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9화(39/589)
< 039 : 한국법과 미국법 >
금성방직 근처 다방.
삼복은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 주임, 여기야.”
“아유, 선배님. 회사 나간 지가 언젠데 이제야 연락하시는 겁니까?”
감영환 주임은 삼복이가 금성방직에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사이였다.
“밥 벌어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랬지. 감 주임, 그동안 별 일 없었지?”
오랜만의 전화였지만, 흔쾌히 나와 주었다.
삼복은 그간 지인과 술은커녕 전화도 한 통화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별 일 없긴요. 선배가 나간 뒤로 금성 방직도 아슬아슬해요.”
“금성 방직이 왜? 여기보다 장사 잘되는 곳이 어디 있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방직 사업은 완전히 손가락 빨고 있어요. 모직과 합섬이 최고죠. 그 때문에 업계 난리 났잖아요.”
“난리가 났다고?”
“그럼요. 홍양방직, 동남섬유, 한성직물이 파산하는 바람에 시중에 실직자가 득실득실해요.”
요즘 방직 업계가 힘들다고는 들었지만, 3개 회사나 파산한 줄은 몰랐다.
나름 탄탄한 중견 회사였는데 말이지.
“거기 다 알짜 회사 아니었어?”
“그게 아니고, 정부에 밉보였나 봐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생 나일론 업체를 잡아먹으려 하다가 체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사장이 청와대랑 친했다나 뭐라나, 그랬대요.”
“뭐라고? 나일론 회사? 청와대?”
설마… 우리 회사 얘기야?
“소문이 그렇게 났어요. 그런데 아마 맞을 거예요. 세 업체 모두 칼마이어 설비를 대량으로 발주 했거든요. 사장이 동남아에서 트리코트 주문을 대량으로 받아올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던데, 장비 값도 다 치르기 전에 폭삭 망했다니까요.”
“… 그… 그랬단 말이지.”
젠장, 우리 회사 얘기가 확실했다.
두어 달 전의 사달이 눈앞에 선했다.
찬수가 검사의 안면에 구둣발을 처박아 넣을 때부터 일이 커진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업계 전체가 싱숭생숭해요. 제대로 장사하는 업체는 삼오나, 몇몇 큰 회사가 전부일거에요.”
“그 업체야 그렇다 치고 금성방직은 왜? 나름 잘나갔잖아.”
“우리 사장도 딴 데로 눈 돌리는 것 같아요. 최근 시멘트 사업이 뜬다고 말이죠. 휴우… 하루하루 살얼음판이에요.”
말끝에 한숨이 이어졌다.
“감 주임, 우리 회사 올래?”
안 그래도 감 영환 주임은 데려오고 싶었다.
영어도 곧잘 하고 수출입 업무에 능했기에 부산에 지사를 세워서 내려 보내면 딱이었다.
게다가 감 주임을 통하면, 실직한 경력자중 베테랑을 골라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 주임은 꽤 발이 넓은 정보통이라 경력자들의 실력과 평판까지 잘 알고 있을 거다.
“선배, 친구랑 동업한다고 나가지 않았어요? 벌써 새 직원 뽑는 거예요? 회사 이름이 뭔데요?”
“대세 실업. 나 거기서 부장이야.”
“뭐라고요? 대세 실업요? 그럼 친구 분이 대세 실업 사장님? 직원들에게 돈을 마구 퍼부어 준다는 그 분?”
“돈을 퍼부어줘? 그 정도까진 아닌데?”
“일요일에 출근하면 일당 두 배에, 야근까지 하면 또 1.5배를 곱해준다면서요.”
“그거야 원래 그렇게 주는 게 맞지. 대세가 특별한 게 아니라.”
“뽑아주세요. 저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감 영환 주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90도로 절을 했다.
영입 제안에 엄청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금성 방직에 다닐 땐 일요일에 일해도 휴일 수당을 받지 못했었다.
