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4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40화(44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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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0 : 천기누설 >
차로 갈 줄 알았더니 창원공단 어귀에 헬기가 대기 중이었다. 우릴 태우고는 곧장 날아올랐다.
행정수도 건설 현장을 보러 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보다 훨씬 서쪽으로 비행이 이어졌다.
우리가 내린 곳은 서산 근처의 공군기지였다.
“각하, 외람되지만 여기부터는 헬기나 차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살피시려면 걸으셔야 합니다.”
염 수석이 대뜸 바다 쪽을 가리켰다.
‘설마, 가로림만?’
나는 주변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서산 근처, 그것도 가로림만 부근이 분명했다.
서해에 이렇게 바람이 거칠고, 바닷물 색깔이 검게 보이는 곳은 가로림만이 유일하다.
박 대통령이 여기에 대규모 공단을 건설하려고 계획했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나?
착공 직전에 피격당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뭐, 그렇다면 그래야지. 걸어볼까. 자네들은 여기 대기하고 있어. 우리끼리 다녀올 테니까.”
“각하, 경호 원칙에 어긋…”
“어허, 됐다니까! 여기에 위험할 게 뭐가 있어?”
박 대통령은 마치 이 일이 극비라도 된다는 듯, 공군기지의 군인들은 물론 경호원들마저 자리를 지키게 했다.
결국 대통령은 나와 염원철 수석만 대동하고 가로림만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뻘에 민가도 한 채 없이 해안가를 따라 뜬금없이 돌산들이 서 있었다.
해안가로 다가가니 사람들이 보이긴 했다.
인부로 보이는 몇 명이 돌산에서 바위를 캐내고 있었다.
“이보게들, 그거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거요?”
대통령은 뜬금없이 인부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어,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여긴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인데.”
“…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오해 마십시오. 여기 군부대로 들어오는 길을 닦는다길래 사전 답사를 왔습니다.”
염원철 수석이 대충 말을 돌리자, 인부들은 그런가 하면서 별스럽지 않게 답했다.
“공사하는 양반들이구먼. 이건, 규석(硅石)이오. 품질이 아주 좋아서 인천제철이나 포항제철에서 죄다 사 간다오. 조금 질이 떨어지는 건 시멘트 업체로도 나가지요.”
“돈 좀 되시겠구려. 수고들 하시오.”
“그쪽으로 가면 모래펄 때문에 옷을 다 버릴 거요. 돌산 어귀를 돌아가는 게 나을 겁니다.”
“고맙소이다.”
인부들은 나는 물론, TV에 매번 나오는 대통령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깡촌에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경호원도 없이 사전답사를 나올 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그 양반, 대통령 엄청 닮았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고나 할까.
***
“하하. 임자, 봤어? 이렇게 내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아. 우리나라에 개발할 곳이 널렸다니까!”
모르는 게 아니라 설마 대통령이겠어 하는 생각이겠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헌데, 그보다 대통령님께서 여기 오신 이유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긴! 여기가 바로 중부공업지대로 개발할 곳이야. 행정 도시를 먹여 살릴 경제적 배후지란 말이지. 서울 옆에 인천이 있듯이, 행정수도 옆에는 중부공단이 있어야 하는 거야.”
“여기에 새인천을 만드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여기 가로림만에 항구를 만들면 인천항, 군산항, 여천항까지 연결되지. 중부공단을 중심으로 수도권부터 호남까지 거대한 서부공업벨트를 구축하는 거야. 울산항, 부산항, 마산항을 연결하는 동남공업벨트와 필적할 만하니 호남이나 충청도의 소외감도 완전히 없어질 테지.”
행정수도 이전에 전문가 500명이 참여했다더니, 공업 벨트까지도 스케일이 엄청났다.
지금에야 충청과 호남을 염두에 둔 균형발전 측면에서 시도하는 일이겠지만, 미래에 중국과의 교역에서도 빛을 발할 계획이기도 하다.
아니, 공단이 제대로 구축된다면 중국의 약진을 견제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
한국산 제품을 여기 항구를 통해 중국으로 무지막지하게 수출할 수 있지 않나.
여기서 상하이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물류비용을 아끼는 만큼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간재를 왕창 팔아 재낄 수 있겠다.
“우 회장님, 여기가 서해라고 우려하시는 거죠?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가로림만 전경을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여긴 하늘이 점찍어준 천혜의 땅입니다.”
“염 수석, 말 잘했어. 앞장 서봐.”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염 수석이 돌산으로 향했다. 숨이 찰 때쯤 정말이지 가로림만의 전경이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펼쳐졌다.
“멋지긴 정말 멋지군요.”
70년대의 가로림만은 이런 느낌이었군.
돌산 위에서 바라본 가로림만은 탁 트인 것이 눈이 시원해질 정도였다.
움직임이라곤 저 멀리 규석을 캐고 있는 일꾼 몇 명이 전부일 정도로 허허벌판이었다.
“인구 500만의 행정수도를 건설한다면 청주, 대전에 있는 기존 일자리를 합쳐도 100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세중공업이 있는 마산과 창원공단이 대략 50만명을 먹여 살리니, 그보다 8배는 크게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계산 잘하는군. 역시 염 수석도 임자 못지않은 보물이야. 그렇지 않나?”
