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화(4/589)
< 004 : 영 타이거 >
“자네 누구라고 했지?”
“대세 실업의 찬수 우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짐을 몽땅 잃어버리는 바람에 드릴 명함도 없군요.”
나도 모르게 대세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귀국해서 만들면 그뿐이었다.
“대세 실업의 미스터 우라… 처음 듣는군.”
“싱가포르엔 처음 진출하지만 사우스 코리아에서는 나름 불꽃처럼 성장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올해 연 매출 40만불은 무난히 달성할 겁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지금 이 양반을 통한 계약으로 대세 실업은 창립 첫해 매출로 40만 불을 찍게 되니까.
“으흠, 연매출 40만 불이면 작은 회사는 아니군. 그래, 대세 실업은 무슨 장비를 쓰나?”
내게 장비를 묻다니.
사기꾼인지 아닌지 시험하는 질문이었다.
“100% 칼마이어 설비를 씁니다. 라자크님을 이렇게 찾아온 이유라고도 하겠습니다.”
대세 그룹과 독일의 칼마이어사(社)는 아주 돈독한 사이였다.
우 회장이 원단 장사를 시작할 때 칼마이어사 설비로 대박을 쳐서 인식이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아, 지금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져 있는 시대니 서독의 칼마이어사라고 해야겠군.
시작이 그래서였던지 우 회장은 일본보다 유럽 회사, 특히 서독 기업과 협업하길 선호했다.
물론 내 생각에도 일본보단 서독이 나을 것 같다.
“나를 찾아온 이유라고?”
“면사(綿絲)는 화교가 장악했으니, 라자크 님은 화섬사(化纖絲, 화학 섬유)에 올인 하셔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저희 회사가 쓰는 칼마이어 기계는 화섬사로 원단을 짜는데 최고거든요.”
“……”
라자크는 살짝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그가 낸 시험 문제에 정답을 말한데다, 화섬사 시장을 장악해야 화교와 경쟁할 수 있다는 전략까지 알려줬으니까 말이다.
신입사원 때 위인전 읽고 독후감 쓰듯이 우 회장의 창립 일화를 줄줄 외우고 시험까지 쳤던 게 이리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아직도 칼마이어라는 제직기계 메이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한잔 하겠나?”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아주 좋습니다.”
“이리 오게.”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다 스위트룸으로 초대받았다.
인도 특유의 화려한 장식이 인상적인 방이었다.
아니, 방이라기보다 사무실에 가까웠다.
쪼르륵.
라자크가 내게 시원한 샴페인을 권했다.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논하겠다는 뜻이리라.
“여기 샘플이 있습니다. 마음에 드시는 샘플을 고르시면 얼마든지 공급해드립니다.”
“어디 한번 볼까?”
라자크는 100여 가지가 넘은 샘플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보고 비벼봤다.
원단 업계의 거상이라 한번 만져보면 감이 오는 모양이다.
“24번과 87번이 마음에 드는군.”
감이 좋은 양반이었다.
둘 다 나일론 기반에 24번은 면이 5%내외, 87번은 면이 35%내지 45%정도 혼방된 제품 같았다.
혼방률도 적당한데다, 모두 경편으로 짠 원단이라 올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일명 트리코트라고 부르는 원단의 대표격이었다.
‘뭐야, 내가 뭐 이리 잘 알아?’
아무리 신입사원 때 교육 받은 영웅담이라지만 이렇게 원단 종류까지 기억한다고?
더 놀라운 것은 흐릿한 기억이 아니라 강사가 직접 강의했던 ppt 자료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분명, 내 전공 분야는 건설이나 중공업 플랜트 쪽인데 말이다. 천재가 된 건가?
“왜 그러나? 그 원단은 공급하기 어려운가?”
‘헉! 내가 이 와중에 딴 생각을!’
나는 내 뺨을 치고 싶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앞두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아닙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지, 트리코트 제품이라 단가가 좀 나갈 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좀 비싸 보이긴 하는군. 그래, 내게 얼마에 납품할 수 있나?”
“얼마에 납품하면 라자크님에게 이득이 되겠습니까?”
가격을 내가 정하면 깎이기 마련이다.
이왕 주도권을 뺏길 바엔 흔쾌히 갑의 요청을 들어주는 편이 낫다.
나중에 내 회사의 시장 장악력이 커지면, 자연스레 가격 결정권은 내 손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 야드당 70센트… 아니, 65센트에 받을 수 있다면 좋겠네.”
원단은 길이 단위로 판매한다.
야드는 원단 길이를 부르는 단위로 1야드는 약 91cm정도 된다. 흔히 옷 장사들이 ‘1마’라고 부르는 길이다.
“야드당 65센트라… 좋습니다. 그리 납품하죠.”
“!!!!”
내가 단박에 동의하니 도리어 라자크가 깜짝 놀랐다.
70센트까지는 올려줄 생각으로 지른 납품가일 텐데, 내가 한 푼도 올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65센트로 계약했을 것이다.
현재 27살에 불과했던 우 회장이 라자크를 앞두고 제대로 딜을 했을 리가 있겠나.