오히려 몸이라도 아파 휴일에 못 나가면 상급자들이 화를 냈었지.
그 때는 그게 이상하단 생각도 못했었는데.
“참, 혹시 대세 실업에서 군납도 해요?”
“응? 구… 군납? 하지. 당연히 해야지. 월남전 파병이 코앞인데.”
찬수가 군납을 시작하라고 했으니, 조만간 입찰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선배. 오해하지 마시고요. 제가 대세로 갈 거니까 확인 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 뭘 그리 뜸을 들여.”
“들은 말이긴 한데… 대세 실업이 특허를 베껴서 군납을 뚫으려고 한다던데, 아니죠?”
“특허를 베껴? 우리가?”
“그게 폴리텍인가 뭔가 하는 특허라던데…”
삼복의 눈에 불이 튀었다.
폴리텍이라니! 뭔 개소리야?
그건 우리 특허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 주임이 폴리텍이라는 상품명을 안다는 것 자체가 어디선가 정보가 샜다는 말이었다.
“감 주임, 말해봐.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삼오방직에 다니는 동기한테서요. 삼오가 가보네와 고생고생해서 공동 개발한 게 폴리텍이라고요. 특허 제출하고 군납을 시작했는데, 대세가 겁도 없이 대놓고 베낀다고…”
영환의 말에 삼복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삼오? 삼오가 폴리텍 특허를 냈다고? 군납까지 ? 그러고 보니… 찬수가 나보고 군납 잘했다고 했는데… 난, 곧 할 거라 미리 칭찬해 주는 줄 알았지. 설마 삼오가 정말 군납을 하고 있나? 그게 가능해? 물건이 어디서 나서? 우리 하청 업체가 삼오한테 물건을 빼돌린 건가? 불량이라 속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번져갔다.
“삼복 선배…”
감 주임의 말에 삼복의 정신이 돌아왔다.
“감 주임, 미안해. 내가 좀 급한 일이 있어. 곧 다시 연락할게.”
삼복은 놀란 감영환을 내버려두고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산 지사니 경력직 채용이니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비상 사태였다.
***
신신합섬 앞마당
“야이, 너 이 새끼. 우리가 뭘 섭섭하게 한 게 있다고 폴리텍을 빼돌려!”
삼복이는 사장의 멱살을 잡고 난장을 부렸다. 여기 사장도 배신자였다.
이틀 동안 특허청과 전국의 하청업체를 쑤시고 다녔는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의리도 뭣도 없는 더러운 세상!
“다짜고짜 뭔 말입니까? 빼돌리긴 뭘 빼돌렸다는 겁니까.”
거짓말이었다.
창고를 급습했는데, 불량품이 쌓여 있어야할 창고가 텅 비어 있었다.
폴리텍을 빼돌린 것이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삼오한테 폴리텍 빼돌렸지! 불량 났다고 속이고 빼돌렸지! 창고에 불량품이 한 롤도 없어! 한 롤도 없다고.”
“다 태웠어요, 전부 불태웠다고요. 당신네들이 불량품은 태우라면서요!”
“당신네들? 말 다했어? 망해가던 공장에 물량 주고 기술 지원하고 운영자금까지 빌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
“에이!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신신합섬 사장은 삼복이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말라깽이 삼복이는 완력에 밀려 데굴데굴 구를 수밖에 없었다.
“다들 뭐해? 저 새끼 쫓아내!”
“사… 사장님. 이 부장님을 어떻게…”
신신합섬 사장이 얼굴을 싹 바꿨지만 직원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대세 실업은 은인이나 다름없는 원청이었다.
“쫓아내라니까. 누가 대세 없으면 장사 못한데? 폴리텍 달라는 데는 수도 없이 많아.”
“폴리텍은 우리 특허야. 우리 허락 없인 아무도 생산 못 해.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도 했잖아!”
“쳇! 삼오도 똑같은 특허 가지고 있더만. 삼오가 달라는 물량이 더 많아! 꺼져!”
