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56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567화(567/589)
567 : 외전 시베리아의 노다지(3)
「우리 러시아는 국토, 석유, 가스 기타 천연자원 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다른 산업국가에 비해 매우 열악합니다. 게다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입니다… (중략)… 물론 피할 수도 있었고, 더 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번엔 비록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우리 인민의 노력이 빛을 볼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뭐야, 언제 잠이 들었지?”
나는 비행기에서 깜박 졸다가 기체의 흔들림에 눈을 떴다.
연설하는 고르바초프 뒤로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내려지고 삼색의 러시아공화국 깃발이 게양되는 걸로 보아 지난 생에 본 뉴스 화면일 수도 있겠다.
고르바초프를 만난다고 이런 꿈까지 꿀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나 싶어 다소 어이가 없었다.
하긴 대세의 운명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경제상황까지 달라질 수 있는 계약 건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고르바초프의 생각은 선진적이었지만 소련 사회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건 다소 안타깝긴 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 역사에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비슷한 연설을 마지막으로 물러날 양반이다.
<손님 여러분, 대세항공 특별기 기장입니다. 본 비행기는 지금 막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손님 여러분을 모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좋은 성과와 더불어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방송을 듣고 있자니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예, 앞장 서시지요.”
비행기 문이 열리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소련 관계자가 나와 나를 안내했다.
대뜸 일행과 떨어져 묵직한 탱크 같은 까만색 리무진에 올라타 어디론 가로 향했다.
한국은 아직 늦가을인데 여기 모스크바는 철의 장막답게 차창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느껴졌다.
“첫 일정은 우주센터에 파견 나와 있는 대세항공 직원들을 만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일정은 내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일단 서기장님께서 먼저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뭐, 그렇다면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르비가 날 먼저 보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내 앞에 앉은 자가 KGB인지 한소 경협 담당자인지 모르겠지만, 무심하게 일정 변경을 알렸다. 원래 서기장과의 면담 일정은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게 당연한 건가.
철의 장막의 주인이 일개 기업인을 만나주는 것 자체가 특혜 중의 특혜이니 이 정도는 이해해야지.
보안상 이유인지 초장부터 기를 죽이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쫄지 마, 찬수야. 급한 건 저쪽이야.’
나는 배에 힘을 주고 거대한 모스크바 광장을 거쳐 크렘린궁으로 들어가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이윽고 차가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경계 중인 정문의 군인들을 지나쳐 황금으로 장식한 거대한 문을 지나 생각보다 아담한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어서 오시오, 우 회장. 말씀 많이 들었소이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통역 한 명 만을 끼운 채 고르바초프와의 독대가 이뤄졌다.
보안 요원들도 내 몸을 수색한 것을 끝으로 모두 문밖에서 대기했다.
“영광이라니요. 나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믿어주고 지원하는 몇 안 되는 서방 기업가인데 정중하게 초청을 해야지요. 내가 오히려 반갑소.”
고르비는 날 포옹하며 어깨까지 툭툭 두드리며 환영한다는 표현을 했다.
예상외의 친밀감을 보이는 그의 화법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부디 개혁 개방 혁명이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두루뭉술한 내 대답에 고르비는 살짝 손짓을 하는 정도로만 반응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훅하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르케비치 의장이 아주 멋진 계약서를 들고 왔더군요. 아무리 작게 잡아도 대충 100억 불이 넘어가는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면서요. 그것도 불과 3, 4년에 걸쳐 말입니다.”
“이왕 투자하려면 과감하게 투자해야 소련의 경제 위기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건 대세 그룹의 투자 정책임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 표현이기도 합니다.”
내 말에 고르비는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소비에트 코리아 경협 초기만 해도 동북아의 작은 개발도상국이라고만 여겼는데, 불과 몇년만에 코리아가 이렇게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될지는 예상치 못했소이다. 덕분에 다른 곳은 몰라도 블라디보스토크 만큼은 경제가 활황이지요.”