그가 제시한 금액대로 계약했을 것이 뻔했다.
즉, 이대로 계약해도 남는 장사라는 거지.
“이보게, 미스터 우. 왜 단가를 올려치지 않는가? 장사꾼이면 단가 협상은 기본일터인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렇게 최저가를 제시하신 만큼, 최대한의 물량을 오더하시지 않겠습니까.”
“!!! 최저 가격, 최대 물량!”
“박리다매 전략이야말로 저희 대세 실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설마 단가를 65센트로 후려치고 고작 1, 2만 야드만 주문하시진 않겠지요? 인도 상인의 희망이신 라자크님께서 말입니다.”
“하하하하하!!”
라자크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껏 웃어젖혔다.
그리곤 샴페인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20만 야드! 어떤가? 현재 내가 줄 수 있는 최대 물량일세.”
“좋습니다. 계약하시죠.”
단가 65센트에 20만 야드면 도합 13만 불어치다.
13만 불이면 60년대 대한민국에선 어마어마한 금액… 으잉? 이때 환율이 얼마였지? 대충 500원쯤 했겠지?… 13만 불에 환율 500원이면… 6500만원?
뭐야? 1억도 안되네?
‘으잉? 잠깐… 잠깐 13만불이 맞아?’
계약하자며 악수를 청했지만 암산을 거치고 나니 아찔해졌다.
원래 역사에서는 40만 불 어치를 계약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내가 어이없는 단가에 동의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40만 불짜리를 13만 불에 계약하자고 한 건가?
목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빌어먹을… 애도 아니고 초짜처럼 흥분하다니.
“하하하, 당장 계약을 하다니. 그건 아니지.”
“아, 그러신가요?”
다행히도 라자크가 제동을 걸었다.
“우리 인도인은 큰 계약은 함께 식사를 한 사람하고만 하지. 어떤가? 오늘 저녁 시간이 되나?”
“초대해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원래 역사에서 식사 때 단가 조정을 했었나?
60년대 원사(실)값, 가공비, 물류비, 세금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 원래 역사대비 단가가 틀렸는지 물량이 틀렸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트리코트 원단으로 바지 하나 만드는데 대충 2야드 정도 쓴다고 보면 원단 재료비만 1.3불, 한화로 650원 정도 된다.
여기에 경비를 더하면 대충 천원 정도였을 것 같은데, 60년대 동남아에서 바지 하나 가격이 천원 정도였을까?
21세기 동남아 여행에서 코끼리 바지 하나가 2,3천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인플레를 감안하면 60년대에 야드당 65센트라는 단가가 어이없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환율 계산이 틀린 건가? 아니면 물량이 부족해? 제길, 결국 부딪혀 봐야한다는 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손해인지 이득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부딪혀 보기로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식당은 이쪽이라네.”
“감사합니다.”
라자크는 날 위층으로 데려갔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일부를 혼자서 통째로 쓰고 있었다.
라자크가 등장하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서빙하는 모습이 왕족 못지않았다.
***
“하하, 그 양복을 100불이나 주고 샀다고?”
“저는 그다지 가격을 깎는 장사꾼을 아니라서 말이지요.”
“인딜란 양복점이라고 했나? 그 녀석 혼 좀 내줘야겠군. 감히 내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아닙니다. 와이셔츠를 덤으로 받았으니 충분합니다. 장사 잘한 겁니다.”
말하는 걸 보니 그렇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야드당 65센트는 괜찮은 단가인 모양인데?
원래 역사에서는 물량을 더 받았다는 건가?
20만 야드에서 더 줄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영웅담에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인가 보다.
초짜 장사꾼에게는 13만 불 계약이 어딘가?
이 정도로 시작해도 충분하리라.
“어디에 머물고 있지? 내 실무자에게 정식 계약서를 보내도록 하지. 서명만 하면 되도록 말이지.”
“건너편 그랜드 호텔에 머물 생각입니다. 제 이름을 대면 바로 오실 수 있게 해놓겠습니다.”
“그리하지. 자, 건배할까?”
“건배하시죠.”
“사우스 코리아의 영 타이거를 위해서.”
“영 타이거라고요?”
“후후, 우리 인도에선 훌륭한 젊은이를 호랑이에 빗대지. 특히 흰 호랑이는 백년에 한번 태어난다고 하지. 이왕이면 흰 호랑이가 되어보게나.”
라자크는 내게 덕담을 해줬다.
영 타이거라, 원단 제품명으로 괜찮아 보였다.
쨍!
“영 타이거를 위하여!”
“위하여!”
우린 그렇게 건배를 하고 식사를 마쳤다.
아델피 호텔 프런트 직원을 시켜 그랜드 호텔에 방을 잡도록 했다.
라자크의 손님이라는 말에 대번에 없던 방도 생겨났고, 이그제큐티브 클럽도 공짜로 쓸 수 있다며 온갖 혜택이 주어졌다.
호사스런 방이었다. 따끈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났더니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었다.
***
아델피 호텔, 스카이라운지.
