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2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29화(429/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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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 의도한 건 아니지만 >
1월 말,
<말레이시아 신임 총리께서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하셨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양국 모두 개발도상국으로서 경제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환영인사를 밝혔습니다. 이에 말레이시아 신임 총리는…>
TV에서는 연신 말레이시아 총리가 첫번째 해외순방지로 대한민국을 택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대통령도 꽤 기뻤던지 고위 공무원들과 함께 공항까지 마중 나가는 성의를 보였다.
“찬수야. 나 정말 저 자리에 참석해도 되는 거냐? 정상회담이잖아.”
내 집무실에서 TV를 보던 삼복이는 더욱 쫄아서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럼 어째? 말레이시아 총리가 널 콕 찍어서 배석시켜 달라고 했다던데. 모터쇼에서 얼마나 잘 보였기에 정상회담에 배석하라는 얘기가 나와?”
“빌어먹을 총리. 그냥 실무 회의 때 부르면 될 것이지 간 떨리게 정상회담에 왜 불러? 자칫 말실수하면 우리 왕창 뒤집어쓰는 거 아니냐?”
“별걱정을 다한다. 마! 무슨 말이 나오든 정중한 표정으로 그냥 예 알겠습니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오면 되지.”
“야이, 씨. 대통령 앞에서 그따위로 성의 없게 말하다가 중정 끌려가면 어째.”
역시 삼복이는 정상 회담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무서운 거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녀석의 양쪽 어깨를 꽉 눌러줬다.
“안심해라. 중정에 끌려가면 죽기 전에 반드시 꺼내주마.”
“뭐야! 바로 꺼내줘야지. 뭔, 농담을 해도!”
자식, 농담도 알아듣고 제정신이네.
“짜식, 농담인 건 아네. 마! 대통령도 정치인인데 그 앞에서 립서비스 하는 게 뭐가 문제냐? 이미 실무협상은 대세 호텔에서 하기로 했으니 넌 청와대서 얼굴마담 역할이나 잘 하고 와.”
“대충 분위기 맞춰주고 오면 된다 이거지?”
“그럼! 너 높으신 양반들 비위 잘 맞추잖아. 이번에도 능력 발휘해봐. 혹시 알아? 이번 기회로 박 대통령이 너도 총애할지?”
“됐다! 총애받을 데가 없어서 박 대통령한테! 자칫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는데.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게 백배 천배 나아.”
“그래, 그냥 간 김에 청와대에서 맛난 거나 먹고 와라. 거기 나오는 거 죄다 맛있다.”
“아이 씨, 정말 가기 싫은데…”
쫄보 삼복이는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결국 청와대로 향했다.
빌 베인 사단이 몇 번이고 다듬은 자동차 합작 사업계획서를 들고서 말이다.
“자, 그럼 나도 가볼까?”
삼복이를 보내고, 나는 대세 호텔로 향했다.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간에 말레이시아 경제사절단과 환영 파티를 하기로 했다.
정상회담과 경제사절단 환영 파티가 동시에 열린다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경제사절단은 정상회담이 열리면 근처 영빈관에서 대기하는 것이 상례인데 말이다.
양국 정상 간에 즉흥적인 질문이 오갈 수 있기에, 실무적인 답변을 해주기 위함이다.
헌데, 그런 상례를 벗어나 환영파티를 동시에?
그만큼 말레이시아가 이번 회담에 작전을 제대로 짜고 왔다는 의미였다.
***
대세호텔,
“말레이시아 경제사절단 중공업 담당 레이 회장님이십니다.”
입구에서 파티 매니저가 레이 회장을 호명했다.
“레이 회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나는 누구보다 정중한 자세로 입구로 다가가 환영인사를 건넸다.
“우 회장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죽다 살았다고 감사를 전하고 싶은데 어디 그럴 기회가 있어야 말이지요.”
레이 회장은 내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혔다.
말레이시아 경제사절단 일행들이 레이 회장 뒤에 서서 묵례를 하곤 입장을 기다렸다.
역시 레이 회장이 사절단의 대장이었군.
나와 안면이 있는 레이 회장과 독대를 마련해주려고, 굳이 말레이시아 총리는 삼복이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던 것이리라.
마하티르 신임 총리가 꽤 머리를 쓰네.
“자, 인사들 나누시지요. 여기 상공부 장관님, 그리고 이쪽은 염원철 경제수석 비서관이십니다.”
“반갑습니다. 범충훈 상공부 장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염원철 수석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레이 회장은 명함을 나누며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인사치레를 했다.
예전 뀌년의 익스클루시브 파티 때보다 신수가 훤해졌고, 말발도 좋아졌다.
그만큼 타이어 고무 사업이 잘되는 것이리라.
“레이 회장님, 총리께서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방문해 대뜸 대세와 자동차 합작을 제의하셨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저도 놀라긴 매한가지입니다. 타이어 고무 사업을 같이 했으니, 이번엔 우 회장님과 자동차 합작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역시 레이 회장이 이 일을 맡았군.
