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1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16화(516/589)
< 516 : 내 짐을 덜어주는 손 >
며칠 뒤, 김포 공항.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 마중을 자주 나오는군요.”
베인 실장이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좀 쉬셔야 하기에 마중을 나왔습니다. 급한 일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다 잘 처리됐습니다. 국내엔 별다른 일 없죠?”
“예, 사격대회 유치도 모두 마무리 되었고 중요물건도 뀌년으로 정상 출하되었습니다. 대세자동차의 험비 라인 셋업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빌 베인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내일모레 출근해서 보고 받아도 될 것 같았다.
나도 내일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다.
동남아의 찌는 듯한 더위와 중동의 레이저 같은 햇빛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후자가 백배는 더 괴롭다.
“그럼 내일모레 본사로 출근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실에서 오늘 시간을 좀 주실 수 있냐고 합니다.”
기분 좋게 퇴근하려고 했더니 청와대 비서실?
“감재익 수석인가요?”
“예. 차 한잔할 시간이면 족하다고 하는데, 피곤하시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커피 한잔하고 싶었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대세항공 VIP 라운지로 향했다.
대세항공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서, 이래저래 출장이 아주 편해졌다.
***
“감 수석님, 또 뵙는군요.”
“우 회장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나야 입국하는 와중인걸요. 시간을 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예전 비서실에선 우 회장님이 큰 수주를 따내면 입국 환영식도 열었다던데, 제가 주변머리가 없어서 송구합니다.”
그러고 보니 염 수석은 그런 민망한 행사도 아주 잘했지. 행사를 주최한 자신이 감동해서 펑펑 울기도 했었다.
“송구하긴요, 당연한 변화죠.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받아온 1, 2억불 수주랑 지금 확고한 중진국 시대에 십몇억불 수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니까요. 저도 이제 환영식은 민망할 것 같군요.”
나야 우리 직원들의 환호성을 듣고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
“군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출장으로 이라크 석유화학단지 개발도 최종 수주를 따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자 수주는 아니고 지역별로 나눠서 컨소시엄으로 진행합니다. 현산도 남부 바스라 지역에서는 일부 일감을 수주할 것 같군요.”
물론 현산건설이 맡은 바스라 지역은 국경과 가까워서, 이란-이라크전이 격렬해지면 철수해야겠지만 그전까지는 꿀을 빨 수 있을 거다.
철수를 고려하고 공사하라 했으니, 원래 역사처럼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다.
“현산건설도 챙겨주시니 더더욱 감사합니다. 응당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해외에서 정부와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한국기업끼리 도와야죠.”
솔직히 대세는 움직이는 대사관이다.
다른 기업들조차 무슨 일이 생기면 공관보다 대세건설로 먼저 달려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니까 말이다.
“이것 참… 기업보국을 행하시는 우 회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참 송구합니다만, 꼭 드려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그리 어려워하십니까. 말씀하십시오.”
“정부는 올해 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대한 법률’을 공표하고자 합니다. 대세그룹을 겨냥한 것으로 오해하실까 싶어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야, 공정거래법이 이때 제정되었던가?
역시 감재익 수석, 보통 사람이 아니야.
염 수석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이 양반이 KDI(한국개발원)에서 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작성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했다.
나름 대한민국의 싱크탱크인 KDI 내에서도 천재로 통한다고 했다.
금융실명제에 이어 공정거래법까지 들고나오다니, 박 대통령 시절에는 중용되지 않았던 이유를 대충 알 것도 같았다.
“공정거래법이 언제 만들어지나 싶었습니다. 오해할 일 없으니 과감히 실행하십시오.”
“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물론이죠. 대세는 내수시장을 독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발 내수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대세를 피해 다른 사업을 하려고 노력하더군요. 그런 기업들의 행태도 규제해야 합니다. 국민들 세금과 노동력으로 기업활동을 하는 건데 당연히 치열하게 경쟁해야지요.”
내 말에 감 수석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내 말에 일말의 주저함이나 거짓이 섞이지 않음을 느꼈던 모양이다.
내 목표는 내수시장에 있지 않다.
아니 내수시장에 얽매여서는 내 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은 개방 경제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으론 외국 자본투자를 적극 유치해서 환율과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목적인데, 섣불리 내수시장을 개방했다간 국내산업이 잡아먹히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전에 국내기업의 내성을 키울 필요가 있어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동의합니다. 4년 정도 유예기간을 가지고 경쟁 구도를 만들고 수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법률 제정은 아주 시의적절합니다.”
삼저호황 대비로 딱 적절했다.
“그럼 어렵게 드리는 말씀인데… 제2종합제철소의 건설 주관사를 대세중공업 대신 한국중공업이 맡는 것은 어떻습니까? 국책과제를 공기업이 맡는다는 명분도 있고, 그 밑에서 대세, 현산, 수성 등등이 유기적으로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한국중공업의 실력으론 제철소를 말아먹을 겁니다. 차라리 포철에 주관사를 맡기십시오. 실력이든 경험이든 뭐로 봐도 포철이 낫습니다.”
