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2화(42/589)
< 042 : 남해안 >
“장비라… 그렇지, 건설을 하려면 장비가 있어야지. 젊은이가 생각이 깊군. 우리나라의 장래가 아주 밝아. 마음에 들어.”
대통령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워낙 건설을 좋아하던 양반이었다.
빈국이 개발도상국으로 가기 위한 첫 단추가 건설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보내주시는 인력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난 건설보다 중장비 자체에 관심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계에 관심이 있다.
이왕 60년대로 회귀했으니, 일본이 발전했던 원동력을 내가 차지하고 싶어서다.
일본이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니 뭐니 하면서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이유가 기계 공업이 발전해서 그런 거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소재 산업 경쟁력이 넘사벽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절반만 맞는 소리다.
나 같은 중공업쟁이가 볼 땐 일본 산업의 기초는 CNC를 비롯한 정밀 기계 기술이다.
60년대 말부터 일본이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게 된 것도 컬러(Color) TV, 에어컨(Cooler), 승용차(Car), 일명 3C라고 부르는 제품이 대박 났기 때문이지 않은가.
모두 정밀 기계 부품이 필요한 산업이다.
그 기술을 내가 가져올 거다.
“최고 수재들로 뽑아서 보내지. 잘 가르쳐봐.”
“맡겨주십시오.”
정밀 기기부터 시작하기엔 내 전문 분야도 아니고, 아직 시기도 이르다.
우리나라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다.
축구 실력도 유럽 진출 기회가 많아진 뒤로 급상승했듯, 미제 지프차와 중장비를 뜯어볼 기회만 주어진다면 폭발적으로 실력이 늘 거다.
명석한 머리, 끈기, 무엇보다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면 살겠다는 집념은 세계 최상급이거든.
그들과 함께 기계 수리부터 시작해 중장비로 넘어가자. 내 지식 기반이 플랜트라 그럴 수도 있지만, 기계는 정밀 기계보다 중장비 기계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일단 눈에 보이잖아.
“베트남으로 돌아갈 땐 진해에서 출발해. 맹호부대 선발대와 함께 뀌년으로 바로 갈 수 있을 거야. 베트콩이 사방에서 준동하고 있다니 몸조심하고.”
“예, 각하.”
내 생각을 읽은 듯 배도 붙여주네.
편하게 되었다.
“가봐. 열심히 해.”
“예, 각하.”
격려의 상징인 대접 막걸리를 단번에 비우고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21세기 막걸리는 쌀의 단맛과 상쾌한 탄산이 조화로운데, 60년대 막걸리는 걸쭉한 밀가루 풀에 불과했다.
향취가 있어야 할 술의 본질 따윈 깡그리 지워버리고, 극한의 가성비만을 쫓는 60년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문득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그리워졌다.
‘내가 만들면 되지.’
그 길로 울산으로 출발했다.
***
울산 대세 화학
“황 사장님.”
“사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황혜성 사장이 나를 반기면서도 앞뒤로 마구 훑어보았다. 전쟁터에 갔다 온 군인 보듯 했다.
“베트콩 코빼기도 못 봤어요. 그보다 여기 진행 상황은 어때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전화로 물어봐도 되지만 직접 보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안 그래도 사장님께 언제 자랑하나 싶었습니다. 어서 가시죠.”
황혜성 사장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네, 그래요. 여러분들도 고생 많으십니다.”
걸어가는 와중에도 직원들이 꾸벅꾸벅 인사를 해왔다. 다들 표정들이 밝았다.
다행이다. 회사가 잘 굴러갈 때의 표정이다.
하긴 플랜트는 수요가 수요를 부르는 산업이다.
나프타를 싸게 공급하니 달라는 곳이 많아지고, 고객이 많아지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만들면 가격은 더 내려가고, 그럼 수요는 더 늘고… 이런 식으로 눈덩이가 커진다.
“보십시오, 사장님.”
“오호! 벌써 4호기를 완성했군요.”
놀라웠다. 4호기를 절반쯤 만들어도 빠른 진척이었는데 완성을 한다니 말이다.
게다가 4호기는 전체적으로 배관의 길이가 적당했고 용접 품질도 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예, 저도 이처럼 빨라질 줄은 몰랐습니다. 직원들이 이제 사장님이 만들어뒀던 PFD만 내줘도 알아서 척척 만들더군요.”
“이야, 이제 PFD를 볼 줄 아는 직원들이 많아졌군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사장님 말씀대로, 촉매 탱크, 메인 칼럼, 배관, 밸브 등등으로 팀을 나눴더니 척하면 척입니다.”
“역시 나누니까 좋아요. 그쵸?”
“예, 기술 보안 측면에서도 안심이 되고요.”
조직을 조각조각 내는 것은 양날의 검인데 잘해나가고 있었다.
그만큼 황혜성 사장이 최고 관리자로서 전체 팀 업무를 잘 조율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역시 황혜성 사장은 중합로 제작만큼은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4호기에서 폴리우레탄만 중합할 수 있으면 그냥 전 세계를 휩쓸 텐데…’
아쉽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4호기는 폴리에스터 전용으로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리하세요.”
