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8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86화(486/589)
< 486 : 절박한 고객 >
“아빠는 안 가? 엄마만 가는 거야?”
우리 가족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뀌년에서 보내는 연말 휴가다. 하지만, 올해는 함께할 시간이 조금 줄어들 것 같았다.
“먼저 가서 놀고 있으렴. 아빠는 일 조금만 더하고 곧 뒤쫓아가마.”
“빨리 와야 해. 안 그러면 엄마가 케이크 다 먹어 버릴지도 몰라. 아빠도 알잖아.”
“하하하.”
“이 녀석이! 언제 엄마가 케이크를 다 먹었어?”
유진이 녀석은 혹시나 내가 안 올까 걱정이 되는지 케이크를 들이밀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같이 먹는 게 녀석에게는 꽤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페기, 이번엔 내 거 꼭 남겨둬요.”
“당신이 오기 전엔 안 먹을 거예요. 그보다 건강 챙기면서 일하셔야 해요. 새해 연휴까지 일할 생각 말고요. 회장님이 쉬어야 직원들도 쉬죠.”
“걱정 말아요. 출장은 내게 휴가나 다름없으니까. 최소한 비행기에서 잠은 충분히 자잖아요.”
예전에 대세그룹은 일요일도 없이 미친 듯이 일을 했지만, 이제 웬만한 프로젝트는 빨간 날에는 제대로 쉰다. 물론 특근 인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인력이 충분하니 돌아가며 쉰다고나 할까.
여하튼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점점 우리 직원들도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휴우, 한국인다운 대답이네요. 그래요, 일 편히 보고 와요.”
“늘 고마워요.”
“아빠, 빨리 와야 해.”
“그래, 그래.”
나는 페기와 유진을 뽀뽀로 배웅하고 곧이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어서 오게, CS…”
“아니, 장군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말로는 어서 오라면서도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뻔하지 않나. 나 같은 늙은이는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있어야 뼈가 조금이라도 덜 시리단 말일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원래대로라면 뀌년에 있었을 시간 아닌가.”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이번 일이 너무 중요하니, 휴가는 나중에 따로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연말은 오롯이 정계 로비를 하시는데 쓰시고 말입니다.”
“대체 뭔데 그러는 건가? 이미 5년짜리 마일스톤을 뀌년에서 모조리 논의하지 않았던가. 숙제도 많이 받았고 말일세.”
“아무래도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약간은 장난스러웠던 밴 플린트 장군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기껏 해봐야 큰 프로젝트 수주 정도로 생각했을 텐데, 이란-이라크 전쟁을 언급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CS… 자네가 어떻게 그 정보를… 아니, 그보다 어떻게 전쟁을 확신하나? 미국방부도 은퇴한 장군들까지 불러모아 의견을 들을 만큼, 헤매고 있는 데 말일세.”
내가 전쟁을 언급하니 밴 플린트 장군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미래를 아는 덕분에 오일 쇼크 같은 경제 상황을 예상하는 건 여러 번 봐왔지만 이런 국지전까지 예상한 것에는 정말 놀랐던 모양이다.
“이란 정부가 우리를 통해 지프차를 수급하려고 하더군요. 뜬금없이 지프차를 원하는 이유를 백방으로 수소문해봤더니, 국경의 수원지(水源池)를 두고 크고 작은 충돌이 있다고 하더군요.”
“맞아. 이라크가 왜 괜스레 이란을 찝쩍거리나 싶은데, CS는 그게 전쟁까지 이어질 일이라고 확신하는 건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이라크의 후세인 입장에선 위협이지 않습니까. 그의 정치적 지위는 호메이니보다는 팔레비왕조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도미노효과를 경계한다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호메이니가 이라크의 호의를 배신했다고 하더군요. 이라크에서 지난 15년간의 망명 생활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줬는데, 막상 정권을 쥐니 이라크의 시아파에게 이라크 정권에 항거할 것을 주장했다고 말입니다.”
“호메이니, 그 빌어먹을 늙은이! 국내 정치 불안을 외부로 옮기려는 수작이야.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는 군인들을 만 명이 넘게 처형했으니, 국내 상황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지!”
결국 이란 이라크의 두 지도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솔직히 둘 다 전면전으로 양상이 번져서, 전쟁이 8년이나 이어지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라크는 이스라엘처럼 기습전으로 이득을 보려 했을 것이고, 이란이야 이라크 내부의 시아파로 대리전을 치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전쟁이 장기화된 이유는 후세인이든 호메이니든 둘 다 일단 전쟁이 정치적으로 아주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투의 결과를 빌미로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정적(政敵)을 총살하기 너무 편했거든.
