. 가동률도 썩 높아 보이지도 않고 말입니다.”
다소 어이가 없었다.
공단은 업종별로 특화해야 시너지가 생기는데 죄다 모아놓기만 하면 어쩌나.
공업용수 부족, 정전, 분진 오염, 물류 정체 등 시너지는커녕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 조달을 위해 급조된 곳이라 그렇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물론 전범국가의 국민이 할 소리는 아닙니다만.”
막스밀리언 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은 분단국가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난 립서비스를 해줬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대가로 분단되었지만, 우린 뭔 죄로 분단된 건가? 억울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 혼자 삭혔다.
“그래도 이리 모여있으니 기술 협의하기는 아주 좋습니다. 오늘은 우 회장님 요청대로 자동차 업체들부터 모았습니다.”
“음? 저는 첫날 일정은 칼자이스 위주로 맞춰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만…”
“예, 그래서 자동차 업체를 불렀습니다. 아, 칼자이스처럼 자동차 부품업체만 만나시고, 완성차 업체는 필요 없다는 말씀이셨습니까? 이런…”
뭐야?
칼자이스가 자동차 부품업체이기도 했던거야?
< 388 : 마스터 키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