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39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399화(399/589)
< 399 : 뜻밖의 딜 >
며칠 뒤, 청와대.
“바로 드시죠. 각하께서 기다리십니다.”
“고맙습니다.”
염 수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일이 술술 풀리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하하하, 어서 와. 이리 앉아.”
“예, 대통령님.”
대통령은 자리를 권하며 담배 한대를 척하니 피워물었다.
일이 잘 풀리니 담배 맛도 좋은 모양이다.
“그래, 자유중국에서 미사일이며 국산 전투기며 잔뜩 사 간다 이거지?”
대통령은 카터의 환영 만찬을 깽판 치는 일보다 무기 수출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긴 원래 역사에선 대만 대사도 필요 없이 박 대통령이 직접 깽판을 치지.
환영사를 빙자해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40분 넘게 토로했거든.
만찬장에서 10분 넘게 연설하는 것부터가 외교상 결례였는데 말이다. 그 일로 카터와 박 대통령의 사이는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카터가 회고록에서도 가장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꼭 집어 적어놨을 정도니까 말이다.
감히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일개 한국 대통령이 반대해? 하는 생각이었을 거다.
“예, 미사일 수출은 미국의 공식적인 허가가 불가능하니 뀌년을 통해 부품 형태로 납품하고 A7은 F5와 비슷한 형태로 수출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양국 정부가 티격태격 하는 연극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나머지 실무는 대세에서 처리하겠습니다.”
A7을 수출한 뒤 미국산 공대지 미사일을 수입해 뀌년을 통해 대만으로 유통하면 게임 셋이다.
카터는 몰라도 미국 방산업체나 강경파 정치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니까.
내가 미국 정부와 반목하는 게 아니라, 미국 내 정치 파벌이 싸우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이 일로 낸시의 정치적 입지도 다지게 된다면 더더욱 좋고 말이다.
“참, 수출 확대가 그뿐만이 아니라면서?”
“예, 이 일이 마무리되면 대만은 LNG 운반선과 LNG 터미널 발주도 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 대만도 기름 한 방울 안 나는데, 석유를 떼는 건 낭비지! LNG를 떼야지, LNG를!”
“각하, 저희가 사우디 수주를 받으며 이란 쪽 LNG 수입을 줄이기로 했는데, 이란에서도 그 물량을 대만 쪽으로 돌릴 수 있으니 서로 윈윈입니다.”
대뜸 염원철 수석이 쑥하고 끼어들었다.
역시 머리가 휙휙 잘 돌아가는 양반이다.
미래를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란이 무역 제재를 받게 될 때쯤이면 이 구도가 대세에도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전세계에 우리 기업인들이 뻗어 나가 있으니 일이 척척 진행되는군.”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주신 덕분입니다.”
이건 솔직히 사실이다.
달리 대통령을 1호 영업사원이라고 하겠나.
“임자가 정부를 칭찬할 때도 다 있군. 여하튼 좋아. 카터 대통령도 방한해서 창피 한 번 당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 테고, 자유 중국과 우리가 손뼉을 맞추면 자유 진영은 굳건함을 세계만방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야.”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각하!”
내가 대통령의 말에 잠자코 있으니 염 수석이 대신 맞장구를 쳤다.
내가 이 일에 협력하는 건 카터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 대만을 도와 자유 진영의 유대를 굳건히 하는 목적이 아니다.
내 목적은 중국의 발전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데 있다. 중국의 저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다.
괜히 천년의 적이 아니다.
“이 모든 게 공짜는 아니겠지. 그래, 임자 말해봐. 어떤 걸 좀 챙겨주면 좋겠나?”
대통령답게 대놓고 대가를 주겠다고 했다.
채찍과 당근을 확실하게 휘두르는 양반이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고자 합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허락하지 않았던가.”
“예, 일단 일을 하려면 공장부터 지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입지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국유지를 불하받았으면 합니다.”
“문제 될 게 뭐 있나? 대세야 국민기업이고, 주변 지역도 잘 발전시키는데 당연히 내어줘야지. 어디 땅이 필요해? 설마, 서울 한복판은 아니겠지?”
대통령은 농담까지 하며 국유지를 내주겠다고 했다.
대통령이야 울산 석유화학단지, 포항제철, 구미공단, 마산 수출자유공단 등등 온갖 공단을 조성했던 양반이라 이런 일에는 자신만만했다.
국유지를 불하하고 그 주변의 사유지에 대해선 공무원들을 동원해 지주들과 원만히 협상을 수행했다.
서슬이 퍼런 시기라 웬만큼 땅값을 쳐주면 감히 공단 부지에 알박기를 시전하는 이는 없었다.
“암반 지대이면서도 수자원이 풍부한 땅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조사해본 바로는 대전과 청주 사이의 땅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뭐라고? 대전과 청주 사이?”
뭐야? 왜 이렇게 인상을 써?
