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4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43화(543/589)
543 : 우물 안의 용
며칠 뒤, 대세연구소.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보통신 사업 정책에 관련해서 논의가 필요하다는데, 당연히 초대에 응해야지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있기에 창원까지 감재익 수석을 초대했다.
“대세와 논의도 하시고, 이왕 오셨으니 정부통신 분야의 기술 동향도 듣고 가십시오.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이시니 말씀도 잘 통하지 않겠습니까?”
“감 수석님은 경제통이시니 기술적인 것은 제가 채워드리겠습니다.”
염원철 소장은 털털하게 웃으며 감 수석을 맞이했다. 서로 안면이 있던 관계였던지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저도 기대가 됩니다. 정보화 산업은 국책과제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니까요. 공권력을 통한 억압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도 민원 및 행정업무 등 국민 서비스 측면에서는 큰 정부를 추구하는 행정혁신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감 수석은 은근슬쩍 TDX 개발, 전화선 구축, 국제 해저 광케이블 구축 사업 등등 굵직한 국책사업의 최종 목적은 행정혁신이 되어야 한다는 정부의 논지를 강조했다.
아휴, 감 수석… 굳이 그런 말 안 해도 됩니다.
난 21세기 인간, IT가 국가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천기누설을 하고픈 마음을 꾹꾹 누르며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금융실명제와 종합토지세 등 금융시스템도 선진화해서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도 큰 역할을 할 겁니다.”
“그 말씀도 옳습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통신망을 쫙쫙 깔면 전세계 정보를 수집하기가 엄청 쉬워지고, 그 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무역과 물류에서 엄청난 이득을 볼 겁니다. 가히 대한민국은 정보기술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염 수석도 말을 보탰다.
그래, 바로 그게 IT가 선진국 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특히 대한민국은 제조업 기반이 튼튼하니 IT와 결합되면 그 시너지는 상상초월이다.
중국의 약진을 10년 정도만 뒤로 미루면 우린 G7에 무난히 안착하게 될 것이다.
이미 세종시를 일군 것 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고, 삼저호황을 기점으로 IT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리라.
“그러게 말입니다. 대세가 TDX 국책 과제에도 엄청난 지원을 해주시고, ETRI 연구원들도 응원해주시고, 국제 협업도 잘 끌어내시니 그 모든 게 실현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감 수석도 확신한다는 말을 할 줄 아는군요. 원래 공무원은 실현이니, 확신이니 하는 말은 쓰지 않는 거 아닙니까?”
“아, 늘 수동적이라 죄송합니다. 대세가 큰일을 잘 주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대세가 나서니 수성이나 금양 같은 굵직굵직한 기업들도 앞다투어 국책 과제에 참여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에서도 일이 쉬워질 테고 그만큼 성공확률도 높아진 것 아니겠습니까.”
염원철 소장이 밉지 않게 생색을 냈다.
IT 관련해서는 대세연구소를 앞세웠더니 오히려 일이 더 잘 굴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정보 산업의 핵심은 크게 통신과 반도체가 아니겠습니까? 최근 통신에서는 성과가 나오고 있는데, 반도체는 영 부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부진하다니요. 요즘 수성과 금양이 서로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영역이 반도체 사업인데 말입니다. 회장님께서도 투자하라고 조언하셨다면서요? 정부도 최대한 돕고 있습니다.”
“내수 기업끼리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 같은 시스템 기술은 선진국이 주도하는 만큼, 외국 기업의 진출도 일부 허용해야 합니다.”
“아… IBM 컴퓨터 말씀이군요. 그건 좀 힘듭니다. IBM이 들어오면 지금 새싹에 불과한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은 박살이 날 겁니다. 물가안정 긴축재정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말입니다.”
어째 컴퓨터 같은 사치품을 수입하는 게 옳냐는 YS의 말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감 수석, 컴퓨터는 그런 산업이 아닙니다. 조립식 컴퓨터는 수많은 변종 모델이 가능하기에 국내 기업들도 가성비로 IBM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개별부품 단위로 시장 개방을 하기로 했으니, IBM 컴퓨터에 국산 부품 채용률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참으로 답답했다.
IBM이 PC 사업을 시작할 때 대세 파운드리랑 손잡아야 한단 말입니다.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신 사업을 시작할 때는 시장 규모가 커질 때까지 모방 제품을 규제하지 않습니다. 컴퓨터 사업도 이렇게 규제가 느슨할 때 IBM이든 애플이든 확 끌어당겨서 기술을 흡수해야 합니다. 이때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염 소장의 말이 백번 옳다.
미국은 원천 기술을 가지고 돈을 벌고, 거대한 소비 시장을 무기로 달러 장사를 한다.
