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5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 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50화(550/589)
550 : 보드카의 향기
험한 밤바다를 얼마나 헤쳐왔을까?
새벽 05시경, 어느새 주변이 한결 차분해졌다.
발광하듯 불어닥치던 북풍도 가라앉고 화이트 아웃에 가깝게 몰아치던 눈발도 잦아들었다.
<오픈 씨 아이스! 오픈 씨 아이스(Open sea ice : 밀도 낮은 해빙)>
“오픈 씨 아이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관측 업무를 자처하며 선수부에 자리 잡은 윤 이사의 목소리가 전체 마이크로 터져 나오자 선교를 비롯해 사방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야이, 소련 놈들이 기가 막힌 곳에 해군 기지를 차렸구만. 앞마당은 완전 온천수네, 온천수!”
정말이지 저 멀리 소련군 해군기지에서 쏘아 보내는 등대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지형적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올드 아이스 지역을 벗어나자마자 보일 듯 말 듯 한 얼음 막이 얇게 깔린 바다가 펼쳐졌다.
정말 누군가 이 일대에 온천수를 쏟아붓기라도 한 것 같았다.
뱃머리가 아이스팩에 닿자마자 해빙은 쫙쫙 갈라져 선미로 흘러갔다.
안심이 되자 그제야 불편한 뱃속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달려갔더니 변기의 물이 죄다 얼어있었다.
자그마치 4800TEU짜리 거대 선박의 보일러를 풀로 돌렸는데도 이 정도인데, 웬만한 선박이었다면 기관이 통째로 얼어버렸을 거다.
“아휴, 이런 미친 짓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이러다 제명에 못 죽겠어. 흐흐흐…”
얼어버린 변기 위로 뱃속을 비워내고 화장실 벽에 기대니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삐이익. 삐이이익~
<여긴 소비에트 연방 태평양함대다. 신호에 답하라. 오버.>
또 무슨 비상벨인가 싶었더니, 캄차카반도에 있는 소련 해군 기지에서 들어온 교신이었다.
“여긴 대한민국 국적선 코리아 에이스호다. 한소경협으로 합의된 수출품을 싣고 왔다. 캄차카 해군기지 입항 허가를 요청한다. 오버.”
<허, 미친 놈들… 정말 왔어!>
무전기 너머로 소련인들이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아무리 빙해 항해를 많이 하는 소련군에게도 올드 아이스 영역을 돌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코리아 에이스호, 올드 아이스 해역을 통과한 것이 맞나? 오버.>
“그대들이 제안한 항로를 택했을 뿐이다. 문제가 되는가? 오버.”
<문제없다. 선원들의 상황은 괜찮은가?>
“걱정해줘서 고맙다. 좀 추웠다는 걸 제외하면 다들 무사하다. 입항해도 되겠는가? 오버.”
미국인인 스미스 선장을 대신해 내가 교신을 이어갔다.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하여 캄차카 해군기지 입항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대들을 위해 보드카를 준비하겠다. 오버.>
“고맙다. 오버.”
좀 춥다고 하니 보드카를 대접해주겠단다.
러시아, 아니 소련인들의 보드카 인심만큼은 아주 후한 것 같았다.
뿌우우우우우~
“태극기를 올려라!”
<태극기를 올려라!>
<와아아아아아.>
대한민국 국적선임을 명확하게 알리는 태극기를 높이 올리고 캄차카 해군기지로 입항했다.
다른 어떤 나라가 여길 방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인으로선 최초로 캄차카 해군기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
“어서 오시오. 영웅들!”
“반갑습니다. 대세 회장 CS Woo라고 합니다.”
“하하하, 그대가 우 회장이군요. 난 소비에트 연방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제독이오.”
음?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이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니라 여기에 있었어?
우리가 예정된 일정에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를 직접 확인할 목적으로 여기에 자리한 모양이다.
“여기서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님을 뵙다니 영광입니다.”
“솔직히 이 계절에 항해를 해올지는 생각하지 못했소이다. 좀 더 믿음이 있었다면, 우리 군의 쇄빙선이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말입니다.”
마중 나오기는 무슨.
레이더로 우리 배를 지켜보고 있었겠지.
