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4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42화(542/589)
542 : 승진 좀 해야겠습니다
시제품이 이미 있다는 말에 내가 깜짝 놀라니 연구원 중 누군가가 ETRI의 광통신 개발 이력이 잘 정리된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보고서 첫 페이지부터 굉장했다.
이미 광통신 시스템 관련해서는 1978년부터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1979년 9월에는 서울의 중앙전화국과 광화문전화국 사이에 음성신호를 다중화한 45Mbps 광통신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컬러 TV 신호의 전송능력도 확인하고, 광중계 장치 및 진폭 변조 방식의 시스템도 개발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채 소장이 말한 구로-안양 전화국의 12km 거리에 설치된 광통신 시스템은 시제품 정도가 아니라 상용화 시스템 검증에 가까웠다.
데이터 전송속도도 90Mbps라면 기존의 두 배가 아닌가. 21세기 기가 단위의 전송속도에 비할 순 없겠지만, 이 시대엔 금융 데이터와 TV 뉴스 정도만 전해도 엄청난 효과다.
“여기 표현된 광통신 시스템도 확장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기술 검증이 우선이겠지만, 데이터 동기식 다중화 방식을 채용한 기술이니 말입니다. 개념적으론 각 회로의 주문형 반도체만 만들 수 있다면 기존 90Mbps의 6배 정도 용량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의 6배… 540Mbps라면 어떤 수준의 통신이 가능한 겁니까?”
“광섬유 1쌍에 음성신호 8064회선을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대용량 시스템입니다. 그 정도를 상용화 한다면, 장거리 시외전화는 물론이고 TV 유선방송도 가능합니다.”
채 소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계산을 하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툭 말을 내뱉었다.
이 양반아, 지금 그런 기술이 있다면 돈을 퍼부어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하고 돋았다.
우리나라가 새로 시작하는 기술에 대해선 선진국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거다.
아니, 시간과 열정을 더 많이 갈아 넣으니 오히려 더 앞서는 아이디어도 있는 것 같았다.
ETRI가 상용화 시험을 하고 있는 기술들,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온전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괜히 순진한 80년대 연구원들에게 맡겨놨다가 이런 S급 기술을 다른 나라에 뺏기면 큰일이다.
“서종욱 과장.”
“예, 회장님.”
내가 굳은 표정으로 서 과장을 부르자 바짝 얼어서 내 앞에 섰다.
“서 과장, 승진 좀 해야겠습니다.”
“예에?”
오늘 처음 봤지만, 이렇게 파견까지 나와서 업무를 조율하는 걸 보면 대세통신의 베테랑이 분명했다. 이 일은 대세가 주도해야 할 것 같았다.
외풍도 막고, 개발비도 때려 박고, 정보보안도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ETRI와 협업해서 데이터 동기식 다중화 기술에 대해 국제 표준안을 제출하십시오. 본사 차원에서 AT&T를 아군으로 끌어들일 테니까.”
“앗!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비 개발, IC 개발, 데이터 전달 방식, 중계 방식 등등 조금이라도 특허가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제출하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특허로 제출해서 기술 표준을 선점하겠습니다.”
바로 그거다. AT&T가 광통신 규약을 주도하겠지만, 그 기술적 백그라운드를 우리가 제공하면 광통신 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 자산이 된다.
“채 소장님, 대세그룹이 특허 장벽을 쌓아드릴 테니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 로열티만 챙겨도 ETRI의 연구비 조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로열티로 연구비를 자체 조달… 그런 일이…”
“ETRI는 벨 연구소가 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누군가 ETRI의 기술을 도둑질해서 부자가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지요!”
“돈 되는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은 당연히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대세가 도와드리죠.”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회장님, 그 말씀은 우리도 잘하면 대세 임원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AT&T 같은 거대한 기업이 로열티를 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한두 푼일까요?”
“와아아아아! ”
연구원들이 내 말에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국책연구소 연구원이라고 박봉에 시달리라는 법이 어디 있나?
돈 되는 기술을 개발했으면 부자가 되어야지.
열정페이는 사라져야 하고, 연구하는 척만 하는 연구원도 사라져야 한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내는 건 적절한 보상이다.
ETRI가 돈을 벌면 자연스레 나도 돈을 벌게 될 것이다. ETRI 기술규정에 가장 적합한 설비와 부품을 생산하고, 가장 적합하게 시공할 회사가 어디겠나.
“다들 부자가 될 준비는 되셨습니까?”
“예에에에에!”
“만세! 대세 만세!”
“하하하하.”
염원철 수석이 없는데도 어디선가 대세 만세가 터져 나왔다.
대세통신에다 대세연구소 직원들까지 합류해서 그런가.
여하튼 이왕 이리된 것, 대세연구소에도 통신 관련 연구팀을 꾸며야겠군.
나중에 대세통신이 공사(公社)로 전환된다고 해도 기술 개발 역량은 따로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IT 기술이 이렇게 이른 시점에 시작했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적절한 지원만 한다면 그 발전속도는 엄청날 것이다.
