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2화(52/589)
< 052 : 기술 독립군 >
원래 역사대로라면 미국에 유학 갔어야 할 교수님이 내 앞에 있었다.
“교수… 아니, 주영길 씨! 당신 왜 자꾸 날 쫓아다니는 거야? 다들 수리 기지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말이야.”
“마크보다 사장님한테 배우는 게 더 좋아서요… 그리고 이거 활주로잖아요. 제 꿈이 비행기 만드는 거거든요.”
“비행기?”
그러고 보니 주 교수의 꿈이 비행기 만드는 것이었지? 그래서 NASA에 들어가서도 제트 엔진에 들어가는 소재를 연구했다고 그랬다.
학교 축제에서도 별 인기 없는 글라이더 대회를 꾸준히 후원했고 말이지.
“제발 귀국만 시키지 말아 주세요. 수리 기지에서 열심히 일할게요. 저 여기서 귀국하면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요.”
“원래 여기 올 계획이 아니었던 거 아냐? 대학 4년 내내 후원해준 양반이 있었잖아. 미국 유학도 권했을 텐데? 아니야?”
“어… 어떻게 아십니까?”
“어찌어찌 들었어.”
어떻게 알긴? 당신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알지.
주 교수는 대학 1학년 때 과외 하러 갔다가 재벌 회장님 눈에 들어서 미국 유학까지 지원받았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사람이 성공하는 방법 중엔 운 좋은 게 최선이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하긴, 대세랑도 영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한국유화가 대세 화학에 완전히 밀려서 울산 단지에 못 들어가는 바람에…”
한국유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대세화학 때문에 울산 단지에 못 들어왔다고?
아, 한국유화공업! 원래 역사에서 갈프사와 연을 맺은 기업이었지.
이번 역사에선 울산에 화학 공장을 지으려다 우리 대세 화학을 보고 경쟁이 되지 않겠다 싶어 사세 확장을 포기한 모양이네.
나비효과를 묘한 곳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유화에서 후원을 받았어?”
“예,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유화 사장님이 제게 미국 유학을 약속하셨지만, 막상 졸업 때가 되니 상황이 안 되시나 봐요. 무… 물론, 그것 때문에 사장님을 귀찮게 한 건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것 때문이었군.
“미국 유학 못 가서 억울한 만큼 내게 지식을 뜯어내자… 그런 의도였어?”
“아닙니다. 아니, 솔직히 처음엔 그런 마음도 있었는데요… 옆에서 보다 보니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생각하는 방식까지도요.”
주 교수가 나 때문에 후원자를 잃었네.
아니지, 더 나은 후원자를 얻은 건가?
주 교수가 만들어낼 슈퍼 합금을 NASA가 아니라 내가 써주면 되는 거지.
초고효율 가스 터빈 블레이드 소재로 말이다.
“좋아, 내가 시간을 좀 내주지.”
“예에, 시간을요?”
주 교수가 내게 존댓말을 쓰니 영 어색했다.
빨리 가르칠 것 가르쳐서 미국으로 보내자.
원래 역사에서 너무 벗어나면 이 양반 연구가 엇나갈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9시에 B구역 창고로 와. 비행기와 관련된 일이니까 말이야.”
“비행기요?”
“다른 사람에겐 절대 비밀이야. 알겠지?”
“넵,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영길 교수를 내가 가르치게 생겼다.
***
그날 밤,
“사장님. 접니다.”
“들어와.”
첫 번째 수업이었다.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간 천재를 내가 가르치는 게 웃기지만, 기초 정도는 닦아줄 수 있을 거다.
나는 주 교수를 훅하니 안으로 잡아채고 문을 닫았다. 창문도 덮개를 내렸으니 불빛이 새어 나갈 일도 없었다.
“헉!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헬기 엔진이지.”
내가 방수포를 벗기자 주 교수가 깜짝 놀랐다.
“이게 말로만 듣던 터보차저(Turbo Charger) 엔진이라는 겁니까?”
“아니, 터보 샤프트야. 배기가스로 추력을 내는 엔진이 아니고, 메인 회전날개를 돌리는 엔진이니까 그렇게 불러야 정확해.”
뭐든 알려줄 때는 명칭부터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이름부터 정확하게 아는 것이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터보 샤프트, 메인 회전날개를 돌리는 엔진. 알겠습니다. 사장님.”
주 교수는 내 말을 고스란히 수첩에 옮겼다.
악필은 여전하네.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였다.
남이 보면 완전히 암호 수준이었다.
여하튼, 시작이 좋았다.
주 교수는 대학에서 지식은 배웠지만, 터보 차저와 터보 샤프트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 보면 경험 측면에서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이렇게 지식 체계가 말랑말랑할 때 기본 개념을 제대로 새겨 넣으면 아주 좋을 거다.
“영길 씨, 내 말 잘 들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터보차저니, 터보 샤프트니 하는 엔진 자체가 아니야.”
“????”
“우린 이 엔진을 구성하는 기본 기술에 집중해야 해. 터보 샤프트 엔진도 크게 보면 가스 터빈의 일종이거든.”