4호기까지 가동되면 원사가 모자라서 공장이 서는 일은 절대 없겠다.
삼복이가 합병한 회사의 가동률을 본 궤도로 올리면 대세 실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식사하셔야죠. 오늘 메뉴는 설렁탕이라고 하는데, 아주 잘 오셨습니다.”
이야, 이제 구내 식당에서 설렁탕도 파네.
“맛있겠네요. 어서 가요.”
시간이 갈수록 대세 화학은 내가 알고 있는 21세기 플랜트와 비슷해져 갔다.
황혜성 사장을 만난거 정말 행운이었다.
여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마산으로 가자.
***
영광합섬.
“마산이라고 하더니 거의 창원이잖아. 아니, 이땐 창원시(市)가 없었나?”
마산만 입구임에도 쭉쭉 뻗은 대로가 없었다.
위치론 분명 21세기 창원시 근처 같았는데,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다.
내가 아는 창원은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계십니까?”
“어찌 오셨습니까?”
“대세실업 우찬수 사장입니다. 여기 박동식 사장님 좀 뵈려고 왔습니다.”
“아이고, 우 사장님. 우 사장님 오셨습니다!!!”
경비원이 내 이름을 듣더니 90도로 절하고선 공장 안으로 크게 소리쳤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제가 박동식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찬수입니다.”
“어서 현수막 펴! 현수막!”
“예, 사장님.”
“이리 오십시오, 우 사장님. 이리로, 이리로.”
우습게도 공장 앞에 나란히 섰더니 현수막이 펼쳐졌다.
「환. 대세 실업 우찬수 사장님 방문. 영」
짝짝짝짝짝.
공장 직원들이 모두 몰려나와 손뼉을 쳤다.
이렇게까지 환영해주다니 무안할 정도였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니라, 인사차 들른 겁니다.”
솔직히 배신하지 않은 이유를 듣고 싶어 온 거지만,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다.
“이왕 오셨는데 쭉 돌아보셔야죠. 뭣들 해요, 각자 자리에서 작업해야 내가 설명하지.”
“예, 사장님.”
박동식 사장의 말에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일단 공장바닥이 깨끗했고, 장비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우리 회사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패스할 만했다.
“이쪽부터 보시죠. 원사가 제대로 들어왔는지 입고 검사를 하는 곳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냥 라인 투어라고 생각했는데 꽤 괜찮았다.
60년대에 이렇게 FM대로 원료 검사부터 한다니 말이다.
“입고된 원사가 정상이면 권사기와 연사기를 거쳐 합사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대세 실업에선 합사된 원사를 주시지만, 그냥 나일론과 면만 주셔도 저희가 알아서 합사할 수 있습니다.”
“기계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칼 마이어 재직기만 있을 줄 알았더니, 권사기(실 합치기)와 연사기(실 꼬기)까지 있었다.
“예, 영광합섬은 모든 기계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폴리텍은 워낙 어려워 불량률이 치솟았지만, 꼭 극복하겠습니다.”
“국산화라고요?”
“예, 모두 칼 마이어 재직기를 너무나도 당연시 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골에선 한번 고장 나면 제대로 수리할 곳도 없는데, 울며 겨자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요. 저라도 해야지 싶었습니다.”
박동식 사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표정을 보니 국산화에 진심인 것 같았다.
“이거 칼 마이어 기계 아닌가요?”
나는 재직기를 툭툭 두드렸다.
“예, 겉껍데기는 그런데 속 알맹이의 대부분은 제가 갈아치웠습니다.”
“그래요?”
“보시겠습니까?”
박동식 사장이 익숙한 듯 장비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도 덩달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주춤주춤 따라 들어갔다.
어느새 박 사장은 손에 전등을 들고 있었다.
“하하, 부품들을 죄다 갈아 끼웠군요.”
장비 밑으로 들어가 보니 부품 색깔이 달랐다.
중고 칼 마이어 기계에 베낀 부품을 끼워 넣은 것 같았다. 초보적인 부품 카피 작업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정말 국산화를 할 수 있다.
“트리코트를 짤 때는 문제가 없는데, 폴리텍의 마름모꼴 패턴은 정말 어렵습니다. 실이 끓어지거나 어떨 땐 꼬이기까지 합니다.”
“끊어지거나 꼬인다고요?”
“예.”
단순한 불량일수록 고치기 힘들지.
왜냐하면 그 원인조차 너무나도 단순하거든.
“장비 돌려봐요.”
“돌려보라고요? 그럼 밖으로 나오셔야죠.”
“아뇨, 여기 있을 테니 돌려봐요.”
“소음이며 먼지가 엄청난데.”
“하하, 돌려봐요. 마스크나 하나 줘요.”
나도 엔지니어다. 먼지나 소음 따윈 일상이다.
박동식 사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스크를 건넸다.
“돌립니다.”
“오케이! 돌려요.”
위이이이이잉. 척. 척. 척. 척.
드럼과 각종 기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식 도면 없이 부품 치수를 재서 카피하면 반드시 공차로 인한 불량이 생긴다.
