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화(5/589)
< 005 : 낭만 시대 >
“삼복아! 나 왔다.”
“너, 진짜 돌아왔어? 유학 포기하고?”
내가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오자 녀석이 어이없어 했다. 마침 김치에 밥을 먹고 있기에 옆에 앉아서 마구 퍼먹었다.
싱가포르에 며칠 있었다고 김치가 꿀맛이었다.
“응, 부자 되려고 공부한 거니까! 공부보다 직접 돈 버는 게 빠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참, 인생 쉽게 산다.”
“내가 계약해 온 거 보면 그런 소리 못할 걸.”
“뭔 계약을 했기에 그래?”
자신만만한 내 표정에 삼복이가 피식거렸다.
“이 계약서들이 40만 불짜리다.”
나는 계약서 뭉치를 방바닥에 턱하고 내려놨다.
정말이지 A4용지로 책 한권 분량이었다.
“40만 불?”
“그래, 40만 불!”
“1불당 270원쯤 하니까… 헉! 1억이 넘네!”
어? 이때 환율이 270원밖에 안됐어?
난 500원쯤 할 줄 알았는데.
“억은 넘어야 무역이지. 작은 금액이지만, 우리 둘이 시작하기엔 적당한 금액이지 않을까 해.”
난 짐짓 어깨를 으쓱거렸다.
“작은 금액이라니. 나 같은 월급쟁이는 250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돈이라고!”
“너 월급이 얼만데? 꽤 많지 않냐?”
삼복이는 나름 금성방직이라고 꽤 잘나가는 방직 회사의 직원이다.
“수당까지 다 합쳐야 32,800원이다.”
“그래?”
방직 공장 주임 월급이 3만원 언저리야?
물가를 곱하기 30쯤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곱하기 100은 해야겠는걸!
“진짜 트리코트 원단 계약서네. 허헉! 다해서 50만 야드가 넘어? 마… 너 미쳤구나!”
계약서를 뒤적거리던 삼복이는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 표정을 보니, 흥분한 게 아니라 겁먹은 것 같은데?
“삼복아, 너 혹시 쫄았냐?”
“마, 너 원단 장사 해본 적 있냐?”
“지금부터 하려고 그러는 거지.”
“수출 물량이 50만 야드인데다… 염색마저 제각각인데?”
내 말에 삼복이 녀석이 어이없어했다.
“못할 거 없잖아.”
50만 야드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어?
미터로 바꾸려면 0.9를 곱하면 되니까, 45만 미터… 대충 450km네.
… 제길, 서울 부산 거리네.
만만히 볼 게 아니었군.
“미친놈아. 트리코트 원단은 세로 방향으로 짜는 복잡한 원단이라고. 제직기 한대를 한 달 내내 풀가동해도 5000야드를 뽑을까 말까야. 기계 고장이나, 실 갈아 끼우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4000야드가 한계라고. 그걸 50만야드나 생산해? 우리 둘이서?”
음, 원래 역사에서도 한 회사로는 감당 못할 물량을 받아왔다고 했는데 이 정도로 대형 물량이었나?
월간 생산량이 대당 4000야드면 대체 몇 대가 있어야 50만 야드를 처리하는 거야?
3번에 나눠서 납품한다고 하면 대충 월 17만 야드씩 짜면 되니까, 나누기 4000을 하면…
뭐야? 제직기(製織機) 43대 정도만 확보하면 되는 거네. 뭐가 어렵다고 그래?
넉넉히 장비 50대면 충분히 커버 가능하잖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제직기 50대 정도만 섭외하면 서너 달 고생하면 쳐낼 수 있어. 국내에 칼마이어 장비가 50대는 있을 거 아니냐.”
“장비 50대가 뭔 애 이름… 아, 그래… 장비는 있다고 치자. 그럼, 원사는 뭘 쓸 건데?”
“샘플 봐라. 24번과 87번이다.”
나는 샘플 책을 내밀었다.
“… 미친, 나일론과 면 혼방이네… 너 돌았냐?”
“혼방? 나일론이랑 면을 섞은 거냐? 어쩐지 화섬사치고는 부드럽더라.”
샘플을 만져보던 삼복이는 아예 날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혼방이면 장비가 몇 대나 더 필요할 것 같냐? 엉?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받아온 거야!”
혼방이면 장비 가동률이 더 떨어지는 모양이다.
“하하, 하면 되지. 우린 젊잖아.”
녀석의 눈빛에 흠칫 쫄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 녀석이 이렇게 격하게 나온다는 말은 나와 같이 일할 생각은 있다는 말이잖나.
와중에 방직회사에서 근무했던 놈이라 섬유 쪽으론 나보다 전문가였다.
