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2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27화(527/589)
527 : 새 고객은 언제나 환영이지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시장개방 요구가 더더욱 거세지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참으로 다행입니다.”
나는 원탁에 둘러앉은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회동을 한 이유를 밝혔다.
모임 이름부터가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 사전 회동이니 꽤 적절한 인사말이었다.
“우 회장님이 계시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솔직히 대세자동차나 인천제철이 미국산 제품과 경쟁해줄 테니 별다른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농산물 시장에 대한 압박은 정부 숙제지요. 정부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그보다 금융 시장이나 문화 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야말로 딱히 대응방안이 없어 우려가 되는 바입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우 회장님이 방패역할을 할 제조업이 워낙 튼튼하니, 서로 상쇄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각자 내 인사말에 의견을 내놨다.
나름 기업보국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기업가로서 국가관은 확실한 것 같았다.
딱히 부동산 투기로 돈 버는 이들이 아니니, 허심탄회하게 정보를 나눠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들 옳으신 말씀입니다. 현 상황이 한미 양쪽 모두 신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이니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통신사업에서 말이지요.”
내가 통신 얘기를 꺼내자 다들 눈을 번쩍거렸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발견했다는 표정이었다.
열심히 잘 따라오시라.
일단 내가 발을 내디딘 이상, 주도권을 쥐고 갈 테니 말이다.
“우 회장님. 오늘 저는 현산 자동차의 대표가 아니라 현산건설 대표이자, 건설협회 회원사들 대표로 이 자리에 참여한 겁니다.”
뜬금없이 왕 회장이 가슴을 텅텅치고 나섰다.
“그러십니까? 헌데,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통신사업을 한다고 하시면 기존 전자 업계만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아닐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결국 누군가 전선도 깔고 전봇대로 박고 해야 할 텐데, 이참에 건설업계에도 일감을 좀 나눠주셨으면 합니다. 우 회장님 덕분에 알래스카에서 재미를 많이 봤지 않습니까. 미국 쪽 시공가는 정말 짭짤했습니다.”
왕 회장이 제대로 짚었네.
광케이블 프로젝트는 국제 규모의 인프라라 마구잡이로 단가를 후려칠 수 없다.
수많은 업체들이 입찰에 나설 테지만, 결국 미국과 한국 건설사에 낙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한민국과 미국이 합의해서 국비를 출자해 시행하는 사업인데,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라도 한국/미국 건설사들이 나눠 먹게 되어 있다.
물론 유럽쪽으로 연결되는 통신 인프라의 일부는 유럽쪽 건설사들이 먹게 될 테니 뒷말이 나올 일도 없다.
우리는 태평양과 동남아시아까지 관통하는 인프라를 독점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
“물론 그래야죠. 저도 현산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해저케이블은 해저 송유관 까는 것과 흡사하니까요. 송유관 많이 깔아보셨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사막, 늪지, 동토, 바다 할 것 없이 다 깔아봤습니다. 맡겨만 주신다면야 품질 확보는 문제없습니다. 해저케이블도 대세에서 제공해주실 테니, 자재 수급 문제도 없을 거고 말입니다.”
현산은 맡겨만 주면 시공은 문제없다고 나왔다.
나 또한 당연히 좋다.
전세계 광케이블 시공을 대세건설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동남아쪽으로 광케이블을 깔려면 해당 국가와 협상을 진행해야 할 텐데 그 일을 나눠서 하는 것 아닌가.
결국 통신이 연결되면 통신 허브를 운영하고 광케이블을 제공할 대세통신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테니, 당연히 단기간에 광통신 인프라가 많이 깔리면 깔릴수록 좋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일은 아주 쉬워질 것 같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면 시범 사업이 펼쳐질 것이고, 그게 성공한다면 대번에 전세계 통신 인프라 시장이 요동치게 될 것입니다. 대세와 더불어 한국건설사들이 합심해서 싹쓸이 해보시죠.”
“물론입니다. 하하하!”
도림이나 이룡건설도 함께할 모양이니, 시공사 확보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서구 건설사들이 손을 내저을 오지에 광케이블을 깔 건설사는 현재로선 한국 건설사밖에 없다.
“저기, 우 회장님. 광케이블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광케이블에 들어가는 광섬유 기술은 미국의 코닝社가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미정상회담의 의제로 등재한 것입니다. 인류 공영을 위해서 해당 기술에 대해선 라이선스 비용을 최소화 해야 합니다.”
광케이블은 미터당 비용이 매우 비싸다.
현재 대세통신이 백 박사의 도움으로 광섬유의 대량 양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광섬유/커넥터/피복/케이블 드레싱 등등을 생각하면 해저 광케이블은 미터당 3000불은 훌쩍 넘을 거다.