“엘리트 군부 세력이야 호메이니에겐 눈에 가시니 처형할 수밖에 없고, 후세인 입장에선 그런 행태가 쳐들어갈 기회로 보일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 그 논리에 딱히 허점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전쟁 발발을 확신하기는 어려워. 좀 더 신중해야 해.”
“그들은 전쟁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자 할 겁니다. 심지어 소수인종 청소까지 하려고 들겠지요. 그게 전쟁의 진짜 이유죠.”
“강력한 독재를 위해 전쟁을 한다… 이건가?”
“전쟁은 원래 미친놈과 미친놈이 만났을 때 벌어집니다. 이번 건은 너무나도 확실하죠.”
솔직히 20세기 국가 지도자 중에 막 나가는 이들을 뽑으라면 무조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이들이지 않나.
“미친놈과 미친놈이 만나… 그렇군. 극동의 자네가 우리 국방부 전문가들보다 훨씬 낫군.”
“과찬이십니다.”
당연하지, 나는 미래를 보고 왔는걸.
밴 플린트 장군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듯 시가를 물었다.
나는 접대용 라이터로 불을 붙여줬고 말이다.
“여하튼, CS 자네가 하고픈 말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겠군. 2차 오일쇼크를 예견하고 떼돈을 벌어들였듯 말이지.”
밴 플린트 장군은 시가를 깊게 빨아당기더니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잘 아는 사람이지 않나.
심지어 이란-이라크 전쟁은 중월전쟁처럼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아는 것 같았다.
“예, 그렇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누군가 이득을 취할 게 뻔하니, 이왕이면 우리가 선수를 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원래 역사에서도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하는 척 하면서 이란에도 무기를 팔아먹었고, 일본도 양다리를 걸치며 군수품 장사를 했고, 중공도 이란에 무기와 전차를 공급하며 전쟁특수를 누렸다.
“설마, 자네 무기라도 팔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이란은 물론이고, 이라크도 어려운 일이야.”
“어렵더라도 팔아야죠. 우리가 무슨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팔 것도 아니고, 기껏 해봐야 군복에 개인화기에 포탄 정도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를 이란이나 이라크에 제공한다고 해서 미국의 국가안보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대량살상 무기도 아니고, 저들끼리 총 쏘고 싸우는 일이지 않나.
미국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모른 척 할 수 있다.
무기 공급을 막아봐야 결국 중공이나 소련제 총으로 싸우게 될 텐데, 그것보다야 미국의 동맹국인 대한민국이 이득을 보는 게 좋지 않나.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한국이 이란과 이라크에 무기 판매를 하는 걸 지켜만 보겠나? 카터 정부가 아무리 식물정부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이번에는 군부 강경파들도 반대할 가능성이 커.”
밴 플린트 장군의 의견은 매우 타당했다.
연말 휴가를 마치고 국회가 소집되면 대번에 이란과 단교부터 하고 본격적인 압박을 시작하게 될 거다.
이미 대사관 직원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데다, 기존에 팔레비왕조 때 미국에 협조한 이들이 대거 처형되고 있으니 말이다.
“예, 이란과 단교에다 경제제재 강화는 정해진 수순이겠지요.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이참에 이란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전략은 아주 유용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란에는 이미 팔레비왕조 때 사들인 미국산 무기와 전투기가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그걸 이참에 소비하게 만든다면, 이란의 군사적 영향력이 월등하게 줄어들겠지요. 그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설마, 이라크를 통해 미국이 대리전을 치른다는 뜻인가?”
딱히 내가 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원래 전쟁사에서 대리전은 정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의 싸움이지 않던가.
“이참에 이라크와 이란의 원유생산 시설이 망가지면, 사우디의 입지는 훨씬 더 높아지고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CS. 자네는 늘 정치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너무나도 정치적이야.”
“그래서 정치를 싫어하는 겁니다. 미친놈 둘이서 비극을 만드는데, 너무나도 큰 이권이 걸려있으니 말입니다. 이럴 땐 전력을 대등하게 맞춰주는 게 최선이지 않겠습니까? 서로 멀리서 포만 쏘며 쉽게 진전하지 못할 테니까요.”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것마저 포기하고 포탄을 쏠 수는 없으니까.
“음, 어느 한쪽이 완벽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니 그게 최선일지도 모르겠군.”
역시나 밴 플린트 장군은 장기전을 예상했다.
내가 그려준 미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연초에 이란과 단교할 때 이러한 전략이 미국방부 내부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맞는 말이야. CS 자네 의견을 내 의견인양 피력하고 다녀도 되겠나?”
“제 예측을 장군께서 검증해주신 겁니다. 제 의견은 곧 장군님 의견입니다.”