“여기에 마창공단보다 8배나 큰 공단을 지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중복 투자 따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임자 입으로 그러지 않았나. 여기에 초대형 항구에다 제2종합제철소도 짓고,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까지 지으면 인천과 흡사한 모습이 될 거야. 물론 규모는 인천보다 크겠지. 하하하.”
마치 인천제철과 대세석유화학을 카피해서 짓겠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새인천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발상이었다.
대통령은 여태 계획만 가지고 있다가 막상 공단을 지으려다 보니 덜컥 겁이 난 거다.
그래서 내게 중복투자 어쩌고 하면서 떠보고는 내 대답에 자신감을 얻었던 모양이네.
계획은 좋지만, 지금 당장 투자해서는 안된다.
2차 오일쇼크를 넘기고 3저 호황이 닥칠 때 그때 미친 듯이 건설해서 단박에 본전을 뽑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국토 균형발전에는 매우 바람직한 계획이지만, 기본 인프라가 너무 부족합니다. 일단 행정수도 건설부터 하고, 산업도로를 비롯해 점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뭐야? 임자, 겁먹은 거야?”
“그게 아니라, 큰 프로젝트는 제대로 검토해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우 회장님, 저희가 제대로 검토했습니다. 지질조사를 하면 할수록 여긴 천혜의 장소입니다. 가로림만은 조수(潮水)가 강해서 수심이 20m가 넘습니다. 20만t급 화물선이 출입할 수 있는 데다, 방파제도 필요 없습니다. 만 안쪽으로 부두 안벽(岸壁)을 건설할 수 있는 바위 해안의 길이가 자그마치 9000미터나 됩니다.”
염 수석은 지질조사 결과는 물론, 항구와 공단 조성에 대한 기본 설계도까지 척하니 보여줬다.
지도와 앞 전경을 번갈아 가리키며 매치를 시켜주니 내가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대로만 된다면 기가 막힌 공단이 될 거다.
당장 실행해서는 안된다는 걸 아는 나조차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탐나는 공단이었다.
이 공단만 제대로 돌리면 중국에 빨대를 콱! 꽂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문가들의 말로는 가로림만과 주변 야산을 개발하면 총 3억평의 부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하더군. 임자라면 여기를 개발할 수 있지 않겠나? 그 대가로 발전소와 LNG 터미널을 짓게 해주지.”
발전소와 LNG 터미널을 발주하는 대가로 나더라 여길 개발하라는 건가? 하필 올해에?
딱히 내겐 특혜라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싸고 품질 좋은 발전소를 지을 사람이 누가 있나, 경쟁 입찰을 해봐야 결국 내가 수주할 텐데.
게다가 LNG 터미널이야 지금도 내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대세가스를 운영하고 있지 않나.
운영비로 적자를 벌충해가고 있는데 또 대형 적자를 감수하라고?
내게 영원히 가스사업을 맡길 셈입니까?
공사(公社)로 전환할 생각은 안 하십니까?
나는 하고픈 말이 산더미였지만 꾹꾹 눌렀다.
“천혜의 조건이긴 합니다만, 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금입니다.”
“우 회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긴 3억평이라는 부지에 항만부두만 5개 이상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공단에 기대어 500만명이 먹고살게 될 겁니다. 완공만 되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단박에 능가할 겁니다. 해볼 만 합니다.”
염원철 수석은 마치 내게 사업계획서를 브리핑하듯이 말했다.
그래, 해볼 만하다니까. 나도 안다고요.
내가 여길 개발하면 정말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치지. 염 수석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정수도와 여기 중부공단의 시너지는 환상적일 거다.
“임자, 뭘 망설이는 건가? 여기에 공단을 조성하면 발전소는 당연히 필요하고, 석유나 LNG 수요도 늘어날 것 아닌가? 3억평 부지에서 임자가 원하는 땅도 우선해서 불하해줄 텐데, 반응이 왜 그래?”
맞는 말이다.
공단이든 행정수도든 에너지를 써재끼면 내가 돈을 벌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걸 빌미로 나더러 여기 공단의 초기 투자를 감당하라고 하면 어째?
내가 침묵을 지키자, 대통령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움찔거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내게 이런 말을 하려고 대통령이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은 거군.
“대통령님, 종합제철소나 석유화학단지 조성에 전권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건 안 돼. 제2종합제철소는 포항제철의 계열사로 국영기업처럼 운영할 계획이야. 그리고 석유화학단지도 다른 기업에 우선권을 줄 거고 말이지. 임자가 말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니까.”
아니, 선의의 경쟁을 시킬 거면 국가에서 투자를 해야지 왜 나더러 투자를 하라는 거야?
발전소를 짓게 해준다지만 겨우 손해를 면하는 수준일 테고, 내게 남는 건 별로 없단 말이지.
LNG 터미널이야 좀 남겠지만, 그거도 길게 봐야 겨우 이득을 보는 구조다.