일본이 지금 대박치고 있는 반도체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일본 못지않게 IT 강국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면, 미국의 전략도 달라지는 거다.
“… 정부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단지 업계의 반발이 심하니, 3년 정도는 유예기간을 확보하려고 하는 겁니다. 대세야 워낙 경쟁력 있는 회사라 괜찮지만, 중소기업에는 시간을 벌어주는 게 국가가 할 일이지 않습니까.”
“중소기업에 시간을…”
순간 골치가 아파졌다.
중소기업도 IBM과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엔 대기업의 횡포 같아서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감 수석님, 삼부컴퓨터나 한국컴퓨터가 반대를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솔직히 컴퓨터 사업은 그 발전성은 높은 반면 국산화율은 40% 언저리밖에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사업입니다. 중소기업도 대세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클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공평한 것 아닙니까.”
“아…”
감 수석의 말에 염 소장은 자신의 머리를 탁자에 툭툭 부딪히며 대답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경제 성장률이 얽힌 일이라면 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던 박 대통령 시절에도 중소기업을 죽이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3년을 유예한다고?
그러면 IBM에 들어가는 CPU를 우리가 납품하지 못하게 되지 않나.
인텔 CPU가 들어간다고 해도 미국 공장에서 만든 CPU가 들어갈 거다.
고객 입장에서 맘대로 발주도 못하고 이런저런 제한마저 걸린다면, 대세가 주장하는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은 완전 박살나는 거다.
안될 말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삼부나 한국컴퓨터의 기판과 각종 부품이 IBM에 납품될 수 있도록 한다면 말입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실은 컴퓨터 사업에 대세가 끼는 것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그럼 공적 자금이라도 투입해 주십시오. IBM 쪽에 시장을 열어줘 소비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삼부컴퓨터와 한국컴퓨터는 정부기관에 컴퓨터를 납품하게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회장님!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 감 수석님, 그리 합시다. 중소기업엔 조달청을 붙여줍시다.”
중소기업에 독자적인 판로를 확보해주면 IBM과도 경쟁할 수 있지 않나.
오히려 물류비용과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다 보면 IBM도 한국에 지사가 아니라 컴퓨터 제조공장을 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흥적이지만,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아, 그게 좋은 생각이긴 한데… 예산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50억불 차관 개발원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용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지금 컴퓨터 업계를 도우려면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답답했다. 내가 돈을 지원하는 것도 안되고, 공적자금은 없어서 못 한다니 말이다. 기껏해야 100억도 채 안 되는 돈만 집어넣어도 되는 일이잖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있어야 한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니지, 그런 돈이 있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있긴 있는데 말입니다.”
“예에? 그런 돈이 있다고요?”
“뉴스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ETRI에서 대당 50만원짜리 DDD 공중전화기를 개발 성공했다고 말입니다.”
“그게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공중전화는 낙전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연간 수십억원씩 정부의 비자금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정치권에서 이슈가 된 적도 있고 말입니다.”
뒷사람 쓰라고 잔액을 남겨두기도 하지만, 공중전화는 반드시 낙전효과가 생긴다.
신형 DDD 공중전화는 전화선 증설 인프라로 규정되어 있기에 하반기에 대규모 예산을 집행하기로 되어있다.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공중전화기를 팔아먹을 거라 생각해서 개발원조 지원대상 인프라로 규정한 거겠지만, 고스란히 우리 차지가 될 거다.
“… 그러고 보니 그걸 잡비로 규정해 예비비로 쓰기는 했습니다. 따지고 들면, 그 돈은 정보 산업에 쓰는 게 당연한 돈이군요. 통신비니까요.”
“그렇죠. 그 돈으로 공공기관의 컴퓨터를 구매하든, 학교에 교육용 컴퓨터를 보급하든 하면 되는 일이지요. 교육용이라면 연간 5000대를 보급해도 50억이면 충분합니다.”
“멋진 생각이십니다. 다만, 중소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IBM에 시장을 열어줬다고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는 하겠군요.”
“감 수석님, 그 정도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서 총대 메고 욕받이를 하셔야지요. 미국 대기업의 압박에 굴복하느라 고생했다는 비아냥 정도는 참아내셔야 합니다. 그게 우리 공무원이 애국하는 방법 아닙니까!!”
염 소장은 자신도 그런 비아냥은 많이 받아봤다는 듯 가슴을 텅텅치며 감 수석을 응원했다.
“… 욕받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염 수석의 말에 용기를 얻었던지 감 수석이 표정을 굳히더니 해보겠다고 나섰다.
오케이!! 이 양반이 나서면 무조건 된다.
“큰 결심하셨습니다. 제가 확신하건대, 이 결정은 우물 안 개구리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우물 안의 용을 풀어주는 일이 될 겁니다.”