정말 자신들이 그려준 항로로 뚫고 들어오는지, 아니면 도중에 포기하고 회항하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해빙에 갇혀버리던지 말이다.
“고객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는 게 우리 대세의 모토입니다. 요청하신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광통신망 설치를 위해 해저광케이블도 충분히 싣고 왔습니다. 조만간 포설선이 들어오면…”
“하하하! 일 얘기는 마르케비치 의장이 도착하면 그때 합시다.”
“마르케비치 의장이 여기로 오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내가 급히 연락했으니 이미 전투기로 여기로 날아오고 있을 거외다.”
“감사합니다.”
역시나 레이더로 우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해역을 통과할 것 같으니, 마르케비치 의장더러 날아오라고 연락을 넣은 거겠지.
“감사는 무슨. 응당 손님이 오셨는데 제대로 대접하는 것이 우리 소비에트 정신이오. 자! 얼어붙은 몸과 마음엔 보드카만 한 약이 없소이다. 모두 갑시다.”
“와아아아아!”
사령관이 직접 보드카 파티를 하자고 나서니, 주변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에 벽난로가 즐비하고 건물 중앙에는 큰 굴뚝 아래 숯을 피워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이 시절 소련도 잘 살았었네!
바비큐 주변 탁자에는 보드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잔하시오! 으슬으슬 추울 땐 보드카로 녹여줘야 하는 법이오.”
“하하, 그렇습니까.”
텀블러 크기만 한 유리잔에 보드카를 잔뜩 채워줬다. 다들 술을 따르고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어붙은 바다를 건넌 자는 우리의 친구! 환영하오이다!”
“환영합니다아아아!!”
“감사합니다!! 소비에트 연방 만세!”
“소비에트 연방 만세!!!”
내가 소비에트 연방 만세를 외치자 우리 선원들도 바로 복창했다.
대번에 서로 잔을 부딪히며 보드카를 원샷으로 때려 부었다.
가능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목 뒤로 넘어갈 때까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소이까?”
“허, 이거 정말 좋군요.”
마실 땐 살짝 알코올 기운이 있다 싶은 정도인데 몇 초 뒤에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양반들, 이래서 보드카 보드카 하는구나.
“미국놈들이야 위스키니 꼬냑이니 하지만 진정한 술은 보드카밖에 없소이다.”
“오늘만큼은 동의할 것 같습니다. 한잔 더 주십시오.”
“하하하! 얼마든지요.”
보드카는 이런 추운 곳에서 먹어야 제맛인 모양이다. 끈적할 정도로 냉각된 보드카를 들이부어 위 속에서 알코올을 깨우면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런 술을 마시자니 맥주 따윈 음료수로 규정했던 옛 러시아 법률을 이해할 만했다.
“친구들 환영합니다!!”
짝짝짝짝♪♩♬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서인지 어디선가 손뼉과 함께 즉흥 연주가 펼쳐졌고 날렵한 군인들이 튀어나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일명 쪼그려 뛰기 춤, 코사크 댄스를 추니 아주 일품이었다.
절도있는 동작으로 다리를 찢고, 땅을 박차오르고, 탭댄스 같은 동작을 하더니 급기야 쪼그려 뛰며 발을 앞으로 쭉쭉 뻗어댔다.
아직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이 시대 소련군의 면모를 여지없이 느낄 수 있었다.
삐이이이익!
“부라보! 부라보!”
스미스 선장이 제일 좋아했고, 우리 선원들도 옆에서 춤 흉내를 내며 흥을 더했다.
“우 회장님!!!!”
“오, 마르케비치 의장님!”
“오호츠크해를 뚫으셨다고요. 약속을 지키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약속이 아니라 당신들의 요구사항이었지.
“예, 어렵사리 통과했습니다. 광케이블도 깔겸 해저지형 조사차 몇 번 왔다 갔다 해보면 빙해 항해도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그거야 날 풀리면 하셔도 됩니다. 지금에야 가전만 날라오신 것만 해도 충분하지요.”
“돌아갈 때는 우리 군이 쇄빙선으로 에스코트하리다. 마르케비치 의장, 협정서 들고 왔소이까?”
이바노비치 제독은 나와 마르케비치 의장을 한쪽으로 몰아갔다.
“예, 제독님. 여기!”
