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0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06화(406/589)
< 406 : 사소한 편의 >
이틀 뒤, 뉴욕 맨해튼 모 레스토랑.
생각보다 빠르게 벤 플린트 장군이 주선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벡텔 회장님.”
“오랜만이라 그런가 정말 반갑습니다. 참으로 드릴 말씀이 많은데 말입니다.”
“자자, 이쪽도 인사하십시오. 오늘 우리 DBB 컨소시엄 모임에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벤 플린트 장군은 DBB 컨소시엄 경영진 모임에 레이건 의원을 초대한 모양새를 취했다.
따로 특정 로비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라, 레이건 의원이 DBB 모임에서 정치 후원을 요청하는 모양새가 되게끔 말이다.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 대세에 감사 편지를 보내주셨지요. 정중한 편지가 저희가 일하는데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니 기쁩니다. 공화당 의원 모임은 한미동맹이 동북아시아 안정의 핵심이라는데 다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미 민간 외교에서 우 회장님이 큰일을 하신다기에 존중의 의미를 담아 드렸습니다.”
딱 정치인다운 미사여구였다.
아무런 내용은 없지만, 듣고 있자면 괜스레 내가 큰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선전하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오늘 직접 뵈니, 레이건 의원께서 당내 경선에서 이기셨다면 카터 대통령은 없었을 수도 있겠군요.”
나 또한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근거도 없는 립서비스를 해줬다. 만약에 그랬다면… 하는 식의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당내 경선에서 지고 주저앉은 게 아니라, 쪼그라든 자기 세력을 회복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나까지 연결된 것이 아닌가.
일단 성실함과 목표를 잃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점수를 줘야겠지만, 낸시라는 신진세력을 끌어당기기 위해 DBB 컨소시엄까지 접촉한 감각도 칭찬해줘야 할 것이다.
낸시가 그저 그런 초짜 정치인이 아니고, 고위 관료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고 실버스타인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레이건으로선 탐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안다는 것과 실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하하하, 저도 낸시 의원처럼 멋진 선거 전략과 든든한 재정지원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저 또한 TV 카메라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데는 꽤 능력이 있는데 말입니다.”
레이건은 자신이 배우 출신이었다는 것을 은근슬쩍 내비치며 자기 PR을 했다.
“레이건 의원님 같은 분이 국빈 방문을 오셨다면 저희가 전세계 TV 뉴스에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군요.”
“CS, 안 그래도 레이건 의원이 카터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했다네. 어찌 보면 한국의 아군이 누구인지 명확히 했다고도 할 수 있어.”
“저도 ABC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레이건 의원께서 하신 말씀 중 미합중국이 세상을 구원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유치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오,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그런 연설을 했다면 정말 대단한데?
카터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인들이 유치하다는 메시지를 아주 정중하게 돌려 표현한 것이다.
“저는 가식을 싫어합니다. 다른 모든 나라처럼 미국도 속으론 국익을 우선하면서 겉으론 명분을 내세우지요. 헌데 멍청한 정치인은 명예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비열한 명분을 진짜라고 믿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한심할 따름이지요.”
참으로 미국인다운 발상이긴 했다.
한미동맹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미국의 국익 때문에 주둔하는 것인데, 명분은 동북아의 안정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사석이지만 그런 미국의 외교정책을 인정하는 레이건은 비범한 정치인이 분명했다.
“그 의도야 어쨌든 한미동맹을 지지한 레이건 의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국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흘러가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정확히 어디에 쓰이는지는 몰라도 많은 군수물자들이 한국군의 현대화에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마치 영업사원 1호처럼 외교 세일즈를 해댔다.
뻔히 대만으로 무기 수출을 꾀하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지만 눈 감는다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
벤 플린트 장군은 건너편에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손가락으론 OK 사인을 보냈다.
입단속은 확실하니 안심하라는 거로군.
‘이때부터 레이건은 거물이었군.’
자연스레 레이건을 인정하게 되었다.
차후 자기가 공화당의 실세로 등극하게 되면 대세가 좀 더 자유롭게 무기 판매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겨댔으니 말이다.
그런 제안이라면 나도 좋지.
라이선스만 준다면 면허 생산이야 얼마든지 하지. 싸고 품질 좋게 전투기든 탱크든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다.
만들어서 일부는 국군 현대화에 쓰고, 나머지는 한미 합작 마크 붙여서 로열티 좀 챙겨주고 수출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하하, 어째 두 분 말씀이 잘 통하는군요. 심각한 얘기를 그리 쉽게 하시다니요.”