“… 거기에 국유지가 부족하다면, 천안 근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자원을 생각한다면 금강 주변이 최선으로 보입니다.”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왕 뱉은 말이라 끝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땅을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제값 주고 살 것이고 상하수도와 전기 같은 기본 인프라는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도로 정도는 대세건설이 쫙쫙 깔아서 국가에 기부할 텐데 말이다.
“염 수석!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설마 백지계획을 우 회장과 논의한 거야? 내가 극비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정신이 있어, 없어!!!!”
“각하, 오해이십니다. 백지계획을 대세와 논의하다니요? 외부 인사와는 그 누구와도 논의한 적 없습니다. 백지계획은 철저하게 위원회 내부에서만 실행 중입니다.”
대통령이 염 수석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염 수석은 벌벌 떨면서도 그런 일 없다고 항변했다.
무슨 일이야? 백지계획?
백지수표도 아니고 백지계획이라니?
아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단어인데… 설마… 수도 이전계획?
박 대통령 시절에 수도를 이전하려고 했다는 게 소문이 아니라 진짜였던 거야?
눈앞의 이 독재자가 그런 건설적인 생각을 했다고?
“대통령님, 백지계획이라면 설마 수도 이전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 말에 대통령이 휙하니 쏘아보았다.
그리곤 살짝 인상이 펴지는 느낌이었다.
“임자, 정말 수도 이전에 대해서 몰랐나?”
“방금 전까지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나는 다소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대통령에게 조금 개기기는 해도 속이려 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진심으로 수도 이전을 염두에 두고 그쪽 땅을 원한 게 아니다.
“각하, 그것 보십시… 웁.”
“자네는 나가 있어.”
염 수석이 말을 보태려다 대통령이 쏘아보자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집무실 밖으로 물러났다.
대번에 나와 대통령의 독대가 되었다.
“나는 줄곧 수도이전을 생각해왔네. 6.25 전쟁 직후에 수도를 대전 쪽으로 옮겼어야 했어. 어정쩡하게 서울을 고집한 탓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렸어. 작은 나라에서 사람마저 한곳으로 몰리면 어쩌자는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행정수도를 대전 근처에 두면 인구분산 효과는 확실할 것입니다.”
“행정수도! 바로 그거야! 임자는 참으로 핵심을 잘도 짚어대는군.”
21세기에 이 양반과 전혀 다른 성향의 대통령이 그 일을 성사시켰다고 하면 믿을까?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자니 대통령이 어디선가 두툼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텅하고 올렸다.
대통령은 참으로 서류를 좋아하는 양반이다.
그것만큼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했다.
“이것이 백지계획의 초안이야. 임자에겐 특별히 보여주지. 읽어봐.”
당장 모든 내용을 파악하진 못하겠지만, 요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시대엔 첫 부분 몇 페이지에 온갖 한자를 써대며 전체 내용을 압축해두거든.
“노… 놀랍습니다.”
“하하하, 임자 눈에도 괜찮아 보이나? 자그마치 500명이나 전문가를 뽑아서 일을 시킨 결과지.”
“위원들이 500명이나…”
그 정도 인원을 동원했는데도 우리 대세의 안테나를 피했다고?
정말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게 했군.
수도 이전 프로젝트는 무소불위의 박 대통령마저도 조심스러웠던 모양이다.
하긴, 정보가 새어나가면 땅값 폭등으로 프로젝트 초반부터 삐걱거렸을 테니까.
“벌써 6차례나 외국의 여러 수도에 대한 현지답사도 마쳤어. 그중에서는 신(新) 서울에 적용해볼 만한 아이디어도 넘치더군. 특히 오스트리아의 빈은 정말 본받을 점이 많아.”
“오스트리아까지 조사하셨습니까?”
“임자의 인천제철 수장도 오스트리아 출신 아니야? 거기 주택 정책이 훌륭하다기에 꼭 들러보라고 했지!”
대세 임원의 출신국가까지 조사한 거야?
여하튼 그보다 이게 정말 70년대 수준에서 나올법한 보고서인지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21세기 건축을 좀 안다고 여기는 나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도시 계획이었다.
부드럽게 U자 형태로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발아래에 두고 입법, 사법, 행정 3부 기관을 아주 효율적으로 배치해뒀다.
대략 인구 25만명 규모의 행정도시를 건설한 뒤 그 주변으로 업무지구와 상업지구를 더해 자급자족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이 치밀하고 현실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휴전선에서 70km, 해안선에서 40k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고, 울산/창원/구미/여천공단과 200km 이내에 위치해 산업체 정책 지원도 편해야 한다는 조건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계획을 기반으로 21세기에 세종시가 들어서게 된 것이었군.
오히려 이 원안대로 확실하게 행정수도를 옮겼다면 국토 균형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을 것 같았다.
“어째 임자가 봐도 괜찮아 보이나?”
“예, 솔직히 제가 설계해도 이만큼 잘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임자가 백지계획을 몰랐음에도 청주와 대전 사이의 땅을 원했다면 정말 천도할 위치를 잘 잡은 거지. 임자마저 탐낸 자리라니 말이야.”