“개 같은 놈. 삼오랑 붙어먹은 게 사실이었어.”
“흥,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야. 왜 삼오랑 척을 지고 지랄이야? 그렇게 큰 회사랑 싸워서 뭐 어쩌자고? 참나, 세상 물정을 몰라도 분수가 있지. 퉤!”
신신합섬 사장은 삼복에게 침까지 뱉었다.
“야이, 개새끼야!”
삼복이가 달려들었지만, 직원들이 잽싸게 공장 문을 닫아버렸다.
쾅! 쾅! 쾅!
“문 열어! 문 열라고, 이 개새끼야! 폴리텍은 우리 꺼라고! 우리 꺼!”
문을 마구 두드렸지만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와중에 6군데 하청 업체 중에서 1개 업체만이라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찬수를 불러야 해. 이거 내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삼복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땅을 짚고 일어섰다.
억울하다고 길바닥에 마냥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알아보니 특허 출원도 엉망이었다.
특허 출원 일정이 조작되어 삼오 방직이 폴리텍 특허를 먼저 낸 것으로 되어 있었고, 특허 서류도 대세 실업 특허를 고스란히 복사해버렸다.
특허청 공무원을 매수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삼복이는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왔다.
온갖 곳을 쑤신다고 이틀이나 자리를 비운데다, 통금 시간도 가까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타타닥. 타타닥.
심호흡을 하고 텔렉스를 치기 시작했다
「To 우찬수 사장님. 긴급 보고. 폴리텍 특허 도난. 삼오방직이 조직적으로 하청 업체와 특허청을 매수함. 긴급 귀국 바람. – 이삼복 부장-」
“내가 이따위 보고를 하게 될 줄이야… 빌어먹을…”
삼복은 텔렉스 전문을 쓰면서도 자괴감에 속이 쓰렸다.
누군 전쟁터에서 떼돈을 벌어오는데, 친구라는 놈은 안방에서 돈이나 까먹고 있으니 말이다.
“뭐하냐?”
“뭐하긴 텔렉스… 으악! 찬수야!”
“잘 지냈냐?”
“야이, 씨. 너 언제 왔어! 언제 왔냐고.”
내가 어깨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삼복이 녀석이 자지러졌다.
“방금 왔지. 너 찔찔 짜고 있을 때.”
“시바… 우리 X 됐어. 폴리텍 특허 뺏겼어. 하청 업체 개새끼들도 우릴 배신하고… 물량 다 빼돌리고… X 됐어… 다, 내 탓이야, 미안해, 찬수야.”
삼복이는 놀란 것도 잠시, 줄줄 상황을 읊었다.
“짜식, 특허 뺏긴 거 이제 알았냐? 한국에 있는 놈이 베트남에 있는 나보다 모르면 어째?”
“너, 알고 있었냐?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밥부터 먹자.”
이 녀석 보나마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고 돌아다녔을 거다.
“밥은 무슨! 특허청 놈들도 다 뇌물 먹고 돌아섰다니까. 특허 출원까지 다 조작됐어.”
“걱정마라. 이 엉아가 다 해결해 줄 테니.”
“해결? 이게 해결이 돼?”
“이게 있거든.”
나는 마크 중사가 작성한 특별 채용 보고서를 삼복이 눈앞에 대고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게 뭔데?”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배나 채우자니까. 오는 길에 소주랑 통닭 한 마리 사왔다.”
자취방과 공장을 뒤져봐도 코빼기도 뵈지 않기에, 통금 다 돼서 공장으로 기어들어올 줄 알았다.
친구를 위해 미리 통닭도 사놓는 이 준비성.
“너, 찬수 맞구나. 유령 아니었어.”
“캬아, 좋다.”
소주 한잔에 닭다리 하나 뜯으니 세상이 다 내 것이었다. 60년대 통닭도 21세기 치킨 못지않았다. 소주도 훨씬 진한 것이 맘에 들었다.