즉, 덜거덕거리는 부품이 있다는 뜻이다.
그놈이 범인일 확률이 99%다.
덜거덕. 덜거덕.
옳거니. 발견했다.
스핀들 기어가 문제였네.
보통 엔지니어가 보면 스핀들 기어는 원래 덜거덕거리는 부품이라고 여겼을 법했다.
“설비 끄고 들어와 봐요. 박 사장님.”
“옙!”
“여기 스핀들 기어 보여요? 이게 범인이에요. 이거도 사장님이 갈아 끼운 부품이죠.”
“예? 이게 불량이라고요? 정말 치수를 꼼꼼하게 측정해서 정성스레 깎아 왔는데.”
“기어끼리 공차가 맞지 않아서 그래요. 이럴 땐 과감하게 기어 박스에 윤활유를 가득 채우고 보강판을 댄 뒤에 석고로 발라버려야 해요.”
“석고를 발라요?”
중장비를 고칠 때도 간혹 하는 짓이다.
이렇게 기어끼리 공차가 맞지 않으면 기어와 기어가 서로 갉아 먹게끔 하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이 석고나 시멘트로 마감해버리는 것이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사이 나쁜 두 친구를 억지로 한 방에 가두고 화해시키는 꼴이다.
물론 너무 사이가 나쁘면 피 터지게 싸워 더 난감해지겠지만, 이처럼 공차가 아슬아슬한 경우는 서로 가둬놓으면 화해한다.
“내가 설마 박 사장님 망하게 하겠어요?”
“하하하하. 해보죠, 뭐. 재밌겠네요.”
쾌활한 사람이었다.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세숫대야에 석고를 가져와 물에 개기 시작했다.
지켜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재직기의 칼 마이어 로고를 지우고, 그 위에 ‘동국정밀’이라고 글씨를 새겨놨다.
“동국 정밀? 동국 정밀 기계 공업?”
“하하, 제 동생 회사 이름입니다. 부품 좀 깎아 오랬더니 설비에 회사 이름을 새기더군요.”
박동식, 박동국?
뭐야? 동국정밀 사장이 이 양반 동생이었어?
“동생분 성함이 동국이었던가 보죠?”
“예, 제 동생이 박동국입니다.”
이럴 수가, 동국 정밀이 65년도에 있었구나.
OB들이 그랬지.
국내 기계 업체 중에 참 아까웠던 회사가 있다면 그중 하나가 동국 정밀이라고 말이다.
순수 국산 기술로 재봉기를 개발했고, 수출만으로 한 해 2백만 불을 벌었던 회사라고 말이다.
그렇게 잠재력이 창창했던 동국 정밀을 대세 그룹이 합병하면서 다 말아먹었다고 OB들이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었다.
내가 대세 그룹 출신이지만 대세 그룹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떤 기업이든 인수합병을 한 뒤엔 기술만 쏙 빼먹고 추가적인 기술 개발은 등한시했거든.
기술은 개발하는 것보다 사 오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우 회장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동국 정밀은 대세 그룹이 앞길을 막아버린 회사 중 탑급으로 아까운 회사라고 하겠다.
나는 70년대 초에 등장한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이미 창업을 했었네.
“제 동생 공장도 한 번 둘러보시겠습니까?”
“다음에 꼭 방문하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빠듯해서 말이죠.”
정말 가고 싶지만, 오늘 안에는 진해에 도착해야 한다. 미싱 국산화에 성공한 뒤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석고 마른 것 같네요. 기계 돌려보세요.”
“예, 사장님.”
박 사장이 재직기를 돌리자 아까완 달리 거슬리던 소리가 싹 사라졌다.
“사장님,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제가 설명해 드릴 게 아니라, 교육을 받았어야 하는군요.”
“별것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국산화도 열심히 하시고 관리도 잘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저희와 더 높은 곳으로 가시죠.”
“저희야 대세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합니다.”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
이들이 왜 배신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들은 삼오가 보기에 별종이었던 거다.
괜히 합병했다간 국산화니 뭐니, 이상한 소리나 해대는 귀찮은 별종 말이다.
그러기에 삼오도 적극적으로 회유하지 않았던 거고, 사장 본인도 삼오와 대세를 저울질하기보다는 본업에 바빴던 거다.
하지만 내겐 이들의 잠재력이 보였다.
‘월남에서 돌아오면 여기다 연구소를 세워야겠어. 별종들만 모아서 말이야.’
입지 조건마저 괜찮았다.
마산은 울산과 그다지 멀지 않고, 여수와 광양까지 확장할 걸 생각해도 딱 중간 지점이라 좋았다.
나는 남해안을 싹 먹어버릴 계획이니까.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이고,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하,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이건 제 성의입니다. 직원들끼리 식사하십시오.”
“어이쿠, 금일봉까지…”
나는 박동식 사장에게 봉투를 쥐여주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현장들을 둘러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내 주변엔 이미 굉장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돈이다.
월남에서 최대한 돈을 빨아와야 했다.
“가자, 가자!”
나는 서둘러 진해로 향했다.
< 042 : 남해안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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