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3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32화(532/589)
532 : 적진에서 살아남기
‘냉정해져라, 우찬수.’
나는 장밋빛 미래에 취해 널뛰는 내 마음부터 다잡았다.
서해는 그다지 심도가 깊지 않은 바다이긴 하지만, 직선거리가 300km가 넘는다.
대륙으로 통하는 길이 생기는 대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다.
이 시대 환율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략 20조? 30조? 아니 그보다 더 들어갈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첫 삽을 뜨는 순간 몰아닥칠 엄청난 정치적 이슈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에 들어가 제철소를 지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진통을 겪었는데 그 중국과 바로 통하는 터널이라면 무슨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자칫 중국과 사이가 나빠져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터널이 막히기라도 하면 매국노란 비난까지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납작 엎드려야 하니 그야말로 내 손으로 목줄을 갖다 바치는 격이다.
‘함정이다. 꿈을 자극하는 함정.’
결론에 도달하니 눈앞에 어른거리던 꿈들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설령 성공해서 중국 정부가 영구임대지를 인정해준다고 해도, 내내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더구나 나는 사드 이후 한한령까지 보고 온 사람이다.
“중국 철강 업계의 약진을 돕는 대가가 해저터널이며 영구임대지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역시 사업가답게 이해가 빠르군요. 어째 신중히 검토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줄 마음이 듭니까?”
“답변에 앞서 대국의 스케일에 감탄했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쇠가 필요하면 바오산제철소 같은 엄청난 제철소를 하나도 아닌 여러 개를 짓고, 통로가 필요하면 바닷속이라도 터널을 뚫자는 대범함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런 대범함과 크고 길게 보는 눈이야말로 우리 중국의 장점이지요. 그러니 한국도 중국과 상호 우호 증진이 필요한 것 아니겠소?”
“말씀대로입니다. 다만 소국이 대국의 행보를 쫓아가려면 다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허니 대국의 큰 그림을 작은 부분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한국 쪽에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내 웬만하면 들어주리다.”
“그렇다면 영구임대지라는 부분적인 혜택은 가능할지요?”
나는 등소평에게 한껏 립서비스를 하고 일단 시작해보자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런 자리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부분적인 혜택이라고 하셨소?”
“대한민국과 중국이 수교도 맺지 않은 상황이니 한중 해저터널 같은 큰 그림을 그리기엔 저희 쪽이 힘에 부칩니다.”
“그러니 도와주겠다는 것 아니오. 원대한 꿈을 꾸어야 성과도 그에 걸맞게 거둘 수 있는 것이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이지요.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드는 해저터널보다 상하이 항구에 터미널 하나를 영구 임대받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로 인해 중국의 철강업계 현대화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원대한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륙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주고 산둥반도의 넓은 땅을 영구임대해주겠다는 제의를 고작 터미널 하나로 대체하자는 것이요?”
등소평은 내가 대륙 진출로라는 거대한 미끼를 툭하고 쳐내자 의외라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해저터널이 중국 쪽엔 원대한 꿈일지라도 대세와 내 조국엔 악몽이 될 수 있지 않냐는 말을 억지로 누르고 듣기 좋은 말을 골랐다.
“대세는 해외공사를 할 때 늘 임시 항구부터 만들어 자재 수급을 원활히 함으로써 공기단축을 해왔습니다. 상하이 항구의 터미널 하나만 할애해주셔도 바오산제철소의 공기단축은 물론, 제철소의 추가 건설도 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 그런가?”
“물론입니다. 해저 터미널 같은 큰 프로젝트는 한중수교가 선결과제인 데다, 재원확보를 위한 컨소시엄도 필요 하니 혁명적인 속도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상하이 항구 터미널 하나를 영구 임대하는 것이 서로 윈윈하는 방법입니다.”
나는 등소평의 제안을 극도로 축소했다.
“오, 그런 조건이라면 투자자를 모으기도 다소 쉬워지겠군요. 터미널 하나에 불과하지만, 자유무역항 역할도 충분히 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장인이 옆에서 딱 적당한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아마도 그리 될 겁니다. 정치적 규제를 최소화해주실 테니 말입니다. 주석님, 그런 의미로 영구임대며, 프리패스를 말씀하셨던 것 아닙니까?”
나는 그 대답을 핑계로 등소평의 결단을 재촉했고고 말이다.