라자크는 우찬수와의 식사를 마치고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어르신, 어째서 그런 애송이와 큰 계약을 맺으시려는 겁니까?”
“자네 눈에도 애송이로 보이던가?”
웨이터 행세를 하던 이가 라자크 옆에서 샴페인을 따라주었다.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 살림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물론 사람 보는 눈이 남달랐기에,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는 식사를 핑계로 스카이라운지로 데려오곤 했다.
“고작 해봐야 나이 서른도 안 된 것 같더군요. 대화 수준을 보아하니 납품 경험은커녕 단가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맞아. 경험은 일천해보이더군.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았나? 고작 13만 불짜리 계약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눈빛 말이야.”
“통이 크다고 해야 할지, 감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것만큼은 의외였습니다.”
라자크의 오른팔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원단 장사꾼 중에 20만 야드라는 물량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13만 불이라는 거금을 푼돈 취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나와 거래를 트는 대가로 13만 불 정도는 본전치기해도 괜찮다는 생각이겠지. 자네가 그 애송이의 나이였다면 그런 배짱이 있을까?”
“……”
라자크의 오른팔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는 라자크 밑에 있지만, 다른 이들과 비교할 때는 언제나 위에 있었다.
그보다 자질이 나은 사람은 라자크 한사람뿐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묻잖아. 대답해야지.”
“저라면 그런 배짱이 없었을 겁니다.”
“자네가 그럴 정도면 미스터 우는 특별한 사람이야. 그렇지?”
“…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 관리해. 잘하면 정말 흰 호랑이가 될 지도 몰라. 세상을 호령하는 호랑이.”
“예, 어르신.”
라자크는 우찬수를 특별 취급하기로 했다.
***
다음날.
따르르릉. 따르르릉.
“뭐야? 아침부터.”
모닝콜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전화통이 울어댔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여보세요.”
<고객님, 손님들이 컨퍼런스 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찬을 따로 준비할까요?>
조찬을 준비해? 뭐야?
“무슨 말씀이죠?”
<아, 죄송합니다. 간단히 끝내시려는 거군요. 그럼 간단히 커피 정도를 준비하겠습니다.>
“…???”
어이없었지만 프런트에서 걸려온 전화였고, 커피를 준비하겠다는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마치 컨퍼런스 홀로 안가고 뭐하고 있냐고 부드럽게 닦달하는 느낌이었다?
라자크가 벌써 실무자를 보냈나?
인도인도 한국인처럼 빨리빨리 문화가 있나?
나는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옷을 차려입은 뒤 컨퍼런스 홀로 향했다.
원래 어느 호텔이든 로비 바로 위층에 컨퍼런스 홀이 있으니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호텔 직원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짝짝짝짝.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우.”
“반갑습니다. 4번가 쿠마르라고 합니다.”
“저는 6번가 조하르라고 합니다. 라자크님의 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텔 직원이 컨퍼런스 홀의 대문을 열어젖히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라자크를 들먹이며 내게 인사해왔다.
“예, 대세 실업 찬수 우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수에 화답해 악수를 나눴다.
표정 관리는 했지만 얼떨떨했다.
힐끗 둘러보니 대여섯 개의 원탁에 상인들이 꽉 차게 앉아있었다.
“라자크님께 20만 야드를 납품하신다고요?”
“음, 대충은 그렇습니다.”
내가 확답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하, 그러면 저희들도 라자크님이 주문한 원단을 납품 받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저는 2만 야드입니다. 20만 야드에 2만 야드를 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요?”
속내가 뻔했다.
라자크와 같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 장사가 안 될 리 없다는 생각이리라.
라자크가 시장을 뚫으면 똑같은 원단의 옷을 밀어 넣으려는 것이다.
소규모 옷장사에겐 라자크와 같은 원단을 받는 것은 보험을 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는 1만 5천야드입니다. 4번가 상인들 것도 모아서 왔습니다. 도합 6만 7천 야드입니다.”
“저는 1만 8천! 6번가를 모았는데 도합 5만 2천 야드입니다.”
사방에서 주문서를 들이밀었다.
주변 상인들이 주문서까지 합쳐서 가져온 이들도 수두룩했다. 대충 합쳐 봐도 30만 야드는 되는 것 같았다.
“각각 다른 색상에 소량 포장이군요. 이런 물량으로 라자크님과 단가를 같이 해달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아휴, 당연하지요. 그래도 조금만 사정을 봐주십시오.”
“라자크님보다 5% 정도는 비싸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1만 야드 이하는 야드당 85센트, 그 이상은 80센트로 하죠.”
“헉! 단가가 그리 높…”
“라자크님도 동의할 단가이니, 네고는 없습니다. 계약 안하실거면 나가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누가 계약을 안 한다고 그러십니까? 제가 먼저 서명하겠습니다.”
80센트까지 높아진 단가에도 계약이 줄을 이었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계약의 총합을 보니… 40만 불!
아하, 이래서 원래 역사에서 40만 불짜리 계약이 되었던 거였네.
< 004 : 영 타이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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