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3화(53/589)
< 053 : 더 높이, 더 멀리 (여기까지 기존 무료였습니다.) >
“오라이, 오라이!”
“8번 컨테이너 먼저! 아니, 아니, 7번 말고 8번 먼저. 그래! 그래! 그거!”
이제 항구도 웬만큼 모습을 갖췄다.
상판까지 덮은 케이슨이 벌써 20개 넘게 바다에 줄지어 놓여있기에 LST가 더는 모래톱에 선체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방파제 겸 하역소에 배를 대고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내리면 트럭들이 휙휙 육지로 날랐다.
“진달래 사장님, 항만 건설 잘 되고 있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다르게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게 반복 작업이라 척하면 척하고 움직이게 된다.
더욱이 우리 직원들은 월남에 있는 동안 최대한 작업을 많이 하겠다고 속도를 내고 있다.
내가 누차 1년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여어~ 실버!”
“여어!”
저 멀리 지붕 위의 실버에게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배가 들어와서 그런지 연신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마스터로 진급하더니 더 열심히 하네.
“하하,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나는 실버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금발의 백인이었다.
그 금발이 바가지 모양이라 좀 웃겼다.
“우 사장님 되시죠?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 BRS)의 필 나이츠라고 합니다.”
“아, BRS 사장님.”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BRS가 무슨 회사인가 했더니, 나이크사(社)의 전신(前身)이었네.
나이크라는 상호가 필 나이츠의 나이츠를 따온 거잖아.
역시! 60년대에도 전문 스포츠 웨어 메이커가 있었다니까. 아니, 마케팅 회사가 있었다니까.
마케팅 회사 중에 최고의 패를 건졌다.
“이야, 여긴 정말 후덥지근하군요. 맘 같아서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이라도 하고 싶네요.”
“이리 와요, 필. 그늘에서 시원한 콜라라도 한잔해요.”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필 나이츠를 B 구역 해변으로 데려갔다.
A 구역 해변보다는 덜 럭셔리 하지만 나름 경치는 끝내주는 곳이었다.
커다란 작업용 천막을 쳐놨기에 그늘도 충분했고 말이다.
꿀꺽. 꿀꺽.
“크하, 좋군요. 정말 시원하군요.”
“이럴 때 햄버거가 있으면 딱 좋은데 말이죠.”
“미국 여행을 해보신 겁니까?”
전생에 꽤 했지.
상사를 모시고 가는 출장으로든 바이어를 접대하는 출장으로든.
9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처음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금문교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와중에 대한민국에선 해외 출장을 잘 보내주는 대세 그룹에 들어갔음에도, 과장을 달고서야 가까스로 얻어낸 출장이었다.
엽서에서나 봤던 금문교가 눈 앞에 펼쳐지니 정말 예술이었다.
그동안 정말 뼈 빠지게 일해서 회삿돈으로 미국 출장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흐뭇한 기분으로 금문교의 석양을 즐기고 있는데, 바로 옆자리에선 백인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분명 평화로운 장면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맥이 탁하고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하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에 너무나도 잘살고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미국인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는 왜 고작 미국인들이 동네 마실 나오는 다리 옆 광경에 이렇게 감격해하고 있는 걸까? 내 동네 공기는 왜 쾌쾌한 매연 냄새가 나며, 내 집은 왜 고작 18평 전셋집이어야 할까?’
30대 중반까지 쉬지 않고 일한 대가가 고작 미국 레스토랑에서 사진엽서 흉내 내기라니.
누군 샌프란시스코 버스 정류장에 팝아트니 뭐니 하는 어린애 장난 같은 광고판 하나를 그리는 것만으로 수백억씩 벌고 있다는 게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력의 가치마저 달라지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렇게 감동적이던 금문교의 석양은 시답잖은 주홍빛 하늘로 변했고, 그리 럭셔리하고 천상의 맛이었던 샌프란시스코 게 요리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 전생이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던 때가 말이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대세 그룹이 흔들흔들하고 있음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일찍 깨닫거나, 차라리 평생 깨닫지 말았어야 했다.
“우 사장님?”
필 나이츠가 내 상념을 깨웠다.
나는 저 밑에 가라앉았다가 현실로 떠올랐다.
다시는 전생의 그때를 떠올리지 않으리라.
“아, 예. 미국 여행이야 안 가본 데가 없죠. 엽서로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시군요.”
“합작을 원하신다고요?”
“예, 저는 귀사의 정글 군화를 보고 바로 느꼈지요. 저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줄 회사는 대세 실업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필 나이츠는 내 앞에 손때 묻은 정글 군화를 꺼내놓았다.
“특별한 아이디어라고요?”