“그쪽 자동차 시장이 연간 8만 대쯤 되지요?”
사실 70년대 초반만 해도 말레이시아 자동차 시장이 한국보다 몇 배는 컸다.
“예, 그렇습니다. 한국이 말레이시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시면 절대 손해는 아닐 겁니다. 가성비 좋은 합작 자동차를 내놓으면 금세 연간 15만대, 20만대까지 팔리지 않겠습니까?”
미국 시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연간 20만대만 되어도 여천 제2공장 캐퍼의 절반이다.
즉, 합작해서 말레이시아 내수시장을 과점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장이다.
“연간 20만대까지 목표로 두시다니, 합작 규모가 꽤 크군요.”
“커야지요. 나라 경제가 발전하려면 일단 물류가 기본인데, 자동차가 원체 비싸니 국민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석유는 있는데, 굴릴 자동차가 없다는 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당신네가 억울하면 우린 얼마나 더 억울하겠나? 우린 몇년 전만 해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였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나 국산 자동차는 가지고 싶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합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레이 회장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거든.
말레이시아가 대답을 제대로 못 한다면 이 합작사업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페낭 대교 따윈 안 지어도 그만이다.
“기술만 베끼고 합작 사업을 포기할까 봐 그러시는 것이겠지요?”
바로 그거다. 21세기 중국이 잘하는 짓이다.
기술을 빼돌리는데 성공하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합작사업을 망가뜨리고 독자 사업을 하지.
대부분의 나라가 쓰는 전략이니 뭐라 할 건 못되지만, 대세는 그런 꼴을 당하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아쉬운 게 별로 없거든.
길게 보면 그런 합작은 하지 않으니만 못하다.
“타이어 고무 합작사업을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한국은 일본처럼 합작을 핑계로 타국의 노동력만 빨아 먹는 파렴치한 짓은 안 합니다. 허니, 그 반대되는 일은 피하고 싶군요.”
“그래서 저희가 한국을 파트너로 선택한 겁니다. 서로 비슷한 성향이니 말입니다.”
“비슷한 성향?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레이 회장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말할 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한국은 일본이든 화교 자금에든 휘둘리지 않고, 국내 자본으로 산업발전을 꾀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술 개발도 국산화가 목표고 말입니다.”
“그렇지요. 음, 그러고 보니 자본 운용에 있어서는 양국에 공통점이 있군요.”
말레이시아가 와중에 동남아에서 잘나가는 이유다. 일본이나 화교 자본을 최대한 멀리하고, 자국의 석유 자본으로 자국민 우선 정책을 펼쳐 외국자본의 내수시장 잠식을 최소화했다.
대한민국도 화교 자본은 일찌감치 걷어냈고, 일본 자금도 내가 최대한 차단한 셈이라 양국의 자본시장은 비슷한 양상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우린 산업화 초기에 석유자본이 아니라 미국의 개발차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이 좀 다르지만 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양국 모두 경제정책을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밑에서 위로 향하는 경제 발전이 이상적이지만, 세상에 순수한 마음으로 국가를 위하는 기업인들이 몇 명이나 되겠나?
돈을 쫓는 기업인들을 적당히 이용하는 영악한 정치인이 있을 때 국가가 급속도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20년 가까이 독재를 이어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거든.
“저희는 한국과 관계가 깊어져도 우리 경제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화교처럼 남의 나라 정치권에 관여할 정도로 음흉하진 않으니 말입니다.”
뭐, 한국이야 제국주의를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거다.
아무리 덩치가 커져도 위협이 되지 않으니 윈윈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이러니하네. 이런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군.
“즉, 합작의 정도가 깊어져도 굳이 협력관계를 깰 필요가 없다는 뜻이군요.”
“솔직히 한국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말레이시아 자동차 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한국의 자동차 사업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하긴 말레이시아 자동차가 고급화를 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우리 한국이야 특유의 교육열로 선진사를 따라잡고 결국 능가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국민성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국민성이라기 보다 풍부한 자원이 있으니 한국인처럼 죽어라 일할 필요까진 없다는 말이 맞겠다.
“그리 말씀하시니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레이 회장의 대답은 합격이었다.
말에 가식이 없고 양국의 상황을 잘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하티르 총리 같은 정치인에다 이런 기업인까지 있으니, 원래 역사에서도 말레이시아가 동남아 중에선 수준급으로 올라온 거다.
그리 보면 어느 나라건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냐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나 경제성장 속도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외국 자본에 착 달라붙어 자국민들이야 고혈을 빨리든 말든 자기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여기는 놈들이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나라는 절대 중진국 수준을 넘을 수 없다.
분명 태국이 인구수로나 땅으로나 말레이시아를 압도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지 않나.
“아이고, 두 분 말씀을 듣고 있자니 마치 정상회담 같습니다. 서서 그러지 마시고, 앉아서 얘기 좀 하시지요. 원하시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든, 수출 금융을 내어드리든 할 테니 본격적으로 계약 항목을 논의하셔야지요.”