***
일주일 뒤,
“베인 실장, 이렇게 빨리 업무 조율이 완료되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ETRI를 방문하신 이후로 통신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한국 통신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가져가 보자는 거국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나 할까요.”
“통신 기술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하겠다. 모든 이들의 열정이 화산처럼 폭발해 기술적으론 발전속도가 아주 빠르지만, 그에 따른 인식 변화가 못 쫓아온다고나 할까.
매번 첨단 기술은 선진국이 먼저이고, 우린 그걸 쫓아가야 한다고만 여기는 거다.
그러니 신기술을 개발하고도 특허 출원도 안 하고 국제 표준으로 들이밀 생각도 안 한 거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잡았으니 되었습니다. 업무 조율한 것 좀 봅시다.”
“예, 여기 보고서입니다. 대세통신은 중계선계를, 금양사는 가입자계를, 수성전자는 운용과 유지보수계를, 동양전자는 스위치계, 동호전기는 전원장치를 맡는 게 어떨까 합니다. 회장님의 최종 검토가 필요합니다.”
“실무진이 이렇게 협의했다면, 이대로 추진하십시오.”
내가 통신업계 실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세통신이 가장 핵심 영역을 맡은 것이니 나름 만족할만한 조율이었다.
성과를 중시하는 대세맨들이 어련히 알아서 협의를 했겠나. 가장 어렵고 돈 되는 일을 가져오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회장님… 저도 좀 당황스럽습니다만, ETRI에서 본사로 직접 시제품을 보내왔습니다.”
“무슨 시제품을 말하는 거죠? 지난주 방문해서 다 보고 왔는데 말입니다.”
“그게 TDX와 광통신 부문만 보고 오시고, 공중전화기 연구팀은 방문 안 하셨다고 해당 연구팀이 많이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연구비를 지원하신 회장님께서 꼭 보셔야 한다고 시제품을 보내왔습니다.”
“하하, 내게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군요.”
대세가 국제 특허출원도 해주고 로열티도 협상해주겠다고 하니, 공중전화연구팀도 가만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공중전화도 불과 반년 만에 개발을 했다는 소린가?
“그래요,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십시오.”
“예, 회장님. 들어오십시오, 서 과장님.”
“대세통신, 서종욱 과장입니다. 자동공중전화기일명 DDD(Direct Distance Dialing) 전화기를 시현하고자 본사 방문을 청했습니다.”
“들어와요. 어서요.”
문 앞에서 군인처럼 보고를 하기에 내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ETRI 직원들이 직접 올 줄 알았더니 대세 통신 서종욱 과장을 메신저로 보냈네.
하긴 공중전화 프로젝트도 같이 협업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번에 전화기를 얹은 탁자를 끌고 들어왔는데,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국민학생 때 봤던 그 은색 공중전화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대체 이 시대는 어떤 시대야?
이게 벌써 개발이 되었다는 거야?
나는 신기해서 DDD 공중전화기를 쓰다듬어 보았다.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이 들어가는 그 전화기가 확실했다.
“이 전화기가 벌써 만들어… 아니, 시제품이 이렇게 일찍 나오다니 놀랍군요.”
“우리 대세통신 개발자들과의 협업이 주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요?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대세통신의 개발자 대부분이 기구부품 전문가가 아니라서, CPU를 활용하여 제어논리를 프로그래밍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CPU를 제어소자로 쓴 공중전화기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확신합니다.”
어라, 이제 보니 공중전화기는 대세통신이 개발을 주도했던 모양이다.
ETRI에서 보고하기에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거군. 이거, 우리 대세 작품이라는 거네.
“회로를 어떻게 구현한 겁니까?”
“여기 내부를 보시면, 인텔 8048 CPU를 사용해서 회로를 꾸몄고 2Kbyte ROM에 기계어로 제어 프로그램을 삽입했습니다. 동전 투입구와 연결된 주화 선별기는 기존 모듈을 개선한 수준입니다.”
죄다 대세파운드리에서 만드는 반도체였다.
바야흐로 반도체가 철강을 대신해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부 구조가 아주 간단하군요. 가격도 매우 저렴하겠군요.”
“예! 양산하면 출고가는 50만원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수입하던 기존 공중전화기가 150만원이라고 들었는데, 1/3 가격이다. 대박이네.
수입대체 효과만 해도 수천억 원은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이동통신 시대가 오기 전까지 15년은 족히 남았으니까 말이다.
“신뢰성 검증은 해봤습니까?”
“예, 500시간 가속 신뢰성 평가를 거쳤으며 추정 고장률은 0.2%로 기존 전화기대비 1% 수준입니다. 특히, 자가 고장진단 기능이 있어 고장이 나더라도 수리원이 즉각 조치할 수 있습니다.”
서 과장이 비밀번호 입력하듯 전화기 버튼을 누르자 잔액 표시창에 GOOD이란 단어가 반짝였다.
