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8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80화(480/589)
=======================================
< 480 : 동전의 양면 >
이룡그룹 본사.
“지금 회장님께서 면담 중이시라 제가 들어가서 오셨다고 전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리죠.”
“지금 당장 연락을…”
“아닙니다. 약속 없이 찾아왔는데 기다리는 게 당연합니다.”
나는 어쩔 줄 모르는 비서를 다독거리고 회장실 앞 의자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前 이룡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임 회장을 만나러 온 거다.
아직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되었을 터라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이 시간에 면담이라니… 누굴까?
‘아니, 회장님. 이럴 때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이번에 여당 쪽으로 물 한 바가지만 딱 부어주시면, 물이 콸콸 쏟아질 겁니다.’
‘물이 콸콸…’
응? 집무실 안에서 요상한 말이 들려왔다.
어찌나 신이 나서 떠드는지 문밖까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썩 바람직한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지금 한국석유공사도 일부 지분은 민간에 판다고 하고 있고, 지하철 3호선 계획에다, 행정수도 알짜배기 땅도 불하할 거 아닙니까. 이때 한몫 잡으셔야지요.’
‘여당 쪽에서 이룡그룹에 특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특혜라니요. 대선만 거머쥐면 떳떳하게 합법적으로 처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여태 저희 애국청년봉사단이 나선 일에 실패란 없었습니다. 前 회장님께서 말씀 안 해주시던가요?’
‘전혀…’
‘이거… 급하게 승계를 하셔서 잘 모르시는군요. 몇몇 가신들을 통하시면 前 회장님께서 저희 애국청년봉사단을 얼마나 총애하셨는지 잘 아실 겁니다.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딱 한 장만 해주시면 급한 불부터 끄고 자세한 대가는 차기 대권주자이신 저희 육 의원과 차분히 논의하시죠.’
애국청년봉사단이니, 차기 대권주자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벌컥.
“이석원 회장!”
“헉, 우 회장님.”
“어쩌자고 이런 자와 말을 섞고 있는 겁니까? 당장 내쫓아야지요.”
이렇게 노크도 없이 집무실로 들이닥치는 것도 실례지만, 이따위 버러지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걸 지켜보는 것은 직무유기지.
“이보시오. 이런 자라니!”
“기 비서, 이 자 끌어내세요.”
“예, 회장님.”
“이보시오, 우 회장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각하께서도 인정한 애국청년봉사단 총재입니다. 아무리 재벌 총수라도 초면에 이런 식은 곤란…”
“뭔 말이 그리 길어!!”
기 비서가 냅다 놈을 끌고 나갔다.
저따위 말을 듣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괜스레 내 귀만 더러워질 뿐이었다.
애국청년봉사단? 이름만 들어도 권력에 빌붙어 기업들에 삥뜯는 단체가 분명했다.
하긴, 정권교체 시기엔 이런 똥파리들이 특히 활개를 치지.
그간 더러워서 피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저런 쓰레기 단체는 싹 쓸어버려야겠다.
새 시대로 나아가는 데 저런 놈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귀찮아도 힘 좀 써야겠다.
“우 회장님…”
“이거 늦게나마 조의를 표하러 왔더니, 결례부터 저질렀군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저도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막 들던 참이었습니다.”
“큰 회사를 이끌다 보면 별의별 놈이 다 찾아옵니다. 양아치다 싶으면 그 순간 딱 끊어서 내쫓아야 합니다. 일일이 상대해 주다니요.”
솔직히 양아치가 회장 집무실까지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이룡그룹의 위기를 상징하고 있었다.
비서실이 면담 상대를 가려내지도 못했다는 뜻이니까.
이런 드잡이를 할 필요도 없이, 비서실에서 저런 양아치는 정중하게 걷어냈어야 한다.
“조언 감사합니다. 오히려 이런 꼴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송구하다니요. 급작스럽게 그룹을 승계하니 경황이 없었겠지요.”
“딱 이럴 때 회장님이 방문해 주신걸 보면, 제 아버님이 하늘에서 지켜봐 주시나 봅니다.”
솔직히 내가 이룡그룹의 前 회장을 염두에 뒀다면 이처럼 찾아오지도 않았다.
이룡그룹의 前 회장은 자타공인 박 대통령의 정치자금 모집책이지 않았나.
정치헌금도 준조세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다.
정경유착의 상징이었으니, 정치판 똥파리들도 제일 먼저 여기를 타깃으로 한 거다.
그런데도 내가 이석준 회장을 찾아온 것은 그가 내게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었다.
기존 재벌 2세와는 달리 자진해서 해병대에 입대한 것도 그렇고, 리비아에서는 누구보다 혹독하게 굴렸는데도 현장에서 끝까지 잘 버텨냈다.
경영자로서 기본 자질은 충분했다.
지금도 선글라스 자국이 선명한 너구리 얼굴에 양복을 빼입고, 조금이라도 나이 들어 보이려고 올백을 한 모습이 애송이다운 진정성이 보였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 이유라고 하겠다.