“가스 터빈. 공기 흡입, 압축, 연료 연소, 배기 4행정 동작 엔진.”
모범생 맞네. 가스 터빈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동작 시퀀스를 자동으로 읊었다.
“재료과가 그걸 어찌 알아?”
“비행기 관련 수업은 거의 다 청강했습니다.”
천재가 열심히 하기까지 했다는 건가?
하긴 60년대에 대학생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기대가 엄청나긴 했을 거다.
“좋아. 영길 씨가 이 엔진을 보며 비행기를 떠올린다면, 나는 이걸 보고 뭘 떠올릴까?”
“저더러 사장님 생각을 맞춰보라고요?”
“자꾸 개기면 쫓아낸다.”
“제트 엔진!”
“그건 네 취미지. 난 제트기엔 관심 없어.”
“로켓!”
“수업 그만할까?”
“아, 나는 걸 싫어하시는구나. 그러면 군함!”
“… 휴… 좀 산업다운 걸 얘기해 봐.”
주 교수가 밀덕이었나?
군함엔 디젤 엔진 말고도 가스 터빈 엔진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네.
“설마… 가스 터빈으로 차세대 발전소를 만드시려는 겁니까?”
차세대라 칭하다니 재미있었다.
21세기엔 가스 터빈을 이용해서 전기도 만들고 난방도 하는 복합 열병합발전소가 주류인데 말이지. 하긴 이때는 석탄을 태워서 증기 터빈을 돌리는 화력발전소가 일반적이었다.
“맞아. 난 발전소를 지을 거야. 가스 터빈으로 가동하는 열병합발전소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나는 개념도를 수첩에 그려주었다.
가스 터빈으로 전기 한번 만들고, 남은 열기로 물을 끓여 증기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또 만들고, 그래도 남은 열은 지역난방으로 쓰는 개념이었다.
“우왓, 정말 알뜰하게도 기름을 때네요.”
당연하지.
난 효율을 중시하는 플랜트 종사자다.
이왕 지을 거면 투박한 화력발전소 말고 효율도 좋고 공해도 덜한 열병합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물론 21세기엔 울산 앞바다에서 쬐금 나긴 하지만, 양으로 보면 유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러고 보니 그걸 캐도 짭잘… 아니,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사장님, 발전소 언제 만드실 겁니까? 저도 끼워주세요.”
“언제라니? 당장 만드는 게 가능할 것 같아?”
“사장님은 천재잖아요.”
“나는 천재도 아니고 마술사는 더더욱 아니야. 가스 터빈을 만들 핵심 기술도 없고, 발전소의 동작 원리도 대충만 아는 수준이라고.”
발전소를 지어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맨땅에서 발전소를 만들 수는 없다.
처음엔 미국이나 독일과 합작해서 시작해야지.
자체 연구와 하청 건설을 병행하면서 가스 터빈 엔진을 국산화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생에 못다 한 일을 다시 하는 꼴이었다.
이번 생엔 기필코 하고 말 거다.
이 필드를 깡그리 다 먹어버릴 거다.
“사장님이 원하시는 핵심 기술은 뭔가요?”
좋은 질문이다.
주 교수, 이번 생에 당신은 내 거야.
“내가 원하는 기술은 딱 두 가지야. 그거만 하면 가스 터빈 엔진도 국산화할 수 있어.”
가스 터빈 엔진은 기본적으로 전투기의 제트 엔진이나 다름없기에, 선진국들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즉, 핵심 기술을 돈 주고 사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체 개발이 답이었다.
“집중해야 할 것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요?”
“두 가지만 알면 나머지는 공정 품질이나 효율 향상의 문제야. 똥차든 고급 외제 차든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자동차라고 부르잖아.”
“그렇군요.”
주 교수가 처음으로 내 말에 토를 안 달았다.
“시간 없으니까, 여기 좀 봐봐.”
정말 시간이 없었다.
주 교수 주변의 나비효과가 더 심해지기 전에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
그래야 원래 역사대로 초내열합금을 개발하게 될 거다. 내겐 그게 꼭 필요하다.
“유독 여기 터빈 블레이드가 다른 것과 달라 보이지 않아?”
나는 헬기 엔진 내부의 터빈 날개를 톡톡 두드렸다. 터빈 날개는 칼날처럼 생겼기에 터빈 블레이드라고 부른다.
“어째 조금 노르끼리한 느낌이 나는데요?”
어라, 정말 미묘한 차이인데 색깔이 구별돼?
“두드려봐 봐.”
탱. 탱.
“이야, 신기한데요? 맑은 실로폰 소리가 나요.”
“초내열합금이라 그래.”
“초내열합금요?”
“1100도에서는 충분히 견디고 1500도에서도 어느 정도 견디는 합금이야.”
“1500도라고요?”
“연소실의 배기가스가 1500도까지 올라가. 온종일 견디라곤 못 하지만 잠깐은 견뎌내야 해.”
“그… 그렇군요.”
