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2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23화(523/589)
523 : 호의와 협상 사이
1981년 1월 초, 대세본사 회장 집무실.
<1981년 신유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정부의 정책 목표를 말씀드리기 전에 국민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작년 한해, 전세계가 전쟁과 고유가로 불황에 시달리던 와중에 대한민국 만큼은 4%를 넘는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증명한 쾌거라고 하겠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올해를 미래의 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는 원년으로…>
대통령은 당당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 연두교서를 발표했고, 연설 마지막에는 여당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TV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마지못해 일어나 박수를 쳤다.
정치권에서야 평가가 어떨지 모르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수십 %씩 오르던 물가를 3%대로 끌어내리고, 부동산실명제/금융실명제를 통해 검은돈을 박살 내니 국민들의 지지도는 대단했다.
물론 경제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린 것은 대세의 힘이 컸지만, 그 또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이라고 표현한 대통령의 연설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두교서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감 수석님, 작성하신다고 고생 좀 하셨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대세 쪽에서 워낙 정보산업에 대해 개념을 잘 잡아주셔서, 살만 좀 붙였습니다. 솔직히 대통령께서 정보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연두교서에 삽입했을 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긴 감재익 수석도 이 시대 사람이라, 정보 산업에 대해 이해도가 깊진 않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즉흥적인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정부 시책을 꼼꼼히 논의하는 것도 좋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전격적으로 실행하는 대통령님의 방식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실명제는 물론이고, 작년 말 고속철도 건설도 전격적으로 발표하니 부동산 투기가 원천적으로 근절되지 않았습니까.”
하긴 고속철도 노선 발표엔 나조차 놀랐다.
고속철도 프로젝트도 연두교서에 실을 줄 알았더니 뜬금없이 연말에 발표해버렸다.
그 덕분에 역 주변 땅 주인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지만, 외지인만 돈을 벌었다는 둥 고위 공무원이 발표 직전에 싹쓸이를 했다는 둥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리가 있군요. 여하튼 고속철도 노선은 대체 어떻게 정한 겁니까? 그렇게 빠르게 땅을 수용하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정부 매입가에 동의하지 않거나, 정보가 새어나가면 모든 계약을 무효로 하고 노선도 수정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번에 서로 땅을 내놓겠다고 하더군요.”
문민정부는 문민정부대로 한끗발하네.
그 자리서 개발에 동의하지 않으면 협상할 기회조차 없다고 하니, 대번에 땅 수용을 했겠군.
서울시와 세종시를 연결하는 철도가 자기 땅을 지나간다면 나라도 땅을 내줬을 것 같다.
“이번 문민정부는 협상은 참으로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란-이라크전에도 분명 우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외교적으로도 거의 압박이 없으니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 또한 진심이었다.
이란이든 이라크든 이제 우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은 뻔히 알 테고, 그에 대한 항의조로 뭔가 금전을 요구하든 군수품을 요구하면 일정 부분 들어줄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또한 회장님이 알려준 논리를 약간 응용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영국과 미국의 무기를 전달해주는 운송책에 불과하고, 양다리 걸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약소국이 우호국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득했지요. 솔직히 이란이나 이라크는 서로 우리가 자기편인 줄 알 겁니다.”
“능수능란한 대처로군요.”
그 정도 논리라면 이란이든 이라크든 항의할 여력이 없겠군.
섣불리 이슈를 걸었다가 우리의 군수품 지원에 차질이 벌어지면 전황이 엄청 불리해질 게 뻔했다.
결국 이란이든 이라크든 의심이 된다고 해도 외교관들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하튼 문민정부 외교관들의 실력은 상당한 게 분명했다.
이란-이라크전은 물론이고, 프랑스로부터 국보급 유물을 대거 들여온 것도 그랬다.
솔직히 왕실의궤는 몰라도 직지심경을 영구임대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다.
“정부도 대세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는 만큼, 대세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TDX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전국적으로 전화회선을 깔아야 한다는데, 사업 계획서부터 제출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업 계획서야 제출하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기존에 대세가스에서 건설한 지하 공동구에 전화선을 깔면 됩니다.”
“예에? 가스관 옆에 전화선을 깐다고요?”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하 공동구는 몇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가스관, 전력선, 전화선, 상수도가 다 지나갈 수 있고 유지보수가 쉽도록 구내 환기설비, 조명설비, 배수시설, 경보장치까지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게 전국적으로 깔려 있는 겁니까?”