물론 육상 케이블이야 그보다 훨씬 싸서 미터당 20불 안팎이 되겠지만, 그것도 로열티 3%를 따지면 미터당 로열티가 60센트나 된다.
코닝사의 광섬유 원천기술에 준하는 제조기술을 무기로 크로스라이선스를 맺든, 로열티 요율을 줄이든 해야 한다.
“이게 무슨 우연인가 싶지만, 저희 수성전자가 코닝사와 3년 전에 전략적 기술 협약을 맺었습니다. 향후 10년간 크로스라이선스를 맺기로 했는데, 그 범위에 광섬유가 들어갑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물론 브라운관 TV용 부품생산을 위한 크로스라이선스였지만 그 범위를 코닝사가 제조하는 모든 부품 소재로 적용해놨기에 광섬유도 포함됩니다. 저희 법무부가 검토한 사항이니 틀림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도 사장님,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광케이블을 대세에 주문하시겠다는 뜻 같군요.”
수성전자가 광케이블 주문자가 되면 로열티를 따로 낼 필요가 없다.
대세는 광섬유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어 대량양산을 했을 뿐, 사용고객은 엄연히 수성전자니까.
그리고 수성전자는 대세건설과 현산건설에 광케이블을 팔면 되는 거다.
물론 어느 정도 이윤을 붙일지가 문제이지만, 통신사업에 숟가락을 얹어야 하기에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진 못할 거다.
“물론입니다. 그럼 대세는 코닝사에 굳이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대신, 저희 수성전자도 광통신 설비업체로 채용해주십시오.”
코닝사에 로열티를 줄 바에야 차라리 수성전자에 일부 설비 제작을 맡기는 게 나은 선택이다.
특허권을 휘두르는 미국회사를 파트너로 두는 사업이 얼마나 피곤한지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코닝사가 앞으로 7년간은 특허권을 휘두르지 못하게 되는 대가겠군요.”
“수성이 그 정도 시간을 벌어드리면, 대세도 원천특허 못지않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세로서도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강력한 제조 특허와 응용기술 특허를 만들면, 코닝도 우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래 역사에서도 21세기 코닝사는 한국기업들에 특허로 그다지 갑질을 하지 못했다.
“통신설비 시장에 뛰어들 명분은 충분하군요. 코닝사와 특허 계약을 체결한 담당자는 특진이라도 시켜줘야 하겠습니다.”
“흔쾌히 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성의 참여는 대한민국의 통신사업이 전세계로 뻗어가는 상생의 첫걸음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의의는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상생보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겠지요. 여하튼, 제반 스펙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게끔 TF를 꾸며주시지요.”
“대세와 함께 개발 협업을 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반드시 상호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수성도 나름 기술확보와 인재확보에는 진심이니 도움이 될 거다.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습니다. 일단 대세가 광섬유와 광소자를 개발해야 그다음에 광통신 설비에 대한 컨셉이 나올 테니 말입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솔직히 제철이나 자동차 부문에서 이렇게 빨리 선진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줄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습니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져도 대세가 거의 유일할 겁니다.”
도권희 사장이 민망하리만치 내 얼굴에 금칠을 했다.
이미 광통신 설비 시장이 얼마나 발전할지 계산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미래를 알지.
광통신 설비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보산업은 결국 데이터센터로 이어지고, 그건 곧 국가기술경쟁력으로 이어지기에 각종 데이터센터가 미친 듯이 건설된다.
우린 서로 경쟁할 필요 없이 미친 듯이 만들어서 전세계를 누비며 설비를 깔기 바쁠 거다.
물론, 고객사들 눈에는 처절하게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긴 해야지.
“코닝사 특허 로열티를 회피하는 게 국가적으로야 이득이지만 통신설비 시장에 수성이 합류하는 것만 따로 떼놓고 보면 대세 스스로 경쟁 구도를 만든 격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어야겠지요.”
“반대급부라고 하시면…”
“결국 우리가 이렇게 협력하는 건 국가 차원에서 국부 유출은 최소화하고 우리가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도권희는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수성이 내수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반도체 사업에 대해서도 이참에 선의의 경쟁자가 생겨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수성전자 하나만으로는 성에 안 차지.
이참에 반도체 회사는 하나 더 생겨야 한다.
그것도 건너편에 있는 금양반도체 말이다.
“이미 대세파운드리가 반도체를 하시는데 굳이 경쟁자가 더 필요하다고 그러십니까?”
“아니지요. 대세파운드리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수성전자가 직접 생산하기 까다로운 다품종 소량 생산 제품을 생산해주는 하청업체지요.”