“물론이오. 그 방법이 현실적이라면 그리 해야겠지요.”
등소평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원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축소한 것이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주석님의 결단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한 개의 정당, 한 가지 사업, 한 사람이 결정하는 교조적 정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솔직히 등소평은 내가 이렇게 제안을 비틀 줄은 몰랐을 거다.
그나마 바오산제철소가 어지간히 다급한 프로젝트였기에 중국 주석을 상대로 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등소평이든 장쩌민이든 두 양반 모두 상하이가 발전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상하이가 불과 20년만에 얼마나 격변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온 사람이다.
현재 대세해운이 선복량 200만총톤(G/T)을 돌파하면서 세계 20위권에 진입했지만, 상하이항에 거점을 만든다면 세계 10위권도 노려볼만하다.
그러고 보니 대세해운도 갈 길이 머네.
이런 상황에서 한중 해저터널에 잠시나마 혹한 내가 어이가 없었다.
세계 10위권의 해운사 중에 일본 해운사가 4개, 대만 해운사가 1곳인데 말이다.
“그럼 내가 글을 써주겠네.”
등소평 주석의 말에 수행원이 즉시 종이와 세필을 대령했고, 그는 일필휘지로 글귀를 적어갔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과의 우호증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에 대세 그룹에 상하이 항구의 일부를 영구임대하기로 약조하는 바이다. 양국 우호증진의 상징이 되리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소평」
등소평 주석의 글귀는 국왕의 친서나 다름없었다. 장쩌민 상하이 서기장은 등소평 주석의 글귀를 보며 명문이라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정도면 되겠는가?”
“양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또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제철소를 추가로 지어주는 조건으로 상하이 항구 터미널을 내준다는 계약서 형태가 아니었다.
정말 전제군주처럼 원하는 걸 들어줄 테니, 최선을 다해서 보답하라는 식의 친서였다.
솔직히 한자를 세로로 멋지게 이어가며 속기로 써 내려간 형태를 보면, 서예작품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주석 각하, 최선을 다해 성공하겠습니다.”
장쩌민 서기장은 친서를 받아들며 감동했다.
현대적 제철소만 제대로 짓는다면 중국의 대약진은 보장된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나도 중국의 등에 올라타 보자.
이런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자, 건배하지.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우리들은 등소평의 친서를 앞에 두고 건배했다.
“늙은이가 젊은이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군. 그럼,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겠네. 혹시 더 할 말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 그런가? 짧게 해보게.”
인사치레로 한 말이겠지만, 중요한 부탁이 있었다. 딱히 계약서로 남길 수 없는 부탁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전하는 게 최선이었다.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정되면,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공개될 일이니 미리 알려준다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남한이… 아니,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지난주 끝난 한미정상회담의 별도 합의이기도 합니다. 최근 올림픽이 정치적 이슈로 원래의 색깔을 잃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라면 세계평화의 상징이라는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부탁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북한의 방해공작을 막아달라는 거로군.”
“예, 그렇습니다. 북한이 예측불허의 도발행위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칫 북한의 도발이 빌미가 되어 차기 올림픽이 일본으로 넘어간다면, 동북아의 대표주자는 일본이라는 공식이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될까 우려스럽습니다.”
내 말에 등소평은 빈 술잔을 들고서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그의 침묵을 참아냈다.
계산의 결과는 뻔하니까 말이다.
“알겠네. 내 그 사안을 신중히 다뤄보지.”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할 게 아니라면, 일본보다 당연히 대한민국이지.
동북아에서 어느 한 나라가 너무 강해지는 건 중국으로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 않나.
솔직히 미국과 일본이 로맨스를 찍으면 대한민국과 중국은 사이좋은 척이라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봐도 대한민국과 중국은 서로 도움 될 일이 많고, 일본을 견제해야 시장도 넓어질 수 있다. 등소평 주석이 그런 기본적인 외교전략을 무시할 양반은 아니다.
“송구한 부탁 말씀을 드렸는데, 흔쾌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아주 큰 인물이 났군. 축하할 일이야. 축하할 일.”
등소평 주석은 내 어깨를 툭툭 몇 번 두드려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한국에 인물이 났다니, 중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딜은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하긴 등소평이 국가 주석으로서 참석한 자리에서 이런 부탁을 하고 신중히 다루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니 최선의 결과였다.