안 그래도 중부공단 전체를 대세가 주도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이전 정권에서야 대세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윽박질러서 했지만, 이렇게 정부가 나서주면 나야말로 대환영이지.
“한국중공업이 못하는 이유가 뭔지요?”
“현재 한국중공업이 주도해서는 제선, 열연, 냉연 공장 중 뭐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할 겁니다. 포항제철 증설이든 인천제철 증설이든 번번이 서류검토 수준에서 나가떨어졌으니까요.”
“그… 그렇습니까?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술은 충분하다고 들었는데요…”
아니, 일단 중공업 계열은 공기업화 되는 순간 경쟁력이 제로가 된다.
용접 불꽃, 쇠 타는 냄새, 용광로를 멀리하는 책상 앞 공무원이 조직을 장악하면 중공업은 그날로 끝장이다. 중공업의 경쟁력은 현장에서 나온다.
기능공을 폄하하는 문화마저 퍼지면 그 기업은 회생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볼 때 이때의 한국중공업은 이미 식어버린 용광로다. 완전히 리빌딩해야 한다.
“업계의 중론을 들어야죠. 그런 회사는 뼈를 깎는 자체 노력이 우선입니다. 만약 한국중공업이 주관사가 되면 해외플랜트 건설사의 말에 휘둘려 설비만 비싸게 사 오게 될 거고 생산성은 바닥을 칠 겁니다. 터키나 브라질 제철소 꼴이 되겠죠.”
“터키, 브라질…”
“철강업계에서는 유명한 일이니 조사해보십시오. 기술은 쥐뿔도 모르는 공기업이 돈만 쥐고 제철소를 지으면 100만톤짜리를 지어도 30만톤도 안 나옵니다.”
“휴우, 결국 한국중공업은 처리 방법을 찾으라는 말씀이군요.”
어째 이 양반, 질문은 뭣 같아도 말귀는 제대로 알아듣네. 수첩에 줄을 쫙쫙 그어댔다.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미안하군요.”
“아닙니다. 오히려 오해할만한 질문을 평온하게 받아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감사까지, 별 말씀을…”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 국무회의 때 이슈로 나왔던 일일테고, 그걸 굳이 내 의견을 듣자고 공항까지 온 것 아닌가.
감 수석으로선 나름 호의를 보인 거다.
심지어 차기 국무회의 때 내 논리를 들고 가서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으니 오히려 고마운 건 나다.
“그럼 내친김에 우 회장님의 고견을 여쭤봐도 될는지요.”
“고견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말씀해보시죠.”
“연간 8%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지요?”
“물론, 대세를 미는 전략이면 안 되겠지요?”
“송구합니다. 대세그룹 같은 기업이 대한민국에 3개만 더 있어도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각하께서도 곤혹스러워 하셨습니다.”
감 수석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이래서 처음에 나더러 오해하지 말라고 했군.
YS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민정부로선 선진국으로 가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산업이 대세그룹에 너무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외발자전거는 아무리 빨라도 불안정해 보이지. 그렇다고 성공 가도를 달려온 내 아이디어를 안 들어볼 수는 없고 말이다.
그래, 내가 YS에게 머리를 좀 빌려주기로 마음먹긴 했잖아.
“뭐 뻔하지 않습니까. 전자산업이죠. 그게 선진국을 열어젖힐 열쇠지 않습니까. 대세그룹과는 좀 거리가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정부도 컬러 TV, VTR, 전자레인지 등을 전략제품으로 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가전제품 중심의 전자산업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가전제품을 탈피하라니… 그게 무슨…”
“반도체, 전자교환기, 컴퓨터를 3대 전략품목으로 정하고 그걸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가전제품 정도는 만들고도 남을 겁니다.”
솔직히 가전제품의 회로기판은 컴퓨터 기판에 비하면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 역시 천재… 고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뭐 감사라뇨.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여태 우리 대세가 주도해온 중부공단 건설 주도권을 정부가 가져가신다는 말씀 아닙니까. 여태까지의 각종 건설비와 토지 매입비를 청구할 테니, 내년도 예산에 반영해 주십시오.”
“주… 중부공단 건설비를…”
“여태 말씀드리기 뭐 했는데 중부공단을 대세가 독점해서야 되겠습니까? 3억평에 평당 개발비를 따져서 청구할 테니 검토해 주십시오. 한이석유는 대세가 인수했으니 제외하겠습니다.”
한이석유와 인천제철 특수강 사업만 제외하고 20억불 정도를 회수하면 상하이에 바오산강철 제철소를 짓는 것도 문제없을 거다.