“소련측 경협 담당자들이 열정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농사든 어업이든 산림개발이든 든든히 지원해주니 우리 대한민국의 물가 안정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거야 대세그룹이 얼음벽을 깨어 가며 바닷길을 뚫은 덕분이지 않겠소이까? 정말 한국인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우리 슬라브족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동의합니다. 일견 무뚝뚝하게 보여도 정도 많고 음주가무도 좋아하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요, 우리가 보드카를 즐기듯이 그대들도 소주라는 술을 즐긴다고 들었소이다.”
보드카라는 말이 나와서 일까. 고르비는 어디선가 보드카와 잔을 들고 왔다.
이미 탁자에는 다과가 차려져 있었기에 안주상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대뜸 내게 잔을 권하고 보드카를 채워주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협상하는 와중에 독주를 꺼내다니 다른 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 않겠나?
“보드카라니…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날씨엔 한잔하면서 몸을 녹여줘야 긴장이 풀리지 않겠소이까. 내 이미 계약서에는 최종 서명을 했으니 진솔한 얘기나 좀 들어봅시다.”
고르비는 마르케비치 의장이 상신한 계약서에 서명을 마쳤다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어떤 얘기를 듣고 싶으신지요?”
나는 보드카로 입을 축이며 되물었다.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줄 건가요?”
“최선을 다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역시! 자세가 좋군요. 그럼 물어봅시다. 세븐시스터즈가 대체 어떤 의도로 우리에게 이런 미끼를 던지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소?”
미끼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단어 선택이야 고르비 마음이었다.
“투자하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그 답변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세븐시스터즈 일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기업인입니다. 서기장님도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국토, 자원, 자본, 첨단 기술 등등 뭐든지 다 부족합니다. 그중에 제일 부족한 게 자원이라 없는 살림이지만 소련에 투자하고자 하는 겁니다.”
“자원이라… 우리에게 석유와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싶다… 그런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오일쇼크로 나라가 휘청거렸던 게 불과 얼마 전입니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급의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고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베리아 파이프라인 건설은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숙원사업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이 사업을 아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그런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DJ가 고르비에게 전하는 친서를 쑥하고 내밀었다. 고르비의 개혁 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며, 한소 경협의 발전에 정부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친서였다.
하지만 내가 내밀면 그 친서의 용도는 바뀐다.
내가 하는 말이 정부 차원의 말이 되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 서명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겠군요. 그대들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전략적 자산인 석유와 천연가스의 지배권을 상당수 서방기업으로 넘기는 걸 내 스스로 용인하는 꼴이 될 수도 있소이다.”
“그리 오해하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와 엑손, 그리고 DBB는 소련의 석유와 가스는 소련을 강대국으로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기에, 국가가 직접 지배하진 않더라도 해당 자원은 소련 정부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고르비는 보드카를 들이키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뭔가 변명을 하리라 여겼던 모양인데, 그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읊어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독대 자리에서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간 진중한 협상은 물 건너가기 마련이다.
최대한 솔직하게 오히려 약점은 보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라는 신뢰를 주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얘기하니… 내가 할 말이 없구려. 그럼 파이프라인 건설의 목표가 정말로 판권만 가져가는 거라는 말이군요.”
“물론입니다. 체르노빌에 건설하는 SMR이야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전기를 모아 지구 반대편으로 옮길 수도 없으니 부득이하게 운영권을 취하지만 파이프라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활한 공급을 약속해 주시고, 판권만 보장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소련産 에너지 시장을 넓혀보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일해 주겠다? 그 말 입니까?”
“서로 윈윈이지요. 정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신다면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의 판권만이라도 보장해주시지요. 그럼, 투자는 단박에 이뤄질 겁니다. 이 제의는 대한민국 정부의 제안이기도 하다는 걸 명확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동북아 파이프라인 건설 비용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이까?”