내 부탁을 허투루 다룬다면, 나도 제철소를 추가로 지어주겠다는 약속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우 회장님, 이렇게 단박에 대가를 받아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통 크게 중국 철강업계를 돕겠다는 다짐도 아주 인상적이고 말이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쩌민 서기장은 내게 다시 한번 협력하자고 다짐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중국 전체는 몰라도, 상하이가 한국처럼 급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하하하,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진심이다.
상하이, 중부 공단, 뀌년을 연결하면 아시아 권역의 물동량은 어마어마해 질 것이다.
북미 항로를 과점하는 것만으로 일본 해운사가 전세계 해운사 순위의 1위부터 4위까지 차지하는데, 중국 시장이 커지면 그 순위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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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바오산제철소 기공식장.
“바오산제철소는 중국에 첫 번째로 들어서는 현대식 제철소로, 중국 산업이 대약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양질의 쇠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펑! 펑! 펑!
폭죽을 터뜨리고, 첫 삽을 뜨며 기념촬영을 하고, 온갖 정치인들과 악수하고, 공사현장에 내걸린 조감도를 보며 감탄해주고… 뻔하디 뻔한 기공식을 함께 했다.
“나도 나이가 있는지 오늘은 유난히 힘들군.”
“좀 앉았다 가시지요.”
기공식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장인은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내가 부축해서 호텔 로비 소파에 잠시 앉혀드렸다.
기공식보다 어젯밤 등소평 주석과의 면담 여파로 이리 피곤해하는 것이리라.
록펠러 가문의 수장임에도 긴장된 면담이긴 했던 모양이다. 이 시대 중국에 진출한 유일무이한 미국 금융사의 대표로서 면담 내내 이런 저런 계산을 하느라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정말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는 정치와 너무 가까워서 골치가 아파. 분명히 잠재력이 높은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언제 이득을 내나 하는 생각마저 든단 말이지.”
돈의 황제인 장인마저 아직까진 중국의 잠재력만 보이고, 실질적인 이득이 보이지 않는 거다.
“포항제철소를 지을 때도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바오산제철소도 언젠가 쇠를 펑펑 쏟아낼 겁니다. 가져가신 3% 지분은 꽤 유용하실 겁니다.”
“그야 사위가 하는 일이니 믿어 의심치 않네. 하지만, 정말 제철소 하나를 더 지어줄 생각인가? 고작 터미널 하나를 대가로 받고서 말이지.”
장인도 격에 맞지 않는 딜이라 여긴 모양이다.
“임해제철소가 아니라 내륙 쪽에 제철소를 하나 지어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
“중국 철강 내수를 커버하는 측면에선 중국 정부도 수긍할만하고, 수출로 인한 인천제철의 타격은 최소화하는 방식이니 말입니다.”
“으흠, 내륙쪽 제철소라면 그다지 지분 확보에 목을 맬 필요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우리 지분은 대략 15% 정도로 하고 건설자금의 80% 이상을 중국 정부에서 감당하도록 해야합니다.”
“좋은 생각이군. 등소평 주석의 요구는 들어주면서 우리의 출혈은 최소화 하는 전략이니. 그쪽 프로젝트엔 대충 10억달러 정도만 상업차관을 조성한다고 여기면 되겠군.”
“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나머지 공사비 40억불을 마련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렇군, 그런 계산이 있었어. 어제 얘기를 했으면 나도 속앓이를 덜 했을 텐데 말이지.”
“이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작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어제는 거의 탈진한 상태라 살피질 못했습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적진에서 적의 수장을 상대로 딜을 한 것이지 않나. 그나저나 얼른 가세. 쉬어도 여길 벗어나서 쉬어야겠어.”
“그러시죠. 페기도 유진이도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며칠 후, 한국
「한미정상회담 벌써 결실 맺나. 한미연례경제협의회 미국대표단 방한 예정.」
「한국 기업, 미영프 국제전화 연결 프로젝트에 참여할 듯」
「죽의 장막 걷히나? 대세, 중국 철강업계 진출」
「경축, 삼일절에 독립 기념관 개장 예정」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굵직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기획하고 참여해서 이뤄낸 일이지만 그 일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모두가 힘을 모아 해나가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래,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까지 사방이 적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등소평에게 말한 대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지.
게다가 누구 말대로 시작이 반이라지 않나.
한국이 최빈국에서 여기까지 온 게 그 시작이라면 나머지 반은 더 영광스럽고 벅찬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