“일을 이리 저질러놓고 밥이 넘어 가냐?”
“사내 녀석이 일 시작도 하기 전에 쫄면 어째? 걱정 마, 이건 대성공할 테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원래 역사에서도 대성공했다.
이 정도 일을 우 회장이 사회 초년생일 때 해냈다고 생각하니,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또한 보통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성공해야 하지 않겠나.
“시켜봐라. 얼마나 잘 시키나보게.”
“일단 너 내일 출근하자마자 회사에 사표 쓰고, 여기 자취방 월세 빼서 사무실 하나 마련해줘.”
“그래, 사표 던지는 거야 모든 월급쟁이의 꿈이지. 사무실을 자취방처럼 쓴다는 것도 오케이. 그 다음은 어쩔 건데?”
“대세 실업이라고 회사 하나 세우고, 이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 좀 빌려와. 적어도 5천만원은 빌려올 수 있지 않겠어?”
“… 그래, 참 쉽다. 그치?”
“쉽지 않으니까, 네게 부탁하는 거지. 내가 누굴 믿겠어?”
삼복이는 내 눈빛에 살짝 화를 가라앉히는 모습이었다. 일단, 일을 돕긴 해보자는 마음일 거다.
우 회장과 이삼복 부회장이 끝까지 함께했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해보긴 해야지. 그럼 넌 뭘 할 건데?”
“뭘 하긴 뭘 해? 생산할 공장을 찾아야지.”
일을 맡길 협력업체를 찾는 거야 하면 그뿐이다.
“크, 공부한다고 월급 몇 번 안받아본 놈이 공장을 알아본다고?”
“넌, 월급 몇 번 안받아본 놈이 이런 대형 계약을 따올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냐?”
“…..”
삼복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난 할 수 있다.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어. 법인 등기하고, 돈 빌려와.”
“그리하면 나 부장 시켜주는 거냐?”
“난 사장, 넌 부장.”
“좋아. 우 사장. 시키는 대로 빡빡 기어 줄 테니 출세 좀 시켜주라.”
“넌 이미 출세했어. 인복은 타고났고, 이제부터 재복이 터질 거라니까.”
내가 하도 자신 있게 말하니 녀석이 그제야 좀 진정이 되는지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다.
찬장을 뒤지더니 먹다 남은 소주를 가져왔다.
“창업했으면 건배해야지. 그렇지 않냐?”
“대세 실업을 위하여!”
“위하여!”
삼복이와 나는 소주 반병에 김치 안주로 창업을 축하했다.
우리들의 낭만 시대가 시작 되었다.
***
“화이팅!”
“화이팅!”
우리 둘은 자취방을 나서며 서로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녀석은 며칠 동안 은행, 대서소, 등기소를 뻔질나게 드나들게 될 것이다.
‘난 성수동으로 가야겠지?’
21세기 성수동이야 수제 신발을 만드는 공방이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65년도다.
서울 근방에서 산업단지라고 부를만한 곳은 성수동 밖에 없다.
고만고만한 공장들이 천여 개나 밀집된 곳이며, 자생적으로 몰려든 공장들이라 역사적으론 민자 1호 산업 단지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칼마이어 제직기를 가진 공장을 쫙 둘러보고 각각의 생산량을 계산해서 물량을 나눠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버스를 타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이 시대에는 뚝섬 공업단지로 불렸던 곳이던가?
버스에서 내리자 전생의 부산 전포동 거리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아침 일찍부터 시꺼먼 연기를 쏟아내는 굴뚝, 리어카에 뭔가를 잔뜩 싣고 옮기는 사람들, 벌써부터 용접 불꽃을 피워대는 사람들, 그런 부산스러움 따위 일상이라는 듯 양철 쟁반에 국밥을 잔뜩 쌓아 배달하는 아주머니, 그리 배달된 국밥에 깍두기를 푹푹 퍼 담아 아침을 때우는 이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스마트 폰이 있었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xx섬유, xx제직 같은 간판이 나오기를 바랐다.
「수일 화섬」
얼마나 헤맸을까?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원단을 짜는 공장 간판이 보였다.
화섬이라는 말은 화학 섬유의 줄임 말이니, 내가 찾던 공장 같았다.
그런데 웬걸?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지만, 활기찬 아침 조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들어오지 마! 꺼지라고!”
“너희들이야 말로 안 비켜? 이 공장은 이미 망했어. 여기 있는 건 모두 은행 소유야! 알아?”
“난 그런 거 몰라! 여기 물건에 손끝 하나라도 대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공장 현관에 청년들 서너 명이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꽁꽁 묶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앞에선 다른 이들이 차압 딱지와 공문서를 내밀며 대치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추심담당 은행 직원과 경매꾼들 같았다.