벤 플린트 장군이 한껏 분위기를 잡았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힘의 논리이며, 그 힘은 강력한 동맹에서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DBB 컨소시엄처럼 글로벌 기업 경영자분들께서 이런 저의 외교정책에 힘을 실어주셔야 합니다. 어설픈 인권 타령보다 동맹 강화가 훨씬 중요합니다.”
“으흠, 패권 경쟁이 힘의 논리인 것은 맞습니다만 인권보호도 완전히 무시되어선 안 되겠지요. 설마 우리 한국이 가난하니 인권보다 경제성장이나 정권 안정이 무조건 최우선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시지요?”
“허허,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최근 카터 정부까지 연이은 미국의 외교적 실책으로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한국의 인권 개선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레이건은 움찔하며 자기의 말을 솜씨 좋게 주워 담았다.
나는 분위기가 조금 얼어붙더라도 내 진심을 레이건에게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한테 경제 발전을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없지 않나.
일시적인 독재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게 미국 차기 정권의 지지까지 득하면 큰일이다.
미국 정계는 우수한 싱크탱크를 바탕으로 언제나 최선의 외교적 결정을 내린다고 자랑하지만, 그게 대한민국에도 최선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처럼 오해할만한 이슈에 대해선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게 내가 이런 자리에 있는 이유다.
“CS, 레이건 의원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카터 정부가 벌써 레임덕에 빠질 정도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엉망이라 답답하다는 소리지.”
“취임 1년 만에 레임덕이라고요?”
“그럼! 한국과 대만이 워낙에 강력하게 반발을 하니 이젠 아시아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이란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지 않나.”
“이란이라니…”
“거기 팔레비 왕이 그다지 인기 있는 정권은 아니지 않나. 독재이긴 하지만, 와중에 친미정권인데 왜 자꾸 압박을 하는지 모르겠어. 정권 교체를 하더라도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벤 플린트 장군이 혀를 끌끌 찼다.
음, 원래 역사에서도 일이 이렇게 번졌던 건가?
박 대통령이 카터에게 워낙 강경하게 나섰고, 미군 강경파도 카터에게 등을 돌리자 카터가 이란을 압박해서라도 도덕 정치의 기치를 올리고 싶어 했던 건가?
어디까지가 원래 역사와 같은 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터 정부가 이란의 정치를 불안하게 이끈 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이슬람혁명이 일어나는 걸 미국에서 지켜만 봤다는 것 자체가 21세기 인간으로선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다.
중동에서 스스로 장악력을 낮춘 꼴인데 말이다.
“벤 플린트 장군님, 뭐 그리 돌려 말하십니까? 이번에 이란에서 GSP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되는지, 공화당이 나서서 이란에 제공되는 건설차관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셔야죠.”
대뜸 벡텔 회장이 이란의 GSP 공사 수주라는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벡텔 회장님, GSP 프로젝트가 뭡니까?”
“아, 이게 최근 미국 플랜트 업계에서 화두입니다. 이란도 사우디처럼 대규모 수출을 하고 싶다며, 10억 달러 차관을 들여 가치샤란(Gach Saran) 가스전 처리시설을 짓고 싶다는 겁니다.”
벡텔 회장이 말한 GSP 프로젝트가 뭔가 했더니 Gach Saran Associated Gas Injection Plant의 약자였다.
가치샤란 가스전은 이란이 자랑하는 대규모 가스전이지 않은가.
현산과 LNG 터미널을 하나 지어보니 가스판매가 돈이 된다는 걸 알아챘던 모양이다.
왕 사장님이 말하던 큰 먹거리가 설마 이 GSP 프로젝트였나?
원래 역사에서 공사대금을 못 받은 건 물론, 인명피해까지 있었다던 게 GSP 공사였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현산에 귀띔을 해서든 내가 나서든 조처를 하긴 해야겠다.
원 역사의 현산의 일도 그렇고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란은 산유국인데, 고작 10억불이 없어서 미국에서 차관을 얻어 가스전 개발을 추진한다고?
“이란이 오일머니를 두고 굳이 미국에 차관을 빌린다니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CS, 그건 자네가 팔레비 왕가의 씀씀이를 잘 몰라서 그래. 그 비싸다는 F14를 80대나 구매했어. 게다가 그의 부인들은 유명화가의 그림을 사는데 수천만 불쯤 쓰는 건 우습게 알지. 솔직히 10억 달러를 빌려주면 공사비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팔레비 왕이 밀덕이라는 소리는 익히 들었지만, F14를 80대나 구매했다고?