“대세가 하청업체라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도 사장님 정도라면 앞으로 반도체 사업이 유망하다는 것은 잘 아실 것 같은데, 어떤 전략으로 사업을 확장하실 거며 선의의 경쟁자는 누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여기십니까? 대세파운드리로선 고객사가 늘어나는 일이라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내 말에 도권희 사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상생을 내세우면서 통신설비 시장에 합류하겠다고 한 주제에 반도체 시장은 독점하고 싶다고 하면 이율배반적이니까 말이다.
“대세파운드리가 반도체 업계에 얼마나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지 잘 압니다.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 기업인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반도체 업계의 전략을 이리 공개적으로 논하기는 어려우니, 나중에 따로 말씀을 나누시죠.”
“밀실 회담이라도 하자는 말씀입니까? 한미정상회담에 대응하여 거국적인 전략을 논의하자고 모였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실망이군요.”
“우 회장님, 실망이라니요. 말씀 거둬주십시오.”
“다시 한번 실망입니다. 그럼 여태 한 말은 다 없던 걸로 하시고 먼저 돌아가시지요. 여기 모인 분들과 거국적인 전략을 논의하겠습니다.”
점잖게 얘기했지만 수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국가 차원의 경쟁 구도를 논하지 않을 거면 이 모임에서 빠지라는 명령이었다.
도권희 사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나는 짐짓 화가 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내가 정신교육을 시킬 것은 아니지만, 누가 통신사업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해야지. 까짓거 코닝사에 로열티 좀 주면 어때?
기껏 대박날 게 뻔한 통신 사업에 끼워주겠다는데, 대한민국 반도체 사업도 선진화 해야지.
그래야 대세파운드리 물량도 많아지고 자연스레 경쟁력도 올라갈 것 아닌가.
자잘하게나마 국내기업의 실적이라도 쌓여야 대세파운드리 사업이 글로벌하게 뻗어갈 수 있다.
파운드리사업에서 수주 물량과 제품 생산 실적은 곧 영업성과로 이어진다.
“우 회장님, 제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정경유착이나 담합을 논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거대한 미래 시장을 두고 공동대처를 함으로써 한국기업끼리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 보자고 으샤으샤하는 건데, 밀실 회의를 하자며 편 가르기를 하다니요. 수성이 그리 나오다니, 지금 제 심정이 참담합니다.”
이참에 분명히 해야 했다.
대한민국 산업계의 효율성을 최대한 올리려면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없이는 협의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따로 놀겠다는 속셈을 내비치면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 자리에서 논의한 협의들이 실행될 수 있다.
내가… 아니, 대세가 하는 사업이 모두 대박이 났으니 이런 모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사세 확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도 사장! 우리 건설업계를 보십시오. 국내에서 박터지게 경쟁해서 능력을 입증하면, 해외 건설시장에서 대세가 팍팍 끌어주는 거 못 보셨습니까? 국내에선 경쟁! 해외에서는 협력! 그게 건설업계가 승승장구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라고 다를 리 있겠습니까.”
왕 회장이 답답했던지 도 권희 사장 앞에 놓인 컵에 냉수를 콸콸 따르며 한 마디를 보탰다.
얼른 한 잔 하고 승복하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뜻밖에도 금양의 윤자경 회장이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우 회장님 말씀을 듣자니 금양이 반도체사업에 진출하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안 그래도 공론화를 하려고 했습니다.”
“오, 금양에서 반도체를 하시겠다고요?”
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톱니바퀴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금양으로서도 대세와 사업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미래가 유망한 사업으로 반도체를 떠올리긴 했을 거다.
“수성이 가전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금양이라고 반도체를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실은 이미 투자비도 확보했고, 일본의 히타치社와… 기술협력도 하기로 했습니다. 회장님께선 좀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내가 워낙 일본에 대해선 각을 세우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윤자경 회장이 슬쩍 내 표정을 살폈지만, 나는 손을 들어 환영한다는 표현을 해줬다.
“불편하긴요. 반도체에서 미국과 일본이 선두주자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한국과 치킨게임을 하다가 망해버리는 일본 반도체 회사를 신경쓸 이유는 없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기술협력하시라.
“역시, 금양에선 벌써 준비를 끝내셨군요. 언제 진출하시나 노심초사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예, 즉흥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했고, 언제 공론화할까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금양이라면 선의의 경쟁자로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먼저 호기롭게 경쟁 구도를 받아들인다고 말할 걸 그랬습니다.”
도 권희 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악수를 권했고 윤자경 회장도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대세 파운드리의 새 고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