경찰도 곁에 있었지만 난감한 상황에 눈살만 찌푸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철공소 거리에서 수없이 봤던 풍경이었다.
부도난 공장이 경매에 넘어간 거다.
직원들은 밀린 월급을 받을 길이 없이 거리로 내몰린 것이고 말이다.
‘60년대 답군. 이때를 왜 어른들은 낭만 시대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어.’
이때는 은행 대출 이자가 25%이상이었고, 사채 이자는 40%가 넘었다.
공장 사장이 자금 운영을 한번 삐끗하면, 그대로 나락으로 처박히는 것이 이때 경제 상황이었다.
이때 공장 사장들이 사기, 밀수, 고의부도, 노름 등등 온갖 뻘짓에 빠졌던 이유일 것이다.
돈만 된다면 뇌물이든 불법이든 가리지 않아야 사장 자격이 있다는 소리를 듣던 때였다.
“괜히 다치지 말고 비켜! 이런다고 부도내고 도망친 사장이 돌아오기라도 해? 경매라도 부쳐야 밀린 월급을 줄 거 아냐.”
“개소리 하지 마. 그리 당한 놈이 어디 한둘이야? 경매 낙찰되면 은행 놈들이 다 가져가고 우리에겐 고작 1, 2만원 던져주고 말거 아냐! 월급 가져와! 자그마치 석 달이나 밀렸어! 우리 돈 가져오라고! 은행 돈이 아니라고!”
청년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몸을 쇠사슬로 묶어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에 은행원과 경매꾼들도 어쩌질 못했다.
며칠을 이렇게 대치했던지 청년들의 몰골은 해골바가지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두면 밀린 월급을 받기 전에 양양실조로 죽을 것 같았다.
“마지막 경고야! 파이프 내려놓고 비켜!”
“내 돈 내놔! 돈부터 주고 체포하든 말든 하란 말이야.”
“여러분들, 밥 먹고 싸웁시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끼어들었다.
“… 당신 뭐야!”
“상관없는 놈은 꺼져!”
내가 중간에 끼어들자 다들 내게 쌍심지를 켰다.
“아주머니, 여기 국밥 사람숫자대로요!”
“예에, 손님.”
나는 주변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던 국밥 배달 아주머니에게 국밥을 시켰다.
아주머니도 억척스럽긴 매한가지라 이따위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림고수처럼 휙하니 골목을 빠져나가더니 순식간에 국밥을 쟁반에 잔뜩 쌓아서 가져왔다.
“뭐해요! 국밥 안 받고!”
“아, 예. 예.”
오히려 가져온 국밥 쟁반을 내리는 걸 도우라며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은행 직원도 쫄아서 양철 쟁반을 같이 붙잡았다.
“총각들은 뭐해? 아침 안 먹을 거야?”
“아뇨, 아뇨. 먹… 먹을 겁니다!”
“깍두기도 줘?”
“많… 많이요.”
국밥 장사도 눈치가 빨라야 하는 법.
아줌마는 내가 국밥 값을 지불해줄 사람이기에 내가 원하는 걸 훅하니 해냈다.
어리바리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국밥을 한 그릇씩 받았고, 자연스레 소란이 잦아들었다.
“얼마에요, 아줌마?”
“한 그릇에 100원이에요. 모두 800원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잔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아유, 젊은 사장님이 통도 크시네. 크게 되시겠어요. 그릇은 한 곳에 모아두세요.”
여태 퉁명스럽던 아줌마가 내게는 덕담을 늘어놓더니 휙하니 사라졌다.
“많이들 들어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싸움은 싸움이고 일단 먹어야죠.”
“고… 고맙습니다.”
배를 곯았던지 공장 청년들은 뜨거운 국밥에 코를 박고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몸에 묶인 쇠사슬이 안쓰러워보였다.
“이보쇼. 주니까, 먹긴 하는데 지나가는 양반이 낄 문제가 아니오.”
“아뇨, 낄만한 문제일 수도 있어요.”
“뭔 소립니까?”
은행원이 딴죽을 걸었지만 난 청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난 수출업자입니다. 화섬 원단 때문에 동남아에 다녀왔는데, 여기 공장이 망할 줄은 몰랐군요. 여기 칼마이어 설비로 제직하는 공장이죠?”
“예. 예! 맞습니다. 10대 모두 칼마이어 설비입니다.”
오, 10대씩이나 있어?
내가 원하는 장비 대수의 20%를 이 공장이 가지고 있었다. 겉보기보다 꽤 큰 공장이었네.
구미가 당기는 걸?
< 005 : 낭만 시대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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