왜 내가 돈 문제로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일이 잘 풀려갔다.
그래, 독점을 해서는 안되는 거야.
“베인 실장, 실무를 좀 맡아주겠습니까?”
나는 피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중부공단을 정부에 돌려드리는 날이 오다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빌 베인이 제일 좋아했다.
그는 기업보국보다 대세의 흑자 경영을 백배는 더 중요시하는 양반이거든.
***
2주 뒤,
「대세, 또 한 번 신화를 쓰다」
「대세, 버려진 유전에서 초대형 가스전 발견」
「세종시 인구 60만 돌파」
「정부, 주택 200만호 건설 공약 전국확대」
「올해 GDP 성장률 3.5% 예상」
이제 신문을 읽어도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예전 같으면 아카스 가스전 개발로 도배를 했겠지만, 이젠 수많은 이슈 중 하나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대중의 시선이 계속 집중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이제 언론도 엠바고를 잘 지켜주니 프로젝트 시작 단계에서 잡음도 생기지 않았다.
“아카스는 본격개발이 시작된거죠?”
“예, 물론입니다. 대세석유화학, 대세건설, 대세중공업이 각각 TF를 파견했고 필요한 중장비도 속속 현지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TF 인원이 각 계열사별로 수백 명에 이르니, 역대급 TF라고 하겠다.
이라크 북부 석유화학단지를 엑손이 주관하고 DBB 컨소시엄이 시공하는 기존의 방식이라면, 아카스 개발은 대세가 주도하고 BP사와 ELF사가 돕는 새로운 형태이지 않나.
대세가 초대형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하는 것이다.
“BP사와 ELF사 인원도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순조롭게 협업하고 있습니다. 논의 중이던 GTL 공법에 대해서도 크로스라이선스를 맺는 것에 최종합의를 했습니다.”
“BP사가 큰 결심을 했군요.”
“BP사의 원천기술을 대세가 대규모 플랜트로 실증했으니 당연한 거래라고 생각됩니다.”
그건 우리 입장이고, BP사 입장에선 명백히 호의를 보인 거다.
BP사가 이번 건을 계기로 대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거다.
“좋네요. 군납이야 사우디가 워낙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문제 없고, 따뜻한 연말이 될지만 살펴보면 되겠군요. 그렇지요?”
사우디가 이라크로 들어가는 첨단 무기에 대해선 중개자를 자처하고 있어 일이 아주 순조로왔다.
뀌년에 있던 군함에 미사일을 그득그득 실어서 옮겼고, 전투기도 직접 파일럿을 보내 하늘길로 가져갔다.
심지어 전차는 RO사가 이라크와 계약한 영국제 전차 물량과는 별도로 M60 전차도 200대나 주문했다. 이참에 사우디도 신형전차로 바꾸고, 기존 전차를 이라크로 줄 모양이다.
신바람 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대세중공업이 영미(英美) 전차를 모두 면허 생산하는 업체가 되었으니 더욱 좋았다.
“예,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대세그룹의 수출은 총 150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작년대비 42%나 증가한 수치로, 정말 경이로운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대세의 이익률이 대략 25% 수준이니 대충 계산해도 37억불 가량 순익이 나겠군.
대세 덕분에 우리나라 수출액도 작년부터 400억불을 돌파했고, 다른 기업들도 열심히 했으니 국가 전체 무역수지 흑자도 50억불을 넘길 것 같다.
원래 역사에서는 삼저호황부터 무역수지 흑자가 나지 않았던가?
벌써 50억불을 돌파하다니, 내가 대한민국 경제사를 확실히 바꾸긴 바꿨나 보다.
“올해 연말에도 특별보너스를 두둑이 줄 수 있겠군요.”
“우리 직원들은 산타클로스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하하하하!”
빌 베인도 이제 간혹 농담을 한다.
그만큼 대세도 안정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회장님, 업무 보고 마지막입니다. 중공에서 사격대표팀이 입국한다고 합니다.”
“벌써요? 아직 대회는 한달 넘게 남았는데.”
“현지 사전훈련캠프를 운영하겠다고 공식 요청을 해왔다고 합니다. 캠프장소는 포항입니다.”
“이거 참, 그쪽도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요.”
“예, 상황이 급히 돌아가긴 하는 것 같습니다. 한미 항공회담에서 美항공기의 서울경유 중공행을 허용한 걸 보면 말입니다.”
중국도 미국에 이란-이라크전 군납을 포기하는 대가를 빨리 내놓으라고 하는 모양이네.
“우리도 손님맞이를 해야겠군요.”
인천제철이 아니라 포항제철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전략이니 다행이었다.
“여기 선수단 명단입니다.”
“어디 한번 봅시다. 누가 오나… 음?”
나는 빌 베인이 내민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때부터 등장했던 거야?
< 516 : 내 짐을 덜어주는 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