“어쩌다 보니 서울과 세종시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통신케이블… 아니, 전화선을 연결하는 거야 돈이 문제지 기술적으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나는 21세기 광케이블 건설도 감안해서 충분히 크고 넓게 지하 공동구를 만들어두었다.
“돈 문제라… 그럼 대략 사업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대세통신 직원들의 계산에 따르면 매년 3억불씩 5년에 걸쳐 투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인구 100명당 전화보급율이 선진국 수준인 22회선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5년간 매년 3억불이면 15억불, 한화로 9000억… 헉, 거의 1조 가까이 드는 사업이라는 말씀입니까?”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당연히 그 정도는 들지.
그리고, 5차 5개년 계획의 총 투자비가 74조쯤 된다고 발표했잖아.
거기서 1, 2조 정도는 정보 산업에 써야지.
“당연합니다. 국가 기간망 아닙니까. 투자비가 과다하다고 여기신다면 다른 기업을 주관사로 하셔도 무방합니다.”
다른 그룹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할 거다.
분명 정부는 기업이 차관을 끌어다 쓰던 뭔짓을 하든 일단 자기 돈으로 짓고, 나중에 통신비로 차근차근 벌충하라고 할 게 뻔하지 않나.
게다가 건설비를 어느 정도 벌충하고 나면 대세가스처럼 공사(公社)로 전환해야 하니 고생은 다하고, 땅 짚고 헤엄칠 때는 정부에게 넘겨주는 꼴이다.
나야 이런 일련의 일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기회를 주는 지 알기에 흔쾌히 수락한 거다.
“아니, 아니,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솔직한 말로 통신사업에 나서는 기업도 없는 판국입니다. 정부로서는 대세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너무 솔직하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속을 다 보여주시니 대세도 최선을 다해 공사비를 절감해서 국가 부담을 최소화하겠습니다.”
“그건 믿고 있는 바입니다. 그보다… 나중에 공사로 전환할 때도 투자하신 돈을 전부 회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세가 지분의 20% 정도를 출자하는 형태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세가 통신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불안하다고 판단하는 거네.
적자가 발생하면 그중 20%를 대세가 떠안는 조건인 거다.
이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도인데?
그렇게 정보 산업에 대해 개념을 잡아줬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할법한데 말이다.
하긴 전화기 사업이 대박을 치고 난 뒤에야, 너나 할 것 없이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었지.
지금은 다들 확신을 하지 못하는 거다.
한국에서 경제분야의 천재라는 감재익 수석조차 이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 계약서를 꾸미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회장님.”
“중요한 국책과제인데 당연히 협조해야지요. 게다가, 고속철도 건도 맡겨주셨으니…”
나는 짐짓 고속철도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대가로 포장했다. 나중에 통신사업이 대박을 쳐도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 이왕 이렇게까지 말이 나와서 그런데, 부탁한 가지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부탁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저희도 좀 당황스럽긴 한데, 레이건 신임 미국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요청해왔습니다. 그것도 2월 첫 주에 말입니다.”
“국빈이라면… 우리 대통령님을요?”
“예, 그렇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에 호의적인 데다,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 대통령을 첫번째 정상회담의 상대로 맞이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긴 레이건이야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내가 정치자금도 잔뜩 지원했고, 심지어 뀌년 5인방이 합심해서 대선 직전에 이란에 억류된 대사관 직원이 풀려나가게끔 작전도 잘 수행했다.
물론 군수품을 전달하는 대가였기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공화당이 그 일을 주도한 것처럼 꾸며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레이건 대통령도 참 즉흥적이긴 하군요.”
“바로 그겁니다. 정상회담은 최소 3개월은 준비해야 이득을 볼까 말까인데, 이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시간밖에 없다면 한미정상회담임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인 얘기만 오가는 게 전부일 겁니다. 너무도 아까운 기회지요.”
정확한 분석이었다.
레이건이야 YS를 호의로 불렀을지 몰라도 美정부 관료들이야 만만한 호구가 왔다며 잔뜩 벗겨 먹을 생각을 할 거다.
공동성명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않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양국 간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그에 따라 한미 안보협력위원회를 정례화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확대하겠다고 하겠지.
솔직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거다.
수십 년간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 그따위였으니까. 표면적으로 안보문제를 내세워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물밑에선 매년 무기를 얼마나 사갈거냐? 하며 딜하는 게 수순이었다.
정통성 없는 신군부 정권이야 구린 데가 있으니 불려가서 호구 취급당하는 게 당연하지만, 문민정부가 그래서야 되나.
반드시 반대급부로 이득을 취해야 한다.
감재익 수석도 그런 의미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리라.