마르케비치 의장은 탁자에 앉자마자 협정서를 펼치고 만년필까지 제독에게 건넸다.
이거, 서명을 해야 하는 이들 중에 여태 서명하지 않았던 이가 바로 이바노비치 태평양함대 총사령관이었던 모양이다.
쓱쓱.
“다 되었군. 이로써 한소경협은 발족된 거나 마찬가지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제독 각하.”
“감사합니다. 제독님.”
“감사는 무슨. 그대들이 우리 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 보급해줬는데, 이런 조치는 당연한 겁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나와 이바노비치 제독이 악수를 하니, 그 위에 마르케비치 의장이 손을 얹으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과의 경협으로 얻을 것도 많고, 국가 안보차원에서도 믿을만한 파트너라고 윗선에 보고를 했을 것 아닌가.
그런 마르케비치 의장의 보고에, 내가 빙해 항해라는 미친 짓으로 증거를 딱 제시한 모양새이니 감격할 수밖에.
“그런데 말이오. 이왕이면 여기 오호츠크해에서 코리아의 원양어선이 어업 활동을 하는 게 어떤가 싶소이다.”
“어업협정까지 포함하신다고요?”
“어선의 안전은 우리 태평양함대가 보장할 테니 그리 합시다.”
여차하면 우리 원양어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억류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 그 정도 보험은 가져가셔야지.
소련의 속셈이야 인질이겠지만, 우리나라 수산업에는 엄청난 호재라고 하겠다.
21세기에도 오호츠크해 명태와 꽁치는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이지 않은가.
“그리 하겠습니다.”
“화끈하시구려. 부라보!”
“부라보!”
여태와 달리 보드카를 한잔 원샷 때리더니 잔을 바닥에 냅다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파사삭 잔이 깨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의식이구나.
나도 그를 따라 바닥이 부서져라 잔을 내던졌다.
러시아에서는 중요한 약속을 할 때는 술잔을 바닥에 던져 깨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제독에게도 어업 협정 추가는 아주 중요한 항목이었던 모양이다.
일이 술술 풀렸고, 창고 안은 진한 보드카 향기로 가득 차올랐다.
정말이지 이렇게 독주를 마시고도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는 땅이라니 신기했다.
사방에 벽난로를 피워대도 온기라곤 오롯이 보드카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독한 술을 들이부어도 기분 좋을 정도로 취기만 오를 뿐 정신은 말짱한 환상적인 파티였다.
****
1982년 1월 초, 옥포 리조트.
<국민 여러분, 새해 벽두부터 한소경협 정식 발의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존 경협에 더하여 한소 어업협정이라는 큰 소득을 얻게 된 것은 국가적인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르케비치 의장님, 한소경협이 전격적인 합의에 이른 이유가 무엇인지요?>
<전격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우리 소비에트 연방은 땅덩이가 커도 너무 크다는 게 문제이고, 그에 반해 한국은 땅이 너무 좁아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런 양국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더욱이 우리 인민들이 먹지 않는 명태 같은 생선이 한국에선 식량 자원이 된다니 협상도 난항 없이 순조로웠습니다.>
마르케비치 의장은 어업협정을 전면에 내세워, 한소 인공위성 발사체 개발, 가전을 포함한 각종 공산품 무관세 교역, 천연가스 공동개발, 석유화학단지 건설 등등 주변국을 자극할 협상 건은 등 뒤로 감춰버렸다.
언론들도 대충 눈치를 채고 그런 민감한 건을 굳이 인터뷰 대상으로 삼지않았다.
솔직히 협상 막판에 루블화의 비태환성, 대금 결제의 어려움, 과실송금 및 투자보장의 어려움 등 돈 관련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지만, 뀌년의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이용하기로 전격 합의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었다.
한마디로 뀌년의 파라다이스 호텔 VIP 명단에 마르케비치 의장도 등재되었다고 하겠다.
<연해주에 한해서는 한국의 민간인들도 방문할 수 있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무역사무소에서 영사관 업무를 대신 수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식 수교는 아니지만, 민간 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하겠다는 소비에트 연방의 의지라 하겠습니다. 연해주는 고려인들도 많이 사는 곳이니, 언젠가는 한국인들도 관광삼아 방문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마르케비치 의장은 인터뷰에서 고려인까지 언급하며 아주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고, 한국 언론들은 그런 마르케비치를 집중 조명했다.