“우 회장님이 애국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를 대세가 주도하다가 부실화되면 세금으로 대세의 독점을 보존해주는 꼴이 아니냐고 공격을 받으면 어찌 방어할 명분이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국가에서 투자하라니까.
자꾸 나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애국심으로 말씀드릴 사안이 아닙니다. 제2종합제철소를 짓는다면 최소 300만톤 규모는 돼야 하는데, 건설비용을 톤당 700불만 따져도 21억불이 소요됩니다. 석유화학공단도 비슷하겠지요. 발전소, 항만, 도로, 상하수도 같은 인프라를 합치면 50억불은 가뿐하게 넘어갈 겁니다. 일개 기업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임자를 여기까지 부른 거잖아. 일단 시작부터 해. 일본산 철강을 싼값에 대량으로 사둔 것도 있다면서? 그걸 녹여서 철골 구조물부터 세우면 외국에서도 투자할 것 아닌가? 상업 차관을 얻어오는 건 임자의 특기 아니냔 말이야.”
그게 뭔 말입니까. 일본산이든 뭐든 철강은 올해만 묵히면 두배 세배로 가격이 뛴단 말입니다.
내가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박칠 게 뻔한 자산을 내가 왜 처분하냐고요.
더 매집해도 모자랄 판에.
솔직히 행정수도나 한강 개발이야 지금 착수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으니 한 거고, 공단은 조금 미루는 게 답이라니까.
제2종합제철소나 추가 석유화학공단은 자연스레 생겨난다고요.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정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만, 차관도 쉽지 않습니다. 최근 포항제철 확장으로 차관을 대량으로 빌렸고, 더 빌리게 되면 국가 신용도는 물론 대세의 신용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빌리려면 단기 외채를 빌려야 하는데, 그건 절대 안 된다. 2차 오일쇼크로 IMF를 70년대에 볼 수도 있다.
“설마,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하는 건가? 여기 공단이 중복 투자라는 거야? 임자의 인천제철을 확장하는 건 괜찮고 국영 제철소를 늘리는 건 안 된다, 그 말인가?”
대통령은 흥분해서 담뱃불을 붙이다 말고 삿대질을 했다.
뭔 그런 쓸데없는 오해까지 하고 그래.
지금은 투자할 때가 아니라 사재기를 해야 하는 때라고요. 그냥 내년부터 하면 된다고요.
빌어먹을, 이거 천기를 누설할 수도 없고!
“우 회장님, 미국이든 유럽이든 선진국 차관만 차관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리비아에 5억불 건설차관을 내줬던 것처럼 중동에서도 차관을 얻어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중동에서요?”
중동의 문화는 아주 보수적이다.
오일머니의 대부분은 런던으로 예치된다.
괜히 70년대에 런던이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게 아니다. 물론 UAE 무역센터가 생기면 좀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때 차관을 얻는다고 해도 원유 선물에 투자해야지.
“사우디도 있고, UAE도 있고, 이란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 기업들이 피땀 흘려 건설을 해주는데, 각각 10억불씩만 빌려와도 30억불 아닙니까? 수출 250억불을 하는 나라인데, 30억불을 못 갚겠습니까?”
나더러 중동에서 차관을 빌려오란 소리다.
이거 원, 나를 슈퍼맨으로 아는 건가.
“사우디는 런던을 통해 돈놀이 중이고, UAE는 지금 돈 버는 족족 인프라에 투자 중이고, 이란은 흥청망청해서 지금도 국고가… 음?”
잠깐… 이란? 이란에서 빌려?
차관이 아니라 원유를 빌린다면?
최소 20년은 안 갚아도 되는 거 아니야?
장인어른의 투자금이 동결되고, 우리도 공사비를 못 받으면 그걸 빌미로 안 갚아도 되잖아.
미국 정부도 우리 손을 들어줄 테고 말이다.
그런 짓을 일개 기업이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국가가 나서서 버티면 나야 국가 정책상 돈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가 없다고 하면 되는 거다.
10년이든 20년이든 묵힌 돈을 갚을 때면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훅하니 올라간 상태일 테고…
뭐야? 이란을 상대로 사기를 쳐보자?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담배 한 대 주십시오.”
“뭐라고?”
“담배 하나 주십시오. 속이 탑니다.”
“우 회장님! 각하께…”
“염 수석 가만있어! 생각할 게 있다잖아.”
대통령은 놀란 염 수석이 쳐다보는 데도 아랑곳 없이 담배 하나를 손수 꺼내 불까지 붙여줬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한참 동안 담배를 피워댔다. 회귀해서 처음으로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래, 이왕 할 거 화끈하게 해보자.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정부와 같이 하면 몇 배…아니, 몇십 배 더 크게 할 수 있지 않나.
이 시대 국가별 원유 비축량은 고작 해봐야 두 달 치도 채 안 된다.
미국은 물론 주요 선진국도 2차 오일쇼크를 겪고 난 뒤에야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며, 비축량을 극도로 늘리기 시작했다.
즉, 이번보다 크게 한 건 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두 분께 감히 여쭙겠습니다. 만일 제게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극비 정보가 있다면, 얼마나 지킬 수 있겠습니까?”
< 440 : 천기누설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