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48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487화(487/589)
< 487 : 빨대는 많을수록 좋지 >
“이런, 국경분쟁이 있으신 게로군요.”
“단순 국경분쟁이라고 하기엔 복잡한 배경이 있지만, 굳이 우 회장님께 설명할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다만…”
“다만이라고 하시면…”
“지프차와 함께 이왕이면 무기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세그룹이 한국군에 납품하는 무기들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마크 지사장! 고객께 대체 무슨 말씀을 드린 겁니까! 무기 판매라니요!!”
나는 짐짓 마크 지사장을 나무랐다.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가능한 것처럼 말하면 어쩌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요청을 듣자마자 덥석 무기 납품을 하겠다고 나서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일단 라지프님이 회장님께 말씀은 해보겠다고 하셔서…”
마크는 고개를 넙죽 수그렸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요, 마크!! 잘했습니다.
“휴우, 라지프님. 마크 지사장이 월남전 병참 장교 출신이라 쉽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월남에서야 관리가 허술해서 무기를 빼돌리는 게 가능했다지만, 지금에야 어디 될 법할 말입니까. 전세계가 이란을 주시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흠,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라지프 장관은 간곡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스스로 호구가 되겠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방법이라… 일단 연유부터 여쭙지요. 이란에는 이미 미국에서 구매한 최첨단 무기가 잔뜩 있지 않습니까. 굳이 한국산 무기를 구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게릴라전에 쓰일 것이라 출처가 불분명한 무기였으면 합니다.”
“게… 게릴라전이라고요?”
“뭐, 우리가 전면전을 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경 지역에 작은 소요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목적은 충분히 달성됩니다. 감히 이라크가 이란에 대적할 국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게릴라전이라니.
이란은 이라크 내부의 반정부 세력에 무기를 제공할 속셈이군.
바보 같은 놈들.
이라크의 후세인이 또라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은 대가는 참담할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은 ‘아랍의 강’이라는 뜻으로 샤트알아랍(Shatt al-Arab)이라고 불린다.
중동의 젖줄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합쳐져 페르시아만으로 빠져나가는 수로이기에, 양국 석유수출의 핵심 통로라고 할 것이다.
무역로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고대부터 늘 주인이 바뀌어 왔던 땅이라 종교갈등과 소수민족 문제까지 얽혀 있어 살짝만 건드려도 벌집 쑤신 효과가 나는 곳이다.
아마도 국내 정치 불만을 외부로 돌려야 하는 이란 수뇌부로선 최강의 카드로 보였을 것이다.
호메이니를 비롯한 이란 수뇌부들은 이 결정이 8년 전쟁으로 이어질 줄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물론 이런 도발에 기습적인 전면전으로 응수한 후세인도 8년 전쟁은 예상 못했을 테고 말이다.
“그러면 원하시는 무기는 게릴라전용… 즉, 개인화기 정도면 된다는 말씀이군요.”
“당연합니다. 우린 국경문제에 있어 으름장만 놓아도 충분합니다.”
그럴 리가. 개인화기로 시작해 중화기가 필요하게 되고 급기야 전차 같은 대형화기마저 필요하게 되겠지.
“좀 우려스럽긴 하지만, 개인화기 정도라면 바레인을 통하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지프차를 수입할 때 라지프님이 바레인 정부에 기름칠 좀 하실 것 아닙니까.”
“그럼요. 좋게좋게 해결하겠습니다. 명목상 기계부품 정도로 포장해주면 우리가 알아서 무마하도록 하지요.”
역시 이란 정보부 장관이 바레인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었다.
바레인은 중동의 자유시장 역할을 하고 있거든.
물론, 그 명성을 조만간 UAE가 가져가겠지만 말이다.
“그럼 지프차를 납품할 때 최대한 개인화기와 탄약을 챙겨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만이라고 하시면…”
금세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제 내가 제안을 할 차례였다.
“아시다시피 이 거래를 미국 정부가 알게 된다면 대세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습니다. 적당한 보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적당한 보험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이를테면, 美 대사관 인질 협상 말입니다. 대세가 인질 협상에 성과를 거두면 이 정도 거래는 미국도 눈감아 줄 겁니다.”
내 말에 라지프의 표정이 금세 딱딱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이 가진 가장 강력한 대미(對美) 협상카드가 아닌가.
그 협상카드는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데 사용하려는 전략일 테지.
“그건…”
“전원 석방이 아니라, 한두 명 정도 석방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라지프 장관의 말을 끊었다.
“한두 명을 풀어주자고요?”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 쭉 미국과 평행선을 달릴 것이 아니라면, 조만간 협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전달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 대세에 맡겨주시면 메신저 역할은 훌륭히 해내겠습니다.”