원래 역사에선 이룡자동차 때문에 줄곧 하락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 역사에선 내 조언만 잘 새겨듣는다면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다.
순간,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창업한 지 벌써 15년째네.
“그런 것 같군요. 前 회장님이 내게 쓴 소리 좀 해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쓴… 소리라고 하시면…”
“설마 지금도 이 회장 정신은 리비아 건설현장에 있는 겁니까? 이제 현장에는 자기 사람 박아두고 비서실을 다잡을 생각부터 했어야죠.”
“비서실부터…”
“방금 전 양아치가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비서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겁니다. 윗대가리들 싹 쳐내고, 인적 쇄신 하십시오. 퇴직금이야 넉넉할 것 아닙니까.”
“인적 쇄신!!!”
내 말에 이석준 회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딱 보아하니, 기존 가신들에게 어떻게 협력을 구할까 고민했던 것 같았다.
“회사 경영은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가신들을 줄 세울 게 아니라, 이참에 실적을 보고 사람을 뽑아 올려요. 그래야, 이룡그룹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회장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여태 고민했던 게 바보처럼 여겨지는군요. 실적을 두고 판단하면 될 일인 것을.”
이석준 회장은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뭉치들을 두드렸다.
가신들이 여태 자기 성과를 증명하겠다고 올린 보고서가 분명했다.
“옥석을 잘 가리려면 고생 좀 하겠군요.”
“검토하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옥석을 가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세그룹이라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있지 않습니까. 건설, 정유, 자동차 할 것 없이 차근차근 쫓아가면 될 일이지 않습니까?”
나는 이어지는 이석준 회장의 말에 이마를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휴우, 이 회장. 정유사에 자동차까지 사업을 확장할 생각입니까?”
“무… 물론입니다. 한국석유공사를 민영화한다는 말도 있고, 특장차 사업권을 가진 동아자동차도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이라…”
내가 손을 대는 사업마다 성공하니, 대세만 따라 하면 된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정유사로 휘발유나 팔아먹을 생각입니까? 국민들을 상대로 무조건 남겨 먹는 사업이니, 땅 짚고 헤엄치기로 보이던 모양이죠?”
“그…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난 오일쇼크 때마다 국제유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국내에 유류를 공급하며 물가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그건 섬유부터 최첨단 석유화학제품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뤘기에 수출로 대규모 흑자를 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룡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 그건…”
“어렵다 여긴다면 손 떼요. 한국석유공사는 공기업으로 남겨둬요. 경쟁은 대세석유화학과 금양 칼텍스 정도로 충분하니까.”
“그럼 자동차는 어떻습니까?”
“이 회장, 언제 자동차를 만져보긴 했습니까? 현산의 왕 사장이나, 기호의 기 사장이나 공업사에서 잔뼈가 굵었던 사람입니다. 기술 따윈 모르겠고, 돈으로 해결할 생각이라면 동아자동차는 현산이나 기호가 인수하도록 내버려 둬요.”
내 말이 길어질수록 이석준 회장은 사색이 되어갔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까.
“자동차 산업이야말로 이룡그룹의 미래라고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얘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동차만 말하던가요? 전기·전자나, 플랜트 산업도 유망하다고 안 그러던가요? 어깨너머로 힐끗 듣고는 죄다 자기 생각인양 떠들어댔을 텐데.”
내 말에 이 회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 광경을 봤냐는 듯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렇게 회사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기회주의자들은 자기 자리부터 만들기 마련입니다. 계열사가 생겨야 자리가 생기니 무조건 신사업이니 확장이니 하는 거죠.”
“아…”
“준비도 없이 시작한다고 다 성공하겠습니까? 물론, 경쟁사는 아주 좋아할 겁니다. 직원도 모아놓고 초기 투자도 해놓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시행착오란 착오는 다 겪고 나자빠지면 헐값에 인수하면 되니까. 하고 싶으면 해봐요. 내가 좋은 값에 인수해줄 테니까.”
“농… 농담이 아니시군요.”
난 100% 진심이었다.
나자빠진 기업을 인수하면 투자는 최소화되고, 고용 승계해서 흑자 경영으로 끌어올리면 역시 대세라는 말도 들을 테니 얼마나 좋나.
“무슨 농담입니까? 각설하고, 그따위로 기안을 올린 임원들은 이참에 죄다 정리해요. 공부도 안 하고, 출장비나 까먹는 것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그럼 어떤 인물을 중용해야 합니까?”
“나라면 시멘트에 집중한 이들을 끌어올렸을 겁니다.”
“시멘트라고요?”
“이거 참, 조의금 대신 조언 좀 하러 왔는데 이렇게나 긴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아이고, 회장님. 살려주십시오.”
대번에 이석준 회장은 어디선가 음료수를 가져와 척하니 내밀고는 넙죽 엎드렸다.
“이룡양회의 시멘트 제조기술은 나름 경쟁력이 있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사우디 신도시 건설에 납품하는 물량에다 행정수도 건설까지 있어, 최근 560만톤으로 캐퍼를 늘렸습니다.”