공산주의자들이면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이런 신사다운 사람들이 있나 하는 인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마르케비치 의장이 이끌고 온 경협 사절단이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장님.”
“휴우, 수고랄 게 있습니까? 국가와 인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입에 발린 말이라기엔 개인적인 향응이나 접대에는 시큰둥한 모습을 보인 그이기에 어째 우리 대한민국도 제대로 된 러시아인을 파트너로 삼은 느낌이 들었다.
“가시죠. 저희가 준비한 우주센터 건설 계획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어서 가시지요.”
이 또한 내가 캄차카 해군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정부와 치열한 협상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본격적인 우주 개발을 위해서는 자체 인공위성 발사 확보와 이를 발사하기 위한 우주센터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인공위성이야 그냥 쏘면 되는 거지, 우주센터라는 거창한 시설이 필요한 거냐며 반문을 했지만 선진국의 우주센터 사진을 들이미는 것만으로도 대번에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었다.
결국 YS가 직접 나서서 우주개발의 당위성을 국무회의에서 역설했고,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한소경협을 비준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1990년까지 독자적인 우주센터를 운영한다는 전략을 확정했다.
우리 대세항공 직원들이 꼼꼼히 전 국토를 뒤져 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외나로도(外羅老島)에 우주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나도 나로호가 외나로호에서 유래한 건가? 싶을 정도로 외나로도라는 섬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인사부터 나눠요, 주영길 이사.”
나는 회의실에서 준비하고 있던 주영길 이사를 마르케비치 의장과 인사시켰다.
“반갑습니다. 마르케비치입니다.”
“TV에서 많이 뵀습니다. 대세우주항공 이사, YG Joo입니다.”
내가 대세항공을 대세우주항공으로 사명을 확장하자고 하니 대번에 명함부터 바꾼 것 같았다.
대세항공 방위사업부에서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니 당연히 우주센터 개발도 대세항공이 주관하는 게 맞다.
“아직은 허허벌판이군요.”
주영길 이사의 등 뒤로 펼쳐진 슬라이드를 보며 마르케비치 의장이 웃음을 지었다.
우주센터 건립이 한참 걸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우리 한국인들의 일 처리 속도를 알면 어찌 반응할까 궁금했다.
“그래도 계획은 완벽하다고 자신하는 바입니다. 소련 엔지니어분들께서 협조만 좀 해주시면, 대번에 우주로 로켓을 쏘아올릴 수 있을 겁니다.”
주영길 이사는 대번에 슬라이드를 바꿔 조감도를 펼쳐보였다.
우주센터의 각 요소들을 한눈에 들어오게 조감도를 꾸며놓았다.
아무런 기초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는데도 훌륭한 조감도를 선보이자 마르케비치가 옆자리 수행원의 옆구리를 툭하고 찔렀다.
그를 따라온 발사체 전문가였던 모양인데, 살짝 놀라는 표정으로 마르케비치 의장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조감도는 훌륭하군요. 여러나라의 우주센터를 벤치마킹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우주센터 건설 전반을 모두 소련에 의지할 수는 없고, 지상 기계설비, 추진체 공급설비, 발사관제설비를 먼저 건설해보시지요. 조건은 한소경협에서 의결했던 것처럼 개산금액계약(槪算金額契約)으로 말입니다.”
매우 낯선 계약 방식이었지만, 소련이 인공위성 발사체 기술협약에 나서는 기본 조건이었다.
개략적인 공사금액으로 계약한 후 건설을 하면서 세부내역을 산정하는 방식이었다.
소련이 우리에게서 최대한 돈을 뜯어내겠다는 심사였지만, 최소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는 싼 가격이라는 조건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초반에는 소형 과학위성을 쏘아 올리는 정도로 시작해야겠지요?”
“물론입니다. 과학위성에 이어 통신위성을 쏘아 올릴 때까지 양국의 기술협력은 끊이질 않을 겁니다.”
“하하!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르케비치는 이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의미로 웃어댔지만, 나는 미소로 답했다.
나는 이 일이 10년쯤 뒤엔 어찌 될지 뻔히 알기에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