호메이니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미국을 적대시한다 해도 협상 자체를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음, 한두 명이면 개인화기 수출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물론입니다. 소총 몇 자루, 수류탄 몇 개 들어갔다고 미국의 국가안보가 흔들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인질 석방은 대선후보에겐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나로서도 최고의 보험이지만, 이란으로서도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나중에 이라크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경제 제재 완화 정도가 아니라 미제 무기를 들여오는 대가로 인질 전원을 석방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가운데 끼어서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미래의 일까지 해결책을 찾게 될 거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당장 석방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프차와 무기까지 받고 5월 말에 못이기는 척, 한두 명 석방하시면 됩니다. 그 정도 협상의 우위를 가져간다면 호메이니 의장께서도 동의하시지 않겠습니까?”
“허, 일단 우리가 챙길 건 다 챙기고 인질을 풀어준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차후, 경제 제재 완화를 얻어내실 때도 좋은 선례가 될 겁니다.”
“하아! 멋지군요! 멋집니다!!!!”
라지프 장관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진한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이 일을 시작으로 경제 제재 완화까지 끌어낼 생각을 하니 당연히 흥분되겠지.
고작 지프차와 게릴라용 무기를 들여오는 일을 맡았는데, 미국과의 협상 채널을 마련해서 가는 모양새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나.
본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위상은 한껏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제 제안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나 또한 점잖게 커피를 한 모금 하며 말을 이었다.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이다.
“마음에 들다마다요. 헌데, 우 회장님 표정은 왜 그러십니까?”
“고객님께서 만족하시니 저도 좋습니다만, 어째 저희 대세는 얻는 이득대비 짊어지는 리스크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을. 걱정 마십시오! 우리 페르시아인은 호의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나중에 열배 백배로 갚아드려야지요. 위대하신 알라의 은혜가 함께할 겁니다.”
빌어먹을, 그 놈의 알라 타령은 지긋지긋했다.
그냥 알라 타령으로 퉁치자는 말이 아닌가.
알라가 빚을 대신 갚아주지는 않잖아?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알라의 뜻대로.”
“라지프님, 그럼 이렇게 하시죠. 현재까지 말씀드린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대신 특약하나만 추가했으면 합니다.”
나는 알라를 한번 읊어주고 본론을 꺼냈다.
“특약이라니 무슨…”
“전장에서 발생하는 유실물을 수거할 권리를 주십시오. 그 조항을 추가하면 어찌어찌 실무진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뭣 때문에 그러시는… 아, 최대한 한국산 무기를 지원했다는 걸 숨기고 싶으신 겁니까?”
“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하하, 그 정도 특약은 당연히 있어야지요.”
오케이! 라지프는 단번에 미끼를 한입에 삼켰다.
나중에 전면전이 벌어지면 그 특약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무기 잔해도 유실물의 일종이지 않나.
타국의 무기 정보는 우리 방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줄 것이다.
이란-이라크전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소련제 무기까지 등장한다.
잔해만 수거하게 해준다면야 얼마든지 협조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전장의 유실물에 대해서는 저희가 권리를 갖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마크 지사장, 표준 계약서 있지요?”
“예, 여기 있습니다. 좀 전까지 나누셨던 말씀은 잘 옮겨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표준 계약서에 직접 특약사항을 추가하고 쓱쓱 서명했다.
라지프 장관도 흔쾌히 서명했고 말이다.
현재 서열 6위이고, 조만간 서열이 더 높아질 양반이니 아주 중요한 계약서였다.
“하하하, 멋진 계약입니다.”
라지프 장관도 마음에 들었던지, 계약서를 척하니 품에 넣고는 기분 좋게 물담배를 즐겼다.
그 뒤로 가벼운 얘기를 이어가며 접대를 했다.
아직 이 양반의 성향을 알지 못해 술은 대접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맞춤 접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8년간 주야장천 만날 것 아닌가.
“오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려. 그럼 다음에 봅시다. 물건이 언제 들어오는 지는 서면으로 알려주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마크 지사장, 준비한 것 내오십시오.”
“예, 회장님.”
“이게 뭡니까?”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우리 회사가 자랑하는 특제 방탄복입니다. 각종 카탈로그도 함께 넣었으니,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마크 지사장이 007 가방을 살짝 열었고, 나는 그걸 방탄복이라고 소개했다.
방탄복은 방탄복이었지만, 굵은 순금 사슬이 장식마냥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순금 사슬만 따로 팔든, 통째로 집무실에 걸어두고 장식으로 쓰던 알아서 하시라.
“방탄복이라…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내 적극 검토하리다.”
라지프 장관은 척하니 007가방을 넘겨받고선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다.
나름 멋진 계약서에 서명해줬기에 두둑이 챙겨드린 겁니다. 알라 한번 찾고 잘 쓰시오.