F16보다 두 배 정도는 비싸니 대당 3000만불 정도는 되었을 테고 거기에 들어가는 무장까지 합치면… 이란 국고가 거덜 났겠는데.
“장군, 공사비를 못 받으면 차관 이자까지 해서 가스전 운용을 우리가 하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 가스전 운용의 대가인 우 회장님도 있지 않습니까. 그 험한 나이지리아에서 이미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요.”
“크흠, 벡텔 회장. CS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그리 말하면 어쩌나?”
어째 GSP 프로젝트에 대해 벤 플린트 장군이 내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장군도 이 GSP 가스전 프로젝트가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10억불을 이란 정부에 빌려주고, 공사비 대금마저 떼이고, 원금과 이자까지 가스전 운영을 통해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 뻔히 보였던 것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공사 경험으로 가스전 운영이 그다지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나이지리아는 KDA와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 덕분에 현지민들의 절대적이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란에는 반미 감정… 아니, 반 외국인 감정이 널리 퍼져 있지.
팔레비 왕가가 친미정권이긴 하지만 공업화 추진에 따른 열매를 국민들과 나누지 않았거든.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팔레비 왕이 서구세력과 결탁해 이란을 망쳤다는 피해의식이 외국 세력에 대한 적대감으로 돌변했다.
그게 이란 혁명의 핵심이다.
“GSP 프로젝트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정치질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나는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 공사비는 물론 투자한 돈도 못 받을 게 뻔했다.
가스전 운영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으흠, 제가 공화당에서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나, 벡텔 회장, 벤 플린트 장군의 대화에 레이건 의원이 훅하고 끼어들었다.
배우 출신답게 굳은 표정과 단호한 어조가 완벽했다. 현재 당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지만 DBB가 지원만 해주면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볼 땐 GSP 프로젝트는 정치적으로 협상할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레이건이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란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것 외에 딱히 돈을 받아낼 수 없… 어… 아니지… 나는 가능하지.
게다가 이거 잘하면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게 큰 빚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으흠, CS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하고…”
“아, 장군님. 내키지 않는 것은 이란 정부 때문이지 레이건 의원님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의지를 보이시는데, 한번 믿고 추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절 믿어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우 회장님. 정말 화끈하십니다. GSP 프로젝트는 제가 성공할 거라 확신합니다. 가스 매장량이 세계 최대입니다. 세계 최대!”
벡텔 회장은 따로 이란의 가치샤란 가스전을 탐사해본 모양이다.
그래, 당연히 초대형 가스전이겠지.
그런데 아무리 가스를 많이 채굴해봐야 미국의 경제제재로 제대로 장사를 못한다니깐.
방법은 딱 하나.
인도적 차원에서 가스 대금을 돈이 아니라 생필품과 의료용품으로 물물교환을 해주는 거다.
대세실업이 나서면 못할것도 없다.
인도적 차원이라면 레이건 대통령도 미 의회도 허가할 수밖에 없을 거다.
미국은 언제나 인권과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나라이지 않나.
“저희 DBB가 의원님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DBB를 대표해 훅하니 레이건 의원에게 딜을 걸었다. 벤 플린트 장군도 정 원한다면 해보라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무를 할 내가 앞의 대화를 듣고 상황 파악을 한 후에 나서는 거니 그렇다면 괜찮다는 의미리라.
“이게 저와 뜻을 함께하는 의원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재선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좀 부탁드립니다.”
레이건은 종이 한 장을 우리 앞으로 쓱하고 내밀었다.
미국은 상원의원은 6년 임기이지만 2년마다 중간선거로 1/3씩 갈아치우고, 하원은 전원 2년마다 선거를 해서 갈아치운다.
미국은 선거의 나라이며, 선거자금 없이는 정치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다.
“저는 다른 의원분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습니다. 레이건 의원님을 지원하고 싶군요. 추진력과 결단력, 모든 걸 갖추신 분인 것 같습니다.”
나는 수표책을 꺼내서 100만불을 적어 내밀었다. 레이건 의원은 물론, 벤 플린트 장군마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런 거금을…”
이란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레이건 의원에게 투자하는 게 백배 천배 낫지.
그리고 자잘하게 여러 의원들에게 후원을 하느니 레이건에게 몰빵해야 제대로 빚을 지우지.
“100만불 정도야 시작이죠. 저는 의원님을 적극 지원하고 싶습니다. GSP 프로젝트 관련해서 DBB에 한 가지 편의를 봐주신다면 말이죠.”
“편의 정도야 뭐가 문제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레이건답게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 406 : 사소한 편의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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