“초기엔 1억 달러만 투자해도 연간 3천만톤의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운송할 수 있습니다. 초기 압력이 떨어지면 5년간에 걸쳐 7억 달러를 투자하면 연간 8천만톤도 가능하지요. 물론, 극한지용의 특수 코팅 강관을 써야 하고 호수, 늪, 동토층을 통과하며 파이프라인을 깔 수 있는 능력자는 우리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유일합니다.”
내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고르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공급가는?”
“배럴당 17달러, 20년간 공급!”
“허! 멋진 딜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이없다고 해야 하나?”
배럴당 17달러면 소련 입장에서 이익률이 10% 이하일 것이다. 그런 이익률로 20년간 공급해달라니 소련 입장에서 들어주기 어려운 유가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서로 윈윈이죠. 무엇보다 한국인의 열정과 도전에 그 정도 대가는 주어져야 합니다.”
소련은 당장 투자가 필요하고, 대한민국은 중동을 벗어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책이 필요하니 서로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동시베리아의 극지를 뚫어 단기간에 파이프라인을 건설할 능력자들은 단언컨대 우리 한국 건설사밖에 없다.
“좋소이다. 그 정도 협상은 되어야 국가적 협상이 되겠지요. 허면, 내 터놓고 얘기할 것이 좀 있는데 말이오. 들어보시겠소?”
뭐야? 고르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내 딜을 들어주는 대신 특약이 있다는 소린가?
뭐 예상했던 일이다.
정치인이라면 협상을 할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대세그룹의 기업적인 차원이든 국가적인 차원이든 소련의 개혁 개방에 최대한 협조할 것을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개혁 개방에 대한 지지는 감사하오. 그보다 일단 질문에 대답부터 해보시오. 우리 소련은 국토, 자원, 인력, 기술 등등 많은 것들이 풍족하지만 지금 당장 극히 부족한데 있소이다. 그게 뭐겠소?”
“…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제 생각엔 경공업 제품 생산량이 가장 부족하고 가장 절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탁.
내 말에 고르비는 보드카 잔을 탁자 위에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았다.
자신의 생각을 어찌 알았냐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당신이 다큐멘터리에서 본인 입으로 말하길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게 바로 소련의 경공업 산업 인프라였다.
인민들의 삶을 영위할 경공업 인프라와 생산량이 충분했다면 소련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사람은 자동차가 없으면 우마차를 끌며 살 수 있지만, 빵과 옷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아니, 내 속내를 어찌 알았소이까?”
“속내를 파악했다기 보다, 쓸데없는 냉전 이데올로기 싸움보다 인민들의 삶을 더 우선하는 젊은 서기장님이라면 경공업 생산증대가 시급하다고 여기리라 생각했습니다.”
“하하하하!”
고르비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진솔한 얘기가 오간 뒤에 이렇게 한번 띄워주게 되면 훅하니 친밀감이 오르기 마련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고르비의 표정이 붉게 상기된 것을 보니 큰 산은 넘은 것 같았다.
“그대에게 보여 줄 것이 있소이다.”
고르비는 날 이끌고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전용 회의실인 듯했는데, 커다란 탁자 위에는 각종 전자제품과 옷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우리 제품과 소련제 짜가 제품을 1대 1로 비교해놓고 있었다.
척 봐도 소련제 짜가는 볼품이 없었다.
21세기 기술이 접목된 우리 대세의 위드미를 이때의 소련이 흉내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이게 뭔지 알겠소?”
“저희 제품을 카피하셨군요. 한소 경협의 일환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해마시오. 우리가 그대들의 제품을 만들어본다면 원가가 얼마나 드는지 계산해보기 위해 실제 제작을 해본 거니까.”
헐, 고르비가 이런 경영자적 마인드가 있었나?
원가 계산이 어려우니 직접 만들어봤다고?
“그러셨군요.”
“품질을 떠나 비슷한 카피 제품을 만드는데 원가가 얼마나 드는지 가늠해보겠소?”