***
“휴우, 마크 지사장. 수고 많았습니다. 맥주나 한잔하죠.”
“제가 무슨 수고랄 게 있습니까? 회장님께서 다 하신 일인데요.”
“옆에서 장단 맞춰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건배합시다!”
“브라보!”
우리는 병째로 건배하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에 피로가 싹 달아났다.
“이제 정상적인 일 얘기를 해야죠. 바레인에서 공사는 다 잘 끝났죠?”
“물론입니다. 각종 공공건물, 호텔, 아파트 등등 추가 발주가 있었지만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현재 대세는 UAE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현산과 도림이, 리비아와 수단은 동호와 이룡이 주로 맡은 모양새입니다.”
“역시 바레인 지사는 한국건설사 중동지부 같은 느낌이군요.”
“예, 자타공인 그리 되었습니다. 솔직히 사우디를 필두로 대세는 플랜트 위주로 실행하고, 일반 토목 시공은 한국 건설사에 일감을 나눠주는 형태이지 않습니까.”
중동 진출 초창기부터 마크 지사장이 일 처리를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마크를 어디까지 특진시켜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능력과 성과는 거의 사장급이니 말이다.
대세그룹의 리소스 투입대비 이익율을 최대화하면서도 한국건설사와의 협업도 잘 챙기지 않나.
솔직히 중동 전체를 관장하는 게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이란 건이 잘 되면 일단 임원 승진부터 시켜야 할 것이다.
“본사에 인력을 요청해서 조직을 확장해줘요. 한방 크게 터질 것 같으니까.”
“월남에서도 무기 장사로 짭짤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이겠군요.”
“뭘 생각하든 그 이상일 겁니다.”
내 말에 마크는 순간 움찔했다.
우리가 월남에서 고장 난 탱크를 들여와 얻었던 이득 정도는 이란-이라크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건 우리가 직접 무기를 조달하는 전쟁이 될 테니까 말이다.
원래 역사에선 유럽 선진국과 일본이 꿀 빨았던 일이지만, 이번은 우리가 먼저 침 바른 거다.
미국이 군수품 조달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전쟁이 이란-이라크전 말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놓쳐선 안되는 기회라고 하겠다.
“큰 건이군요. 저는 이란이 정치적으로 20년쯤 후퇴했다고 여겼는데… 자칫하면 물리적으로도 20년쯤 후퇴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마크는 내 말에서 전면전을 읽어냈다.
뭐, 마크에게 정보보안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미군 출신에 중동정세에 밝은 이에게 정보보안을 다짐하는 일은 사족에 불과했다.
“그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남의 나라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죠. 장사꾼답게 열심히 주판을 굴리면 되는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마크, 이란에만 줄을 대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라크에도 연줄이 있을까요?”
“이라크엔 대세건설이 진출하지 않아서… 아! 현산이 이라크에 진출해 있으니 그쪽을 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잠깐, 현산이 이라크에 진출해 있다고요?”
“예, 회장님이 이란에서 철수 명령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그 인력들이 죄다 쿠웨이트로 몰려갔다가, 다시 그 옆에 있는 이라크로 진출했습니다.”
어쩐지, 요즘 왕 회장님이 뜸하다 싶었다.
현산도 대세를 따라 그룹으로 칭하고 사세를 확장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대세건설의 시공사로 만족할 양반이 아니지.
“이라크에서 어떤 수주를 따낸 겁니까?”
“사우디 신도시 건설이 마무리 단계이지 않습니까? 그 실적을 바탕으로 아파트 단지와 도로 수주를 따냈습니다. 원유송유관과 발전소 같은 플랜트 사업도 추진한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진 별다른 실적은 없습니다.”
한국건설사 연합 중동지부장답게 현산의 수주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산이 이란-이라크전으로 대규모 미수금 사태를 겪지 않았던가?’
내 기억으로 현산이 이라크에 물렸던 돈이 10억불이 훌쩍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장비도 전쟁 때 모두 징발되어 말 그대로 한푼도 못 건지고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었군.
잘나가던 현산건설이 IMF 후폭풍에 맥없이 무너져 부도가 났던 이유가 이라크 미수금 때문이라는 소문이 건설업계에 자자했었지.
그 와중에 현산건설의 주채권 은행이었던 외환은행도 도미노 효과로 론스타로 넘어가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고 말이다.
일석이조인가?
이라크에 무기도 팔아먹고, 그 와중에 현산도 위험에서 건져주고 말이다.
굳이 IMF 사태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라크 미수금은 돌고 돌아 대한민국 건설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테니 사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이란에는 내가 직접 빨대를 꽂고, 이라크엔 현산을 통해 빨대를 꽂으면 되겠어.
< 487 : 빨대는 많을수록 좋지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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