염원철 수석이 훅하니 잘도 끼어들었다.
역시 이 양반의 사교성은 대단하다니까.
자연스레 우리 둘은 염 수석의 팔에 이끌려 원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하하하, 안 그래도 저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놓은 게 있습니다.”
“벌써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셨다고요?”
“그럼요. 대세가 타이어 고무 사업을 합작할 때 우리 정부에 제출했던 사업 계획서를 참조했습니다. 그거면 완벽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대세의 사업계획서를 베꼈으니 꼬투리 잡을게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하하. 그래서 이리 여유로우셨군요.”
“그럼요. 이런 계약이 망가지면 기존의 대세 계약도 잘못됐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축배를 들어야겠군요. 바로 사인하겠습니다. 지분이야 51대 49 아니겠습니까?”
“그럼요. 그럼요.”
타이어 고무 합작사업 때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게 이렇게 돌아오는군.
“이거 원, 자동차 합작이 이리 쉽게 계약되다니. 정부 차원에서 도와드릴 것은 없겠습니까?”
“정부 차원의 도움이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겠지요. 우 회장님, 우린 건배 하시죠.”
“그럽시다.”
“말레이시아 국산차를 위하여!!!”
“국산차를 위하여!!!!”
“역시 우 회장과 같이 하면 뭐든 일사천리라니까요. 위하여!”
파티에 참석한 이들은 어리둥절했지만, 곧이어 합작에 동의했다고 하니 축배가 이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대세자동차 실무진도 그제야 기술적인 얘기를 편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
사흘 뒤, 대세자동차 여천 공장.
“삼복아! 나 왔다.”
“어, 왔냐?”
“몸살은 이제 괜찮고?”
“몸살은 무슨. 그냥 감기기 조금 있는 걸 갖고”
쫄보 녀석이 정상회담에서 어찌나 긴장했던지 청와대서 나오자마자 앓아누웠다.
“정상회담에서 별다른 말도 없었더구먼 뭐 그리 용을 쓴 거야? 합작 계약도 내가 했는데.”
“별거 없었긴! 페낭대교 입찰초청장을 가져왔잖아.”
“그래, 그래 잘했다.”
서로의 일을 대신해준 꼴이었다.
물론 페낭대교 수주는 확정이 아니었지만, 말레이시아 총리가 직접 흔들어댄 당근이니 터무니 없지만 않으면 우리 대세에 발주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내려왔어? 말레이시아 합작은 내가 올라가서 보고하려고 했더니.”
“원유 저장고 현장도 좀 볼겸 겸사겸사 왔다.”
대세가 가진 땅 중에 상당히 넓은 땅이 바로 여천 공단의 자동차 전용항구다.
말그대로 임시주차장이기에 지하에 원유저장고 공사를 하기엔 아주 딱이지.
게다가 대형 로로선(자동차 운반선)이 정박할 정도로 항만시설도 잘되어 있어서 유조선도 손쉽게 정박할 수 있다.
“아, 그거?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로 동굴을 파는 것 같던데? 설마 선착장이 폭삭 내려 앉는 건 아니겠지? 많을 땐 자동차가 2만대씩 주차하고 그러는 곳이라고.”
“걱정할 걸 걱정해라. 지하 50m 아래 최신 기술로 만드는 동굴인데 무너지긴. 게다가 거기 지반은 아주 튼튼해. 나오는 골재도 품질이 죽여줘.”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지하 저장고를 파면서 나온 골재는 행정수도 건설용으로 딱 좋았다.
애매한 크기의 돌은 분쇄해서 쓰고, 거석은 금강 주변의 수변 시설을 지을 때 쓰기 딱 좋았다.
원유 저장해서 돈 벌고, 골재 조달해서 돈 벌고, 이거 땅만 파도 돈 되는 시대라니 너무 좋다.
“너가 하는 거니 잘 하겠지. 여하튼, 내려왔으니 진행현황은 보고해야지? 여기 보고서.”
앓아누웠음에도 업무는 챙겼던 모양이다.
벌써 보고서를 작성하다니 말이다.
“그래, 보고할 게 있다고 해서 내려오긴 했다만 정말 말레이시아에 제안할 제품이 벌써 있어?”
“생각 안 나? 동독 트라반트 자동차와 협업하면서 만들어본 시제품이 몇 개 있잖아.”
“아, 그거! 트라반트와 SKD(세미녹다운) 형태로 소형차 개발을 추진했었지.”
“트라반트의 사세도 웬만큼 정상화되어서 약속대로 합작모델을 할 때가 되었어. 그중 하나를 말레이시아용으로 돌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
역시 일을 하다보면 시너지가 나기 마련이다.
칼자이스를 품에 안으려고 덤터기 쓰듯 도와준 트라반트 자동차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어서 가자. 일단 보자.”
“트라반트 모델이라는 거 염두에 두고 봐야 해. 허접하다고 욕하지 말고.”
삼복이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장섰다.
< 429 : 의도한 건 아니지만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