“… 적어도 30%는 비쌀 것 같습니다.”
소련의 인건비는 젖혀두고 설비 투자와 근로시간을 감안하면 우리 한국산 제품과는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생산량, 공장 자동화, 인력 숙련도 등등 모든 면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 회장, 30% 정도였다면 난 아주 기뻐했을 거요. 이 정도 저급 카피 제품가가 한국에서 수입한 제품가보다 자그마치 두배나 비싸다면 믿겠소이까?”
“두… 두 배라고요?”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대체 소련의 경공업이 얼마나 망가져 있기에 그 정도로 차이가 나지?
소련의 문화적 차이도 영향을 끼친듯 했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주의에 자본주의를 섞은 비빔밥 같은 정책으로 싼값에 인민들을 부려 더 싼 값의 물건을 만들어 파는 전략을 소련 지도부는 아예 생각조차 안하는 것 같았다.
자원의 저주? 중진국의 함정? 아니,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인 건가?
하긴 1인당 국민소득 3천불이 넘는 소련을 1인당 국민소득 300불 수준의 중공과 비교하긴 어렵겠군.
“우리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옷가지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위드미 같은 고급 소비재는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오. 내가 개혁 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는 본질이라고 할 것이오.”
“답답하셨겠군요.”
고르비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기에 난 옆에서 공감한다는 표현을 해줬다.
이 정도로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다니,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국가의 경공업이 망가져 있다면 인민의 생활상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인민의 불만은 내부적인 계급 갈등을 유발하고 지도부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킨다.
역시 고르비는 내 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그래서 말인데, 각종 경공업 산업분야에서 합작회사를 설립해 주지 않겠소? 시베리아 연해주 개발 위주의 한소 경협을 벗어나, 50대 50의 합작사를 소련 전역에 세우는 거요.”
“제가 전자제품이나 경공업에 대해 직접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한국 같은 약소국과의 합작은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었다.
투자하더라도 소련 패망 이후에 해야…
“그런 말 마시오. 한국 재계가 그대의 손바닥 위에 있지 않소? 그대가 나를 믿어주면 자연스레 해결 될 일! 배럴당 17달러, 20년간 공급이라면 이 정도 특약은 해야 가능하오이다.”
고르비의 말에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소련이 경제 위기를 돌파해서 안 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라는 재앙도 없어진 데다, 조만간 아프간전에서도 발을 뺄 텐데.
“서기장님도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1인당 국민 소득이 4천 달러밖에 되지 않는 초짜 중진국입니다. 게다가 88올림픽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지요. 경공업 산업체들이 소련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가 나서주면 코리아의 온갖 산업체들이 소련 본토에 진출할 것 같은데 말이오. 그대가 나서준다면, 코리아가 어려워하는 국제 정치 문제를 해결해주겠소이다.”
고르비가 척하니 다른 카드를 들이밀었다.
초강대국 지도자답게 카드가 다양했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하시면… 어떤?”
“이를테면 남북한 동시 UN 가입 같은 거 말이오. 우리 소비에트가 도와주면 문제없지 않소.”
“그 일은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자연스레 이뤄질 일입니다. 올림픽까지 치른 국가를 UN에서 승인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되니까요.”
대한민국이 단독으로라도 UN에 가입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결코 소련 본토 직접 투자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련이 패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러시아로 물밀 듯이 들어가야 효과적이다.
동유럽은 동유럽대로 공략하고 말이다.
“그럼, 다른 정치적인 문제는 없소? 말해보시오. 내 대가를 받지 않고 먼저 도와주겠소. 경공업 합작은 그 뒤에 결정해도 무방하오. 그대라면 호의에 답하지 않을 리 없으니 말이지.”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대가 없이 무조건 도와주겠단다.
이것 참. 3년 내에 망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 아니지… 지금 도와주면 아주 좋은 일이 있지.
“휴우…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어서 말해보시게. 뭐든!”
고르비는 내 표정이 변하자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재촉했다.