“그 기능도 외국 공중전화기엔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TDX나 광통신 중계기에 삽입하면, 유지보수와 운용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허로 제출했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서종욱 과장은 흥분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 과장의 특허인 모양이군.
일도 잘하고 아이디어도 좋고, 차기 부장감으로 확정이네. 좋다.
“본사와 협의해서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전화기 조달을 추진해보십시오. 이건 양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화연결을 해서 시범을…”
“그런 기본적인 걸 못했을 리 없겠죠. 서둘러요. 세종시에 전화선을 깔기 시작했으니, 외국 전화기를 들여오기 전에 납품해야 합니다.”
“예, 서두르겠습니다.”
“베인 실장, 김복순 이사에게 일러요. 대세실업 수출품목에 대박 제품이 발굴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기존 대비 1/3 가격으로 품질은 더 좋은 공중전화를 개발했는데, 내수로만 쓰라는 법이 어디있나.
북미, 유럽, 동남아 가릴 것 없이 전세계에 쫙 깔아야지.
석달 뒤, 올림픽 유치전이 펼쳐지는 바덴바덴에서도 이 공중전화기 판촉 행사를 해야지 싶다.
한국이 개도국을 넘어 중진국을 넘어서는 나라가 되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기술발전상을 보여주는 게 제일 효과적이니 말이다.
“휴우, 이럴 때 대세파운드리에서 해외 수주를 따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말입니다. IBM과의 협상이 왜 이리 지지부진하지요?”
내가 나서야 하나 싶을 정도로 더뎠다.
대세파운드리에서 IBM PC에 들어가는 CPU 물량만 따와도 완전히 선순환에 들어설 텐데 말이다.
“회장님, 그게 IBM은 계약을 하고 싶은데 대세파운드리에 물량을 줄 명분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부품 원가가 15%는 족히 절감될텐데 말입니다.”
“그게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컴퓨터 기술을 국가전략 기술로 등재해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세파운드리가 인텔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 CPU를 이미 수출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규제를 뚫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런, 하필 IBM과 거래를 틀 때 정부 규제가 생긴 모양이네.
우리 뀌년 5인방이 죄다 중공업 계열이다보니 IT나 반도체 쪽으로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비서실에서 뭔가 생각해 둔 전략이 있을 것 아닙니까? 시도해볼 만한 방법 말입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가 나서주겠다는 말을 하는 거다. 내 말을 이해했던지 빌 베인은 한결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IBM과 작게나마 북미 합작회사를 세우고, 한국에도 IBM PC가 일부 팔려야 합니다. 그래야 무역 불균형을 해소했다는 명분으로 IBM 물량을 따올 수 있습니다.”
“컴퓨터 시장이야 이미 한미정상회담에서 열어주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IBM 컴퓨터를 얼마나 많이 구매했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한답니까?”
“기업용 중형 컴퓨터가 아니라 IBM이 곧 출시할 PC, 즉 퍼스널 컴퓨터에 대해서도 구매 확정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것도 매년 수백대 규모에서 말입니다.”
수백대 정도야 당연히 사줘야지.
미국이 아무리 소비중심의 국가라고 해도 그렇지, 미제는 수입않고 내 것만 팔겠다고 하면 그게 말이되나.
게다가 IBM PC는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다.
그리고 지금은 컴퓨터 같은 조립용 제품은 클론제품(모방제품) 생산이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이지 않나.
즉, IBM PC의 아키텍처를 모방한 제품을 생산해도 내수 출시엔 전혀 문제없고, 모방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내 컴퓨터 기술의 수준은 일취월장하게 될 거다.
“설마, 우리 정부가 그걸 막고 있는 겁니까?”
“예, 올해를 정보산업의 해로 선언한 만큼 국가주도로 국산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수성전자, 금양사, 삼부컴퓨터, 한국컴퓨터 등등 내부 경쟁이 치열하니 PC 시장은 개방을 유예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입니다. 시장 개방은 중형 컴퓨터 이상에서만 실시하고 말입니다.”
이거 듣자 하니 우리가 IBM을 뚫는 것 못지않게, IBM도 미국 정부의 규제를 빌미로 우리나라 PC 시장을 뚫으려는 거네.
어쩐지 협상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전이 더디더라니. 양국이 각자 속셈이 있었군.
“IBM이 우리나라 시장을 욕심낸다는 게 신기하군요. 그다지 큰 시장이 아닐텐데.”
“결국엔 일본 시장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레이건 정부가 반도체나 컴퓨터 업계는 일본에 직접 투자하지 못하게 행정명령을 내렸기에, IBM이 한국에 아시아 지부를 두면서 일본을 공략하려는 전략으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결국 IBM은 우리와 합작해서 한국 지사를 세우겠군요. 우리가 IBM과 합작해서 미국 지사를 세우듯이 말이죠.”
“예, 서로의 비즈니스만 확인된다면 IBM은 저희 고객이 될 것입니다.”
청와대를 좀 방문해야겠군.
정보산업의 해에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IBM 진출을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이참에 일본의 반도체 업계를 견제할 빌미로 써도 될 것 같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