“560만톤으로 만족하다니요. 더 늘려요. 일본은 시설용량 1억톤에 생산량도 8천만톤이 넘어가는데. 우리도 그 절반은 해야죠.”
“5… 5천만톤 규모로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면 톤당 25달러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질 겁니다.”
현재 국제가격이 톤당 40달러 수준이니 톤당 25달러면 미친듯이 팔릴 거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80년대 내내 일본이 시멘트 수출로 꿀 빠는데, 지금 서두르면 우리도 꿀 빨 수 있다. 3저 호황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건설붐을 일으키지 않나.
지금도 국내외 수요는 충분하다.
“그 많은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요?”
“중동은 물론, 동남아, 홍콩, 대만까지 공략해야죠. 일단 베트남 고속도로부터 합시다. 대략 4천km 정도 깐다고 하니까, 그것만 해도 600만톤은 쓰겠군요.”
나는 선물로 가져온 계약서를 척하니 내밀었다.
100km당 대략 시멘트 15만톤이 사용된다.
“고속도로를 시멘트로… 그것도 4천km나…”
“맘 같아선 우리 슈퍼팔트로 깔고 싶었지만, 베트남은 가격대비 내구성을 따지며 시멘트 포장을 선호하더군요. 이 정도면 리비아에서 굴린 보상으론 충분하죠?”
“아이고. 보상이라니요, 회장님. 이 은혜 평생 갚겠습니다.”
이 회장은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큰절을 했다.
“시멘트에 투자해요.”
“예! 물론입니다. 화끈하게 하겠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면 중부고속도로와 88올림픽 고속도로도 죄다 시멘트로 포장하니 국내 수요도 만만찮을 거다.
“사업확장보다 당분간 건설에 더 몰입하십시오. 그리고 기술투자부터 해서 차근차근 석유화학쪽으로 도전해보던지요. 자동차는 이미 늦었습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그보다 이왕 시멘트 납품하는 거 베트남 고속도로 시공! 그거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대세야 설계와 감리만 맡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동남아 토목 건설은 만만찮습니다. 중동못지 않게 어렵습니다.”
“해병대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까라면 까겠습니다. 필승!!!”
“하하하, 그래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감사합니다, 회장님.”
처음 만났을 때 경례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이왕 시멘트를 납품받을 거면 이룡에게 시공을 맡기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솔직히 4천km를 대세건설 혼자 깐다는 것도 무리인 데다, 대세는 베트남 전후복구 사업에 플랜트 위주로 리소스를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나는 다음에 볼때는 베트남에서 보자며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기 비서, 어떻게 했습니까?”
“예, 잔뜩 떠들어대던데 혼내서 쫓아냈습니다.”
“애국청년봉사단? 어떤 단체던가요?”
기 비서라면 분명 안테나를 돌려봤을 거다.
“나름 큰소리칠만한 뒷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여당에서 대선후보로 떠오른 육진수 의원의 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라고 합니다.”
“육진수 의원이 쓰는 조직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육진수라면 박 대통령 처남이지 않나.
김중필이 아웃되니 육진수가 나서는 꼴이다.
꿩대신 닭을 내세운 꼴인데, 자칫하면 동정표가 그쪽으로 쏠릴 수도 있겠군.
어찌 보면 김중필보다야 이미지도 낫고 말이다.
살짝 불안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권에서 YS나 DJ를 상대할 후보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야권후보 단일화가 안되면 어부지리로 육진수가 대통령이 되는 어이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야권의 득표율이 가까스로 여권을 앞지르는 수준이지 않았나.
‘이거, 두고 볼 수만은 없겠네.’
내 사업을 위해서도 예측 가능한 둘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되는 게 나은 일이다.
국가 전체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서거한 대통령의 처남이라니…
독재자 옆에서 사리사욕을 챙기던 자들이 대집결하기 딱 좋은 모양새다.
“기 비서.”
“예, 회장님.”
“상도동으로 갑시다. 아니, 근처 호텔로 잠시 들어갑시다. 전화부터 해야겠군요.”
“예, 워커힐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호텔로 들어가 YS에게 전화부터 했다.
오늘따라 두 군데나 불쑥 찾아가는 꼴이었다.
약속을 잡고 움직일 일도 아닌 데다, 시간도 촉박했다.
조만간 베트남에서 뀌년 5인방이 모여 베트남 전후복구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거든.
국내 문제는 빠르게 처리하고 날아가야만 했다.
“총재님, 저 대세그룹 우 회장입니다.”
<오, 우 회장! 어쩐 일로 전화까지 다하셨소?>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오늘 시간이 되시는지요?”
<우 회장이 시간을 내겠다는데 당연히 나도 시간을 내야지. 장소는 어디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시게. 대접할 게 뭐가 있나 찾아봐야 겠구만.>
전화기 너머로 기분 좋아 하는 게 느껴졌다.
YS는 내가 자신에게 줄선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는 YS와 짧은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DJ에게 전화를 걸었다.
< 480 : 동전의 양면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