“대세파운드리 공장은 행정수도 외곽에 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정 수도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양질의 직장을 제공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행정수도가 들어선다니 더욱 탐이 났다.
더욱이 청주와 대전 사이에 대세파운드리가 위치하면, 남부 산업 벨트와 서울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게다가 대세가스의 인프라를 21세기 세종시를 염두에 두고 설치를 해놨지 않나.
솔직히 70년대 서울은 이미 폭발적인 인구 과밀화로 난개발, 교통 체증, 대기오염, 쓰레기 처리 문제 등등 도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서울 본사와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조금씩 개선해간다지만 솔직히 성냥갑 아파트를 짓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70년대에 행정수도를 만든다면?
도시 중앙에 독립 기념관을 세우고 정말로 선진국다운 수도를 건설한다면?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퉁 회장과 무기 수출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보다 백배 천배는 더 강렬하게 뛰었다.
“마음에 들긴 하나 보군. 어째, 이 일을 임자에게 맡겨줄까?”
가뜩이나 뛰고 있던 심장이 널을 뛰었다.
박 대통령이 서울 크기에 버금가는 땅만 매입해준다면, 내가 정말 도시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 이전이란 게 대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수출과 해외 건설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까스로 심장을 진정시키고 한발을 뺐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하겠다고 할 뻔했다.
대통령의 의도에 한번 빠지면 철저하게 부림을 당한다. 이 양반과 논의할 때는 바짝 긴장해야 본전치기라도 할 수 있다.
“허, 누가 혼자 하라고 했나? 현산의 왕 사장과 사이 좋잖아. 백지계획에 꾸준히 참여해온 양반이니 한번 논의해봐.”
뭐야? 현산이 백지계획에 참여했다고?
그게 가능해? 현산이 알고 있었는데, 수도 이전 계획이 이렇게 완벽한 정보 보안을 유지했다고?
“현산이 이 백지계획을 알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알지는 못하지만 참여는 했지. 대청댐 건설을 빌미로 금강 유역의 지질조사를 다 맡겼으니까.”
역시 능구렁이… 만만찮은 양반이다.
누구에게나 귀는 열어두지만 절대 백프로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 위주로 판단해서 주변인들을 경쟁시키고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이다.
댐 발주를 핑계로 국내 건설사를 경쟁시켜 대전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게 만들었겠군.
결국에는 대청댐을 지어 대전, 청주, 전주, 군산 등등 주변 지역에 물을 공급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결론만 얻으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현산이 주도하고 있다면 대세는 더욱 수출에 매진하겠습니다. 왕 사장의 추진력과 현산건설 직원들의 능력이라면 백지계획도 순조로울 겁니다.”
나는 훅하니 뒤로 물러섰다.
한 번은 발을 빼야 그나마 제대로 된 딜이 가능하다.
“만나보라면 만나봐!”
“대통령님…”
“왕 사장 만나는 게 뭐 대수라고 말이 길어? 임자가 어디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될지 현산이 잘 알려줄 거잖아.”
“아, 그렇군요. 백지계획이 워낙 큰일이라 제가 대통령님을 찾아뵌 이유마저 잊어버렸습니다. 송구합니다.”
두번이나 발을 빼는 척하고서야 결국 반도체 공장부지를 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염 수석!”
“예, 각하!”
문 밖의 염 수석이 어느새 쪼르르 달려와 대통령 앞에 섰다.
“백지계획 현황을 대세에 알려줘. 그리고,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부지는 국유지 위주로 내어줄 방법도 찾아!”
“예, 각하.”
대번에 대통령이 나와 딜이 되었음을 밝혔다.
대만 건의 대가로 공장 부지를 받으러 왔다가 수도 이전 계획에 참여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뭐, 급작스러운 딜이었지만 나쁘지 않다.
사우디 아파트단지 건설에 들어가는 건축 자재를 글로벌 오픈마켓에서 수급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타일이든 수세식 변기든 온갖 건축 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했다가 사우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제조사들이 도산할 우려 때문에 글로벌 조달을 생각했는데, 수도 이전을 한다면야 뭐가 문제인가?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수요는 충분할 거다.
오히려 2차 오일쇼크가 오기 전에 그 일을 본 궤도에 올리면, 대한민국은 떼돈을 벌 거다.
수도 이전을 핑계로 온갖 자원을 무한정 수입해도 될 테니까.
조만간 2차 오일쇼크가 오니 가능한 한 대량으로 철광석을 수입하자고 하면 대통령이 어처구니없어 하겠지만, 수도 이전을 위해 철근 생산을 미리 해둬야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나?
일이 잘 물려서 돌아간다.
대규모 사우디 아파트 건설, 카터의 뻘짓, 대만과의 관계, 2차 오일쇼크, 심지어 수도이전까지.
이 모든 상황이… 하늘이 나더러 우리나라 국토 개발에 새판을 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만 하다 죽지 않게, 일한 만큼 좋은 집과 풍요로운 삶을 만끽하게 해주라고 말이다.
나는 하늘을 향해 엄지척을 해줬다.
< 399 : 뜻밖의 딜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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