“예, 저는 지금은 사업가지만 대학 때 육상을 좀 했었지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달릴까? 아니, 달릴 때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했었죠.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필 나이츠는 육상 선수 출신으로 경영학 석사를 딴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마케팅을 강조하는 대세 그룹의 교육 과정에 하도 자주 등장하는 양반이라 잘 알고 있다.
외려, 나이크의 전신이 BRS라는 걸 몰랐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을 정도였다.
“밑창에 금속 대신 고무로 스파이크를 만들어보자. 뭐, 그런 아이디어 말입니까?”
“… 허헉… 우 사장님… 어떻게?”
필 나이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라지 마. 난 당신이 어찌 성공했는지 교육받은 사람이라니까.
대세 건설 직원도 그룹 일원이라는 이유로, 건설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마케팅 교육을 들었다고.
그땐 지겹고 어이없는 교육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대세 연수원 직원분들.
교육 때마다 매번 비슷비슷한 나이크 마케팅 자료를 Ctrl+C, Ctrl+V 해서 교육자료로 썼던 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나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만 해도 군화 밑창 패턴 연구를 꾸준하게 해요. 육상 선수들이야 어련하겠어요?”
“그렇다고 고무 스파이크를…”
“충격 흡수와 추진력은 모든 신발의 기본이에요. 비단 운동화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짐짓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이디어가 있으신데 왜 아직 그런 제품을 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내놓을 이유가 뭐죠? 우리의 리소스는 한정되어있는데, 그보다 더 큰 시장을 두고 시장성 없는 선수용 운동화를 왜 출시합니까?”
“시장성이 없다니요. 비싸게 팔면 됩니다.”
“이왕이면 비싸게도 팔고 많이도 팔아야죠.”
“많이 팔 수 있습니다. 선수용으로 인기를 끈 다음에 스파이크만 빼고 일반 운동화로 파는 거죠.”
필 나이츠는 내 말에 요리 맞추고 저리 맞추기 바빴다.
다급하네.
이때는 나이크도 초창기이니 당연한 일이다.
머지않아 갑 오브 갑이 될 때가 오겠지만 필 나이츠는 그걸 모르지….
구걸하듯 제조사를 찾아다니던 나이크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걸 보면, 마케팅의 귀재는 귀재였던 모양이다.
약점이었던 특허 기술은 일본 회사의 뒤통수를 쳐서 빼앗고 말이지.
태동기 때의 나이크는 일본 회사에 운동화 제작을 맡겼다가, 장사가 잘되니 나중엔 미국 특허청을 등에 업고 해당 특허를 싹 쓸어 담았지.
일본이 개발 창고를 뒤져 나이크와 합작했던 초기 샘플을 보여줬음에도 미국 법원은 나이크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회사의 자체 개발 기술이 아니라, 나이크의 아이디어를 단순 구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지.
우리나라도 이용당하긴 매한가지였다.
합작사를 세워 제조기지로 활용하다가, 제조 특허만 싹 빼먹고는 칼같이 계약 해지하고 나갔지.
“본사 텔렉스로는 합작을 원한다고 되어 있던데, 설마 우리에게 개발 요청을 하실 생각입니까?”
“고무 스파이크 외에 다른 기막힌 아이디어는 다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할 테니, 돈을 대고 제품도 만들고 클레임도 대응하고 여차하면 재고도 떠안으라는 말씀입니까?”
“……”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밑창을 개발하자느니, 신발 무게를 절반으로 줄여보자느니, 손가락 까딱하면 자동으로 묶이는 신발 끈을 개발하자느니, 그런 아이디어는 나도 내겠네요. 내가 백만 불 줄 테니, 당신이 그런 제품 만들어서 가져와요.”
“… 그런 제품을 제가 어찌 만듭니까?”
“그런 걸 신제품 아이디어랍시고 내게 알려줄 생각 아니었습니까?”
원래 마케팅에 올인한 회사는 그런 식이다.
힘든 일에서는 쏙 빠지고 열매만 가져간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알량한 아이디어를 먼저 냈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기술을 뺏어간다.
자본을 등에 업고 합법적으로.
난 그따위 사기에 안 당한다.
“……”
나이츠는 속이 타는지 콜라만 마셔댔다.
“진짜 그럴 생각이었나 보네. 너무하시네.”
“정확히 50대 50으로 하시죠.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걸 바라기에 당신을 내쫓지 않은 거다.
당신도 그걸 알기에 내가 비꼬아도 앞에 앉아 있는 거고 말이지.
“8대 2로 하죠.”
“그런 식이라면…”
“많이 양보한 겁니다. 대신 당신의 아이디어는 모두 구현해주죠. 고무 스파이크, 스프링 밑창, 종이처럼 가벼운 운동화, 심지어 손짓 한 번으로 묶이는 신발 끈까지.”
“!!!!”