“용을 풀어주는 일…”
“통신, 반도체, 컴퓨터 등등 정보 산업의 모든 분야가 비상하게 될 겁니다.”
대세 파운드리가 그 토대를 만들어줄 테니 기대하시라. 시간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욕받이!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아주 확실하게 해보겠습니다.”
“하하하, 응원하겠습니다.”
공중전화 낙전효과를 이용해 IT 산업에 예산을 공급한다면, 역대 가장 똑똑한 경제수석으로 이름을 남기게 될 거다.
국가 전체로 보면 수백, 수천 배의 이득을 남기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
8월 중순, 울산 병원.
“이보게 사위, 왜 이리 애가 안 나오는 건가? 여기 제대로 된 병원이 맞긴 한 건가?”
장인어른이 애가 타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여보, 여기 병원은 록펠러 가문이 함께한 병원이에요. 당신 입으로 아시아 최고의 병원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이리 오래 걸려? 진통만 벌써 몇 시간 째인지.”
“장인어른, 여태 정기 검진에서도 애와 산모 모두 이상 없이 건강했으니 순산할 겁니다.”
나도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장인어른이 너무 초조해하니 오히려 내가 장인을 다독이는 상황이 되었다.
“여보, 진정해요. 초산도 아니니 너무 걱정 말고요. 이러니까 젊을 때 애를 낳아야지, 노산이니 힘들 수 밖에.”
“노산까지는 아닌…”
페기 나이가 고작 삼십대 중반인데… 이 시대엔 이 정도 나이면 노산인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분만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의사가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아주 이쁜 공주님입니다.”
의사의 말과 동시에 분만실 안쪽에서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를 안심시키는 소리였다.
“산모는 어떻습니까?”
“회복실로 옮겼습니다. 산통이 좀 길었지만, 탈진할 정도는 아니니 면회도 가능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아, 예. 산모도 아기도 다 건강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재차 둘 다 건강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병원을 세웠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픈 게 아니고 정상적인 출산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초조한데 환자에게는 제대로 된 병원이 얼마나 절실할 것인가.
잘 세웠다. 울산 병원.
“자자, 이럴 게 아니라 어서 회복실로 가보자고. 손녀 얼굴은 봐야지.”
“그러게요, 어서 가요. 사위 앞장 서게.”
“예, 장모님.”
우리들은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까지 하고 회복실로 들어갔다.
어찌나 용을 썼던지 볼이 홀쭉해진 페기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페기,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는 페기의 이마에 뽀뽀부터 해줬다.
무사히 이 기적 같은 일을 해낸 영웅이다.
“찬수씨, 봐요. 우리 공주님이에요. 예쁘지요?”
“그러네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군요.”
딸 아이는 담요에 싸여 눈도 못 뜨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으로 페기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었다.
여태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스마트 폰이 그리웠을 정도였다.
“허허, 이 녀석 졸린가 보군. 연신 하품이야.”
“어머, 손녀 머리 색깔 좀 봐요.”
어째 딸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털이 꽤 있었다. 그것도 아주 멋진 갈색이었다.
유진이 녀석이 예쁜 동생이 생겼다며 아주 방방 뜨겠군. 나이 차가 꽤 나니, 오빠 노릇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이보게, 사위.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건가?”
“예, 페기와 함께 지어놓은 이름이 있습니다. 수진입니다. 최고의 보물이라는 뜻이죠. 유진이 이름과도 돌림자, 아니 라임이 맞아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수진! 최고의 보물이라! 우리 손녀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군.”
두 분에겐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딸아이가 광복절 이브에 태어난 것 또한 내겐 뜻깊은 일이었다.
***
며칠 뒤,
“이야, 축하한다. 드디어 너도 딸이 생겼구나.”
“어쩌냐, 이제 딸자랑 하면서 나 놀리는 것도 끝이네.”
“하하하, 키우는 재미는 아들보다 딸이지. 너도 이제 알게 될거다.”
삼복이는 연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줬다.
딸 바보라는 말이 있기도 전인데, 벌써 녀석은 딸바보 행세를 하고 있었다.
“여하튼, 축하는 충분히 잘 받았고 우리 유치전 잘 할 수 있겠지?”
“찬수 네가 가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나야 너만 믿고 따라가는 거지. 이참에 수주나 왕창 받았으면 좋겠다.”
삼복이는 물론 웬만한 기업들의 마음이 다 비슷할 것이다.
민간 올림픽유치 사절단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달고 가는 거지만, 기업가들은 올림픽을 핑계로 수주를 잔뜩 따낼 기대에 부풀어 있을 거다.
그래, 틀린 생각도 아니지.
화끈하게 땅겨봐야지.
전 지구인의 축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