“이 초내열합금의 조성과 열처리 방법을 알아내는 게 영길씨 과제야.”
괜히 21세기 전투기 엔진에 들어가는 터빈 블레이드가 한 개에 수백, 수천만 원씩 하는 게 아니다.
철 따윈 손쉽게 녹여버리는 온도에서 지속해서 회전하며 공기를 압축해야 하는 소재다.
최첨단 금속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 제 과제라고요? 사장님은요?”
“나도 놀지는 않을 거야. 두 번째 과제는 냉각 방식이니까.”
“냉각… 방식… 아!!! 아무리 초내열합금을 만들어도 방치하면 결국은 녹아버리는 거군요.”
“맞아. 선진 업체가 어떻게 엔진 부품을 냉각했을까? 하는 질문에 해답을 얻어야 해. 그게 가스 터빈의 두 번째 핵심 기술이야.”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재미? 그런 소리 하지 마. 전 세계에 그 두 가지 문제를 풀려는 엔지니어가 수천수만 명이야. 그걸 만들면 제트기도 만들고 로켓도 만들 수 있어. 상업적 가치가 막대한 것은 물론, 국가 안보가 한 단계 점프하는 일이야. 그걸 재미로 하고 있겠어?”
“…죄송합니다.”
내 말에 주영길 교수도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S급 최첨단 연구는 돈과 연구원, 시간과 행운까지 갈아 넣어야 성공할까 말까다.
“딱 일주일간 특훈이야.”
“네? 일주일요?”
“그래, 딱 일주일. 다음 주 귀국해. 식구들이랑 멋진 식사 하고, 미국으로 가.”
바로 미국으로 보내는 건 비인간적이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뿌듯함을 느끼게 해줘야지. 그래야 객지 생활을 견딘다.
“예에? 미국으로 가라고요?”
“왜, 유학 가기 싫어?”
“아뇨, 아뇨, 싫긴요. 그런데, 유학 경비가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잖아요.”
“나도 돈 많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니, 형님! 이제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우라 부르십시오.”
도원결의도 아니고 의형제라도 맺겠다는 듯, 나와 손목을 겹쳤다.
“… 하아… 정말…”
주 교수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렸던 게 이해가 됐다.
내가 강의를 들을 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빠진 게 그 정도였던 건가?
“평생 같은 과제를 할 건데 의형제쯤은 맺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호들갑은 딱 질색이야. 게다가 굳이 따진다면 우린 의형제가 아니라 독립군이야.”
“독… 독립군이요?”
“기술 독립군. 우리 앞세대가 독립투사로 피를 흘렸다면 우리 발전소를 짓고 배를 띄워야 해.”
“……”
“우릴 짓눌렀던 놈들보다 잘살아야 해! 그게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야. 그렇지 않나?”
“… 기술 독립군.”
주영길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장난기가 걷혔다.
참나, 이 양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네.
하긴 기술 독립군이란 단어는 당신이 먼저 썼으니까.
<유학입니까, 이민입니까? 이민자는 남으시고, 유학을 온 사람들은 공부가 끝났으면 조국으로 돌아갑시다. 기술 독립군이 되어 조국의 기술 종속, 자본 종속을 깨트립시다.>
이런 말로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된 숱한 과학자를 대동하고 귀국했다고 들었다.
솔직히 이 양반이 그런 멋진 말을 했으리라곤 상상이 잘 안 되긴 하는데…
“오늘 특훈은 이걸로 끝이야.”
“예.”
주영길 교수는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더니 숙소로 돌아갔다.
***
「추신 : 미국 BRS사 바이어, LST로 뀌년 도착 예정. 선수용 제품 합작 원함. 상담 바람.」
“잉? BRS사 바이어?”
삼복이가 급히 삽입한 텔렉스 문구였다.
LST 입항이 오늘이라 텔렉스를 정리하다가 5일 전에 온 걸 뒤늦게 발견했다.
물품 보고서 텔렉스 끝단에 추신으로 붙어 있었기에 놓쳤던 모양이다.
“BRS사라니, 여긴 또 어디냐? 나이크나 리박이나 케빈클로인이나 좋은 데가 얼마나 많아.”
60년대에는 아직 내가 아는 21세기 유명 브랜드가 탄생하기 전인가?
어째 내 폴리텍 제품을 보면 득달같이 달려올 줄 알았는데, 뭔 듣도 보도 못한 BRS사라니.
이름도 마음에 안 든다.
건설사로 BR사가 있는데 헷갈리게시리.
땡땡땡땡!
“배 들어온다!”
“와아아아아!”
누군가 종을 마구 쳤다.
진해에서 출발한 배가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다들 집에서 부친 편지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마중을 나가야겠네.’
BRS든 뭐든 반갑게 맞아줘야지.
나이크나 리박은 아니더라도, 서구 시장을 뚫으려면 미국 태생의 마케팅 회사가 필요하니까.
게다가 뀌년까지 날 찾아올 정도면 추진력은 일단 합격이다.
< 052 : 기술 독립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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