“연말 휴가를 까칠한 후배 군인들과 보내려니 끔찍하긴 하지만, 중요한 일임에는 분명하군. 기꺼이 돕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뭐 전략회의를 빙자해 플로리다든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게 될 텐데 괜한 엄살은.
물론, 하와이보다 뀌년이 낫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나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CS 자네도 힘써줄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란에서 지프차를 핑계로 접근한 인물이 호메이니의 측근이겠지?”
“당연히 그럴 겁니다.”
“개인화기 수준의 무기수출을 담보로 미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받았으면 하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이 거래의 기본 전제였다.
“그리고 미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보장은 내년 5월 말에 공식화해야 해. 그전에 발표해서는 안된다는 걸 꼭 다짐시켜주게.”
“… 내년 5월 말에 공화당 후보가 확정되기 때문입니까?”
“그렇네. 그 일은 오롯이 공화당의 성과가 되어야 하는 것이네.”
이러면 미 대사관 직원들이 풀려나는 것은 아무리 빨라 봐야 내년 6월이네.
참나, 원래 역사에서도 이래서 미 대사관 직원 억류사건이 1년 이상을 끌었던 건가?
어째 초강대국 미국이 인질 석방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싶더니,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던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좋아, 우리 둘 다 연말을 바쁘게 보내겠군.”
“저는 바로 바레인으로 떠나겠습니다.”
“내가 배웅하지, 어서 출발하게.”
나는 밴 플린트 장군과 식사할 시간도 없이 휙하니 바레인으로 날아갔다.
***
바레인 리츠칼튼 호텔,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마크 지사장, 오랜만이군요. 일단 VIP부터 뵙고 우리끼리는 따로 얘기하죠.”
마크가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회포는 나중이고 일단 일이 우선이었다.
“이쪽입니다. 회장님.”
“정보부 장관이라고 했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압둘카림 라지프, 서열 6위입니다. 이 정도 인물이 나선 걸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크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중동의 귀족들이 좋아하는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카펫으로 장식된 방.
그곳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이가 시가를 뻐금뻐금 피워대고 있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CS Woo, 대세그룹 회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압둘카림 라지프,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일원입니다.”
자신의 지위는 대충 둘러대면서도 자신의 본명을 숨기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릴 속일 생각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페르시아인들은 거래에 있어 상호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주 잘 안다.
한국인이 동방예의지국답게 거래할 때조차 상호 간의 예를 따지듯이 말이다.
“저희에게 구급차를 발주하신다기에 급히 달려왔습니다. 아시겠지만, 대외적으론 구급차가 꼭 군용차처럼 보일 수 있기에 다소 난감한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감하시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회장님께서 직접 날아오셨으니 해당 비즈니스에 긍정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다행히 바레인에 우리 지사가 있기에 명분만 잘 따지면 교역은 될 것 같습니다.”
바레인은 시아파가 다수인 나라라 와중에 이란에 호의적인 나라다.
그러니 이란의 넘버6가 이렇게 마음 놓고 바레인에서 나와 면담을 하는 것 아니겠나.
“명분이라고 하시면…”
“예전에 저희가 지프형 구급차를 중동 각지에 수출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유지보수 부품이 필요하니, 바레인에 가져다 놓을 수 있겠지요.”
“… 설마, 그 부품들을 수입해 저희가 직접 조립해서 쓰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말로는 조립이지만 볼트 몇 개 조이면 되는 수준이라, 일반 정비공이라면 눈감고도 조립할 겁니다.”
“하하하! 정말 아이디어가 근사하군요. 딱히 물건을 뜯어보지 않는 바에야 군수품… 아니, 구급차라곤 생각도 못하겠군요.”
이란이 바레인과 물밑접촉만 잘하면, 바레인 관세청에서 이란으로 재수출하는 물량에 대해 딱히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야 이해가 어려운 일이지만, 중동은 정치든 외교든 뭐든 종교가 우선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고객께서 원하시는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드려야지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저희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나는 괜스레 우는 소리를 했다.
“휴우, 우리도 한국이라는 교역로를 막히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사달이 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잘 처리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 혁명정부는 알라의 축복하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축복을 다른 이들도 알게 해줘야지요.”
라지프는 이란의 내부 결속을 위해 이라크 내부의 시아파를 지원하겠다는 속내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이란의 내부 상황이 녹록지 않은 거다.
하루빨리 내부 불만을 외부로 분출시켜야 하는 상황인 거다.
자, 슬슬 시작해볼까?
지프차 교역을 시작으로 군복은 물론 포탄에 개인화기까지 잔뜩 팔아드려야지.
절박한 고객에게는 적극 대응하는 게 을의 자세이지 않겠나.
< 486 : 절박한 고객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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