“물론, 당장은 아니에요. 고무 스파이크를 제외하면 다른 아이템은 대충 2, 3년은 걸릴 겁니다.”
폴리우레탄 계열의 소재가 필요한 일이다.
대세 화학에 돌아가 개발을 해야 한다.
“정말 가능하단 말입니까?”
“정말 가능하냐고요? 믿지도 못했던 걸 아이디랍시고 말하려 했던 겁니까?”
“합작하시죠. 8대 2이라도 좋습니다.”
웃기시네. 누구 맘대로 합작이야?
지금은 숙이고 들어가서 나중에 자본을 끌어모아서 지분 싸움하려고?
내가 원하는 건 굴복이야, 필 나이츠.
“나이츠, 8대 2라고 간단히 얼버무릴 계약이 아니에요. 우린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라고요?”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난 기술, 당신은 마케팅으로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서로의 등에 칼을 꽂지 못하게 막아줄 계약이 필요해요.”
“칼을 꽂지 못할 계약…”
난 필 나이츠의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배신까지 당하면 쓰나?
“난 기술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마케팅 능력을 믿고 싶어요. 나를 당신의 계약서로 설득해줘요. 감탄하면서 합작할 수밖에 없도록.”
난 진정으로 당신과 합작하길 원해.
돈을 위해선 체면이나 명예 같은 건 개나 줘버리는 미국 문화를 이해하고, 온갖 노이즈 마케팅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올림픽 마케팅을 위해 복장 규정을 바꿔버리는 정치적 로비도 서슴지 않는 당신의 마인드가 필요해.
내겐 절대적으로 부족한 능력이란 말이지.
“아! 운동화뿐만 아니죠. 우리 스포츠 웨어도 함께 합시다.”
“스포츠 웨어라고요?”
“내 기술과 당신의 마케팅이 합쳐지면 스포츠 웨어가 패션이 되는 날이 올 겁니다. 아무리 땀을 흘려도 젖은 표시가 나지 않는 옷을 만든다면 어찌 되겠어요?”
“!! 대단한 기술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대세는 뭐든 가능합니다. 미국 진출을 위해 여태 당신 같은 마케팅 능력자를 기다려왔을 뿐입니다.”
필 나이츠가 멍해졌다.
마침 석양이 바다에 걸렸다.
열대의 바다에서 석양은 천지를 붉게 만든다.
탐욕의 색이다.
나는 B구역 매점 직원에게 잭콕 한잔 가져다주라고 하곤 자리를 벗어났다.
십중팔구 필 나이츠는 내가 동의할만한 계약서를 들고 올 거다.
기회 포착 능력은 세상에서 최상급이니까.
결국 나와 상생을 꾀하겠지.
꿈이란 원래 그렇게 꾸는 거다.
필 나이츠, 행운으로 알아라.
나 같은 파트너를 얻게 된 것을 말이야.
***
“여어, CS. 어디가?”
현장으로 가는 나를 마크가 불러 세웠다.
싱글벙글하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어디긴 어디야, 활주로 가야지. 곧 1사분면 완성이잖아.”
마름모꼴에서 1/4을 완성하는 꼴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일단 안케와 뀌년이 바로 연결되고 폭격기가 뜨고 내릴 수 있었다.
고델 중령도 두 눈을 부릅뜨고 챙기는 일이니,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
“하긴, 그 일이 우선이지. 여하튼 이것도 좋은 소식이니 알고는 있어.”
“좋은 소식?”
“한국인들이 영리한 것은 익히 인정하지만, 이런 결과는 솔직히 의외였어. 6명이나 합격했다고.”
“어, 벌써 자격증을 얻었다는 거야?”
“응. 여기 합격자 명단.”
마크는 내게 명단을 내밀었다.
「전쟁예비물자 보급 정비 자격증」
「연국환, 신중도, 주영길, 유역건, 선봉석, 강철산, 총 6명.」
어라, 주 교수가 3등이네.
수리기지에서도 열심히 했다는 게 사실이었네.
여하튼 6명이라니, 딱 좋았다.
뉴욕이며 싱가포르며 해외 지사가 필요한 곳에 한 명씩 박아넣으면 되겠다.
나이츠가 조만간 계약서를 들고 올 거 아닌가.
대충 사나흘이면 되지 않을까?
벌써 바닷가에서 머리를 싸매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츠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일단 같이 보내자.
합격자들이라면 잘 해낼 거다.
필기시험은 물론, 시험 감독관과 1대 1로 붙어서 하는 미군 정비사 시험에 합격했다면 일단 언어 소통 능력과 성실성은 탁월한 거다.
대통령이 보내준 수재 중에서 이렇게 골라내면 정말 알짜배기를 뽑는 꼴이다.
같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보자.
< 053 : 더 높이, 더 멀리 (여기까지 기존 무료였습니다.)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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