“나더러 미리 한미정상 의제 조율을 하라는 얘깁니까? 그거야말로 정부의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미국 쪽 채널이 많아도 정치적인 일에 직접 나서서는 안된다.
자칫 한미 정상이 합의한 일이 어긋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대세가 뒤집어쓸 수도 있다.
“네, 압니다. 특히 대북 문제, 동북아 외교, 주한미군 철수문제 같은 안건에는 정부도 충분한 대응방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와 문화 관련 압박은 어떤 대응방안이 효과적일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재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미 미국 측 의제는 날아온 것 같군요.”
“휴우… 그렇습니다. 솔직히 레이건 대통령이야 한국을 동맹국 중에 최우선으로 배려한다고 초대를 한 건데, 미처 우리가 대미 협상안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게 부끄럽습니다. 여기 미국 측 의제 제안서입니다.”
문민정부도 출범이후 정신없이 바빴으니 한미정상회담 의제를 미리 마련해두지 못한 모양이다.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청와대 비서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이거… 압박의 강도가 심하군요.”
미국 측 의제 제안서를 보니 가관이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자동차 시장을 열었으니, 한국은 미국 농산물에 대해 시장 개방을 하라는 요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미국이 핵연료와 발전기술의 안정적인 공급자인 만큼, 한국은 미국산 석탄에 대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란다.
심지어 미국산 영화, 방송, 음악, 출판 등 문화시장도 전면 개방을 요구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했을라나? 이건 거의 한미 FTA급 요구 아니야?
쟁점이 될만한 항목만 위로 올려놔서 그렇지 실무급 회의에 들어가면, 공산품/에너지/금융/투자 등 돈 될만한 것은 죄다 시장을 개방하라고 할 게 뻔했다.
감재익 수석이 도움을 요청한 이유를 알겠다.
이런 미국 측 요청에 어떤 카운트 펀치를 날려야 장군멍군이 되겠냐? 하는 질문을 하는 거다.
“미국 측 주장은 미국이 한국을 든든하게 받쳐줬기에 이런 불경기에 한국이 4% 경제성장을 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제 시장을 개방할 때도 되었다고 말이지요.”
“이란-이라크전 특수가 미국이라는 뒷배 덕분이다… 이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일견 사실이긴 하지만, 그 모든 일은 내가 주도해서 이뤄낸 일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레이건은 대선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않았나.
이거 낸시를 만나서 확실하게 따져야겠네.
우리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이런 압박 카드를 들이민다고? 이건 경우가 아니다.
올해 겨울에는 페기가 비행기 타는 걸 꺼려서 뀌년에서 휴가를 보내지 않았더니, 뀌년 5인방과의 소통이 다소 부족했다.
“지금 우리 내수경제의 규모로는 개방하는 즉시 대혼란에 빠질 겁니다. 무기 수입을 조금 늘리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최선입니다.”
“백프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미국 측 생각은 다를 겁니다. 무기 수입을 늘리는 건 당연하고, 경제적인 이득도 상당부분 미국으로 환원하길 원할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일단 저도 바쁘게 움직여봐야겠군요.”
“이런, 제가 회장님 시간을 너무 뺏었군요. 그럼 연락주십시오. 언제든지 달려오겠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인사드리면 충분합니다.”
감 수석은 나와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청와대로 복귀했다.
“2월 초라… 와중에 시간은 되니 다행이군.”
장인의 주도로 세븐시스터즈 회의도 3월로 연기되고, 중국 바오산제철소 기공식도 3월 말이라 다소 여유가 있었다.
마침 험비의 생산을 앞두고 디트로이트 AMC 합작공장도 방문해야 하니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특히 낸시는 내 덕에 바오산제철소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니 미국의 압박을 걷어내는데 적극 협력할 수밖에 없을거다.
밴 플리트 장군과 장인어른이야 당연히 내 편이고 말이다.
“그런데, 반대급부로 뭘 달라고 하지?”
농수산물 시장을 개방할 바에는 차라리 한국의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받아치면 되고, 문화시장 개방이야 쿼터제로 맞서면 되는 문제다.
관건은 그런 대응책은 수동적인 대응일뿐, 우리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뭔가를 들이밀어야 하는데 당장 생각이 나질 않았다.
80년대에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이 없으니, 딱히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도 없었다.
뭐가 있을까? 대가로 뭘 달라고 할까?
이렇게 막대한 무기를 수입해야 하고, 시장마저 일부 개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솔직히 美행정부 관료들은 몰라도, 레이건은 우리 요구를 들어줄 자세가 되어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챙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호구 인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