“… 월남 어땠어? 진짜 총알이 빗발치디?”
짜식, 이제 조금 제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네.
“당연하지. 안 겪어보면 몰라. 트럭 몰고 가다보면 총알이 이리 핑! 저리 핑! 날아다녀.”
“어어어…”
나는 과장스런 몸동작으로 무용담을 펼쳤다.
총알은 무슨. 베트콩의 베자도 못 봤는데.
달러가 이쪽에서 우수수, 저쪽에서 우수수 떨어져서 줍기 바빴을 뿐이었다.
***
다음날,
초조해하는 삼복이와 함께 목욕탕에서 때 벗기고 광을 냈다. 얼마만의 탕 목욕이냐.
양복에 새 구두까지 쫙 빼입었다.
“이… 이렇게 가면 되는 거야?”
“왜? 쇠 파이프라도 들고 가게?”
이미 새벽녘에 텔렉스로 삼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담판을 지을 테니 반도 호텔로 나오라고 했다.
“나 놀리는 게 재밌냐? 난 죽겠다. 이 정도면 청와대에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삼복이는 내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내가 청와대를 끼고 싸울 줄 알았나보다.
청와대에서 멍석 깔아준 싸움인데 모양 빠지게 도움을 요청할 순 없지.
“청와대를 왜 끼워? 그럼 삼오 돈을 맘대로 못 뺐잖아.”
“삼오 돈을 뺏는다고?”
“당연하지. 이왕 싸움을 할 거면 상대가 제일 아파하는 곳을 노려야 하는 거야.”
“제일 아픈 곳?”
밤새 삼복이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삼오 주변에 털어 먹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형사들이 일망타진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삼복 부장님이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탈탈 털어야지. 돈 밝히는 놈한텐 돈 뜯는 게 최고의 복수야.”
“!!!!”
내 말에 삼복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걷다보니 눈앞에 반도 호텔이 보였다.
“가즈아, 삼복아.”
“옙, 사장님.”
내가 앞장서니 삼복이도 어깨를 쫙 펴고 옆에 섰다. 도둑놈을 혼내줄 때가 왔다.
**
반도 호텔.
60년대지만 꼭대기 층은 나름 스카이라운지처럼 꾸며 놨다. 서울에서 제일 비싼 곳이라 그런지 넓은 공간에 우리와 삼오 일행이 전부였다.
“여어, 잔뜩들 몰려오셨네.”
“감히 회장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심심하면 신문이라도 보고 있지 그랬어.”
“이 놈이 감히.”
어쭈 삼오 회장은 가만있는데 옆에 떨거지들이 난리였다.
“주 회장님, 우리 얘기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강 변, 자네는 좀 기다리게.”
강 변? 변호사?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 놈이었다.
내가 면상에 구둣발을 처넣었던 검사였다.
옆구리에는 전(前) 검사, 현(現) 변호사인 놈을 끼고 등 뒤에는 보디가드까지 달고 오셨어?
법을 좀 아는 놈이 끼었으니, 오히려 편하게 됐네.
“이야, 검사는 참 좋아. 파면 당해도 뚝딱 변호사 되고 말이야. 아, 파면 전에 잽싸게 사표 던졌겠구나. 아무리 그래도, 사표 던지자마자 주 회장 밑으로 쪼르륵 달려가나? 사내놈이 창피하게.”
“이익, 이 놈이 뚫린 입이라고…”
“어허이, 가만있으라니까. 항복할 놈이 거들먹거리기는.”
삼오 주 회장은 척하니 팔을 올려 분위기를 잡더니, 피식거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항복?”
“항복이라는 말이 싫으면 다른 말로 하던지. 회원사로 받아줄까? 아니면 잠시 외국에라도 다녀오던가?”
“회유책까지 쓰시네. 증거 조작이 완벽하지 않으신가봐.”
“업계 후배들에겐 관대한 편이라서 말이야.”
“그쪽에서 내가 관대하길 빌어야할 텐데.”
“이 놈이!”
툭.
“양아치도 아니고, 좀 신사답게 하자고.”
난 마크 중사의 보고서를 탁자 위로 던졌다.
“뭐야? AR670-1? 미군 유니폼 규정?”
“주 회장, 글자도 제대로 못 읽나? 미군 유니폼 규정이라니, 국가보안법이라고 적혀 있잖아. 똑바로 못 읽어?”
“뭔 개소리야?”
주 회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강 변호사 놈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에 표정부터 달라졌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법은 국가 보안법이다.
죄 없는 사람을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악법이었다.
“왜? 여공들이 월급 조금만 올려달라면 빨갱이니 뭐니 하며 국보법 읊어대는 놈이, 이건 국보법으로 안보여?”
쾅!
“이게 국보법이랑 무슨 상관이야. 이 새끼야.”
“왜 관련이 없어! 폴리텍은 이미 파월 미군에게 군납을 시작했다고! 한 달 전부터 폴리텍을 썼다고 보고서에 날짜까지 명확히 나와 있어. 거기 사진도 보이지?”
나는 유니폼 규정에서 폴리텍 페이지를 펼쳐 보였다.
“헉!”
“왜 그래? 강 변! 왜 놀라고 그래?”
“미국 특허권은 발명자 우선주의입니다. 특허 출원일자보다 실제 발명을 누가 했냐를 우선하지요…”
강 변호사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변호사랍시고 설명은 제대로 했다.
마크의 보고서가 있는 한, 폴리텍 미국 특허권은 100% 내게 떨어진다.
“미국 특허권은 무조건 내 차지야. 그러면 어찌 될까? 폴리텍 고객들이 이중 삼중으로 특허료를 내고 싶겠어? 너랑 나랑 둘 중 누가 진짜 특허 주인인지 알고 싶지 않겠어? 그 고객 중 하나가 미군이고 말이지.”
“……”
“미국이 내 손을 드는데 우리나라 특허청 공무원이고 하청 업체고 끝까지 비밀을 지킬까? 그 놈들이 그렇게나 의리가 있을까?”
“여긴 한국이다. 미국이 아니야. 법대로 해!”
주 회장이 악을 썼다.
“한국은 네 영역이다 이거냐? 착각도 유분수지. 당신, 그거 알아? 미군이 주둔하는 곳엔 상호안전보장법(Mutual Security Act, MSA)이라는 게 있다는 거. 미군의 정보, 투자, 기술자산 등을 엄격히 보호하는 협정이지.”
“…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던지 주 회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넌 지금 상호안전보장법이 보호하는 미 군납품의 특허를 빼돌린 거야. 한미 관계는 물론, 일본 회사를 끌어들여 미일 관계까지 훼손시킬 목적으로 분쟁을 조장한 거지. 누가 사주를 했을까? 이게 단순히 돈 문제일까? 저 위에 있는 빨간 놈들이 시킨 일은 아닐까?”
나도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놈의 이마를 콕콕 찔러주었다.
“헉! 이 미친 놈이!”
턱!
주 회장이 내게 팔을 휘둘렀지만 가볍게 막았다.
이미 이 몸은 노가다로 다져진 완벽체라고.
“택해. 한국법으로 할래? 미국 법으로 할래?”
돈 많은 자본가들만 협박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 경기도 오산이지.
전생에 하도 개 같은 일을 많이 당하다 보니 이 정도 협박은 나도 할 줄 안다.
“네 이놈…”
“미국법으론 특허법 위반이지만, 한국법으론 내란죄야. 뭐가 좋을까?”
“강 변! 이런 개소리 계속 듣고 있을 거야?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살려 주십시오. 저는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주 회장의 호통에 아랑곳없이 강 변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저는 원래 이 자리에 참석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진심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역시 이들에게 의리 따윈 없었다.
< 039 : 한국법과 미국법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